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40화 (40/341)

포섭 (2)

-보낸 이 : 60

-2048년 8월 18일. 맑음.

-환갑을 딱 1년 앞둔 오늘은 오랜만에 사석에서 옛 친구 두 놈을 만났다.

근 3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역시나 꼬부랑 탱탱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이 자식들, 그러게 관리 좀 하라니까.

결혼을 일찍 했던 송재훈이 녀석은 벌써 손주를 봤다고 한다. 성별이 다른 이란성쌍둥이라서 손자, 손녀 하나씩이라 어깨춤을 췄다나 뭐라나.

이 녀석은 올해 초에 PBC 사장으로 올라갔으니 말 그대로 겹경사다.

그런데 이 올해 40주년을 맞이해 특별 촬영을 한다며 나보고 출연해 달란다.

이거 완전 로비…… 아니다, 안 나오면 우리 집에서 안 나간다고 했으니 협박인가.

녀석이 금 쪼가리가 담겨 있는 와인을 사 왔기에 한번 인터뷰해 주기로 했다.

박수형 이놈은 60도 안 된 녀석이 머리가 벌써 허옇게 다 셌다.

기자 출신 주제에 나이 먹고 늦바람이 들었는지 방송국을 차리는 것도 모자라, 지가 차린 방송국에 결국 9시 뉴스 메인 앵커로 앉아 버렸다.

미친놈. 이 자식이 만든 ABS 방송국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지상파로 편입시켰는데 저런 짓을 하나 몰라.

근데 또 미친 게 수형이 이 녀석 매력이긴 하다.

그 맛에 이놈이 WK일보에 있을 때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

못 참고 마구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스타일이 확실히 기자에겐 최대 강점이긴 하지.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있는 두 녀석.

내가 진짜 이 녀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자주 만나고 싶지만, 나이와 지위라는 게 참으로 애석하게 그걸 못 하게 만든다.

아, 집사람이 부른다.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문자를 다 보고 나자, 속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정말 죄송한데,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네. 천천히 하십시오. 그러면 주문은 제가 해 놓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신지요?”

“아니요. 저는 조개류만 아니면 잘 먹습니다.”

“예, 다녀오십시오.”

그에게 고개를 꾸벅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지 않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박장대소를 했다.

“으하하하하하핫!”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긴 했지만, 전화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런 문자라니.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웃음기가 가실 때까지 계속해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뱉어 냈다.

이건 신이 내게 준 기회다.

송재훈 PD와 박수형이라는 기자를 의심치 않고 믿어도 된다는 내용.

송재훈 PD는 차기 PBC의 사장이 될 녀석이고, 아직 만나 보지 못했지만 박수형이란 기자 녀석은 ABS라는 방송국을 차려 그곳의 사장이 될 녀석이다.

그리고 이 둘은 나의 둘도 없는 절친이 될 터.

나와 함께 협력해 나갈 조력자들을 알려 준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박수형이라는 녀석이 차린 ABS를 지상파로 편입시켜 줬다는 내용.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이 나라의 가장 강한 권력자 중 하나로 군림했다는 걸 뜻한다.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비선 실세가 될 수도 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내가 대한민국 제1의 권력,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뜻.

이대로 가면 된다.

내가 고꾸라지지만 않으면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다.

신용호와 함께 말했던 대로, 이 세계의 왕이 될 수 있는 것.

물론, 60세라는 나이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만큼을 더 살아야 한다.

그간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른다.

언젠간 넘어질 수도 있지만, 쓰러지지만 않으면 분명 내게 기회는 온다.

과정을 모르기에 더 멋진 삶 아니겠는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래란 말인가.

차오르는 희열감에 주먹이 불끈 쥐였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나는 30년 안에 정상에 설 것이다.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겨우 웃음기를 지워 냈다.

올라갔던 입꼬리를 내리고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다시 펍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앞에 앉으며 다시금 송재훈 PD에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인데 당연히 일이 더 중요하죠.”

그는 이해한다는 듯 웃었고, 그때를 맞춰 주문한 음식들과 두 잔의 맥주가 테이블로 전달되었다.

“마침 식사 나왔네요.”

“늦은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식사는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드십시오.”

“하하하, 그러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껄껄껄 웃으며 맥주잔부터 들어 올렸다.

잔을 힘껏 부딪쳐 시원하게 들이켜자, 그렇게 청량감이 느껴질 수가 없었다.

맥주의 맛 때문일까, 아니면 문자 때문일까.

뭐, 중요하진 않다.

“캬아, 여기 맥주 진짜 시원하네요.”

“그렇죠? 제가 여기 맥주 때문에 강남만 오면 이곳으로 온다니까요.”

송재훈 PD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성격도 시원시원할 것 같은 게, 아무래도 나와 잘 맞을 것 같다.

“설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맞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그는 씨익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전 여자 친구이기도 하고요.”

“전 여자 친구요?”

“예. 고등학교 때 불장난하듯 사귀었던 사이예요. 지금은 100% 친구입니다. 서로 그 이상의 감정은 없어요.”

윤설하.

쿨한 스타일인 건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쿨한 여자였다.

앞에 있는 송재훈 PD도 마찬가지고.

“아, 설하가 그 이야기는 안 했나 보네요.”

“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수도 있죠. 사흘 사귀고 나서 제가 차였거든요, 하하하핫!”

그 정도면 사귄 게 아니라 진짜 불장난인데.

윤설하가 쿨한 게 아니라 송재훈 PD가 웃긴 녀석일지도.

“그나저나 저 정말 검사님 팬입니다. 대단하세요.”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팬이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의 눈이 번뜩였다.

“어떤 에피소드를…….”

몇 마디 나눠 보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내 사람이 될 인물이다.

***

WK일보.

박수형이 ABS 방송국을 차리기 전에 기자로 일했다는 언론사에 접속해 해당 인물을 검색했고, 한 명 찾아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찾은 이 박수형이라는 인물은 정치, 사회부가 아니었다. 그와 밀접해 있는 경제부도 아닌, 연예부.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프로그램 출근길 사진이나 찍는 기자 나부랭이였다.

왜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연예부 녀석과 친해진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런 한심한 기사나 쓰는 녀석이 방송국의 사장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도 차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

박수형의 기사에선 기자로서의 열정이나 열의, 적극성과 같은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올린 기사들은 전부 희소성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을 짜깁기하거나, 연예인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다못해 연예인 스캔들이라도 파냈으면 고평가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자라면 누구나 욕심낼 만한 특종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어마무시하게 재산이 많은 금수저일까 의혹도 가져 봤지만, 부모님은 평범한 농업인이셨다.

나를 만나고 나서 시야가 트이는 걸까.

그것까진 확신할 수 없었다.

미래 문자가 말해 준 것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그의 뒤를 어느 정도 조사한 결과.

나와 친해진 계기를 하나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해답은 송재훈 PD가 쥐고 있었다.

“아, 수형이요? 알고 있죠. 제 대학교 과 후배예요.”

그가 다리를 놔주었다.

“다음 주 중에 한번 셋이서 볼까요?”

***

박수형을 만나기 전에 더 중요한 사람을 먼저 만났다.

성태현.

제22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인물.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기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와 악수를 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죽겠습니다.”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요즘 민생이다, 물가다 뭐다 하며 목을 조르시는데, 이게 제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어휴,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게 다 제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죠.”

그는 가볍게 웃으며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이 대답으로 오랫동안 고민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왔다면 그가 필요해서 만난 것처럼 보일 테고, 아무런 이유 없이 가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닐지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언론에 밝혀진 내 이미지는 온갖 부정부패와 관련된 녀석들을 때려잡고 감옥에 처넣는 일이었으니, 괜히 의심받는다고 생각할 터.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의원님이랑 인사라도 나누고 친해지려고 왔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성태현 의원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보잘것없는 초선 의원에게 관심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성 의원님은 아무래도 큰 인물이 되실 것 같습니다.”

“큰 인물요?”

“예. 그래서 그 전에 친해지려고 왔죠.”

“진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은 좋군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그의 소속 정당 이야기, 검찰 내부 이야기 등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던 중 문득 성태현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검사님은 결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능력도 좋고 인물도 훤칠하신데 결혼을 하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주변에서 다들 사위 삼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감사하긴 하지만, 아직까진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는 깍지를 끼며 눈을 빛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실 생각이군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괜히 적당한 처가 때문에 발목 잡히고 싶지는 않거든요.”

성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처가 때문에 골치 아플 바엔 아예 별 볼 일 없는 곳이 낫죠. 저도 그래서 다음엔 집안이 아니라, 사람만 보고 고르려고 합니다.”

“의원님께서는 재혼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있다마다요. 영 좋지 않은 사이긴 했어도, 역시 집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너무나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러시군요.”

“물론 솔로 생활도 즐겁긴 하지만, 마냥 즐기기엔 내일모레 마흔이니까요.”

이야기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하시는 재혼 상대는 있습니까? 법조계라든가, 언론 쪽이라든가…….”

“저는 다른 거 필요 없습니다. 얼굴 예쁘고 성격 좋고 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성태현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머진 제 능력만으로 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멋진 태도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통령이 될 상이라는 말인가.

현 대통령인 권재철부터 성태현 모두 공통적으로, 깊숙이 들어찬 자신감이 그들을 빛내고 있었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나는 넌지시 이야기를 던졌다.

“언제든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물심양면 돕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태현은 이전과 달리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바깥 사무실을 잇는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치고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내 쪽으로 상체를 한껏 기울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지하게 부탁드려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제가 정말 가깝게 지내는 사촌 동생 중에 부산지검에서 썩고 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도 기왕이면 서울 물 한번 먹어 봤으면 좋겠는데…….”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지방에서 한 명을 끌어 올리는 일.

라인에 들이는 건 성태현이 해 줄 테니, 내가 하는 건 그저 서울로 올리는 게 전부다.

입김을 불어 넣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간택하는 게 전부.

이건 비리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쉬운 일에 간을 보는 건가 의심했지만, 성태현의 표정을 보면 그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것 외엔 따로 부탁할 게 없다는 거겠지.

그만큼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나는 긍정을 넘어 확신을 주는 대답을 택했다.

“저한테 빚 하나 지신 겁니다.”

성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오래오래 가시죠.”

“그거 듣기 좋은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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