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43화 (43/341)

연막 (2)

-안녕하십니까, 파주경찰서 임환중 경장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실까요?

경찰이라고?

뭔가 상황이 꼬였다.

“잠시만요.”

일단 월향에게는 대기하라는 신호를 준 뒤, 홀로 차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하세요.”

-예. 배진수 씨와 아시는 사이 맞으시죠?

젠장.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배진수가 경찰한테 잡힌 건가?

아니, 잡힐 이유가 없는데.

정말 주민 중 누군가가 신고라도 한 걸까.

경찰의 물음엔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부정하는 게 더 수상하다는 건 검사인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일단, 상황 파악을 할 때까지는 순순히 나가야 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배진수 기자님 휴대폰인데 어쩐 일로 경찰이 전화를 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뜻밖의 일이었다.

-다름이 아니고 배진수 씨가 사고가 나서 가드레일 밑으로 추락하셨습니다.

“사고요?”

-예. 과속을 하시던 도중, 주변을 순찰 중이던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었는데 도망가시다가 속도를 못 이기고 다리에서 가드레일을 뚫고 밑으로 떨어지셨습니다.

“……네?”

-사고 사실을 주변분께 알려 드려야 하는데, 알아보니 가족분들은 없으시고 가장 최근에 전화했던 목록에 최서준 씨가 계시길래 전화드렸습니다. 혹시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사고라니.

아무래도 도망가다가 과속을 했는데 우연히 그 모습이 걸려서 경찰이 따라붙은 걸, 월향 때문에 경찰들이 붙었다고 생각한 모양.

이거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것 같은데.

일단 적당히 대답하기로 했다.

“아는 지인입니다. 지금 배진수 씨 상태는 어떤가요?”

-사고가 크게 일어난 터라 수술 중에 계십니다. 보호자로 오시기 어렵다면, 다른 분께…….

“아니요. 아는 분이니,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병원인지 주소 좀 알려 주시겠어요?”

-예. 일산 ST병원입니다. 한 3시간 안에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술이 그쯤에 끝난다는 것 같아서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뵙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차마 운전석에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것처럼 머리 회전이 잘되지 않는다.

교통사고라…….

일단 월향 및 파주 요정과 관련된 모든 자료는 나에게 있다.

그나마 그건 천만다행인 노릇.

배진수가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말했던 만큼, 세이브 자료가 있거나 위쪽에 보고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할 터.

일단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 월향은 지방으로 보내야 했다.

3시간 안에 오라고 했으니, 월향을 기차에 태워 보내고 나서 병원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일부터 처리하자.

“후우.”

나는 깊게 심호흡을 내뱉고는 다시 운전석에 올라탔다.

월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배진수가 뭐라고 하던가요?”

통화 내용을 듣지 못한 그녀는 지금 상황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일단 월향은 지방에 내려가는 만큼,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 나에게도 좋았다.

“별거 없었습니다. 월향 씨 잘 처리했냐고 묻더군요.”

“처리…….”

월향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바로 가시죠. 서둘러 서울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용산역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은 천천히 정리되었다.

배진수가 깨어날 때 내가 옆에서 미리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면, 경찰에게 은밀한 내용이 넘어갈 리는 없다.

게다가 배진수는 사고를 당한 만큼, 월향에게 따로 신경을 쓰지도 못할 터.

생각보다 일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배진수가 도주한 게 제일 의심스러울 만한 정황이긴 하나, 어차피 그가 쫓기던 이유는 과속.

벌금만 내면 딱히 문제가 생길 일도 없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별거 아닙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월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려가서 작은 옷 가게나 하나 하려고요.”

미래 문자에서 보았던 내용이지만, 모르는 척 대꾸했다.

“옷 가게요?”

“네. 이런 일에선 이제 손 떼고 싶거든요. 어차피 이번 건 끝나고 지방에 가려고 했는데 잘됐죠, 뭐.”

“잘 생각했어요. 이쪽에 오래 있을수록 벗어나기 힘들어지거든요.”

광주지검에 있을 때 대학교 방학 때 잠깐 용돈 벌이나 하려고 들어왔다가 돈에 맛이 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평생 화류계에 묻혀 사는 이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맞아요.”

그녀는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번 일 아니었으면 아마 화류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가요?”

“네. 계획이 조금 틀어져서 집을 장만하는 대신 월세를 살아야 하겠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죠.”

차는 그사이 용산역에 도착했고, 주차를 마치고 나서 그녀와 함께 트렁크로 향했다.

월향의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를 꺼내 주고 나서 구석에 챙겨 놓았던 클러치 백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클러치 백을 열어 본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늘 배진수한테 돈 못 받으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월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걸 왜 검사님이…….”

“약속한 거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거 가져가시고, 이번에 있었던 일은 정말 모르는 척 살아가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감동한 눈으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냥 주는 돈은 아니었다.

원래 배진수로부터 받았어야 할 2억 5천만 원을 내가 대신해서 지불한 것이다.

이쪽 업계야말로 사정이 힘들어지면 언제라도 돌아서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약속한 대가는 지켜야 했다.

간단히 말해서 입막음 비용.

이철용 회장으로부터 워낙 많은 돈을 받아 둔 덕분에 이 정도 돈을 쓰는 것쯤이야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내 출세를 위해서라면 돈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의 여행용 캐리어 하나를 대신해서 끌며 용산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방이면 어디로 가실 겁니까?”

“부산요.”

“티켓은요?”

“아까 휴대폰으로 결제해 놨어요.”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말없이 플랫폼으로 향했다.

역사에 진입하자, 마침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한 상태.

그녀에게 가방을 건넸다.

“바로 타시면 되겠네요.”

월향은 전광판을 확인하고는 내게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검사님. 잘 지내세요.”

“월향 씨도 건강하세요.”

“월향…….”

그녀는 월향이라는 이름을 낮게 읊조리다가 내게 손을 뻗었다.

“하연이에요.”

“하연 씨.”

이름을 되뇌며 그녀가 뻗은 손을 잡자, 이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 이하연요. 그렇게 기억해 주세요.”

월향…… 아니, 이하연은 지금까지 늘 보여 줬던 접대용 미소와 달리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가 볼게요. 나오지 마세요.”

“잘살아요.”

그녀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사라져 내려갔다.

짤막하고도 서먹한 작별 인사였다.

악수도 하지 않고 가벼운 묵례가 끝인 이별.

다시는 볼 일이 없겠지.

이하연을 뒤로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경찰에게서 다시금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여보세요?”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파주경찰서 임환중 경장입니다. 혹시 오고 계신지…….

이전과 달리, 왠지 모르게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전해져 왔다.

“예. 30분이면 도착합니다.”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 중인데 지금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해서요.

“알겠습니다.”

***

“젠장.”

배진수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간과했던 사실 하나가 불현듯이 떠올랐다.

월향에게 내가 건넸던 2억 5천.

다시 말해 배진수가 건넸어야 할 2억 5천은 그의 차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 문자에서 본 내용에서는 월향이 그 가방을 들고 묵직하다는 말까지 했었으니까.

돈이 들어 있는 장면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배진수가 처음부터 돈을 숨기고 다른 가방을 들고 갔을 거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홀로 사고가 난 게 아니다.

경찰과 추격전을 하다가 가드레일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1차적으로 견인 업체에서 끌고 갔다고 하더라도, 배진수가 도망간 이유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찰에서도 해당 차량을 수거해서 조사할 테고, 그러면 당연히 그 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적은 액수도 아니고 무려 2억 5천, 그것도 현금이다.

검은돈처럼 보일 테니 그 추적에 들어갈 터.

까딱하다가는 나까지 엮여 들어갈지도 모른다.

정치 1번지에서 책임을 지면 모르겠으나 거기서도 발뺌을 한다면, 경찰 측에서 작정하고 꼬리를 밟을 경우 자칫하다간 내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물론, 사전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는 그와 엮이지 않도록 모든 처리를 해 뒀으나 오늘의 전화는 상당히 위험하다.

그가 사고를 내기 직전에 나와 통화했던 게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정황.

그와 중요한 이야기는 전부 직접 만나거나 통화로 했던 만큼 경찰 측에서 이번 일에 대해 정확히 추적할 수는 없겠지만, 엮여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니까.

짙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후우우.”

핸들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며 다시금 머릿속을 정리했다.

월향과의 연결 고리가 될 노트북, USB, 대포폰은 모두 내 손에 있다.

파주에 올 때는 늘 블랙박스를 끄고 왔을 테니 경찰에서는 추적할 수가 없을 터.

나와의 연결 고리 또한 오늘의 전화 하나뿐이다.

그 전에 있었던 일은 나의 최근 수사에 관한 내용으로 인해 취재를 요청했다고 얼버무리면, 경찰 측에서는 그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일.

머릿속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안 된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부터가 옳지 않다.

내게 무언가 의심의 여지를 갖게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들면 안 되는데…….

잠깐만.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건 배진수의 트렁크에 있던 돈 가방이 걸린 뒤의 이야기다.

과속으로 인해 단순 사고로 취급된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도 새벽에 일어난 이 사고에 대해서는 벌써 차량 조사를 시작했을 리가 없을 터.

경찰들이 발견하기 전에 회수하면 된다.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가지 않아 곧장 목소리가 들렸다.

-예, 검사님.

“설하 씨 아침 일찍 미안해요. 어디예요?”

-출근 중입니다. 지하철이에요.

“그러면 바로 택시 타고 강남경찰서로 가세요.”

-강남경찰서요?

“예. 그리고 수사 1과의 정형준 경위를 찾아가 주십시오.”

정형준 경위가 내 일을 도와주는 경찰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

윤설하는 의심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다음엔요?

“그 뒤는 정형준 경위를 따라가시면 차량 센터나 어딘가로 갈 거예요. 거기서 14나 3942라는 승용차를 찾으시면 트렁크에 가방 하나가 들어 있을 겁니다. 그걸 챙겨서 나오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명령을 받아들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엔 정형준 경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검사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경위님, 혹시 일산이랑 파주경찰서 쪽에 아는 사람들 좀 있습니까?”

-예. 둘 다 있지요. 무슨 일이십니까?

“파주경찰서에 전화해 보면, 오늘 새벽에 과속으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도중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 밑으로 추락한 차량 사고가 하나 있었을 겁니다.”

-네.

“그 차량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까?

“아니요. 제 수사관이 금방 도착할 겁니다. 아마 차량은 일산 쪽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쪽 경찰이든 파주 경찰이든 협조를 받아서 그 수사관이 차량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확인만 하면 될까요?

“예. 혼자 있을 시간만 주시면 됩니다. 이번 일 끝나면 그쪽 분들이랑 경위님한테 용돈 좀 넉넉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용돈이라는 말에 정형준 경위의 목소리 톤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걱정 마십시오. 그 정도는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끝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아.”

전화를 끊고 나니, 그나마 불안했던 마음이 가시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아직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식 출근 시간대가 되기 전에 처리한다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저 단순 차량 사고로 모든 게 정리가 될 터.

생각보다 일이 쉽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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