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막 (3)
차에 준비해 둔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크지 않은 병원이었던지라, 수술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임환중 경장님?”
“최서준 씨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출근 시간대라 차가 막히더군요.”
수술실 앞에서 경찰 제복을 입고 기다리는 이에게 인사하며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건넸다.
내 명함을 받아 든 임환중 경장은 놀란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아, 검사님이셨군요?”
“예, 맞습니다.”
순식간에 갑과 을이 나뉘었다.
갑질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 때문에 높아졌던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누그러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배진수 씨 상태는 어떤가요?”
“많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처음엔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래도 수술 도중에 상태가 더 악화된 모양입니다.”
“아아.”
임환중 경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떤 사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건 수사 때문에 몇 번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석에서 한두 번 정도 본 적이 있고요.”
“아, 그러면…….”
“진수 씨 회사 측에 연락했으니 금방 회사 사람도 도착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의자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 앉으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정치 1번지의 정치사회부 부장이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등장해 인사를 나누었다.
경찰은 배진수의 상사와 몇 가지 서류를 체크한 뒤, 배진수가 깨어나면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둘만 남게 된 상황.
머리가 약간 까진 남성은 조심스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강원태라고 합니다.”
“아, 네. 최서준입니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스윽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자료들은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원본과 사본 모두 저한테 있습니다.”
“아이고, 다행입니다.”
그는 가슴을 크게 쓸어내렸다.
“저희 측에서도 이번에 꽤 많이 투자한지라…… 허허헛.”
강원태 부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금 진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배진수의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는데 부장이란 녀석은 혹시나 정보를 놓칠까 그게 더 걱정인 모양.
쯧쯧.
암만 그래도 사람 목숨이 더 중한 법인데.
이 인간도 출세에 눈이 멀어 있는 것 같다.
“배진수 씨 깨어나면 자료는 모두 넘겨줄 테고, 만약 배 기자님이 잘못되어도 정치 1번지와 진행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강원태 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만, 이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사건이 터지는 시기는 제가 정합니다.”
“물론이죠, 걱정 마십시오.”
처음 전화를 했을 때와 달리, 아무래도 내부 수술 상황이 꽤나 좋지 않은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들었을 정도.
다리에서 떨어졌다기에 큰 사고는 아닌 줄 알았는데, 경찰에게 들어 본 결과 고가도로에서 강 옆에 있는 바닥에 정면으로 처박혔다고 한다.
차체의 전면부가 완전히 깡통처럼 찌그러졌다고 하니, 아무래도 배진수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모양.
이거 상황이 영 오묘하게 흘러간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마스크를 쓴 의사 하나가 걸어 나왔다.
“결과 나왔습니까?”
강원태 부장은 급하게 다가가 물었고, 의사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이내 드러난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정말 죄송합니다.”
의사는 사과의 말과 함께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 52분자로 배진수 씨가 사망하셨습니다.”
“허어어.”
강원태 부장은 이마를 치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수가.
순간적으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온갖 불쾌한 감정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죽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리다니.
젠장.
이건 내가 죽인 건가?
내가 경찰이 오고 있다고 거짓말한 것 때문에 과속을 했고, 그로 인해 경찰이 과속을 발견하고 따라붙는 걸 오해해서 도망가다가 죽은 것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배진수는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월향이 무고하게 배진수에게 살해당했을 터.
이런 망할.
내가 옳은 짓을 한 건지 그른 짓을 한 건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다.
둘 다 살리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내가 너무 조급하게 그림을 그렸던 걸까.
다른 시나리오를 그렸으면 둘 다 살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머리가 심각하게 지끈거려 온다.
미래 문자를 보고 너무 섣부르게 움직인 건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월향은 지금 부산행 기차에 타고 있는 대신 차가운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터.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틀린 목적도 아니고.
그저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을 뿐.
굳이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내가 한 일은 많은 원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과속을 한 건 그의 선택이었고, 운전에 미숙해서 미끄러진 것 또한 그의 탓이다.
제기랄.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탓으로 돌리고나 있다니.
최서준, 정신 차리자.
똑바로 생각해야 돼.
머릿속이 진정되기도 전에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밖으로 나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최서준입니다.”
-검사님, 가방 확보했습니다.
임무를 성공한 윤설하의 목소리.
-정형준 경위님이 시선을 끌어 주셔서 해당 경찰 측에서는 따로 파악하지 못했고, 경위님의 차량으로 옮겨 싣는 것까지 문제없이 완료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경위님한테는 감사하다고 대신 말씀드려 주세요.”
-예. 가방은 지검으로 가지고 갈까요?
“아니요. 설하 씨 집으로 가져가 주십시오. 제가 나중에 따로 지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네.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선 다시금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불어서일까, 아니면 차가운 눈이 머리에 쌓여서일까.
둘 중 어떤 게 이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머리가 식기 시작했다.
운명이란 게 있다.
한 명이 죽을 운명이었고, 그 사람을 살리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하는 상황.
오늘이 바로 운명의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배진수가 실제로 월향을 죽이진 않았지만, 월향을 기절시킨 것까지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가 살인미수범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배진수는 살인에 성공했을 게 확실하다.
아마 월향은 아무도 모르는 야산에서 차갑게 죽은 채로 잊혔겠지.
누구의 목숨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다만, 타인에 의한 무고한 사람의 죽음과 그 범인의 우연한 사고사를 선택하자면, 전자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 가정해서.
내가 만약 어제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이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기다릴지 아니면 가만히 월향의 죽음을 기다릴지 생각한다면, 나는 다시금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틀린 선택이 아니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이냐고 볼 경우엔, 무고한 여인의 죽음보다는 살인미수범의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그게 정의는 아닐지라도, 검사 선서를 하고 수년간 검사로 살아왔던 나의 결론이다.
더 자책하지 말자.
괴로워해 봤자, 이미 떠난 목숨은 어쩔 수 없다.
직접 배진수 기자의 장례식을 치러 주고, 그가 편히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가족이 없는 배진수 기자의 장례식은 꽤나 조촐하게 끝이 났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지만,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그저 파주 요정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 사람이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었을 뿐.
그게 전부였다.
12월 초.
나의 오피스텔에서 배진수의 차에서 돈을 수거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정형준 경위를 만났다.
“잘 지내셨습니까?”
“예. 그나저나 검사님은 꽤나 혈색이 안 좋으신데요.”
“아, 지인분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요 며칠간 장례식 치르느라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고, 유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의자 밑에 있던 가방을 그에게 건넸다.
“이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열어 보시지요.”
그는 침까지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허어.”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노란색 돈다발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이번 일에 대해 감사 표시 겸,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성의 표시입니다.”
“이게 도대체 얼마입니까?”
그는 당황한 눈으로 돈다발을 집어 들었다.
“2억 5천입니다.”
“2, 2억 5천요?”
“예. 그중 5천은 이번 건의 차량 접근에 도와주셨던 분들께 드리고, 나머지 2억은 경위님이랑 경위님 밑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의 생활에 보태셨으면 합니다.”
“어후, 이렇게나 많이 주실 필요는 없는데…….”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정형준 경위는 내 말을 되뇌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크게 드러냈다.
“열심히 보필하겠습니다.”
“종종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든 말만 하십시오. 제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가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고요.”
직접 가방을 닫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사로 일하다 보면 떡고물 정도야 받을 수 있겠지만, 이 정도 스케일은 받지 못할 터.
사람을 사는 것에는 돈보다 더 좋은 게 없는 법이다.
“쉬십시오.”
“예. 안전 운전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정형준 경위는 나를 향해 90도 인사까지 한 뒤에야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 나는 오피스텔의 창가로 다가가 섰다.
도심을 수놓는 불빛.
그 위를 덮고 있는 하얀 눈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배진수 기자와 관련된 건으로 요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처음에 날 엄습해 왔던 자괴감도 사라졌고, 마음도 차차 안정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배진수 일은 유감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한참 동안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지이잉.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려왔다.
모르는 번호.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목울대를 울리고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
-어이, 최 검사. 오랜만이야.
격식 없는 말투에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단번에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예, 대통령님.”
-일은 잘되어 가고?
“그렇습니다.”
-다행이네.
휴대폰 너머의 권재철 대통령은 콧바람을 쉬익 내뿜고는 천천히 말했다.
-이번에 자네에게 부탁할 게 하나 생겨서 말이야.
머릿속으로 그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어떻게, 한번 해결해 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