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망 (1)
퇴근길에 정형준 경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예, 정 경위님.”
-검사님, 그 녀석한테 연락이 왔는데, 검사님께서 부탁하신 작업이 끝났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네. 검사님께서 만족스러워하실 만큼 퀄리티가 잘 뽑혔다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그러면 지금 바로 가도 괜찮을까요? 꽤 늦은 시간이라…….”
-이 녀석은 이제 슬슬 활동할 시간이니 오히려 반길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출발한다고 연락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지금 퇴근 중이신 거예요?
“예. 방금 막 주차장 나왔습니다. 가는 김에 아예 들렀다 가려고요.”
-그러면 딱 알맞겠네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 넣어 둘게요.
“고맙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차를 돌려 그 기술자 녀석의 아지트로 향했다.
***
“호오.”
감탄사가 새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에메랄드가 박힌 목걸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후좌우 어느 면에서 보든 마찬가지.
내가 보기엔 작업을 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건넬 때와 똑같은 형태였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괜찮다 못해 훌륭하지.”
녀석은 내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 기술은 이 바닥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갑니다.”
“화질은 어느 정도나 나오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보다 훨씬 더 좋아요. 렌즈 때문에 착수금을 거의 다 썼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나는 안주머니에서 5만 원 다발이 담긴 봉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영상 보는 법이랑 파일 확인하는 법은?”
“아, 거기 목걸이 록 채우는 부분을 손으로 만지면 이음매에 버튼이 느껴지는데…….”
그는 간단히 목걸이의 촬영법 및 사용법에 대해 일러 주었다.
“촬영 시간은 어느 정도고?”
“용량으로는 못해도 6시간은 촬영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 정도면 전혀 문제가 없다.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두 개의 목걸이를 주머니에 챙겨 밖으로 나왔다.
***
-500m 앞 목적지 부근입니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리자, 배진수 기자는 안전벨트를 풀고 고개를 앞으로 쭈욱 내밀어 주변을 확인했다.
“여기 같은데요?”
베일에 싸여 있는 곳이라기에 조금은 은밀한 장소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파주 요정은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일반 주택가가 아닌 고급 주택가라서, 집집마다 아주 높은 담벼락이 세워져 있는 상태.
요정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넘기는 높은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과의 식물들이 벽돌을 초록색으로 뒤덮어 자연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딱 봐도 옛 시대의 요정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집과의 차이점이라고는 그저 부지가 무척 넓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계속해서 직진하자, 요정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정장을 쫙 빼입은 세 명의 남성들이 귀에 인이어 이어폰을 착용하고 대기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손을 내밀며 정지신호를 보냈다.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배진수 기자에게 당부했다.
“기자님, 녹음기는 물론이고 촬영 도구들은 일절 작동하지 않으셔야 되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오늘은 전부 두고 휴대폰만 들고 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블랙박스의 전원을 뽑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작전과 관련된 모든 설명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예. 협상만 진행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부드럽게 차를 세우자, 정장 남성 하나가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창문을 내리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중하게 물었다.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최서준입니다. 9시 예약이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자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대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안쪽에 있던 누군가와 대화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돌아왔다.
“예약 확인되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는 조심스레 운전석의 문을 열어 주며 허리를 접었다.
그에게 발레파킹을 맡기고, 나와 배진수 기자는 대문으로 향했다.
정장의 남자 하나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문을 열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화려한 풍등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고 마치 조선 시대의 서원과도 같이 아름다운 나무와 풀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기품 있게 뻗어 내리는 기와로 이루어진 한옥 건물이 정점을 찍었다.
이곳이 바로 정치계에서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은밀한 회동을 갖는 곳.
수도권에 이런 장소가 있는데도 시민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대단스러웠다.
“이쪽입니다.”
고상한 한복에 전모를 쓴 여인네 하나가 자연스럽게 우리를 안내했다.
배진수 기자는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쥔 채 나의 뒤를 따라왔다.
넓은 한옥의 방 곳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문득문득 그림자가 비치는데도 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상태.
이런 곳에서는 보통 왁자지껄하게 노는 걸 생각하면 방음이 대단한 모양이다.
하긴, 이런 곳에서 한마디라도 새어 나갔다가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여자의 안내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금액이라던 신용호의 말을 증명하듯 테이블에는 산해진미가 전부 올라와 있었고, 우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십여 명의 여성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모는 빼놓을 것도 없었다. 강남의 텐프로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
예쁜 것을 넘어 고결해 보이는 외모의 여성들.
신용호가 왜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여타 업소처럼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기품이 넘쳤으니까.
십여 명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쪽머리를 하고 형형색색의 비녀를 꽂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는 건 그녀들이 입고 있는 한복.
전통 한복과 달리 완전히 개량한 것으로, 남자의 시선을 아주 강력하게 자극하는 복장이랄까.
이곳에 오는 양반들의 취향들을 반영한 결과일 터.
노인네들 취향하고는.
배진수가 초이스할 여자인 만큼, 그는 심각한 눈빛으로 여성들을 훑기 시작했다.
의심은 사지 않기 위해, 처음엔 그저 진지하게 놀러 온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으니까.
그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문을 통해 검은색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늘씬한 몸매에 새하얀 피부.
문자에서 보았던 월향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동영상으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연예인 수준을 넘어선 압도적인 미모.
강현수가 왜 매번 그녀를 초이스했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와서 조심스럽게 착석했다.
“월향입니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외모에도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곳에는 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니까.
그녀가 인사하는 사이 배진수는 초이스를 끝냈고,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월향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뵙는 얼굴입니다.”
초면인데 어떻게 자신을 지명했느냐고 묻는 말일 터.
“아는 분께서 알려 주시더군요. 미모가 뛰어난데 테이블 매너도 좋다고.”
“그렇군요.”
월향은 우아하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배진수 기자는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게 술을 권했다.
“검사님, 한 잔 받으시죠. 제가 올리겠습니다.”
“좋죠.”
술잔을 들어 그의 술을 받고, 반대로 그의 술잔도 채워 주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술.
정종인가?
한 모금 마시자, 깔끔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청주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배진수 기자는 마치 이곳에 몇 번이라도 와 본 것처럼 능글맞게 여자의 몸을 더듬으며 이 자리 자체를 즐겼다.
연기치고는 상당히 자연스럽다. 평소에도 이런 곳에 자주 드나드는 건가?
“아, 검사님, 이번에 진짜 대단하셨습니다. 청와대도 들어가시고요.”
그 말에 월향이 조심스레 눈을 돌려 내 얼굴을 확인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이쪽 계통에서 높은 사람들을 많이 접했기에 역시나 내 얼굴을 아는 눈치.
“에이, 뭐 대단한 거라고요. 그냥 상패 하나 받으러 간 겁니다.”
“그게 대단한 거지요.”
배진수 기자는 연신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현 대통령과 독대를 한 유일한 검사잖습니까?”
“허허.”
나는 민망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아, 대통령과 오찬을 하며 독대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별거 없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죠.”
“아아,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하나 천천히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 뒤로 우리는 물 흐르듯 정치 판국, 현재의 형세 등 검사와 기자가 나눌 법한 대화를 했다.
물론, 우리의 정보에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우리가 준비한 대본을 시행했다.
“그나저나 검사님.”
“예?”
“아까 대통령과 독대하셨을 때 별말 없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죠.”
“우리 사이에 그러지 마시죠.”
배진수는 능글맞게 눈썹을 들썩였다.
“무슨 이야기 했는지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별거 없었다니까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볼 거 다 본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흐음.”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배진수는 눈치 없는 연기를 하며 계속해서 재촉했다.
“아, 말해 주시죠. 제가 보도를 하겠습니까, 기사를 쓰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아이, 그만은 무슨…….”
월향과 배진수의 옆에 있던 여자는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걸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배진수는 계속해서 나에게 독대 건에 대해 물어 댔고, 나는 완전히 정색하며 그를 차갑게 노려봤다.
“배진수 기자님.”
이전과 달리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
“4대강 사건 때 그 일 터뜨려도 되는 겁니까?”
쾅!
배진수는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항변하듯 외쳤다.
“이런 X발! 그 이야기는 완전히 끝내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까!”
그는 얼굴을 붉히며 숨을 쉬이익 내뱉었다.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냉혈한에 빙의해 말했다.
“그러니까 입조심하라고.”
배진수는 완전히 정색하며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다 나가 봐.”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명의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월향이를 보며 말했다.
“넌 앉아 있어.”
살얼음판을 걷듯 살벌한 분위기.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은 사이, 월향은 다시금 내 옆에 착석했고 배진수의 옆에 있던 여자는 자리를 비웠다.
모든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도 없을 터.
“후우.”
깊게 숨을 내뱉고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연기했던 기운을 전부 털어 냈다.
그 직후, 다시 진지한 얼굴로 월향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월향 씨.”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란 그녀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대답했다.
“예?”
“우리 거래 하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