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
“초동수사에서 얻은 증거가 없어요?”
“예.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하네요.”
아쉽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판자 녀석은 증거를 흘릴 만한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상태.
“추가적으로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초동수사로 증거를 잡지 못했으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내 말을 들은 두 남자는 연신 아쉬움을 토해 냈다.
“물론, 추가적으로 탐문 수사를 통해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을 확보하거나 CCTV를 돌려서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고요.”
“그렇군요.”
나로부터 수사본부에서의 상황을 전해 듣고 있는 두 인물은 송재훈 PD와 박수형 기자.
물론, 여기서 박수형 기자는 정치사회부의 박수형 기자다.
심판자 사건의 표적을 만들기 위해, 두 번째로 가지는 은밀한 회동이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나의 은밀한 오피스텔에서 모였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사이에 일곱 번째 심판자 사건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
그러나 방금 했던 말처럼 경찰은 여전히 범인의 증거를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예상했던 바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수사를 통해서는 심판자 녀석의 흔적을 쫓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상황.
계획대로 우리가 직접 사건을 기획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건 다 준비됐습니까?”
“예. 일단 검사님이 프로필을 주신 녀석을 추가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심판자가 노리는 범행 대상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수사보다 여기에 더 매달려 한참을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한 인물이었으니까.
내가 심판자의 표적으로 찍은 인물은 유동현이라는 자로, 여자 친구를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시체를 토막 내 자신 소유의 밭에 묻고 그 사실을 은닉하려고 시멘트까지 덮어 사체를 유기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건, 이 인간이 겨우 징역 3년을 받았다는 사실.
살인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데 반해 상해치사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그런데 재판부에서는 유동현이 고의가 아니라 여자 친구와 싸우다 우발적으로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를 인정했다.
그리고 두 번의 재판 끝에, 유동현은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사체유기까지 저지른 범죄자임에도 겨우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받을 수 있는 법정 형량에서 최소한의 형량만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
이를 듣던 박수형 기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겁니까?”
“양형 기준을 엄청나게 완화한 거죠.”
이 사건을 확인했을 때, 나도 씁쓸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형법 제53조 작량감경에 의하면, 범죄의 정상(情狀)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면 법관의 재량으로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나와 있거든요. 그런데 이 새끼가 완전히 수를 쓴 거죠.”
“어떤…….”
“여자 친구가 바람피운 걸 안 뒤에 때려서 죽여 놓고 우발적이라고 한 거죠. 사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며칠 뒤에 때려 죽였다고 하는데,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우발적인 거라고 보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재판부에서는 이걸 우발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허어.”
“판결문을 보니, 그것도 모자라 술에 취해서 심신상실의 상태라고 어필하고,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했다고 하더군요.”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했다고요?”
“예. 알고 보니까 피해자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 부모님이 별거하면서 어머니를 따라가서 살았는데, 그녀의 부모님이 이혼하시지 않은 채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법적으로는 그 피해자의 유일한 유족으로 아버지만 남은 거죠. 그런데 그 아버지에게 고작 5천만 원을 줘 놓고 합의를 한 겁니다.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요.”
“그 피해자의 아버지가 5천만 원만 받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요?”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고 말했다나 봐요. 사실, 자기와 20년 가까이 인연이 끊긴 딸자식으로 인해 5천만 원이나 받았으니, 공돈이 생겼다고 생각한 거겠죠.”
“허허허.”
박수형 기자와 송재훈 PD는 헛웃음을 흘려 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일 테니까.
그러나 이 모든 건 진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특급 변호인단까지 썼어요. 부장판사 출신에 부장검사 출신, 차장검사 출신까지 완전 엘리트만 모아 둔 거죠.”
“그런 녀석이 돈은 도대체 어떻게…….”
“그 녀석, 호스트바 선수였거든요.”
“아.”
“여자 친구 시체를 은닉하고 몇 년간 뻔뻔하게 호스트바 선수로 생활하다가 제대로 돈 많은 사모님 하나 문 거죠. 합의금부터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전부 그 여자한테서 나온 것 같더라고요.”
듣던 둘은 말을 잃어버렸다.
“결국 돈 주고 형량을 줄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검사로서 차마 말하기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사실을 말하자면, 이 녀석은 1심에서 5년 형을 받고 항소를 했다.
검사 측은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피고인은 형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항소를 했던 것.
그렇게 치러진 2심의 결과로 녀석은 3년 형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형기를 8개월가량 남긴 상태에서 모범수로 가석방까지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어이없기 짝이 없지만 이 모든 과정이 법적으로 어긋나는 점이 없다는 사실.
더욱 열받는 건,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하여, 이미 형이 확정된 그를 8개월이 지나면 다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
“이러한 이유로 사실, 저도 같은 검사이긴 하지만 형이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해서 심판자의 범행 표적으로 선정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형 기자는 테이블을 쿵 내려쳤다.
“이 녀석, 이거 제가 기사 내서라도 조져 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주 잘 고르신 겁니다.”
정의감에 불타 중립을 지키려던 송재훈 PD도 이번에는 심판자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는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렇게 듣는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는 저승에서 얼마나 한이 맺혔겠습니까? 진짜 마음 같아서는 심판자가 심판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은 심정입니다.”
나는 쓴웃음을 삼켰다.
“저도 같은 심정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암만 우리라도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처음에 송재훈 PD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심판자가 표적을 살해하기 전에 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하아.”
송재훈 PD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검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박수형 기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퉁명스레 말했다.
“진짜 대한민국, 돈 많으면 살기 참 좋은 나라네요. 사람 죽이고도 고작 3년 형밖에 안 받다니.”
너무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었기에 잠시 식히고 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자, 자, 진정하시고 일단 다시 프로그램 기획으로 돌아가죠. 우선은 프로그램 방영 시기에 관해서입니다. 송 PD님은 프로그램 방영 준비까지 완벽히 마치려면 얼마나 걸리시겠습니까?”
“이미 판결까지 난 내용이니 빠르면 열흘, 늦어도 보름 안에 편집까지 완료할 수 있습니다.”
“그때면 아마 살인범의 냉각기가 끝나 갈 무렵이겠네요.”
“맞습니다. 문제는, 그때쯤이면 이미 다음 범행 대상을 확정 지어 둔 상태일 거라는 겁니다.”
“점점 범인의 냉각기가 짧아지고는 있습니다만, 안전하게 가려면 여덟 번째 살인이 발생한 직후가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심판자의 냉각기는 보름에서 3주에 가까운 기간이다.
지금 준비해서 범행 전에 프로그램 방영을 한다면, 이미 표적을 정해 둔 심판자에게 닿는 임팩트가 적을 가능성이 클 터.
그렇다면 그가 뜨겁게 타오를 때가 아닌, 냉각기가 다시 시작될 무렵에 방송을 내보내는 게 더 적절했다.
그래야 심판자가 이 방송을 보고 새로운 표적을 정할 테니까.
“그러면 방영 시기는 여덟 번째 살인 직후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하죠.”
“예, 알겠습니다.”
박수형 기자는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저는 지금부터 심판자를 자극하는 기사 위주로 쓰다가 방영 후에 해당 범죄자로 시선을 돌리면 되겠죠?”
“예. 그러면 심판자는 자연스럽게 유동현을 눈여겨보게 될 겁니다.”
프로파일러들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심판자는 관심에 목마른 존재.
그렇기에 살인 현장에 쪽지를 남기고, 자신이 심판한다는 것까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연신 관심을 쏟아 내던 기자가, 그것도 인터넷에서 화제성이 큰 기사를 굵직하게 뽑아내는 기자가 하루아침에 다른 범죄자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심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에 대해 호기심과 질투심을 갖고 눈여겨볼 수밖에 없을 터.
심판자가 박수형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비장의 무기는 준비되어 있는 상황.
그가 박수형을 주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건 무조건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되면 심판자가 의 본방송을 놓쳤더라도 찾아보게 될 테고, 자연스럽게 유동현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동현이 심판자의 범행 표적으로 잡히는 건 시간문제.
우리는 그 전에 미리 유동현의 동선과 주변 상황을 파악해 두고 심판자를 현장 검거하기 위한 완벽한 채비를 마치면 된다.
잠복을 하다가 심판자가 범행을 저지르려고 나타났을 때, 현장에서 덮치면 게임 끝.
아주 완벽한 계획이었다.
“일단은 이 정도로…….”
지이잉 지이잉.
갑자기 울려 대는 휴대폰.
발신인은 다름 아닌 검경 합동 수사본부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수사본부라서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최서준입니다.”
-검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지금 탐문 중인 경찰 측에서 정보 하나를 전해 왔습니다.
“말씀하세요.”
-범인이 포착된 블랙박스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블랙박스요?”
-예. 사건 당시에 차량에 붙어 있었는데, 아마 심판자는 이를 모르고 지나친 것 같습니다.
나이스!
암만 녀석이라도 인간은 인간인 모양.
일곱 개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늘 완벽할 수는 없었겠지.
“인상착의 좀 말해 주세요.”
-밤중이라서 정확한 의상은 확인할 수 없으나, 머리카락이 어깨 밑, 정확히는 견갑골과 어깨 사이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말은 여자라는 뜻입니까?”
-물론 장발의 남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우선은 여자에 초점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자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한다.
이 사건을 처음 맡게 되었을 때 윤설하가 여자일 가능성도 어느 정도 없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진짜 여성이라니.
아무래도 윤설하가 수사관으로 남아 있는 게 아까울 수준이라니까.
-더 정확한 건 국과수에 블랙박스 영상을 넘겨서 더 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찍힌 건 뒷모습이 전부라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성별과 신장 정도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도 충분합니다. 고생하셨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예. 늦었는데 근무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자, 마치 어미 새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목을 빼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내리기 무섭게 쏟아지는 질문.
“심판자가 여자라고요?”
“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게 여자란 말입니까?”
“워워, 진정하세요.”
다시 그들의 곁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여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아직 장발의 남자일 가능성도 있어요.”
“검사님과 일하다 보니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들어오는군요.”
“그럼요. 수사본부에서 최우선으로 저한테 보고가 들어오니까요.”
나는 코를 찡긋거리고는 손뼉을 쳤다.
“자, 이제 의욕이 더욱 충전되었을 테니 제대로 한번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