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3)
이게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VIP라니.
“대통령께서 저를 왜…….”
“저희도 정확한 이유는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틀 뒤에 오찬을 함께할 테니 꼭 시간을 비워 두라고 들은 게 전부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겼으면 대략 이유가 짐작이라도 가야 하는데 정말 눈곱만큼도 감이 오지 않는다.
“혹시 저만 만난다고 했어요? 다른 검사들이라든가…….”
“검사님과 VIP의 독대라고 들었습니다.”
대통령 독대라…….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이철용 부회장과 손잡은 걸 알아챘나?
그래서 정의의 검사 코스프레 한 게 눈에 걸린 건가?
아니, 그랬을 리가 없지.
암만 내가 카메라 마사지를 몇 번 받았다고 한들, 대통령이 주목할 만한 인물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뒤덮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이유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조아라는 내 복잡한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서실 측 목소리가 그렇게 어두운 건 아니어서 마냥 나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짙은 고민을 떨쳐 내지 못하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검사장님 잠깐 뵐 수 있는지 확인 좀 해 주세요.”
“중앙지검장님 말씀이시죠?”
“예.”
임주영 검사장.
그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특별수사부 부부장검사 최서준입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죄송합니다. 진즉에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그랬어야지. 고검에서 지검으로 넘어온 지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얼굴을 비치다니. 너무 늦었잖아.”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앉지.”
임주영 검사장은 소파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궁금한 걸 묻기에 앞서 간단한 안부 인사부터 꺼냈다.
“곧 대검에 들어가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들어가야지. 나도 명함에 대검찰청 직함 한번 달아 봐야 하지 않겠어?”
“대검만 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총장까지 올라가셔야지요.”
“자네가 고춧가루만 뿌리지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 만한 농담을 던진 임주영 검사장은 껄껄껄 웃으며 크게 다리를 꼬았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인사치레는 이 정도면 충분하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VIP께서 이틀 뒤의 오찬에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였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팔걸이만 콱 움켜쥐었다.
무슨 일인지 넌지시 물어보려고 했는데 임주영 검사장도 처음 들은 모양.
“예. 그래서 잠깐 다녀오려는데 미리 말씀드리려고 들렀습니다.”
“허어, 그렇구먼.”
임주영 검사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내 얼굴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거는 부장검사 통해서 보고하면 되지, 왜 굳이 여기까지 들렀나?”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농담조로 말했다.
“자랑하려고 들른 건 아닐 테고.”
“혹시 아시는 게 있나 해서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나도 전혀 몰라.”
임주영 검사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깊게 숨을 내뱉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통령님께서 일개 검사를 따로 독대하신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조금도 예상이 안 가. 지금 VIP는 너무 독특하신 분이라서 말이지.”
역시나 임주영 검사장도 따로 전달받은 건 없는 모양.
“특별한 사항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이건 나도 궁금하니까.”
그는 나를 향해 눈썹을 들썩였다.
“우린 이제 한배를 탄 사람들이잖아?”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나란히 붙어 있는 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자네는 당돌해서 좋다니까. 검사장 앞에서도 눈 부릅뜨고 한마디도 안 지고 말이야.”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칭찬이지.”
그는 껄껄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가 봐.”
“쉬십시오.”
***
정치의 귀재, 토론의 귀재, 연설의 귀재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 권재철.
국민들을 대할 때는 따뜻하기 그지없지만, 정치를 할 때는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유명한 인물이다.
역시나 그는 오늘도 완연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도무지 생각을 읽을 수가 없을 정도.
비서실 직원은 내게 청렴한 공무원상을 시상하기 위해 불렀다고는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청렴한 공무원상. 최서준. 위 공무원은…….”
대통령을 대신해서 상패를 읽어 나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갈 정도로 자꾸만 긴장감이 차올랐다.
“……하여 이 상패를 드립니다. 제19대 대통령 권재철.”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내가 상패를 받으며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은 뒤에야, 오찬을 즐기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전에 검찰 비리 척결한 건은 뉴스를 통해서 보았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다른 것보다도 이번에 12억을 받아 놓고도 일절의 고민 없이 그걸 감찰부에 넘긴 그 용기와 배짱에 칭찬을 보내고 싶었어.”
결국 그것 때문에 부른 건가?
“이번 일 덕분에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크게 상승했어. 다 자네 덕일세.”
“과찬이십니다.”
슬쩍 곁눈질로 본 대통령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로 굳어 있었다.
정말 이번 일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부른 건가?
그것 때문에 오찬 자리까지 만들다니.
아니면, 식사를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걸까.
온갖 잡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탓인지 영양가 없는 대화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결국 식사 자리에 앉기까지 나눈 대화 내용은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메인 세팅을 마친 요리사와 직원들이 완전히 식당 밖으로 빠져나간 그때, 지금까지의 엄준한 목소리와 달리 조금은 가벼운 톤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딱딱한 격식은 여기까지 하고 편하게 식사하지.”
그 순간, 대통령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동네 뒷골목의 비열한 양아치와 같은 비겁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는 입술을 히죽이더니 젓가락 대신 손을 뻗어 고기 전 하나를 집더니 한입 베어 물었다.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 검찰의 최고 노른자위라는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의 부부장검사까지 올라왔으면 자네도 어느 정도 알 거 아니야?”
“……예?”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다.
나를 시험하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면 진심으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건가?
애초에 이게 목적이었던 건가?
대통령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정치라는 거, 다 쇼잖아. 기자회견 하는 거 보니까, 자네도 꽤나 재능이 있더구먼. 나중에 나이 차면 자네도 검사 때려치우고 정치나 해. 이쪽이 더 재미있어.”
“정치까지는 아직 큰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 ‘아직’은 없겠지.”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녀석들치고 정치에 뛰어들지 않는 놈 한 명도 못 봤어.”
대통령은 고개를 휘휘 젓더니 이번엔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탐스럽게 윤기가 흐르는 닭 다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난 뒤, 여전히 얼어 있는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얼마나 받아먹었어?”
“……네?”
“보나 마나 주옥그룹 장남 측에서 밀어준 거더구먼. 그게 아니고서야 자네가 뭘 믿고 그렇게 배짱 있게 기자회견까지 여는 베팅을 할 수 있겠어?”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다.
지금 말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그에게 증거는 없다.
그저 상황만으로 추측하는 것뿐.
일단은 모르쇠를 잡는 게 최선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에잉, 쯧쯧. 꽤나 고지식하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기 전을 씹어 먹었다.
“됐어. 그러면 안 받았다고 치자.”
“…….”
“식사해. 괜히 더 물어보면 먹다가 체하겠네.”
대통령은 다시금 닭 다리를 뜯다가 여전히 멈춰 있는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식사 안 할 거야?”
피식.
이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에 왜 불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인데. 맞나?”
“……맞습니다.”
그는 닭 다리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성실하다 못해 국민의 스타가 될 정도로 화려한 양심 검사.”
대통령은 반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팡 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의 공을 치하하는 따뜻한 대통령. 얼마나 그림이 좋아?”
그림?
결국 국민들에게 우리가 악수하는 그림 한 컷 보여 주자고 청렴한 공무원상을 주면서 오찬에 독대 자리까지 마련한 건가?
그리고 이 상황을 본인 입으로 쇼라고 표현하면서?
대통령 권재철의 본모습이 원래 이랬던 거라고?
헛웃음이 나려고 한다.
아니,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이게 진짜 정치구나.
권력의 뒤 세계란 이런 거구나.
서울로 올라와서 크게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더욱 알아 가고 싶다.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이 저런 인간이라니.
나 또한 서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주먹을 꾹 쥐어 참고 있는데,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말을 던졌다.
“자네, 내 딸이랑 결혼해 보는 게 어떤가?”
순간 혹했다.
대통령의 사위.
승진?
그건 문제도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와 혈연을 맺는다. 이건 말 그대로 끝판 왕에 다가서는 것과 다름없을 터.
절로 차오르는 흥분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그 달콤함에서 한 발자국 멀어져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건넨 건 독이 든 사과다.
말 그대로 먹어 봤자 제대로 맛을 느끼기도 전에 모가지가 날아갈 게 뻔한 독 사과.
간을 볼 필요조차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머리까지 숙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뭘 진지하게 받고 그래.”
그는 다 발라 먹은 닭 다리의 뼈를 뼈 통에 던지며 말을 이었다.
“우리 딸이 벌써 마흔이 넘어가는데, 시집갈 생각을 안 해. 어휴, 적당한 놈이나 만나서 얼른 손주나 보여 주면 좋겠구먼.”
“아…….”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나를 바라보았다.
“거절한 이유는 뻔하지, 뭐. 아무리 서둘러 봤자 결혼까지 1~2년은 더 걸릴 텐데 그 시간 지나면 레임덕 시기잖아.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물러날 텐데 단물 다 빠진 사탕이라는 거 눈치챈 거잖아. 아니야?”
정확히 맞혔다.
내 머릿속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느낌.
“내가 말한 거 다 생각하지 않았어?”
대답은 침묵으로 대신했다.
무언의 긍정이라는 걸 안 그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놈들 같았으면 옳다구나 하며 내 딸 얼굴도 안 보고 바로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받아들였을 텐데,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거부하다니……. 역시 너는 보통 놈이 아니야. 내가 제대로 본 것 같네.”
대통령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가끔씩 얼굴 같이 보자고.”
그는 손을 높이 뻗어 올렸고, 나는 재빨리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았다.
그의 기름기 묻은 손가락이 나의 손날을 진득하니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