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7화 (27/341)

특별수사부 (1)

“안녕하십니까, 최서준입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자, 국회의원 박원기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 이 친구가 바로 요즘 가장 핫한 스타 검사인가?”

“과찬이십니다.”

그러나 강현수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박원기 의원에게 어필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능력 하나는 대단한 친구거든요. 무엇보다도 같이 일하시면 국민들 마음 돌리기에는 아주 제격일 겁니다.”

“허허허, 국민들 마음 산다는 말은 아주 혹하는구먼. 나중에 식사라도 같이 한 끼 하지.”

“예, 감사합니다.”

국회의원 박원기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현직 대법관인 정백원.

법조계에서 제일 강직하고 청렴한 인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여기서 보니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가울 따름.

역시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한 점 나오지 않는 인물은 없나 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서준입니다.”

“오, 자네가 이번에 특수부로 들어온다는 스타 검사구먼.”

모든 이가 나에게 스타 검사라는 수식어를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뉴스에서 몇 번이고 보도된 것은 기본이고, 이 사람들이야말로 언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니 모를 리가 없지.

이번에도 역시나 강현수 부장이 끼어들었다.

“이 친구가 그렇게 일을 잘합니다. 감찰부에서 특수부로 넘어왔는데…….”

강현수는 이 펜트하우스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트며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

특수부의 부부장검사 자리로, 그리고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강현수 부장인 건 맞지만, 그가 내 약점을 잡으려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물론, 미래에는 그걸 이용해 나를 잘라 내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그가 내게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게 해 주는 것은 나를 더욱 잘 이용하기 위함이라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으니까.

물론, 지금부터 발톱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특수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것 자체부터 마냥 호감을 사서 들어온 게 아니니까.

시작부터 척져서 좋을 건 없다.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한들, 어쨌건 지금은 나의 직속 상사가 바로 강현수니까.

힘을 더 키우기 전까지는 부부장검사로서 그를 보필하는 ‘척’, 만족하는 ‘척’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인사를 하면서 돌아다니고 나자, 강현수가 한 바퀴를 둘러보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이제 웬만한 사람은 다 인사한 것 같은데?”

그러나 한 사람이 빠져 있다.

“혹시 지검장님은 안 오십니까?”

“아, 임주영 검사장님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그분은 정확히 따지면 이쪽 라인이 아니야.”

이 라인이 아니라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이쪽 수장과 그쪽 수장이 달라. 다만, 그 수장인 두 분이 손을 잡고 있어서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협력 관계로 진행하는 거고.”

이럴 수가.

이 정도에서 끝이 아니라, 라인이 하나 더 있다니.

정재계의 커넥션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일까.

“오늘 불참한 분들까지 합치면 여기 있는 수의 두 배는 넘을걸.”

불참한 사람들까지 모두 모인다면…… 이 라인의 힘은 가늠이 가질 않는다.

대한민국의 1%…… 아니, 0.01%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임주영의 라인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그리고 그 수장 자리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부터 피어올랐다.

“부장님, 그러면 혹시 그 수장이라는 분은…….”

조심스러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 부장이 눈을 번쩍 뜨며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셨네, 그 수장.”

그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수장?

아니나 다를까, 강현수 부장 외에도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자네도 잘 즐겨 보라고. 여기서부턴 자네 혼자만의 시간이야. 얼굴도 많이 익혀 둬.”

강현수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인사를 하기 위해 입구에 있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이내 그 주인공이 등장했다.

현재 정권의 핵심. 진정한 실세.

대한민국의 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 인물.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 성대한 파티의 진정한 주인공.

최규현 국무총리.

대한민국의 넘버 투라고 불리는 그다.

시국이 불안정한 탓에 대통령이 외교와 국교에 집중한다면, 국내 경제 및 제도는 최규현이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국내를 꽉 쥐고 있다는 뜻.

이 라인의 수장이 최규현이었다니.

어마어마한 라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잘 들어왔구나.

이곳이 바로 진정한 힘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버티면 저 수장의 자리에 있는 최규현의 위치,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터.

최규현은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들어오다가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자연스레 고개를 숙였지만, 그는 지나치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감찰부 최서준이 맞지?”

“아, 네. 맞습니다.”

가까이 있던 강현수 부장이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바로 끼어들었다.

“내일부로 특수부의 부부장검사가 될 예정입니다.”

“오, 그래?”

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물었다.

“옆 라인 임성진이를 아주 두드려 패 버렸다면서?”

그 말에는 진한 흥미로움과 함께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게 느껴졌다.

화가 난 건가?

아니다.

그러나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느낌.

이게 바로 타고난 정치꾼이라는 건가.

국민에게 얼굴을 자주 들이미는 직업이라 그런지, 김석원과 같은 매서운 포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만 보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그러나 눈빛에서는 마치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는 야수와도 같은 매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압도적이었다.

김석원을 처음 만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찍어 누른다는 건…….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갈 뻔한 걸 꾹 참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어서 어떤 답변을 꺼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내 최규현의 탐욕스러운 혀가 튀어나와 입술을 핥았다.

머릿속으로 선택지를 고르고 있는 찰나, 그의 입이 먼저 열렸다.

“잘했어.”

그는 언제 무서운 눈을 했냐는 듯, 다시금 푸근한 옆집 아저씨의 얼굴로 돌아왔다.

“호가호위하는 녀석들이 꽤나 있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 녀석들이거든. 라인 힘만 믿고 까부는 자식들. 잘 처리했어.”

“감사합니다.”

“자네는 어디 최씨인가?”

그 질문을 듣자,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경주 최씨입니다.”

대답을 들은 그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 그런가? 나도 경주 최씨인데 이거 반갑구먼.”

그가 국무총리에 취임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다.

명절이면 할아버지께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는 덕분에 최규현의 돌림자가 무엇인지까지도 머릿속에 들어 있다.

“저는 준 자 돌림입니다.”

“내 손자뻘이구먼. 난 현 자 돌림이야.”

“예. 저희 조부께서 현 자 돌림이십니다.”

“하하하, 앞으로 눈여겨보겠네.”

“감사합니다!”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반듯이 숙였다.

혈연.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혈연, 지연, 학연 중 가장 끈끈한 혈연.

조상의 뿌리까지 가야 이어질 만큼 먼 친척이겠지만, 같은 성씨만 봐도 반가워지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이로 인해 최규현에게 눈도장은 찍을 수 있었으니 충분할 터.

하루만 보고 그만둘 것도 아니고, 급하게 나갈 필요는 없다.

“그래, 좋은 시간 보내게.”

국무총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무총리에게로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웨이터들이 트레이에 담아 들고 지나가던 칵테일을 하나 낚아채서 소파에 앉았다.

“후우.”

그제야 숨을 돌리며 이 광경을 조망했다.

밖에 나가면 한국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작자들이지만, 여기서만큼은 국무총리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그래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최규현의 눈에 띌 필요는 있지만, 저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졸개와도 같은 녀석들에 속하게 되면 안 된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사바사바하는 것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한 성공이 아니니까.

국무총리인 최규현이 나를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왕으로 올라갈 수 있을 터.

그때, 홀로 창가에 걸터앉아 위스키 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돌리고 있는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규현 국무총리에게 환심을 사려는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된 모습.

마치 까마귀들 사이에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학의 느낌이다.

나와 같은 생각인 걸까, 아니면 그저 질려서 저러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들어 가만히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상념에 잠긴 듯 골몰히 자신의 잔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가슴골이 깊게 파인 것은 기본이고 옆구리와 함께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내가 앉은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우리 검사님, TV에서 많이 봤는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는 잡아끌어 무릎에 앉혔다.

“그래서 반했어요?”

“어머, 저돌적이셔라.”

입을 가리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저 남자 누군지 알아요?”

“검사님 남자 좋아하시나?”

간을 보는 여자를 향해 정색하며 말했다.

“나한테 장난 칠 위치가 아닐 텐데.”

“…….”

여자는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성태현요. 도봉구 국회의원 성태현.”

아!

그제야 떠올랐다.

이번에 돌풍을 일으키며,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서울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여당에서는 정치계에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며 한창 언플을 했었지.

선거 당시에 광주지검에 있어서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던 탓에 얼굴이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성태현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그와 안면을 익혀 둬야 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저분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글쎄요. 집안이 엄청나게 빵빵하고 이혼한 돌싱이라는 것 정도?”

무릎에 앉아 있던 여자를 밀어내고 곧바로 성태현에게 다가갔다.

“성태현 씨.”

그는 제자리에 멈춰서 돌아봤고, 뒤따라가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최서준입니다.”

“성태현입니다.”

고개를 꾸벅이고는 곧바로 물었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아, 네. 조금 피곤하네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특수부라고 하셨죠?”

“예. 특별수사부입니다.”

“밖에서는 따로 만나지 않는 게 좋겠네요.”

그의 농담 섞인 말에 웃음기를 섞어 답했다.

“하하, 공적으로는 뵙지 않아도 사적으로는 자주 뵙고 싶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없기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기가 껄끄러웠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정치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기 위해 그 손을 잡은 순간.

지잉지잉.

문자다.

성태현이 떠나고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보낸 이 : 42

-제22대 대통령 : 성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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