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48화 (48/341)

칼자루 (4)

-최서준 검사가 말한 최은정 성 상납 리스트 재조명! 서른 명 전원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청원 빗발쳐…….

-최은정 성 상납 리스트에 박성현 차관이 포함되었다는 의혹 확산 中. 경찰에서는 여전히 리스트 비공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과. 실태 파악 및 개선에 대해 약속한 기자회견

-차윤택, 이은택과 같은 권위를 이용한 상습 성추행, 정말 막을 방법은 없나?

-문화체육관광부 박성현 차관의 후임자는 누구?

-형량 예측 사무소! 박성현 차관의 구형과 선고 형량에 대해 예측해 본다!

이미 인터넷에선 박성현 차관을 유죄판결이 난 사람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여성 단체에서는 임선미를 보호해 주고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박성현 차관에 대해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았다.

임선미의 고발과 두 건의 미투 건으로 인해 그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내가 손쓰지 않아도 재기 불능의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

남은 건 그저 적당히 사건을 마무리해서 공판 검사한테 넘기면 내 임무는 완수였다.

구속 수사가 끝난 뒤, 구치소에서 나가는 박성현 차관을 배웅하러 갔다.

말이 배웅이지 그의 입장에선 놀리러 간 거라고 보일 테지만, 내 입장에서는 일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어, 차관님. 이제 나가십니까?”

“…….”

박성현 차관은 말없이 옷을 챙겨 입었다.

“아마 이번에 나가셔서 스스로 옷 벗으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공판 들어가면 퇴임이 아니라 파면이라서, 그 좋은 연금도 못 받으실 테니까요.”

“최서준 검사.”

그는 나를 보며 나직이 물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가?”

“왜라니요, 신고가 들어왔고 저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외투를 걸쳤다.

나는 조금 더 은밀한 대화를 위해 문을 닫고 말했다.

“계속 무죄 주장하실 겁니까?”

“무죄가 아니라, 무혐의.”

“차관직은 계속 붙들고 계실 겁니까?”

박성현 차관은 헛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봤다.

“누구 덕분에, 그러기는 힘들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나한테 원한을 품었을 리는 없고. 누가 시켰나?”

“시키다니요.”

그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강 의원인가?”

“저는 누구 밑에서 움직일 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그는 말없이 날숨을 크게 내뱉었다.

“나오게. 나가야겠어.”

박성현 차관이 나가려는 찰나.

나는 다시금 문을 막아서고 창문의 블라인드까지 쳤다.

그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지?”

“사흘 안에 사직서 제출하십시오. 그러면 집행유예로 처리하겠습니다.”

“……뭐?”

“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적당히 인정하시고, 공판에서 잊힐 때까지 시간만 잘 끌어 주십시오.”

“…….”

그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언론 상황은 차관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계속 부인하다가는 밥그릇도 못 챙기십니다.”

이런 건은 서둘러 처리하고 치우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허어.”

“구치소에 있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 감방 생활이란 거 할 게 못 됩니다.”

그를 떠볼 겸, 없는 생색까지 냈다.

“저도 김재욱 검사장님 봐서 이 정도로 배려해 드리는 겁니다.”

그의 입술이 삐죽였다.

김재욱 검사장에게 확실히 무언가 부탁한 게 맞다는 증거.

일단 필요한 건 다 나왔고 할 말은 전달했기에, 문을 열어 주며 옆으로 비켜 주었다.

“소지품은 저쪽에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이번엔 자네 뜻대로 되지만, 늘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래야 인생이 더 재미있겠죠.”

“그래.”

“사흘입니다.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생각해 보지.”

***

그의 구속이 만료된 그날.

권재철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아주 정의로운 발표를 했다.

-내부 고발자가 손가락질받고 외면받는 사회는 지양해야 마땅합니다. 그게 지속되었다가는 부조리를 고발치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삼키며 썩어 문드러지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청와대는 이번 박성현 차관 성추행 건에서 임선미 비서가 무고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이 될 경우, 그분을 청와대에서 특채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특채.

여느 때든 소동이 일어나거나 의심의 눈길이 가야 할 사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특채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여성 단체와 시민 단체로부터 맹비난을 받을 게 뻔했으니까.

오히려 대부분의 언론에서 청와대의 결단을 칭찬하며 떠받드는 의견을 발표하고 있을 정도.

어려울 게 없었다.

순풍에 돛 단 것처럼 매우 순조로웠다.

남은 건 박성현 차관이 스스로 물러나냐, 끝까지 버티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라면 끝까지 버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통보했던 사흘 중 마지막 날.

아니나 다를까, 박성현 차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직의 의사를 밝혔다.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받았을 임선미 씨에게 매우 죄송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합의되었다는 최초 의견은 제 잘못입니다. 오늘부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직을 내려놓고, 앞으로 정치 활동 및 공무 활동 또한 일절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깔끔했다.

처음에 그린 시나리오에서 추호도 벗어나지 않은 완벽한 그림.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김재욱 검사장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어. 앉게.”

그는 여느 때와 달리 꽤나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 박 차관 사표 냈더라.”

“예, 보도 봤습니다.”

“아주 제대로 물었던데.”

그의 윗입술이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최 프로.”

“예.”

“집행유예 준다고 했다며.”

그는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이고는 손끝을 모아 턱을 받쳤다.

“누가 몰아내라고 한 거야?”

“…….”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고,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최 프로,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네 상사야. 알 건 알아야지.”

“죄송합니다.”

“허어.”

김재욱 검사장은 이마를 쓸어 만지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번에 청와대 발표한 거랑 연관 있는 거지?”

알아챈 건가?

아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바로 직구를 날렸을 인간이다.

떠보는 게 분명할 터.

이 인간은 그렇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인간이 아니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노코멘트로 일관하자,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맞네. 보니까 비서실장이랑 자네랑 같은 최씨더구먼. 암만 좋아도 혈연은 못 이긴다더니.”

혈연? 비서실장?

이 인간,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

“이번 건은 집행유예로 간다니까 나도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 더 있으면 난 곤란해.”

“알겠습니다.”

“최 프로 인사권은 나한테 있는 거 제일 잘 알잖아. 안 그래?”

그는 금세 거만한 표정으로 바뀌어 나를 천천히 훑었다.

“앞으로 이런 건 있으면 보고하고 가자. 윈윈이라는 말 알지?”

“예.”

“그래. 가 봐.”

“쉬십시오.”

고개를 꾸벅이고 검사장실을 빠져나왔다.

하.

안에서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느라 혼났다.

저 자식, 검사장이라는 자리에 심취해서, 속내를 숨기려는 마음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본인의 그릇이 저 정도라는 걸 알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지만, 인간이 너무나도 쉽다.

김재욱이 검사장으로 버티고 있을 때야 당연히 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길어 봤자 1년.

내가 아니더라도 저 인간은 1년 안에 모가지가 나갈 녀석이다.

대전고검장으로 목구멍 끝까지 거만함만 가득 찬 터라 여기서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지방이랑 서울이랑 똑같은 줄 아는 모양.

몇 년 동안 지방에서 뺑뺑이 도느라 감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것 같다.

조만간에 큰코다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저런 식으로 간다면 이곳을 마지막으로 퇴직을 하겠지.

저 인간의 비위나 맞추며 알랑방귀를 뀔 생각은 없다.

적당히 선만 지키면서 녀석이 잘려 나갈 타이밍만 기다리면 되는 법.

오히려 마음이 더 홀가분해졌다.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WK일보의 박수형 기자.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예, 최서준입니다.”

-아, 최 검사님. 이번 사건도 잘 봤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유, 고생은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괜찮으시면 조만간 소주 한잔 같이하시죠. 이번에 재훈이 형도 취재 끝나서 휴가 받은 모양이거든요.

송재훈 PD도 한창 조사할 게 있다고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며 바쁘다더니, 어느 정도 끝나서 여유가 생긴 모양.

박수형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일단은 송재훈 PD를 생각해서라도 인맥 관리는 꾸준히 할 필요가 있었다.

“예. 그러면 날짜 한번 잡으시고 알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한마디를 더 물었다.

-아, 검사님. 제 지인분께서 검사님을 뵙고 싶어 하시는데, 혹시 그때 같이 봬도 될까요?

“지인분요?”

지인이라.

박수형이 이런 면에서 쓸모가 있는 걸지도.

그래도 일단은 조심해야 했다.

“제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공무원이나 이쪽 업계에 계신 분은 조금…….”

-아,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영화 사업하시는 분이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부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영화 사업이라.

일단 만나서 나쁠 건 없을 터.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건 중에 이쪽과 관련된 일은 전혀 없으니까.

“예. 그러면 같이 뵙죠.”

-알겠습니다. 날짜 잡고 문자 드리겠습니다.

“네.”

***

“안녕하십니까, 진태용입니다.”

“최서준입니다.”

영화 사업을 한다기에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젊고 깔끔해 보였다.

나이는 40대 전후.

그가 내민 명함을 확인하자, ‘스타 프로덕션’의 사장이라는 직함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진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어허허헛, 편하게 부르십시오, 검사님.”

진태용 사장은 인상 좋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에 뉴스 봤습니다. 이번에 정말 대단한 일 하셨던데요.”

“에이, 띄워 주지 마십시오. 부끄럽습니다.”

“진짜인 걸요, 뭐. 하하하.”

진태용은 크게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오늘은 마음껏 드십시오.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산다는 말에 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송재훈 PD와 박수형 기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렸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태용 사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김영란법 때문에 못 얻어먹거든요.”

“아!”

그는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모았다.

“제가 그걸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편하게 드십시오. 저는 마지막에 1/N만 하면 됩니다.”

송재훈 PD와 박수형 기자는 믿을 수 있다지만, 오늘 처음 만난 진태용 사장까지 믿을 수는 없는 일.

이 정도 보험을 걸어 두는 건 기본적인 처사였다.

접대가 일상인 연예계에 종사하는 진태용인 만큼 1/N은 어색하겠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진태용은 옆머리를 긁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괜히 말씀드려 놓고 죄송스럽네요.”

“저는 더치페이를 안 하면 잡혀갑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어요, 하하핫.”

편하게 말하고 나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나중에 제가 몰래 대접하겠습니다.”

“그런 건 이 두 분 몰래 말해 주셨어야죠.”

“앗,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농담을 시작으로 우리는 껄껄대며 한참 동안 사담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박수형과 송재훈 PD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담배 한 대 태우고 올게요. 서준 씨도 같이 가실래요?”

“아, 저는 조금 전에 화장실 갔다 오면서 피우고 왔어요. 두 분이서 다녀와요.”

“예.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계셔요.”

그들이 흡연 구역으로 향하자,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었다.

“그나저나 프로덕션이면 어떤 걸 취급하시는 겁니까?”

“드라마나 영화 쪽을 주로 취급합니다. 얼마 전에 드라마 끝내고 지금은 영화 하나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화요?”

“예. ‘느와르의 정석’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이제 막 준비 단계라…….”

말하던 진태용 사장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 검사님. 제가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제안요?”

“예.”

그는 눈을 빛내며 말을 시작했다.

“복잡한 건 아니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