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5)
배진수 기자는 벌써부터 특종의 냄새를 진하게 맡은 듯 눈을 반짝였다.
“파주 요정에 대해 아시는 겁니까?”
“네. 예약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기자님과 둘이서 갈 예정이고요.”
“안개만 무성하던 요정에 드디어 가 보는군요.”
그는 차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진귀한 경험을 하겠군요.”
“감사는요. 동업하는 건데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화대와 술값은 제가 낼 겁니다.”
이 부분은 실수했다간 강현수 부장 측에서 반격을 할 시, 역으로 김영란법으로 꼬리가 잡힐 수 있기에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나았다.
지금 내가 금전적으로 부족한 건 전혀 없었으니까.
“미끼가 되어 줄 사람에게 지급할 대금만 넉넉하게 챙겨 주십시오.”
“그 전에 목표물을 알려 주셔야 합니다. 누군지 알아야 위쪽에 이야기해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서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에게 임팩트가 가장 세게 들릴 만한 단어로 대답했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세 명과 재벌 총수 하나.”
“허어.”
배진수 기자는 헛바람을 들이켜더니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소스만 들었는데 벌써 침이 흥건하게 고이려고 합니다.”
“혼자 먹기에는 배부를 정도겠죠?”
“배가 터질 걸 알면서도 입에 쑤셔 넣을 만큼 달콤해 보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먹었을 터.
“대금은 넉넉하게 준비해 주십시오.”
“그 정도라면, 총알이 절대 부족하지 않게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대금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신문사에서는 몇 날 며칠간 인터넷의 트래픽을 독점할 기회이니까.
“아마도 증거를 확보하는 시기는 가을쯤일 겁니다.”
“가을요?”
“예. 간단히 계획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다음 주에 파주 요정에 가서…….”
***
“콜록, 콜록!”
희뿌연 먼지로 뒤덮인 낡은 건물의 입구.
떠다니는 먼지로 인해 절로 기침이 나올 정도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 의문이 들 정도였지만, 정형준 경위가 적어 준 주소는 틀림없이 이곳이었다.
직접 제작한 초소형 몰래카메라로 도촬을 하다가 성범죄 특례법으로 복역을 하고 만기 출소한 녀석이 사는 집. 아니, 아지트라고 봐야 하려나.
녹색 철문을 지나, 거미줄을 헤치고 반지하로 내려가자 시뻘겋게 녹슬어 있는 낡은 철제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띵동.
띵동. 띵동.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정형준 경위의 말로는 분명 이 시간에 집에 있다고 했는데.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다.
“안에 누구 없습니까?”
한참을 두드리고 나서야 부스스한 머리의 남성이 경계심을 잔뜩 품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좁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남자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누구신데요?”
나는 품에서 검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녀석의 시선이 신분증에 향한 그 순간.
“이런 X발!”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문을 닫으려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재빨리 구둣발을 문틈에 집어넣은 덕분에 녀석은 문을 닫는 데 실패했고, 나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녀석은 어떻게든 문을 닫으려 했지만, 내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는지 결국 포기하고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녀석은 집 안으로 튀어 들어갔고, 안에 있던 하드디스크와 몰래카메라 장비들을 재빨리 서랍으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아니, 나 출소한 지 이제 한 달도 안 됐다고!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건데!”
남자는 악에 바친 목소리로 쩍쩍 갈라지는 쇳소리를 냈다.
“그쪽 잡아가러 온 거 아니니까 흥분 가라앉히고 이야기합시다.”
“……예?”
그제야 남자는 어벙하게 눈을 뜨며 고개를 쑥 내밀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스툴을 하나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차는 녹차가 좋긴 한데…… 왠지 위생상 마시기 좀 그럴 것 같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
남자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멀찌감치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는 강압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너 요즘도 도촬 하냐?”
“아, 아닙니다.”
그는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딱 봐도 찔리는 게 있는 것 같다.
도촬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범죄를 저지르긴 한 모양.
“저 이제 손 씻었어요.”
“그러면 거기 서랍에 숨긴 하드 다 압수해도 되지?”
턱짓으로 방금 녀석이 하드디스크를 숨긴 서랍을 가리키자,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검사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짭새도 아니고 저 같은 조무래기한테…….”
“정형준 경위님이 소개시켜 주셨어.”
“아, 정 경위 그 새…….”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가 내 눈치를 보고 참았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으니까 깔끔하게 거래만 하자.”
“안 들어주면 어떻게 됩니까?”
“정형준 경위가 너 잡으러 오는 거지, 뭐.”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이제 구미가 당기지?”
“……예, 무진장 당기네요.”
나는 품에서 목걸이 상자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상자를 열었다.
금빛 줄과 그 중심에 박혀 있는 녹색 에메랄드.
“이거 진품입니까?”
“진품 같아 보여?”
“예. 오우, 이게 보수예요?”
“아니, 그 에메랄드에 렌즈를 박아 줘.”
“렌즈요?”
“응. 두 개 다. 용량은 넉넉하게.”
그 말에 범죄자 녀석은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이, 검사님도 참. 이런 취향이 있으셨다면 진즉에 말씀하시지. 괜히 오해했네. 다 알아요. 우리 남자끼리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은…….”
쾅!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자, 녀석은 꿀 먹은 병아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수사에 쓰일 거니까 헛소리하지 마.”
“죄송합니다.”
“절대 티 안 나게 해. 가까이서 들여다봐도 전혀 알 수 없도록.”
“아, 이게 쉬운 작업이 아니에요, 검사님. 얼마나 세부적으로 기술이 필요하고 어려운지…….”
5만 원 다발 하나를 속주머니에서 꺼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착수금 500만 원. 완료되면 500만 원 추가. 깔끔하게 세탁된 거야.”
남자는 5만 원 다발을 손가락으로 훑어 넘기더니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입꼬리를 찢었다.
“무조건 콜입니다. 언제까지 만들면 됩니까?”
“다음 주 수요일.”
“조금 촉박할 것 같은데.”
“못 하면 감방이나 가든가.”
“무조건 만들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혹시라도 그거 보석 파내려고 헛생각하지 마. 그거 가품이라 쓸모없으니까.”
“아, 그래요?”
목걸이를 조심스레 잡고 있던 녀석은 툭 하고 테이블에 던졌다.
“어쩐지 싸 보이더라니.”
사실, 진품이다.
동영상에서 월향이라는 여자가 차고 있던 목걸이와 똑같은 디자인을 찾아 댔지만, 결국 가품은 구하지 못하고 진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진품으로 알고 있으면 괜히 욕심을 낼까 봐 싶어 숨기기로 했다.
“그러면 적당히 뚫어서 파내고 거기에 렌즈 끼울게요.”
“자세한 건 모르겠고, 티 나지 않게만 해.”
“알겠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야. 늦어지면 바로 정형준 경위 데리고 온다.”
“아, 걱정 마십시오.”
호언장담하는 그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성되면 어디로 연락드릴까요?”
“정형준 경위한테 연락해.”
“예.”
밖으로 나가려는 길에 렌즈가 달린 넥타이핀을 발견했다.
“적당히 해라. 너 또 잡히면 전과 4범이라며.”
“아, 진짜로 요즘은 도촬에선 손 뗐습니다. 그거 다 옛날에 쓰던 장비예요.”
“그러면 아까 그 하드디스크는 뭔데?”
“거래용이죠. 동영상 거래.”
“내가 생각하는 그 동영상이냐?”
“예. 1테라바이트짜리 유물 모음 있는데 하나 챙겨 드릴까요?”
“제발 닥치고 작업이나 해라.”
“알겠습니다, 검사님.”
다시 한번 깍듯이 인사하는 그에게 손을 휘젓고는 그의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
내주 화요일.
사무실에 반가운 얼굴이 돌아왔다.
“수사관 윤설하는 검사님께 업무 복귀를 신고합니다!”
윤설하는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1주일 이른 3주 만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잘 왔어요.”
조아라는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네, 멀쩡해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팔을 양 끝으로 쭉 뻗다가 우뚝 멈췄다.
“아야.”
아직 다 낫지는 않은 모양.
그 소리에 그녀를 제외한 나와 조아라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다 나으면 복귀하라니까.”
“아니에요. 뼈는 붙었는데 근육을 오랜만에 쓰니까 몸이 놀라서 그런 거예요. 걱정 마세요.”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말하면 윤설하가 민망해질 것 같아, 잔소리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씩씩하게 자기 자리로 향해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요즘 무슨 수사 중이에요? 재미있는 건수 없어요?”
조아라는 손을 휘휘 저었다.
“우리 특수부 온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지금은 다른 검사들 사건 조율하고 돕는 정도예요. 아직 적응이 덜 돼서.”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보름 조금 지났구나.”
“네. 수사관님도 급하게 복귀할 필요 없었다니까요.”
“에이, 그래도 제가 있어야 우리 사무실의 중심이 잡히죠. 안 그래요, 검사님?”
“그렇긴 하죠.”
한참 잡담을 나누다가 엄지로 복도의 자판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하 씨, 나가서 커피 한잔할까요?”
“좋죠.”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사무실에서 몇 걸음 나갔을까, 이제 막 출근하는 강현수 부장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나는 늘 하던 대로 예의상 고개를 반쯤 숙이며 인사를 했지만, 강현수 부장은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시선 끝에는 윤설하가 있었다.
화가 난 강현수와 달리, 윤설하는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부장님. 저도 오늘부로 복귀했거든요. 특! 수! 부! 로 말이죠.”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멀쩡하니 다행이네.”
“저는 치료하는 데 오래 걸렸으니 건강해야죠. 저도 다음부터는 꼭 외제 차로 사려고요.”
“허어.”
강현수 부장은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부장실로 홱 하고 들어가 버렸다.
그럴 만도 하지.
윤설하 때문에 은밀한 거래 현장이 찍혀서 나한테 그런 망신을 당했으니까.
그나저나 윤설하야말로, 그렇게 자동차 사고를 당해 놓고 이렇게 뻔뻔하게 굴다니.
배짱으로 치면 나에 못지않을지도 모르겠다.
복도로 나와 자판기에서 밀크 커피 한 잔을 뽑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강현수 부장 저러는 거 신경 쓰지 마요.”
“저는 전혀 신경 안 써요. 걱정 마세요.”
그녀는 오히려 아까보다 더 생긋생긋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특수부에서 매일 볼 텐데, 강 부장이야말로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죠.”
윤설하는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나저나 정말 요즘 따로 건수 없어요? 검사님…… 아니, 이제 부부장님이라고 해야 되나?”
“편한 대로 불러요.”
“검사님이 입에 굳어서요, 헤헤.”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검사님 스타일상 지금 같은 지루한 건으로 만족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나를 너무 잘 안다.
뭐, 사실 이번 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데리고 나온 것이라 별문제는 없다.
조아라는 몰라도, 수사관인 윤설하만큼은 이번 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재미있는 건을 잡았는데…….”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마 강현수 부장 목줄, 잡을 것 같아요.”
“정말요?”
“네. 이번 주 금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