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41화 (41/341)

포섭 (3)

성태현의 사촌 동생을 끌어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조금 알아보니, 지방에서 그냥저냥 활동하는 검사가 아니라 나름대로 업무 실적을 내며 꽤나 잘나가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성태현의 입장에선 서울중앙지검까지 바로 올리는 게 베스트였겠지만, 암만 그래도 같은 지검으로 끌어 올리면 주변의 시선이 있기에 그나마 이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서울서부지검으로 발령을 냈다.

당연히 특수부 부부장검사에게 이 정도의 인사권은 없지만, 이 바닥은 안되는 게 없는 곳이니까.

다음 달부터 대검찰청의 차장검사로 발령이 날 임주영 검사장이 내게 서울중앙지검에서의 마지막 선물이라며 인심을 팍 쓰고 갔다.

그 덕분에 성태현과는 훨씬 더 돈독해졌고, 내주에 그의 사촌 동생과 함께 셋이서 술자리를 한번 갖기로 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

***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만난 서울고검의 검사장, 김석원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더 때깔이 좋아져 있었다.

그는 곧장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특수부에서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고 들었어.”

“예. 성공적으로 잠입한 것 같습니다.”

김석원 검사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말했던 건은 잘 진행되고 있고?”

말했던 건.

내가 특수부에 들어가 강현수 부장을 포함한 이쪽의 비리를 완전히 작살내기로 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아주 순조롭습니다.”

이 말엔 거짓이 없었다.

물론 이 건이 끝난 후 다시 감찰부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강현수를 비롯한 세 명의 부장검사의 목을 날릴 만한 카드를 손에 쥐기 위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사실상 그걸 밝혀낼 즈음엔, 내가 감찰부로 돌아갈지 말지는 김석원 검사장의 안중에 없을 터.

그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일 테니까.

“어느 정도나 걸리겠어?”

아니나 다를까, 그 질문이다.

“빠르면 내년입니다.”

“내년이라…….”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내 임기 끝나기 전에는 볼 수 있는 거겠지?”

언뜻 보면 웃으며 묻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꼭 자신의 임기 내에 터뜨려서 자신의 명예를 높여 달라는 이야기.

이에 대해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오래 끌 생각은 없었으니까.

“예.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제야 김석원 검사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풀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늘 최 검사를 믿는데, 내가 언제 나갈지를 몰라서 말이야, 허허허.”

그는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지금이야 내가 중앙지검으로 가며 교류가 적어졌지만, 내가 이곳으로 올라올수록 도와준 인물이자 내 편의를 봐주고 있는 늙은이였기에 김석원 검사장에 대한 고마움은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간단히 비위나 한번 맞춰 주기로 하고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임성진 부장 때보다 파장은 훨씬 더 클 겁니다.”

그 말에 김석원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최소 부장검사 세 명.”

나는 말을 하며 입꼬리를 비틀었고…….

“허어.”

김석원 검사장은 흡족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탐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한 듯 탐욕스레 입술을 핥았다.

“기대가 커, 최 검사. 아니, 최 부부장.”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김석원과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짜릿하게 부딪쳤다.

***

“아, 여기가 최서준 부부장검사님.”

“최서준입니다.”

“이쪽은 WK일보 박수형 기자.”

“안녕하십니까, 박수형입니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내게 손을 뻗으며 인사했다.

첫인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늘 봐 오던 기자 1 정도랄까.

일기에서 나왔던 것과 달리 완전히 검정색 머리라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제 갓 서른인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셌으면 그게 더 이상할 테지.

“TV로 많이 뵀습니다. 정말 대한민국 원톱 검사 아니십니까?”

“과찬이십니다.”

손을 저으며 나 또한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저도 기자님 기사 몇 개 봤습니다. 사진을 아주 잘 찍으시던데요?”

“아이고, 제가 하는 거야 뭐 그냥 연예인들 뒤꽁무니 쫓는 게 다인 걸요.”

그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이라서 딱히 부정할 순 없었다.

그 대신 넌지시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연예부에 계시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는 고개까지 끄덕였다.

“입사 때부터 계속 연예부 기자였습니다. 제가 원체 연예인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쪽이 일하기 편하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기사 쓸 게 넘쳐 납니다. 취재도 어렵지 않고요.”

박수형은 실실 웃으며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대충 사진 몇 장에 적당히 글만 끼적여 올려도 해당 연예인의 팬덤이 자동으로 조회 수를 올려 줘서 걱정할 것도 없거든요. 그러다 가끔 실적 부족하면 자극적인 제목 붙여서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쓰면 밥벌이는 문제없습니다, 허허허헛.”

들으면서 탄식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아 냈다.

이런 인간이랑 내가 30년 동안 베스트 프렌드로 지낸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내가 문자의 존재를 알기 전에도 이런 녀석과는 친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초장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걸.

“저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예,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송재훈 PD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박수형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기자라면, 큰 건을 터뜨리거나 한 방에 욕심도 있으신 겁니까?”

질문을 듣기 무섭게 그는 손을 내저었다.

“에이, 저는 그런 커다란 욕심은 없습니다. 특종은 왕스패치에서 해 줄 테니 저희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잘 받아먹어서 트래픽만 올리면 되죠.”

박수형 기자는 마치 욕심이 없는 것처럼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뭐, 별거 있겠습니까? 적당히 남들처럼 사는 게 최고입니다.”

“아, 그러면 혹시 정치부나 사회부 이런 쪽도 별로…….”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색했다.

“그런 머리 아픈 분야는 싫습니다. 대학 가서 그런 거 공부하다가 저랑 안 맞는다는 걸 깨닫고 연예인 덕질이나 하려고 연예부에 들어왔거든요, 흐흐흐.”

대체 이 인간 어떻게 된 거지?

정치부와 사회부는 물론이고 특종, 큰 건에도 전혀 관심조차 없다.

미래 문자가 차라리 사진이나 동영상이라서 얼굴에 대해 가늠이라도 가면 이 인간이 맞나 의심하겠지만, 그러한 여지 자체가 없었다.

분명 문자에서는 불나방같이 뛰어드는 성격과 화통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이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이 사람은 마음속 깊숙한 곳부터 평범함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문자에서는 분명 WK일보의 박수형 기자라고 했는데.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WK일보에 박수형이라는 기자는 이 인간 하나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직접 물었다.

“그나저나 박수형이라는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동명이인 본 적 없으세요?”

“아, 흔한 이름이긴 한데 성까지 같은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네요.”

회사에 다니는 본인이 말했으니 확실할 터.

결국 이 남자라는 건데.

그렇다면 무언가 눈이 트이거나 마인드가 바뀔 만한 계기가 생겨야 자세를 고쳐먹는 건가?

그리고 그걸 박수형의 손에 쥐여 주는 게 나의 몫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암만 내가 문자를 봤다고 한들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할 리도 없고, 이런 인물에게 어떤 계기가 생긴다고 한들 30년의 세월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일은 웬만해선 접하기 힘들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미래 문자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한심한 기레기에게 정보를 쥐여 주기는커녕 애초에 관심을 줄 일조차 없었을 터.

혹시나 만났다고 한들,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이 나는 관계다.

내가 미래 문자를 보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손에 쥐고 있긴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건 할 수 없다.

결국은 박수형…… 아니, 미래 문자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하는 상황.

이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지금까지 늘 나에게 틀림없는 사실과 맹목적인 도움을 줬다면, 한 번은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제로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박수형 기자를 의심하면 송재훈 PD까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박수형 기자만 만나면 기사를 보며 품었던 의문을 푸는 것은 물론이고 든든한 아군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복잡한 퍼즐을 받아 버린 느낌.

이건 오늘 하루만으로 결론을 낼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만나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일단 송재훈 PD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알았으니 가깝게 지내며 친한 사이를 유지하되, 박수형 기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할 터.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떡밥은 뿌리되, 깊어지지는 않은 채로 말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

겨울을 며칠 앞둔 11월 28일 수요일.

하늘에선 첫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웠지만,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어 따뜻해 보였다.

거리에선 슬슬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오는 매장이 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준비하는 곳 또한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출근길엔 라디오를 통해 한지유가 신규 영화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혹시나 권재철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한 소식이 있나 매일같이 뉴스를 챙겨 보고 있지만, 이렇다 할 여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임주영 검사장이 대검찰청으로 들어가며 생긴 빈자리는 권재철 대통령 라인의 남자가 차지했다.

대전고검에서 짱짱하게 나가던 인물이지만 소문으로는 꽤나 더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다른 라인의 사람인만큼 아직까지는 눈치만 보며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이날 점심 무렵, 배진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검사님, 월향이한테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는데 오늘 새벽에 강현수 부장을 비롯한 세 명의 부장검사와 SL그룹 부회장이 왔다 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드디어 오늘이다.

오늘이 미래 문자로 본 동영상의 그 참사가 벌어지는 그날.

“아, 그렇습니까?”

-예. 오늘 월향이가 일을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한숨 푹 자고 오후 11시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후 11시.

문자에서 보았던 것처럼 캄캄한 밤인 시간대다.

그가 의심하지 않도록 넌지시 물었다.

“늘 만나던 그 장소에서 접촉하시는 겁니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월향이 집 근처에서 그 장소만큼 인적이 드문 곳은 없어서 말이죠.

“알겠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 생기거나 접선 장소가 바뀌면 알려 주십시오.”

-예,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동영상 받고 나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전화를 끊고 결의를 다졌다.

오늘은 조그만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배진수가 알아채지 못하게.

그러나 월향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구해 내야 한다.

월향이 죽고 만약 그녀의 살인범이 배진수라는 게 밝혀지면, 그와 엮여 있는 나 또한 파리 목숨이 되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

그녀를 지켜 내야 한다.

시나리오는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사전 탐사까지 부족함 없이 마쳐 놓은 상태.

모든 계획은 완벽하다.

오늘이 이번 건의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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