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2화 (32/341)

추적 (4)

대통령과의 독대를 마친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보성으로 향했다.

임성진 라인의 성 상납 리스트에 있는 파주 요정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서.

평소 같으면 KTX나 비행기를 택했겠지만, 이번엔 직접 자가용을 끌고 가는 걸 선택했다.

요 며칠간 대통령과의 독대부터 시작해서 파주 요정, 배진수 기자, 한지유 등 온갖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는지라, 혼자서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우선은 바로 어제 만난 권재철 대통령.

이제 2년 차인 대통령과 벌써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가끔씩 얼굴을 보자고 한 건, 분명 다음에도 나와 일을 함께할 생각이 있다는 것일 터.

현 대통령인 권재철부터 제22대 대통령인 성태현까지, 권력자들과 함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든든한 느낌이…….

잠깐만, 이거 뭔가 이상하다.

퍼즐이 교묘하게 어긋나 있다.

분명 성태현이 대통령인 걸 알리는 문자의 내용을 되짚어 보면…….

-보낸 이 : 42

-제22대 대통령 : 성태현

보낸 이가 분명 42였다. 이때가 2030년이 될 터.

그러나 권재철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4월에 끝난다.

한국에서 대통령 중임제나 연임제가 실현될 리는 절대 없다.

다시 말해 대통령 중 누군가는 탄핵을 당하거나 하야해 물러난다는 사실.

문자를 처음 받을 당시에는 성태현이 미래에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그걸 생각하느라, 보낸 이의 숫자와 그 시기에 대해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젠장, 내 실수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그와 동시에 피어오르는 불길한 직감.

이거, 설마 권재철이 탄핵당하는 거 아니야?

독이 든 사과를 피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한입 베어 물어 버린 건가.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탄핵당하는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나를 상당히 난처하게 만들었다.

대통령 권재철과 친해졌다가 그가 탄핵을 당하면 당연히 나에게도 불똥이 튈 터.

그렇다고 그를 멀리했다가 만약 권재철이 대통령직을 끝까지 이행하면, 분명 그를 멀리한 내게 보복이 전해져 올 게 분명하다.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영부영하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터.

이런 상황에서 문자가 해답을 줬으면 좋겠지만, 미래 문자는 원할 때는 오히려 등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머릿속이 꽉 차 버린 느낌.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천천히 생각하자.

이미 청렴한 공무원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올라간 마당이기에, 권재철이 빠른 시일 내에 나를 찾지는 않을 터.

아직 고민할 여유는 있다.

보성으로 내려가는 내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떠올렸지만,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들어찬 탓인지, 지루할 것만 같던 300km의 주행은 너무나도 빠르게 끝이 나 버렸다.

어찌나 생각을 많이 했는지 편두통이 심해서 갓길에 서서 아스피린을 먹었을 정도.

이게 전부가 아니라, 파주 요정과 한지유 건도 겹친 상황이다.

아무래도 그 두 건부터 해결해야 대통령과 탄핵 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파주 요정부터 처리하자.

***

신용호의 집을 뒤져 그가 이야기했던 성 상납 리스트 수첩을 찾는 데 성공했다.

역시나 그가 말했던 대로 ‘블루원’과 ‘페어리’라는 부분도 적혀 있는 상태.

블루원에 드나든 흔적을 보아하니, 임성진은 물론이고 신용호도 번질나게 드나들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식도 진짜 더럽게 놀긴 더럽게 놀았구나.

한참 장부를 넘기다가 페어리의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걸려는 찰나.

02로 시작하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여보세요?”

-예, 검사님. 저 정형준입니다.

정형준은 얼마 전에 배진수 기자의 뒷조사를 부탁했던 경찰.

“휴대폰 번호가 아닌데…… 경찰서 전화예요?”

-네. 제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제 번호는 어떻게 기억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분들은 전화번호부에 따로 저장해 놓죠. 책상에 보관합니다, 하하핫.

“다행이네요.”

그는 웃음기를 거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배진수 기자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특별히 나쁜 구석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래요?”

-예. 과거에 돈 때문에 몇 번 소송을 한 적이 있긴 합니다.

역시나 돈에 대한 탐욕이 가장 큰 건가.

-그런데 같이 일하실 거라면, 뒤통수 맞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예. 뒤를 파다 보니까 제 친구 놈 중에 한 녀석이 배진수를 알고 있더라고요.

“친구라면 경찰 말씀이십니까?”

-네. 이 녀석이 광수대 출신인데, 재벌 건 관련해서 수사 도중에 정보 제공 때문에 협력한 적이 있는데 재벌 쪽에서 몇 배를 준다고 불렀는데 전부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친구 녀석도 믿을 만한 놈이니 사실일 겁니다. 돈에 욕심이 있는 건 맞지만, 눈이 돌아가서 실수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도리는 지킬 줄 안다고 하네요.

대충 어느 정도 윤곽은 나온다.

돈에 집착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의리와 일이 먼저인 인물.

생각보다 다루기 쉬울지도.

무엇보다 도리를 지킬 줄 알고 입이 무거우면, 더 필요할 게 없긴 하다.

송현성이 추천한 이상, 일 관련 부분에서는 걱정할 것도 없을 테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아, 혹시 몰래카메라 잘 만드는 기술자 하나 없습니까?”

-몰래카메라요?

“예. 특수 제작 몰래카메라가 필요하거든요.”

정형준이 머릿속을 되짚는 동안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직접 만든 카메라로 지하철에서 치마 밑을 도촬 하던 놈이 하나 있는데, 얼마 전에 출소했거든요. 그 녀석 어떠세요?

“좋습니다. 간단한 프로필 좀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경위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저야 뭐 특별한 건 없는데…… 지금 맡고 있는 사건 범인은 확실한데 증거가 부족해서, 담당 검사님이 영장 청구를 잘 안 해 주시더라고요.

“아, 그 살인 사건 말씀이시죠?”

-예, 맞습니다.

“그쪽 부서에 제가 전화 한 통 넣어 두겠습니다. 내일쯤 다시 담당 검사님께 연락드려 보시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네, 들어가세요.”

-예. 파이팅입니다!

이 정도 편의는 봐줘야 편하게 부릴 수 있다.

나름대로 상부상조니까.

해당 검사에게 통화를 했더니,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나중에 반대의 입장도 생길 테니 서로서로 좋게 가자는 생각이 팽배한 게 바로 이쪽 바닥이니까.

간단히 일을 처리하고 다시금 장부에 적혀 있는 ‘페어리’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정확히 세 번의 신호음이 울린 뒤, 중년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네, 누구시죠?

품위 있는 목소리. 적당히 떠본다고 해서 무언가 나올 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간을 볼 생각 없이 곧바로 신용호가 알려 준 대로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최서준입니다. 신용호 검사에게 소개를 받았고요.”

-아, 신 검사님 친구분이시군요.

그녀는 바로 알은체를 하며 반갑게 말을 이었다.

-날짜와 시간, 인원 말씀해 주세요.

“다음 주 금요일 오후 9시. 두 명입니다.”

한 명으로 예약할까 고민했지만, 정형준 경위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 일단 배진수 기자를 데려가는 걸로 결정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그를 만나 본 뒤에 내릴 테지만.

-지명은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월향이요.”

-월향이…… 아, 그 시간대 비어 있네요. 다른 한 분은요?

“나머지는 누구든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오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확실히 보통의 업소와는 다른 느낌.

고작 예약을 하는 것뿐인데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될 정도였으니까.

“후우.”

의심 없이 예약에 성공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책의 뒷부분을 넘겨,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파주 요정의 주소를 옮겨 적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최악의 경우가 생기면, 누군가가 내 휴대폰을 획득해 데이터 복구라도 할 경우, 이런 게 내 약점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추적을 피하기 위해선 아날로그가 최고다.

***

날렵하게 올라간 눈꼬리에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입꼬리.

100% 믿고 신뢰할 만한 얼굴은 아니지만, 어찌 얼굴로 판단을 내리겠는가?

사기꾼들은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얼굴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실체는 까 봐야 알 수 있다.

“반갑습니다. 최서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치 1번지 배진수입니다.”

그는 악수를 마치고 곧장 명함을 건넸다.

“송 검사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젊으신데 능력이 뛰어나시다고요.”

송현성이 미리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꽤나 좋게 이야기를 해 준 모양.

나는 능글맞게 물었다.

“듣기 전에는 모르셨나요?”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알고 있었죠. 정치사회부 소속 기자 중에서 최 검사님 모르면 간첩이지요.”

“영광이네요.”

짧은 대화지만, 충분히 그를 신용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목소리 톤에서 나오는 신뢰감과 함께, 간절하게 출세를 바라는 눈빛.

저 눈빛만은 절대로 나의 뒤통수를 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는 오래 끌지 않고 바로 주제로 들어갔다.

“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테이블에 손을 포개어 올리고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대신 조건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들어나 보죠.”

“절대 비밀 엄수. 중간에 발을 뺄 수도 없습니다.”

“그 정도는 기본이죠. 송 검사님이 이 사항은 믿을 만하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 말을 들어서 제가 배 기자님을 뵈러 왔죠.”

그는 만족스러운 듯, 넉살스럽게 잇몸을 드러냈다.

“기사를 터뜨리는 시기는 제가 정합니다.”

“예. 저희 쪽에 단독만 주신다면 문제없습니다. 기사가 가장 효과적인 시기는 저희가 아니라, 검사님께서 정하시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정에 필요한 모든 대금은 그쪽에서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 기자님 개인이 아니라 정치 1번지에서 말이죠.”

그는 옅은 웃음기를 띠고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우리 검사님, 청렴결백의 아이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네요.”

“아니긴요. 청렴결백해서 빈털터리라 아무것도 없으니 도와 달라는 이야기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돈이 제 주머니에 들어올 것도 아니고, 특종을 따기 위한 인터뷰비 정도로 취재원에게 제공하는 거니까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내가 직접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이 돈의 출처에 대해 분명 궁금해할 테니까.

일개 검사인 내가 건네기에는 큰돈.

만약 계좌 추적이 들어올 경우 검은돈의 정체가 밝혀지면 난 그대로 끝이다.

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보험을 들어 두어야 한다.

“그거라면 문제가 없죠.”

배진수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을 덧붙였다.

“단, 사항에 따라 그 액수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돈은 제가 대는 게 아니라…….”

그는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위에서 결정하는 거니까요.”

“물론이죠.”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자, 배진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서로 간 보는 건 끝났으니,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

프라이빗 룸임에도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자님, 혹시 파주 요정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그는 흥미로운 주제라는 걸 증명하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테이블로 상체를 기울였다.

“당연히 들어 본 적은 있지요. 다만,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우리는 그 파주 요정에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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