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수사부 (2)
미친.
문자 내용을 보자마자 곧장 성태현에게 뛰어갔다.
“의원님.”
“네?”
멈춰 서서 돌아보는 그를 향해 명함을 내밀었다.
“모처럼 이 파티의 둘밖에 없는 싱글끼리 알게 되었으니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하시죠.”
“좋죠.”
그도 자신의 명함을 꺼내 교환했다.
“그럼 이만.”
떠나가는 성태현을 뒤로하고 곧바로 명함에 적힌 그의 휴대폰 번호를 저장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대통령이라니.
이제 겨우 초선으로. 그것도 어부지리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이 12년 뒤에 대통령이 된다는 걸 누가 예상할까 싶다.
본인도 모를 테지.
국회의원이 된 건 어부지리가 아니라, 이 라인의 힘으로 된 걸지도 모른다.
아니지.
대통령까지 될 사람이라면 이번 선거에서 또한, 어부지리가 아니라 그의 힘으로 당선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은 본인의 능력이 충분해야 될 수 있는 자리니까.
인맥을 늘릴 거라는 건 예상하고 이 파티에 왔지만,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고급 양주와 와인을 마시며 여자를 낀 채 향락을 즐기기에만 급급할 줄 알았던 곳에서 이렇게 큰 수확이라니.
잘 들어왔다.
10년이 넘는 기간이다. 아직 꽤나 시간이 남아 있다.
성태현과 친분을 쌓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큰 친분.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그의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내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알면 알수록 이 라인의, 이 카르텔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독이 든 성배의 향기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내음을 내뿜는다.
그리고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것을 기꺼이 삼켰다.
***
“준비되셨어요?”
“네. 사과 박스는요?”
“대기실에 구비해 놨습니다. 액수도 확인했는데 문제없고요.”
조아라는 걱정 말라는 듯 자신 있게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 넥타이를 정돈해 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세요. 그 큰돈을 받고 눈도 꿈쩍하지 않으시다니요.”
그녀가 말하는 돈은 주옥그룹 회장의 차남, 이철기로부터 받은 돈이다.
사과 박스 하나, 12억.
나는 5분 뒤에 펼쳐질 기자회견장에서 그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까발릴 예정이다.
당연하지만, 자폭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걸 밝힘으로써 이철기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다.
이철용 부회장과 손을 잡았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주는 자리이자, 그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랄까.
안 그래도 후계 구도가 장남인 이철용 쪽으로 기울어 있는 지금, 비자금의 존재와 함께 이걸 검사에게 건넸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 이철기는 말 그대로 버틸 수가 없게 될 테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완성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것이다.
이미 이철용 쪽으로 판이 기울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에서는 늘 마지막이 중요한 법이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사람만이 기억에 남는 법.
이철용 부회장에게는 자신이 재벌가의 총수로 서게 만드는 결정타를 한 내가 머릿속에 각인될 테지.
그뿐만이 아니다.
특수부로 이적함과 동시에 엄청난 건을 터뜨리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스타 검사로 이름을 날린 이 상황에서, 12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남몰래 받았지만 양심적으로 이를 발표해서 그 돈을 국고로 환수시킨다?
국민이 보기에 이보다 더 양심적이고 멋진 최고의 검사는 더 나올 수가 없을 정도다.
스타 검사를 넘어서 내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것과 다름이 없지.
더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 뒤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지해 줄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국민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
언론이 나서서 모든 것을 포장해 줄 테니,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나는 그 영웅이라는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니까.
우리 사무실에서 내가 이철용에게 붙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는 건, 윤설하가 유일하다.
조아라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관도 아닌 실무관인 그녀에게 말하기는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기에 아직까진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굳이 많은 사람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검사님, 이제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네, 가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
“……해서 이 12억을 건네며, 부정 청탁으로 특별한 사안에 대한 지시를 요구받았습니다.”
촤르르르륵.
카메라 셔터음이 귓가에 울렸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야 받을 수 있는 이 엄청난 돈. 서민들이 평생을 일해도 만져 보기 이 힘든 돈을 받았을 때, 사실 흔들렸습니다. 저도 그러한 서민 출신이고, 지금도 서민이니까요.”
고개를 저으며 올차게 말했다.
“그러나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법치국가의 틀을 지켜야 하는 검사로서, 그리고 특별수사부의 부부장검사로서 이러한 부정행위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철기와 나에게 각각 재벌과 서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이철기 부회장을 ‘돈을 이용해 권력을 좌지우지하려는 악당’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극적인 대비가 있어야 국민들의 마음을 더 크게 감동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 국민들의 마음은 이철기 부회장의 목을 죄어 나갈 터.
“그래서 저는 이 12억이라는 돈을 한 푼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 낸 혈세로 녹봉을 받아 사는 검사라는 직책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주먹까지 말아 쥐고 힘차게 외쳤다.
“저에게 부정 청탁 및 뇌물을 건네는 모든 이들을 재판대에 세울 것이며, 그 본보기로 주옥자동차의 이철기 부회장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나는 준비해 온 구속영장 신청서를 들어 올렸다.
정식으로 발부된 구속영장도 아니다. 법원에 영장을 신청하는 양식에 기입한 것일 뿐.
그러나 기사에는 구속영장이 이미 발부된 것처럼 묘사가 될 테고, 이철기 부회장은 자동으로 쓰레기라는 낙인이 찍힐 터.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에 정의가 바로 서는 그날까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검사님이세요. 듣다가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아, 그랬습니까?”
엄지를 치켜드는 실무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했다.
12억에 저렇게 호소를 해 놓고, 뒤에서 120억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 국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으니까.
“바로 사무실 돌아가실 거죠?”
“그래야죠.”
물건을 챙겨 사무실로 향하려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이철용 부회장.
“먼저 들어가세요.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가겠습니다.”
“예.”
조아라를 먼저 보내고 홀로 옥상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최 검사님, 선물 잘 받았습니다.
이철용 부회장은 이전에 만났을 때에 비해 목소리가 훨씬 더 밝아져 있었다.
-기대감이 클수록 기쁘다고 말씀하시기에 대체 어떤 선물을 주실까 기대했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선물을 주실 줄이야…… 정말 감동했습니다.
“에이, 뭐 대단한 건가요? 대한민국 검사로서 정의를 바로 세웠을 뿐이죠.”
-그럼요.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로 꼽히는 최서준 검사님이십니다, 하하하핫!
그는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지금 저희 쪽은 아주 파티입니다. 정 안되면 이철기 부회장이 계열 정리해서 나갈 위험성도 있었는데, 이제 아예 경영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될 것 같습니다.
“너무 기뻐하지는 마십시오. 이번 건이 있어도 저희 쪽에서 실형을 주기는 힘들 겁니다.”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12억이라는 실제 증거가 떡하니 있음에도, 4대 로펌에서 꾸민 특급 변호인단을 고용하면 높은 확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서 빠져나갈 테니까.
-아이, 괜찮습니다. 그 정도 타격만 있으면 충분하죠. 빠르면 한 달, 늦어도 3개월 내에 제가 총수로 올라설 것 같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다 검사님 덕분이지요, 하하하핫!
이철용 부회장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신지요? 총알이든, 명품이든, 아니면 저희 계열에 연예기획사도 있습니다. 예쁜 배우들도…….
“괜찮습니다. 제가 필요해지면 말씀드리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단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또 뵙시다.”
-예.
전화를 끊고 곧장 송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서준아. 방금 뉴스 봤다. 저거 진짜냐?
“진짜지, 가짜겠어?”
-미친놈아. 12억이면 받고 잘리는 게 낫지 않겠냐?
송현성은 껄껄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했다.
“됐다, 인마. 받으면 바로 네가 내 모가지 치려고 그러는 거지?”
-으하하핫, 어떻게 알았냐?
“하여간 누가 감찰부 아니랄까 봐.”
킥킥거리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른 게 아니고, 재벌이랑 라인 커넥션 좀 파 보려고 하는데.”
-재벌?
“어. 혹시 좀 파고들 만한 방법 없냐? 검찰 쪽도 연관되어 있어서 직접 조사하기는 위험하고, 한 다리 걸치고 들어가야 될 것 같거든.”
-이 새끼 이거, 또 하나 물었구나.
“문 건 아니고 한번 파 보는 거야. 혹시나 때릴 일 있으면 감찰 담당은 너한테 맡길 테니까 걱정 말고.”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송현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기자 쪽이 그나마 나을 것 같은데.
“기자?”
-어. PD 쪽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여차하다간 너도 위험해질 수 있거든. 그나마 기자가 이미 아는 지식도 있고, 말이 통할 거야.
“그러면 믿을 만한 기자 하나 소개시켜 줄 수 있냐? 내 선에서 접촉하기에는 기자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음, 있기야 있는데…… 한번 자세하게 알아보고 연결시켜 줄게. 확실한 사람들인지 확인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 고맙다.”
-술이나 사.
“조만간 한번 살게.”
-당연히 그래야지. 들어가라.
기자라.
확실히 무언가를 깊이 파고들기엔 참으로 좋은 핑계를 댈 만한 직업이긴 하지.
라인에 들어왔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알량한 권력 놀음이나 하려는 생각이라면 모를까,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버텨야 진정으로 원하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 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들어온 이 라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씩 밟고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라인의 구조를 알아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이 라인의 돈줄이 누구로 이루어져 있는지와 그 돈이 어떤 식으로 흘러들어 오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
특수부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건 처리가 아니라, 이 라인의 구조도 파악이다.
이게 진정한 왕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