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45화 (45/341)

칼자루 (1)

-어떻게, 한번 해결해 줄 수 있겠어?

대통령의 부탁.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꺼릴 만한 일도 아니다.

그가 탄핵당하지 않는다면, 줄 하나는 제대로 잡는 게 되니까.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그걸 바라는 수밖에.

여기서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의 부탁을 해결하고 대통령의 총애를 품에 안는다.

탄핵되기 전까지는 굳건하게.

그러나 탄핵된 후에는 얼마든지 발을 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는 것.

이것이 내가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예,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 인간이 옷을 벗었으면 좋겠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라.

첫 부탁부터 차관급 인사라니.

누가 대통령 아니랄까 봐 스케일 한번 대단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라면, 박성현 차관 말씀하시는 것 맞습니까?”

-어. 그 친구가 요즘 속을 꽤 썩여서 말이야.

“차관급이라면 대통령님께서 직접 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꽂은 사람인데 어떻게 내 손으로 쳐내나?

뻔뻔한 목소리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받아먹을 건 다 받아먹고 단물 빠지니까 갈아 치우겠다는 소리다.

“생각해 두신 계획이나 방법이 있습니까?”

-에헤이, 그건 우리 최 검사가 생각해야지. 나는 나랏일이 많아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력이 안 돼.

양아치 새끼.

소스도 던져 주지 않고 알아서 차관 하나의 목을 쳐내라니.

대통령이 이런 건에 날 불렀다는 건, 날 시험하려는 것이다.

문제가 없는 이상, 그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기회.

암만 위험한 인물이라도 이런 기회는 놓쳐서는 안 된다.

성공하는 순간, 그의 임기 동안은 권세가 내게 오는 것이니까.

탄핵을 당하기 전까지라도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어야 한다.

“그러면 스케일은 큰 게 좋으십니까, 작은 게 좋으십니까?”

-아무래도 큰 놈이 좋지? 녀석이 다시는 정계로 복귀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전화기 너머로 대통령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칼자루 휘두르다가 중간에 피 튀긴 녀석들이 생기면 그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알겠습니다.”

-그래, 최 검사. 부탁함세.

그는 짤막한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검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위치의 인물.

녀석을 어떻게 해야 끌어내릴 수 있으려나.

오피스텔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지잉 지잉.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보낸 이 : 26

-동영상

잠깐만, 이게 뭐야.

보낸 이가 26이라니.

미래 문자…… 아니, 미래 문자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

내가 문자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남아 있었던 모양.

일단 문자 내용부터 확인해야 정확히 알 수 있을 터.

곧바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너 이리 와 봐.

남자의 권위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잠시만요.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

-거, 일단 와 보라니까.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리지만, 여전히 화면은 검은색이었다.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

-지퍼가 옷에 걸려서…….

-상관없으니까 거기 불 켜고 앞에 똑바로 서 보라고.

팟-!

순간적으로 동영상의 화면이 환해지며, 대화를 나누던 두 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성현.

그는 알몸에 가운만 걸친 채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전등을 켠 여자는…… 어?

설마, 이 동영상…….

-흐흐흐, 이리 와 봐.

박성현 차관은 슬쩍 여자의 손목을 끌어 자신의 앞으로 당겨왔다.

-이제 스물세 살이라고 했나?

-……네.

-좋아, 이제 은정이 너도 단역 신세 끝내야지. 안 그래?

여자는 눈에 눈물까지 고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

남자는 여자가 입고 있던 원피스를 손수 벗겨 냈다.

그녀의 피부가 드러나자, 복부 및 허벅지 등엔 다른 곳과 달리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아.”

보자마자 짙은 한숨이 나오는 나와 달리, 영상 속의 박성현 차관은 멍 자국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신의 탐욕만 드러내며 그저 여자를 품에 안으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허으으, 이번에 꼭 좋은 역할로 꽂아 줄게.

-…….

박성현 차관은 참지 못하고 일어나 자신의 가운을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그 순간,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이런 쓰레기 새끼들.

이 더러운 광경을 눈으로 보니,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참기가 힘들었다.

“후우.”

머리를 쓸어 넘기며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어 창밖으로 향했다.

문득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어느샌가 나 또한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영상은 너무나도 처참한 사건의 전말을 알려 주는 슬픈 내용이었으니까.

동영상에 등장한 여자는 최은정.

몇 년 전, 기획사 대표의 주도로 강제적인 성 상납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던 그녀다.

성 상납을 거부하면 협박과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었는데, 동영상에 나온 시퍼런 멍 자국과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모습이 그 진술을 증명하고 있는 상태.

세간의 화제가 되어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지만, 당시 높은 사람들이 많이 연루된 탓에 전부 무죄, 무혐의를 받고 풀려났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초유의 사태를 벌이며 유야무야 마무리된 사건.

결국 그 건으로 그녀는 연예계에서 블랙리스트에 등재되는 것도 모자라, 가해자 중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는 참사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는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참혹한 결말을 가져왔다.

그녀가 제출한 성 상납 리스트에 적힌 인물은 총 삼십여 명.

그중에 열 명은 언론에 공개되었지만 나머지 스무 명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

그 스무 명 중에 박성현 차관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하.

헛웃음이 나온다.

강제적인 성 상납의 고통 속에 죽어 간 피해자.

그것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자살하게 만든 장본인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맡고 있다니.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미간을 꾹 눌러, 차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진정시켰다.

계속 생각하면 아무래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머릿속을 다른 건으로 환기시켰다.

문자.

그래, 문자부터 생각하자.

보낸 이가 26이라는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의미다.

최은정이 4년 전에 성 상납 리스트를 터뜨린 뒤, 모든 재판이 끝나고 자살한 게 3년 전.

시기는 확실하게 맞아 들어간다.

아무래도 이 문자는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일련의 사건들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일어날 일 모두를 내게 보여 주는 모양.

그렇게 생각하면, 이 문자에 대한 해답이 된다.

그 생각을 끝내기 무섭게 동영상에서 봤던 겁에 질린 최은정의 얼굴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젠장.

박성현 이 개X끼.

대통령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자식은 무조건 내 손으로 조져야 할 것 같다.

녀석이 힘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갔다면, 이번엔 내 힘으로 그 법망을 이용해 녀석에게 법의 처벌을 받게 할 순서다.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몇 번의 수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검사님.

“수사관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박성현 차관 주변 인물 조사 좀 해 주세요.”

-박성현이라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요?

“예. 주변 인물 중에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불만이 있거나,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요. 자세하게 부탁드립니다.”

윤설하는 대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챘는지, 더 묻지 않고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요.”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

“임선미?”

“예.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비서로 있는 인물인데, 그녀의 가정이 전체적으로 금전적인 부분에서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차관 비서급이나 되는 인물이면 금전 상황이 안 좋기가 더 힘든데.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사실은, 임선미의 친오빠 되는 인물이 사업을 크게 벌였던 모양입니다.”

윤설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임선미는 금전적으로 상당히 위기에 몰려 있었다.

친오빠가 사업을 벌이며 임선미에게는 물론이고 금융 업체에서 대출받은 것도 모자라 사채에까지 손을 벌렸다가, 완전히 폭삭 망해 투자금도 회수치 못한 상황.

그는 결국 대부 업체의 돈을 갚지 못하고 해외로 도망가 버렸고, 사채업자들은 임선미를 찾아와 그녀에게 오빠의 빚을 대신해서 갚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상태.

얼마 전에는 그녀의 집까지 몰래 들어가 깽판을 쳐 놓았다고 했다.

임선미도 마음 같아서는 경찰에 신고하고 싶겠지만, 그랬다간 사채업자들이 친오빠를 죽일 거라는 협박까지 해 버린 상황이라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데다가 소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차관 비서라는 위치가 한몫했을 것이다.

다른 요소도 아니고 돈 때문에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아니, 마음을 가져오기가 훨씬 쉬워지지.

“빚이 어느 정도 되는 거예요?”

“임선미가 가지고 있던 사유재산으로 다 갚고 나서 2억 3천 정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사업을 벌인 겁니까?”

“가상 화폐라고 합니다.”

“어휴.”

2억 3천.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빚.

그 정도라면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앉은자리에서 바로 결론을 내렸다.

“임선미로 갑시다.”

따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윤설하도 이미 내 타깃이 누군지 목표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눈치채고 있었다.

“제가 임선미를 따로 만나 볼까요?”

“그 전에 시나리오는 하나 만들고 가죠.”

윤설하는 엉큼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우리는 자리를 옮겨 심도 깊은 토의에 들어갔다.

“차관과 비서의 관계. 가장 이상적인 건 그거겠죠?”

“예. 안 그래도 박성현 차관이라면 얼마 전에 여성 비하 발언까지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죠.”

가장 엮기 좋은 건은 크게 두 가지.

불륜과 성폭력.

어느 것이든 간에 엮으려면 엮을 수 있고, 박성현 차관의 옷을 벗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짧고 굵게 임팩트 있는 것으로 가려면 당연히 후자였다.

무엇보다 최은정 리스트에 포함되었던 녀석에게 어울리는 범죄이기도 했고.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추행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그녀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

“좋습니다. 요새 한창 뜨거운 사안이니 무조건적으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워낙 시기가 민감한 만큼, 사건이 언론을 타기만 하면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우릴 도와줄 터.

“최근 판례로 보면, 물적증거 없이도 실형이 나오죠?”

“예.”

윤설하 수사관은 들고 온 서류를 확인하며 말했다.

“최근에 한 회사 상사에게 피해 여성의 증언만으로 징역 6개월이 나왔습니다. 뭐, 그 인간은 진짜 범죄를 저지른 것 같지만요.”

“배우 정해졌고, 소재 나왔네요. 시나리오도 괜찮고.”

남은 건 배우의 캐스팅이 되느냐, 안 되느냐뿐.

그러나 임선미의 경제 상황이라면 캐스팅에 실패할 가능성은 굉장히 적었다.

“임선미 성향은 어때요?”

“평범합니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데, 사채로 2억 3천이라면 정식 월급으로는 이자 감당하기도 힘들 겁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진행될 수도 있겠는데?”

“어떻게 제안을 하면 될까요?”

“일단 간부터 봅시다. 계약금 2천에, 사건 종료 즉시 남은 빚 전부 대납.”

윤설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사님, 진짜 보통 그릇이 아니시군요.”

“사람이 크게 놀아야죠. 권력 쥐고 골목 놀이나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죠. 제가 이래서 검사님을 좋아한다니까요.”

그녀는 한껏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 조건으로 수락하면 바로 진행하고, 아니면…….”

“거절하면 그때 차후 방도를 생각해 봐야죠. 임선미의 오빠 쪽으로 연결할 루트 찾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예, 수사관님께서 먼저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사님이랑 일하니까 재미있는 건이 많이 들어오네요.”

“들어오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드는 거 아닐까요?”

“그러네요.”

그녀는 눈을 찡긋거리며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

임선미를 만난 윤설하는 꽤나 괜찮은 결과를 들고 왔다.

“확신을 달라고요?”

“예.”

윤설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넘어올 것 같은데, 아무래도 차관 비서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확신이라…….”

그녀에게 확신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는 공무원이자 정의의 아이콘.

최서준 검사라는 이름값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요소일 테지.

나는 팔걸이를 쥐며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가 직접 만나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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