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57화 (57/341)

덫 (2)

오랜만에 도착한 미래 문자다.

문자의 형식은 사진.

정확히는 기사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내용.

고민할 것도 없이 곧장 사진을 확대해 기사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단독! 심판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검거! 사실, 범인은 여자로 밝혀져 충격!

-2019년 2월 28일 01시 26분부로 범죄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인 심판자가 검거되었다. 심판자는 체포 현장에서 본인이 심판자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에 응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거된 인물은 송 모 씨(28)로, 20대 젊은이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심판자인 범인이 여자라는 사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되는 셈이다. 심판자는 무려 여섯 명을 살해하고 두 명에게 살인미수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아홉 번째 범행을 실행하다가 잠복 중인 경찰들에게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긴급체포 되었다. 아홉 번째 피해자는 얼마 전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화제가 되었던 살인범 유 모 씨로 밝혀졌다. 유 모 씨는 심판자가 휘두른 둔기로 등에 타격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이다. 다행히 현장 검거를 통해 살인을 미수에 그치게 한 건 검경 합동 수사본부의 큰 공이 아닐까 싶다. 범인 검거 현장에는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인 최서준 검사와 그의 수사관인 윤설하를 포함한 검찰 여섯 명과 경찰 십여 명이 잠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판자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지만 내부자의 이야기를 들어 본 결과, 이 모든 검거 작전은 검경 합동 수사본부의 수장을 맡은 최서준 검사가 계획했다고 한다. 결국 스타 검사 최서준의 손으로 심판자 사건을 종결지은 것과 다름없는 결과. 검경 합동 수사본부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는 대로 기자회견을 통해 소식을 전달해 준다고 밝혔다.

-WK일보 박수형 기자

기사.

아주 훌륭한 기사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검거를 했고, 이 사실을 그리고 나를 찬양하는 기사.

방송 직후에는 몇 명의 경찰과 수사관을 더 데리고 나가 잠복 수사를 하려고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사의 첫머리에 있는 날짜와 시간.

2019년 2월 28일 01시 26분에 심판자를 검거했다는 내용만으로도, 심판자가 언제 움직이고 언제 범행을 저지를 것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박수형 기자에게 범인에 대한 정보와 시간 및 검거 장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사를 써 놓으라고 말해 뒀는데, 그게 아무래도 톡톡히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심판자 검거 기사가 단독을 달고 올라간다면, 국민 여론은 지금과 180도 달라질 터.

벌써부터 기대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가지 않아 그녀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예, 검사님.

“설하 씨, 다음 주 수요일부터 일정 비워 둬요.”

-수요일부터 말씀이십니까?

“네. 그때부터 무진장 바빠질 테니까요.”

-꼬리를 잡으셨군요.

윤설하는 흥미로운 듯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

“언론이 이쪽보다 심판자 사건으로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거 다행이네. 난 최서준이가 그걸 해결해서 민심 좀 회복하나 했더니, 오히려 논개가 되어서 언론이랑 같이 장렬하게 전사하려고 하네.”

대통령 권재철은 낄낄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저 정도로 압박이 심한데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하나도 안 흔들린다며?”

“예. 듣기로는 검경 합동 수사본부의 수사 방향과는 별개로 자신이 수사 방향을 잡고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심판자 검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잘됐네. 오래 걸리면 우리야 작업할 시간 더 벌고 좋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비서실장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맞장구쳤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기자들한테 땔감 몇 개 더 던져 줘. 최서준이 건으로 활활 불탈 수 있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우린 그동안 밀린 건이나 해결해 보자고.”

권재철은 귀를 후비며 테이블에 있던 서류를 펼쳤다.

“그래서 이번에 대한당이랑 민국당이 뭐 때문에 싸웠다고?”

“교육 법안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학 입학 수시 관련해서…….”

“아, 그거.”

그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말을 잘랐다.

“대한당 대표 따로 불러서, 민국당 수뇌부에 적당히 찔러줘서 해결 보라고 그래. 그거 까놓고 말해서 민국당에서 100% 반대할 건수도 아니잖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품에서 작은 메모장 하나를 꺼내 권재철에게 건넸다.

“이건 뭐야?”

“이번 설 연휴 때 타이밍 못 맞춰서 늦게나마 들어온 선물 리스트입니다.”

“거 자식들, 명절 쇠고 보내면 늦는다는 거 알면서도 늦게 보내요.”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리스트를 훑어보았다.

“물건들은?”

“대통령님의 둘째 사위분 별장으로 보내 뒀습니다.”

“그래, 잘했어. 다음부터는…….”

***

2월 27일 수요일.

심판자 검거 하루 전날이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신문에서는 최서준 수사본부장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말과 함께 이젠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었다.

누가 지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의가 다분한 기사 몇몇 개가 나를 물어뜯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그 의견에 동조해 기사를 내며 자연스레 이러한 흐름이 만들어졌다.

악의적인 기사가 올라온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서 최서준이라는 인물 자체를 완전히 무능한 검사로 만들고 있는 상태니까.

신문 사설란은 심판자와 검경 합동 수사본부 내용이 80% 이상을 채우고 있을 정도.

이쪽으로 언론과 여론의 시선이 돌아가서 권재철 대통령은 오히려 본의 아니게 숨을 돌리고 있을 터.

처음 그의 생각과 반대로 돌아가는 상황이라서 오히려 검거하지 않는 게 고마울 테지만, 이렇다 할 연락은 없었다.

이렇게 진행하다가 아예 나를 내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를 위해 총알받이가 되어 언론의 공격을 모두 받아 낼 생각은 나 또한 없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준 적은 있지만, 권재철은 무려 국가원수.

절대 갑이라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언제든 주변 사람을 잘라 낼 수 있을 테니까.

권재철은 늘 경계해야 했다.

언론이 이렇다 보니, 그 덕분에 김형석 경감은 완전히 기가 살아났다.

“아, 본부장님 오셨습니까?”

영감님이라고 부르다가 며칠 전부터는 본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상태.

언론에 수사본부장에 대한 욕이 가득한 걸 알고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물론, 나는 흔들릴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네, 안녕하세요.”

“요즘 기사나 뉴스에서 말이 많은데,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암만 이래도 범인 검거하면 금방 끝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잡으면 끝나죠.”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수사 쪽은 진척이 있습니까?”

“아이, 잘 모르겠습니다. 심판자 녀석이 영 꽁무니도 보이지 않아서요. 본부장님은 뭔가 진척이 있습니까?”

“예. 저는 제 방식대로 잘 가고 있습니다.”

“크으, 역시 이게 바로 본부장님의 클래스죠.”

그는 비꼬듯이 엄지까지 치켜올렸다.

“기대하겠습니다.”

“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조소를 보이고는 곧장 본부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사님 오셨습니까?”

윤설하는 고개를 꾸벅이며 내게 인사했다.

“말씀하신 대로 오늘부터는 스케줄 쫙 빼 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는 목울대를 한번 울리고 위엄 있게 말했다.

“수사본부장으로서 지시합니다. 오늘 오후 8시까지 검경 합동 수사관 중 현장 검거 경력이 있는 분들 모두 잠복 준비시켜 주세요.”

윤설하의 눈가에 흥분이 차올랐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명단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예.”

“알겠습니다. 바로 이행하겠습니다.”

김 반장 녀석, 어디 한번 콧대 좀 제대로 눌러 줘야지.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는 것도 모르다가 기사를 통해 검거 소식을 접했을 때의 표정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101동을 중심으로 검은 승용차와 승합차가 각각 두 대씩 나뉘어 주차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101동 708호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위치에 내 차를 주차해 두었다.

실내등은 당연히 켜지 않았고, 무전기만 켜 놓은 채 잠복하고 있는 상태.

유일하게 내 휴대폰만이 스피커폰이 켜진 채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검사님, 이제 막 목동 사거리 지났습니다.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주시해 주세요.”

옆에 있던 윤설하 수사관에게 눈빛을 주자, 그녀가 바로 무전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파했다.

“유동현 진입 10분 전. 다들 긴장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

현재 시간은 오후 11시 45분.

심판자의 표적인 유동현은 늘 규칙적인 생활을 했기에 미리 살해 현장으로 추정되는 그의 집에 와 있을 수 있었다.

자정 전에 늘 집에 들어오는 그가 오늘은 조금 늦기에 걱정했지만, 다행히 더 늦어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

심판자가 정확히 언제 진입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검거되는 시간은 알고 있다.

미래 문자에 나온 새벽 1시 26분.

아마도 심판자는 1시 전후로 이 장소에 등장할 터.

그때까지는 숨죽이고 이곳에서 대기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박수형 기자 또한 이 근처에서 따로 은밀하게 대기를 하고 있는 상태.

제일 먼저 단독 기사를 먹는 건, 당연히 나를 도와준 그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관계를 굳건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성공하는 것이니까.

송재훈 PD는 이미 심판자 특집 방송 제작에 들어가 있으니, 이번 검거로 인해 세 명 모두가 승승장구할 발판이 마련될 터.

남은 건 그저 그 발판을 딛고 높이 올라가는 것뿐이다.

“저기 들어옵니다.”

때마침 윤설하가 저 멀리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를 가리켰다.

하얀색 승용차. 차량 번호는 50구 5094.

유동현의 차다.

그의 뒤를 따르던 형사들의 차는 유동현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반대쪽으로 빠져나갔고, 우리는 유동현의 차량을 주시했다.

주차를 마친 그는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려 홀로 101동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시 후 켜지는 708호의 불빛.

벌써부터 떨려 오기 시작한다.

부담감에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잡고 얼마나 큰 영광을 얻을지에 대한 기대감.

오는 길에 윤설하에게는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전부 들은 윤설하도 이러는데, 전혀 듣지 못한 형사들은 공친다고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

그러나 그것도 어차피 1시간 내로 싹 사라질 게 확실하다.

오늘은 심판자를 잡을 테니까.

시간이 흘러, 일력이 한 장 찢어진 2월 28일 01시 11분.

늦은 시간에 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이 아파트의 주민인 것처럼 거침없이 들어와 깔끔하게 주차를 마친 자동차의 운전석에서는 키가 큰 장발의 여성이 하차했다.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심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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