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9화 (39/341)

포섭 (1)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요.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한지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드디어 활짝 웃었다.

“검사님 덕분에 그 자식한테 계약서도 받아 냈고, 그런 수치스러운 일도 겪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번에 말씀드렸는데. 동료 여배우분 소개시켜 주시면 된다니까요.”

“정말로 소개시켜 드려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농담입니다.”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진짜로 소개시켜 드릴 수 있으니까.”

“아닙니다. 요즘은 일하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

진심이 아니었기에 우스갯소리로 얼버무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목걸이는 챙겨 오셨죠?”

“아, 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차고 있던 에메랄드 목걸이를 내게 건넸다.

월향이 한 번 촬영을 마치고 배진수에게 넘겨 놨던 걸, 찍어 놓은 영상을 복사한다며 가져왔다.

한지유가 직접 강현수를 만나는 동안엔 월향이 목걸이를 쓸 일은 없을 테니 당연히 공백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터.

게다가 이번 영상은 내가 옮긴 뒤 완전 삭제를 하고 나서 목걸이를 배진수에게 넘길 테니, 영상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목걸이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사건 조사하다 보면 필요합니다.”

“아, 잠입 수사 같은 거군요.”

“그런 셈이죠.”

한지유는 목걸이에 계약서까지 보여 주었다.

계약서에는 강현수 부장의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모습.

이 정도면 강현수도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할 게 분명했다.

“이제 마음 편히 본업으로 돌아가셔도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언제든 검사님께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와드릴 테니까요.”

“저번에도 그 말씀 하셨어요. 계속 그러시면 부담스럽습니다.”

웃으며 넘기면 계속 감사 인사를 할 것 같아 적당히 농담을 섞어 말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오늘 식사를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왜죠?”

한지유는 당황스러운 듯 동공이 흔들렸다.

“계속 만나다 보면 강현수 부장이 눈치를 챌 수도 있어요. 한지유 씨와 계속 연락을 하는 걸 알게 되면 분명 강현수 부장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아…….”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안타깝게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우와 만나겠다는 사심 때문에 내가 쥘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건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괜히 미안한 마음에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아, 잠깐 쉬었다가 작품…… 영화 들어가려고요. 어떤 거 들어갈지 고르고 있어요.”

“영화 찍으시는구나.”

“시사회 티켓 나오면…… 아, 이것도 위험하겠네요.”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더 있다가는 대화가 끊길 것 같아 이쯤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일어날까요?”

“네.”

한지유는 식사 룸에서 나오기 전, 옅게 눈꼬리를 휘며 물었다.

“어쩌다 우연히 뵈면 인사는 해도 되겠죠?”

“그건 저도 환영입니다.”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하고 나서 작별 인사를 했다.

***

“……하여 피고 신용호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합니다.”

탕. 탕. 탕.

판사가 법봉을 세 번 내려치자, 신용호는 주먹을 높이 내질렀다.

보는 눈이 있어 육성으로 소리까지 지르진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변호사와 짙은 포옹을 한 그는 뒤늦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는 힘차게 웃는 것으로 화답했다.

워낙 세간의 시선이 많이 몰려 있는 건이라, 내부 고발자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다면 분명 여론이 안 좋아질 게 뻔했던 만큼 검찰 측에서도 깔끔하게 판결에 승복하는 모습이었다.

신용호가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짧게나마 이야기를 할 요량으로 법원의 한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성이 내게 다가왔다.

“최서준 부부장님.”

“예?”

뒤돌아보자, 예상치 못한 얼굴이 서 있었다.

“서울고검 감찰부 정일우 검사라고 합니다.”

정일우 검사.

방금 전까지 법원 안에서, 검사 측에서 신용호의 유죄를 주장하던 인물.

“아, 네. 그때 분명 제가 나가면서 사건 넘겨받으신 분이었죠?”

“예, 맞습니다. 감찰부 공판 검사로 송현성 검사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는 대뜸 웃으며 축하 멘트를 날렸다.

방금 전까지 반대 측에 서 있던 인물이 축하라니.

기분이 상당히 오묘했지만, 일단 간단히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내부 고발자가 실형까지 받으면 안 되죠. 그게 나라겠습니까?”

“허허허.”

나는 그저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감찰부에서 같이 일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봬서 영광입니다.”

이 정도로 대놓고 아부를 떨면 조금 부담스러운데.

이렇게까지 나왔으니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항소는 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생각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내 대답이 나온 직후, 정일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현성 선배님께 잘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예?”

“두 분께서 꽤나 친하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아부하기 위해서 온 거였나.

어쩐지 선고 시작 전에 자꾸 곁눈질로 내 쪽을 바라보는 것 같더니만.

그때, 부르르릉 엔진음과 함께 밖에서 버스 한 대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지금 구치소 버스 출발한 것 같은데.”

“나중에 뵙죠.”

“예, 조심히 가십시오.”

그에게 황급히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구치소 버스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저 검사 놈 때문에 인사도 못 하고.

에잇.

그래도 금방 나올 테니 밖에서 보면 되겠지.

***

“야, 진짜 고맙다.”

“고맙긴.”

막 구치소에서 나온 신용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내가 더 고맙지. 네 덕분에 올라왔잖아.”

“거기까지 올라간 건 네 능력이지. 아, 진짜 이제 속 시원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고생 많았어.”

“으하하핫, 아, 진짜 기분 좋다.”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후련한 숨을 내뱉었다.

“흐아아, 너무 개운해.”

신용호는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너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보성지청에 있을 때?”

“어. 그때 진짜 죽고 싶었거든. 근데 이렇게 임성진이랑 그 패거리 전부 모가지 날리니까 살맛이 제대로 난다.”

실제로 임성진 라인에 있던 녀석들은 전부 옷을 벗거나 지방 발령이 났고, 그중 일부는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그중 핵심인 임성진은 며칠 전 항소심이 끝났는데, 징역 10년의 실형을 받았다고 들었다.

주변 말로는 상고할 거라고는 하나, 실제로 할지 말지는 미지수.

1심에 비해서는 꽤나 감형된 상태라 3심에 가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는 소리가 있기에 이쯤에서 만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딱히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실형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 녀석의 법조인으로서의 수명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잘됐다.”

“고맙다고, 이 자식아.”

“낯간지러워. 그만해, 인마.”

“계속할 건데. 보성지청에서 전화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준 것도 고맙고, 기꺼이 내 부탁 들어준 것도 고맙고, 특수부에서 멋지게 살아남은 것도 고맙다.”

“시끄러워. 술이나 마셔.”

술잔을 들자, 신용호는 실실 웃으며 잔을 들어 부딪쳤다.

“크으.”

그는 깔끔하게 소주를 비우고 참치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나저나 너 당장 돈은 있어?”

“그럼. 너한테 참치 사 줄 돈 정도는 있다.”

신용호는 큭큭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와이프랑 이혼했거든. 위자료까지 받았어.”

“아, 그것도 소송 끝났어?”

“응. 한 2주 됐어.”

“진작 이야기하지.”

“너 바쁜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말하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편하게 말을 이어 갔다.

신용호가 보성지청에 있을 때, 녀석은 전 와이프가 바람피우는 걸 알게 되었다고 내게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이번 일을 진행하며 와이프 쪽에서 먼저 이혼소송을 걸었는데, 그녀가 바람피웠던 증거들을 제출해 역으로 위자료까지 받아 내고 이혼한 모양.

“잘했다. 외도했으면 당연히 네가 받아야지.”

“그래. 그나마 자식이 없는 게 다행이지, 뭐. 애들 있었으면 골치 아팠을 테니까.”

나는 다시금 그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자, 오늘부터 신용호 인생 2막이야. 진짜 새 인생 시작하면 되지. 안 그래?”

“그럼. 누구 덕분에 내가 주옥전자 법무 팀도 들어가는데 아주 멋들어지게 살아야지.”

“거국적으로 건배 한 번 더 할까?”

“그래. 오늘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실 거야. 각오해.”

“하하하, 좋지!”

나는 다시금 그와 술잔을 부딪쳤다.

***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권재철.

그와 은밀한 독대를 한 지 보름이 가까이 되었지만, 따로 연락은 없었다.

때를 기다리는 건지, 아예 연락할 생각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19대, 20대, 21대 대통령 중 하나가 탄핵당하는 걸 알게 된 마당이라 차라리 연락이 오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머지않은 시점에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후우.”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후 꽁초를 짓이기고는 검찰청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천천히 안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밝은 목소리로 내 옆에 다가왔다.

“아, 검사님 여기 계셨구나.”

윤설하였다.

그녀는 검정 봉지를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건 뭐예요?”

“간식거리요, 출출해서.”

“그러면 차라리 배달을 시키지.”

“에이, 됐어요. 바람 쐴 겸 제가 나갔다 왔어요.”

그녀는 배시시 웃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렸던 그 친구 있잖아요. 소속이라는…….”

“네, 기억납니다.”

“그 친구가 어제 귀국했거든요. 내일 저녁쯤에 약속 잡을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좋죠.”

“예. 그러면 내일 퇴근하고 뵙는 걸로 약속 잡아 둘게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

오후 7시 30분.

강남에 있는 한 펍에서 윤설하가 소개해 준 PD와 만남을 가졌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긴급회의가 생겨서…….”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왔어요.”

30분 정도 늦었지만, 그는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송재훈입니다.”

“최서준입니다.”

그와 악수를 하며 명함을 교환하는 그 순간.

지잉, 지잉.

짧게 두 번.

문자가 도착했다.

송재훈 PD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확인하세요. 괜찮습니다.”

“아, 혹시 업무일지도 몰라서…….”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보낸 이 : 60

-2048년 8월 18일. 맑음.

문자를 찬찬히 읽어 가던 나는 예상 밖의 내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내가 미래에 쓴 일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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