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5화 (35/341)

천망 (2)

갑작스레 바뀐 분위기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지, 월향은 눈을 연신 끔뻑이며 나를 바라보다가 배진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살벌하게 얼굴을 붉혔던 배진수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 연기였어요?”

“네. 월향 씨랑 따로 이야기 좀 하려고요.”

“하아아.”

그녀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평소에 하던 일을 그대로만 해 주시면 돼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런 연기까지 하셨는지…….”

월향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일단 거래 내용부터 들어나 보죠.”

먼저 안주머니에서 에메랄드 안에 카메라가 박힌 목걸이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포장 박스를 열어 본 월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얼굴을 바라봤다.

“이거 제 목걸이랑 똑같은 디자인인데…….”

“알고 준비한 겁니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목걸이를 차고 접대를 해 주시면 됩니다.”

“밖에서요?”

“아니요. 늘 하시던 대로 이곳에서요.”

미간을 반쯤 찌푸린 그녀를 향해 자세히 설명했다.

“강현수 부장 알죠?”

“강현수 부장이라면…….”

그녀는 기억을 되짚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아요, 그 진상.”

월향은 강현수에 대해 할 말이 많은지 참는 티가 역력했다.

혹시나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 더 있을까 싶어 그의 사진까지 보여 주며 확인 작업까지 마쳤다.

월향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멈칫하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강현수 부장 지명이 저라는 건 어떻게 아신 거죠?”

“영업 비밀입니다.”

“괜히 스타 검사가 아니시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은 감탄이었다.

“강현수 부장이 손님으로 왔을 때, 이 목걸이를 착용하시고 접대해 주시면 됩니다.”

“이거, 보통 목걸이가 아니군요.”

월향은 눈치챘다는 듯 목걸이를 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녹음기인가요?”

“카메라입니다.”

“전혀 안 보이는데.”

“걸리면 안 되니까 안 보이게 제작했죠. 강현수 부장에게 들킬 리는 절대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흥미롭게 입술을 물었다.

“이번에도 검찰 사냥인가요?”

나는 방긋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까진 아실 필요 없고.”

“그렇겠네요.”

월향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목걸이를 내려놓았다.

“평소에 착용하고 계시다가 강현수 부장이 왔을 때 촬영해 주시면 됩니다. 앵글은 자연스러울 테니 걱정할 필요 없고요.”

“왜 두 개나 있는 거죠?”

그녀는 눈썹을 들썩였다.

“다른 사람까지 개입시키기는 힘든데.”

“하나로 번갈아 가면서 착용하시면 됩니다. 하나를 쓰고 나서 저희에게 건네주신 뒤에, 저희가 작업하는 동안 다른 하나를 착용하시면 돼요. 그다음 번에 다시 촬영을 하고서 두 번째 목걸이를 건넬 때 첫 번째 목걸이와 교환해 드릴 거고요.”

“한두 번 하는 게 아니군요.”

“가을에만 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 달부터네요.”

“아니요. 내일부터 가을까지죠.”

월향은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다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일한다는 걸로 협박하실 건 아닐 테고.”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얼마나 챙겨 주실 건데요?”

이제부터는 배진수의 턴.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테이블에 팔을 걸쳐 올리며 월향에게 말했다.

“착수금으로 큰 거 한 장. 매번 촬영 때마다 작은 거 한 장.”

월향은 코웃음을 쳤다.

“저 여기서 얼마 버는지 알아요? 웬만한 대기업 부장들 뺨도 후려치는데.”

그녀의 말에선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것 하나만큼은 진실일 테니까.

광주지검에서 성매매 단속을 하면서, 포주는 물론이고 관련 종사자들이 돈을 갈고리로 쓸어 담는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큰 거 두 장.”

“착수금에 비해 성과급이 너무 적은데.”

“한두 번 촬영하는 게 아니야.”

“그만큼 제가 고생한다는 거죠.”

역시나 고급스러운 요정에서 일하는 만큼 월향도 말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배진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금액을 올렸다.

“촬영 때마다 작은 거 세 장.”

“다섯 장 줘요.”

“네 장.”

“다섯 장.”

단호한 그녀의 말에 배진수는 깊이 생각하다가 길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촬영할 때마다 다섯 장, 착수금 대신 일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 큰 거 두 장. 어때?”

월향은 이해했다는 듯 눈꼬리를 휘었다.

“보험을 걸겠다는 거죠?”

“다섯 장이면 적은 게 아니야.”

“오케이.”

그녀는 흔쾌히 답했다.

“그렇게 하죠.”

월향은 손을 뻗었고, 나는 그녀와 악수했다.

“연락은 어떻게 할까요? 명함이라도 주실래요?”

나는 그녀에게 휴대폰 하나를 건넸다.

“대포폰이야. 저장된 번호로 연락하면 배 기자님께 연락이 될 거고, 그때마다 목걸이랑 돈을 교환하면 돼.”

“좋네요, 깔끔하고.”

대포폰도 두 개를 구했다.

월향에게 건네준 것 하나와 사전에 배진수에게 건네준 것 하나.

서로 대포폰을 이용해서 연락을 한다면 휴대폰의 정체가 들키지 않는 이상, 절대 증거는 남지 않는다.

“혹시나 강현수 부장에게 붙을 생각은 하지 마.”

배진수 기자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 별명이 미친개거든. 한번 물면 안 놔줘. 평생 뉴스에서 그쪽 얼굴 보게 될 거야.”

월향은 살벌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당돌하게 말했다.

“돈이나 제대로 준비해요. 이게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안 그래요?”

배진수는 큭큭 웃어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제대로 놀아 볼까?”

기왕 온 만큼 뽕은 뽑으려는 생각인 모양.

나 또한 딱히 거부감은 없었다.

배진수가 마담을 부르는 사이, 월향은 여우 같은 미소를 머금고 내게 끈적끈적하게 다가왔다.

“우리 검사님도 놀 줄 아시나?”

나는 그녀의 허리를 휘어 감으며 속삭였다.

“둘째가라면 서럽지.”

***

결제할 때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삼켰다.

보통 업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

옛날의 나였다면 카드를 내면서도 벌벌 떨었겠지.

고작 몇 시간 논 것으로 일반인들 연봉을 훌쩍 넘어가는 금액이 나왔으니까.

그 가격만큼의 서비스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리 기사도 일반 업체 사람이 아니라 요정 자체의 사람이 대리운전을 해 주었다.

배진수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 시트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고, 나는 뒷좌석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 덕인지, 창밖의 풍경이 기분 좋게 일렁였다.

대리 기사는 룸미러 한번 보지 않고 운전에 집중하는 상태.

얼마나 달렸을까, 창밖으로 빗방울이 한 방울씩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문에 부서지는 물방울이 마치 손톱으로 긁은 듯 기다란 흔적을 남기기도 잠시, 이내 빗방울이 굵어졌다.

서울에도 비가 오고 있으려나.

날씨를 확인할 요량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몇 시간 만에 본 화면에는 예상치 못한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 1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곧장 문자부터 확인했다.

-보낸 이 : 30

-동영상

미래 문자다.

언제 온 거지?

아무래도 안에서 한창 떠드느라 휴대폰 소리를 듣지 못했던 모양.

배진수는 고로롱고로롱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대리 기사는 도착할 때까지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 자리에서 곧장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강현수 부장과 남우현, 김주철 그리고 SL그룹 부회장까지 왔어요. 그 네 명 모두가 나와 있는 동영상이에요.

제일 먼저 들려온 건 월향의 목소리.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차 안으로 보였다.

월향이 앉아 있는 곳은 조수석. 그 옆의 운전석에는…… 배진수가 앉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몇 번 봐 왔던 배진수와 달리, 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배진수는 말없이 월향에게서 목걸이를 받아 그녀가 촬영해 온 영상을 빠르게 훑어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찍혔네.

-이게 마지막인 거죠?

-어. 끝났어.

-하아, 드디어 끝나네요. 벌써 11월 말인데…… 정말 가을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11월 말.

그때 세 명의 부장검사와 SL그룹 부회장의 만남이 생기는 모양.

시기를 알아내긴 했어도 굳이 월향과 이야기한 내용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증거는 많을수록 좋고, 영상 촬영의 대금은 정치 1번지에서 지급할 테니까.

월향은 거사를 끝낸 것에 크게 안심이 되는 듯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조만간 일 그만두고 지방에 가서 옷 가게나 하나 차리려고요.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어.

-돈은 충분히 모았나 보네.

-네. 지금까지 일하면서 모은 거에 이번에 받은 것까지 합치면 충분할 거예요. 지방이라 집값도 싸니 제 집도 구할 수 있을 테고요.

-……그래.

배진수는 느릿하게 대답을 하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월향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돈은 뒷좌석에…… 어, 없네요?

-아, 이번엔 액수가 많아서 트렁크에 가져왔어.

-이제 끝났으니까 가져가도 되죠?

-물론이지.

배진수는 월향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를 열자, 중심부에 놓여 있는 커다란 돈 가방 하나와 구석에 놓인 접이식 삽이 화면에 들어왔다.

월향은 의심 없이 그 돈 가방을 집어 들고는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액수가 많아서 묵직하네요.

월향은 돈 가방의 무게감을 느끼듯 몇 번 들었다 올렸다.

-무거워서 가지고 가기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집까지 태워 달라는 뉘앙스였지만, 배진수는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면 안 가지고 가면 되지.

-……네?

어리둥절한 월향과 달리, 배진수 기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트렁크 구석에 있는 접이식 삽을 펴서 조립했다.

-그 삽은 왜요?

월향이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고 배진수의 얼굴을 보려는 찰나.

퍽!

배진수가 삽을 휘둘러 월향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월향은 들고 있던 돈 가방을 놓치며 종이 인형처럼 옆으로 픽 하니 쓰러졌고, 배진수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월향을 내려다보았다.

-창녀가 창녀 짓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돈을 가져가는 게 말이나 돼?

그는 히죽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건 대의를 위해 일하는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게 맞는 거야.

그때, 울리는 벨 소리.

-후우.

배진수는 숨을 깊게 내뱉고는 전화를 받았다.

-예, 최 검사님.

최 검사라면…….

-혹시 일은 끝나셨는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나다.

확실한 내 목소리다.

배진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예. 동영상 확인했고, 월향 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 확인했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영상 정리해서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예, 검사님도요.

배진수는 태연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 트렁크에 손을 올리고는 충혈된 눈으로 달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꼭 좋은 밤이 되어야지.

배진수 기자는 조소를 띠며 트렁크에 넣은 월향을 바라보았다.

-딱 저년만 묻고 나서 말이야.

그는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부여잡고 트렁크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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