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53화 (53/341)

기획 (1)

“제가 조만간 자리 한번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자리라면…….”

“로 방송을 기획하는 자리죠.”

입꼬리를 비틀자, 박수형 기자는 눈을 번뜩였다.

“역시 검사님은 생각하신 것 이상으로 결단력이 있으시군요.”

대답은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론, 빠르게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일곱 번째 살인대상을 우리가 지정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섯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보름이나 지난 상황.

연쇄살인범은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냉각기를 갖는다고 하지만, 이 정도 시기라면 다시금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 상태다.

피해자를 지정하고 기획하는 시간도 필요할 테니 빠르면 아홉 번째, 늦으면 열 번째 범행 대상을 고를 때에나 우리가 개입할 수 있을 터.

박수형 기자는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잡히지 않았던 그 심판자 녀석이 갑자기 잡힐 리는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그 인공 눈물은 외부로 유출하지 마시고요.”

“아, 이럴 게 아니라 검사님이 보관해 주시죠. 오늘 대화해 본 결과, 검사님을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직접 인공 눈물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 들고 손을 뻗었다.

“또 보죠.”

박수형 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악수했다.

고작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확신을 갖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

심판자 사건에 대한 검경 합동 수사본부의 설립 당일.

아니나 다를까, 경찰과 검찰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은 전부 모였다.

그만큼 국가에서는 심판자 사건을 중요시하고 있고, 검찰과 경찰은 이를 특진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일 터.

이런 상황에서 범죄자의 심리를 읽고 검거 작전까지 기획해 사건을 해결한다면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테지.

심판자 녀석을 멋지게 검거해 기자회견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사관님이 보기에 오늘 볼 인물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 누구 같습니까?”

“음, 검찰 측 인물은 저보다 검사님께서 더 잘 아실 테니 패스하고, 경찰 측으로만 보면…….”

윤설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광수대 출신 김 반장 아닐까요?”

“김형석 경감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녀는 내 옆을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는 웬만해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잖아요.”

“예. 그만큼 능력도 좋지만, 제 기억으로는 사고를 꽤나 많이 일으킨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다. 검사님들한테 툭툭 뱉으며 시비 거는 게 많다고 들었어요.”

“검사들은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답니까? 무슨 검찰이 경찰한테 쩔쩔매나요.”

“들어 보니 그쪽도 인맥이 짱짱한가 봐요. 어디서 들은 말로는, 검찰 고위 간부들과 이어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검찰 고위 간부라.

아무래도 이 녀석도 라인을 제대로 타고 있는 모양인데?

대한민국에 가장 큰 라인이라고 해 봤자, 세 개.

그중 하나는 내가 있는 국무총리 최규현 라인, 다른 하나는 우리의 동맹으로 임주영 前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있던 라인.

그러나 이 두 개의 라인 모두 검찰과 정치인이 주축을 이루기에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나머지 한 개의 라인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인데.

어렴풋이 라인의 구조는 가늠하고 있지만, 정확한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그 라인이 튼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일 터.

아마 이번 심판자 사건을 진행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라인에 대해 엿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김형석 경감 녀석이 기어오르려고 한다면 처절하게 짓밟아 줄 것이고.

나는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봤자 짜바리 아니겠습니까?”

윤설하는 눈꼬리를 휘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혹시 능력이 닿으면 김형석 경감이 연결되어 있다는 그 검찰 고위 간부가 누군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이제 서른한 살 밖에 안 된 제가 괜히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을 맡았겠습니까?”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윤설하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조사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첫 회의를 시작하기 전, 미리 수사본부에 들어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검사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인사를 하고 있는데…….

“오, 이게 누구야. 우리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님 아니십니까?”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광수대에서 합류한 김형석 경감입니다.”

누군가 했더니, 역시나 조금 전에 이야기한 그 인간이다.

“아, 김 반장님이시군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야, 제 소문이 검찰에까지 퍼졌나 보군요. 자랑스러운데요?”

그는 뻔뻔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영감님 소문은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TV로도 자주 뵈었고요.”

‘영감님’이라는 단어가 날카롭게 귀에 박혔다.

초면에 대놓고 영감님이라.

첫 만남부터 내 심기를 거스르려고 작정을 한 모양.

김형석 경감의 나이는 40대 초중반.

일단 나이는 나보다 많기에 못 들은 척 한번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TV에서 검사 이야기만 나오면 전부 영감님 이야기잖습니까?”

두 번 연속으로 언급된 ‘영감님’에, 주변에 있던 검사들 또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감님이라는 단어는 검사를 비꼬듯이 부르는 단어로, 속된 말로 ‘꼰대’라는 느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본래 지체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만, 현대 검경 사이에서는 나쁜 의미로 변질된 단어.

다만 그 어원 때문에 대놓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가는 괜히 검사들만 권위적인 것처럼 몰릴 수 있기에 심기가 불편해도 티를 내지 못하는 게 현 실태다.

그러나 이런 기 싸움에서는 지고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선방.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맞았는데 가만히 있는 건 나를 포함해 주변에 있는 검사들을 전부 호구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일.

갚아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인터넷에 광수대 짜바리라고 검색하면 김 반장님도 메인에 뜨시는 걸요, 뭐.”

짜바리라는 말에 김형석 경감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검사님. 제가 영감님이라고 했다고 그렇게 부르시는 겁니까?”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짜바리는 사투리잖습니까. 제가 ‘짭새’라고 부른 것도 아니고요.”

짭새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하자, 김형석 경감의 표정에도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입 밖으로 욕지거리만 내뱉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서로를 보는 눈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는 상황.

이내 김형석 경감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같이 한번 잘해 보죠. 악질 범죄나 저지르면서 심판이라고 포장하는 심판자 자식은 잡아 처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나 또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손을 꽉 쥔 채 팔에 힘을 주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검사라고 허투루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악력에서 완전히 압도당했다.

“이야, 우리 젊으신 영감님 힘은 못 따라가겠네.”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빼서 휘휘 흔들며 태연한 척 말을 했다.

“나중에 또 보죠.”

“그래요.”

김형석 경감은 내 주변에 있는 검사들을 주욱 훑어보고는 자리를 옮겼다.

***

“오랜만입니다, 검사님.”

“그러게요. 요즘 너무 바빠서 뵐 시간이 없었네요. 죄송합니다.”

“아이, 일 때문에 바쁜데 죄송하고 자시고 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송재훈 PD는 역시나 사람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기분 좋은 미소로 그를 오피스텔 안으로 들였다.

“차 드시겠어요, 아니면 맥주 한잔 드실래요?”

“맥주로 하겠습니다.”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그와 내 앞에 놓고는 자연스레 소파에 착석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는 시원하게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허물없이 물었다.

“그나저나 하실 말씀이라는 게 어떤 건가요?”

“PD님.”

평소와 달리, 진중한 어투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오늘 나눌 대화 내용들은 PD님께서 수락하든 아니든 간에, 비밀로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송재훈 PD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진지하게 임했다.

“평생 비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제부터 본론이다.

그를 설득해야 완벽하게 사건을 기획할 수 있을 터.

송재훈 PD는 성공이라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박수형 기자와는 스타일이 달랐다.

그만의 가치관과 신념이 있고, 정의를 지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의 프로듀서로 자진해서 들어갔다.

아무리 나라고 한들, 그걸 침범해서는 안 되는 일.

그가 불편해할 만한 일을 제안하는 건 지양해야 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심판자 사건 관련해서 첩보 하나를 입수했습니다.”

심판자 사건이라는 말에 그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게 느껴졌다.

언론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니까.

“그 심판자의 피해자들이 전부 에서 언급된 사건의 범인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허어.”

그는 당황한 듯 숨을 길게 내뱉었다.

“잠깐만요.”

송재훈 PD는 머릿속으로 그간의 프로그램과 피해자들을 떠올려 대조하듯이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군요.”

“예.”

“그렇다면 설마, 다음 피해자도…….”

그는 말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대답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사건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대화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테고, 무엇보다 나라는 인물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송재훈 PD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누군가를 범행 대상으로 만들어 그의 목숨을 빼앗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단호하게 부정했다.

“정확히는, 범행 대상을 특정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함이죠.”

“범인을 검거한다라.”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와 공익을 위한 두 신념이 충돌되는 순간이기에 긴히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 터.

송재훈 PD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범행 대상을 특정했다는 사실은 피해자 본인에게 알려 주지 않는 거죠?”

“예,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호한다면, 심판자가 눈치를 챌 테니까요. 우리로서는 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리스크는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송재훈 PD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필적고의라는 거군요.”

“그런 셈이죠.”

그는 손을 모으고 짙은 고민에 빠졌다.

설득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이 녀석을 잡지 못하면, 일곱 번째 피해자는 물론이고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열 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송재훈 PD는 미간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줄였다.

심히 고민되는 모양.

여기서 더 말을 하는 건 그를 재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남은 건 내 말에 힘이 있었길 기대하는 것뿐.

한참의 정적이 흐른 뒤, 그가 나를 향해 물었다.

“검사님.”

“예.”

“제가 도와드린다면, 해당 인물이 심판자의 표적이 되더라도 그로부터 살해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악질 전과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검사로서 응당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약속드리죠.”

“알겠습니다.”

송재훈 PD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자 사건의 표적.”

그는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와 함께 기획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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