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8화 (18/341)

고래 싸움에 새우 배 불린다 (2)

답은 너무나도 뻔했다.

강현수 부장검사가 세 개의 가방을 받아 금융범죄전담부와 경제범죄조사부의 부장들에게 각각 하나씩 넘기고 그 수고비로 본인도 하나를 챙기는 것일 터.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강현수가 주옥메디컬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추리할 수 있는 범위다.

문제는 이걸 그저 추리와 퍼즐로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물적증거를 캐내야 한다는 것.

그래야 협박을 하든 돈을 받든 터뜨리든, 어떻게든 간에 쓸 수 있다.

법정증거주의인 대한민국에서는 더욱더.

지잉지잉.

또다시 문자다.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보낸 이 : 송현성

-담배 한 대 피울까?

젠장.

괜히 놀랐네.

일단 머리라도 식힐까.

1층으로 내려가자, 역시나 건물 뒤쪽에서 송현성이 먼저 내려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왔어?”

“저쪽 흡연 구역에서 피우면 되지, 꼭 구석으로 불러내요.”

“거기서 피우면 답답해. 옷에 담배 냄새도 배고.”

“담배 태우면 네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제일 심해.”

“그건 맞지.”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물었다.

“그나저나 용호는 어떻게 됐냐?”

“2심 준비하고 있어. 몇 달 더 걸리긴 하겠지만, 아마 이번엔 집행유예 뜰걸.”

“이야, 최서준이 능력 좋네.”

“내 능력이겠냐? 다 고검장님이 힘써 주신 덕분이지.”

“잘됐다, 야. 그거 완전히 너한테 넘기고 나서 용호 때문에 마음 불편했는데 이제 슬슬 놓아도 되겠다.”

“그래, 인마. 용호 일 정리되면 너도 그 녀석한테 밥 한 끼 사야지.”

“당연하지. 참치 회 코스로다가 딱 대접할 거야. 너도 와라. 2차까지 내가 살 테니까 룸은 네가 쏴.”

“하하하하, 양아치 새끼. 1차, 2차 합쳐도 룸보다 싸겠다.”

송현성은 낄낄대며 웃다가 담배를 짓눌러 꺼뜨렸다.

내가 담배를 다 태우길 기다리는 그를 향해 올라가라는 손짓을 했다.

“먼저 올라가. 나 한 대 더 피우고 갈게.”

“그래. 천천히 와라.”

그를 보내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문자.

작년 겨울에 윤설하의 신분증을 마지막으로 장장 6개월 동안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날아왔다.

문자는 언제든 끊길 수도 있다는 힌트인 것이려나.

남발하거나 함부로 생각한 적은 없으니 위협이나 경고는 아닐 테고.

그게 아니면, 특별한 조건에서만 문자가 도착하는 것일까?

처음에 보낸 이의 숫자가 특별한 사인이라고 생각했으나 계속해서 29로 날아오는 걸 보고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엔 30이다.

카운트다운은 아닐 테고, 아직까진 가늠이 되질 않는다.

몇 번 더 문자를 받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연달아 불을 붙인 두 번째 담배를 짓이겨 끄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다시 문자의 내용으로 돌아오자.

특수부의 강현수 부장검사가 금융범죄전담부와 경제범죄조사부의 부장검사에게 돈 가방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둘은 그 돈에 대한 보답으로 주옥메디컬에 대한 공격을 전부 덮어 주고 있는 거겠지.

그나저나 경제범죄조사부 이 자식들은 비리 때문에 물갈이가 됐는데도 새로운 녀석이 또 비리를 저지르고 앉아 있다.

저 자리에 가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임주영 검사장이 직접 끌어올린 녀석들이라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한 모양.

어쨌거나 여기서 제일 모순되는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차장검사를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임주영은 상황상 끼어들 수 없다고 하지만, 경제범죄조사부와 금융범죄전담부 모두 제1차장검사 밑에 있는 부서다.

그런데 제1차장검사가 아니라 특수부의 강현수 부장이 이 둘을 관리한다니.

차장검사 위치까지 올라간 인물이 기수 열외를 당할 리도 없고, 어째서 이런 구조가 되어 버린 걸까.

머리가 지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담배를 피우고 왔는데도 또다시 니코틴이 당긴다.

광주지검에서는 가끔씩 사무실에서도 창문만 열어 놓고 담배를 태우곤 했었지만, 이곳에서는 꿈에도 못 꿀 일.

흡연 욕구를 참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차장검사 패싱이라.

왜 차장검사를 패스하고 넘어갔을까.

주옥메디컬에서 특수부 강현수 부장검사와 친분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차장검사를 대신해서 뇌물을 넘기진 않는다.

아무리 부장검사가 주요 총괄을 한다고 하더라도 차장검사에게 상명하복 해야 하는 신세.

모가지가 날아갈 정도로 자신 있게 돈을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함부로 움직일 리는 없다.

현재 차장검사는 올해 초에 승진해서 올라간 인물.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여름에 진입하는 지금 시점까지 부서를 장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초고속 승진을 한 인물도 아니니 두 부서로부터 기수로 인해 견제나 무시를 당할 짬도 아니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수부에서 몰래 넘기면 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나?

아니, 그래도 차장검사는 수사를 지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수사를 멈췄다는 건, 뇌물을 받은 걸 알고 있다는…….

잠깐만!

건너뛴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만약 강현수가 제1차장검사와 이어져 있다면?

그건 패스가 아니라, 모른 척한 게 된다.

강현수 부장검사로부터 돈을 받은 두 부장검사와 달리 제1차장검사는 주옥메디컬로부터 직접 돈을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확실하다.

주옥메디컬에서 한두 번 뇌물을 던져 본 것도 아닐 테고, 이렇게 나올 리가 없다.

그래,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에 주옥메디컬에서 제1차장검사를 무시하는 리스크를 안을 이유가 없으니까.

일단은 정리 완료.

지끈거려 오던 두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은 단 하나.

강현수 부장검사가 남우현 부장검사에게 돈을 넘기는 장면을 직접 포착하는 것.

제1차장검사인 원종서가 주옥메디컬로부터 돈을 받는 걸 찍을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것까지 원하는 건 욕심이다.

내 손에 있는 정보부터 소화해야 한다.

우선은 문자에서 본 사진의 장소.

해당 간판들을 포스트잇에 그대로 옮겨 적은 뒤에 사무실의 한쪽에 앉아 있는 실무관을 불렀다.

“아라 씨.”

“네?”

“혹시 기업 구조나 그쪽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기본적인 사항 정도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옥그룹 후계 구도에서 장남과 차남이 대결하고 있는 건 알고 있죠?”

“예.”

“장남이 가진 계열사랑 차남이 가진 계열사를 나눠서 파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계열사의 수가 꽤 되어 귀찮긴 하겠지만, 말 그대로 시간만 들이면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니까.

“그리고 하나 더.”

“네.”

그녀에게 간판명과 장소의 특징이 적혀 있는 포스트잇을 건넸다.

“이 간판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 파악해 주세요.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요.”

“알겠습니다.”

관련된 전화번호가 나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찾아본 결과는 전부 없는 번호거나 인터넷에 검색이 되지 않는 번호들.

아마 전화번호부나 114를 통해 알아봐야 할 터.

그래도 반나절 정도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지안동요?”

“네.”

“어떻게 찾으셨어요?”

“내비게이션으로 해당 전화번호 검색해서 찍어 보고 주소 파악해서 인터넷으로 로드 뷰 확인했어요.”

조아라는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면 포스트잇에 적혀 있던 간판 두 개가 나란히 붙은 게 보이거든요? 아마 99% 맞지 않을까 싶어요.”

문자로 보았던 사진이 어두침침했던 탓에 색깔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간판에 쓰인 글체와 분위기를 보면 확실하다.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네, 좋죠.”

조아라가 타 온 냉커피 한 잔을 마시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지안동이라면 서울지검에서 1시간 거리다.

은밀하게 거래를 주고받기 위해 그곳까지 갔을까?

지안동의 재개발 단지는 딱 절반. 그 나머지는 으리으리한 한옥이 많은 것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한옥을 보러 지안동까지 간 건 아닐 테고.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당장 오늘 지안동에 특별한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곳에 가야 한다.

곧바로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

“……해서 그 둘의 은밀한 거래 현장에 대한 첩보를 구했습니다. 일단 진행하던 계좌 조사는 덮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이것만 제대로 포착하면 계좌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 정보는 확실한 겁니까? 괜히 갔다가 오해만 생길 수도 있으니 출처는…….

“출처는 밝힐 수 없지만, 정보는 확실합니다.”

-그러면 차라리 제가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설하 씨가요?”

-네. 검사님이 직접 가셨다가 걸리면 상당히 난처해질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검사님은 미행에도 익숙하지 않으실 거고요.

“그러면 같이 가시죠.”

-아니요. 혼자 가는 게 편합니다. 제가 해당 장면 찍어서 바로 검사님께 보내도록 할게요.

하긴, 미행에 서툰 나를 데리고 가면 오히려 혹을 달고 있어서 움직임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윤설하의 생각이 옳았다.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예. 그러면 그렇게 하죠.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디에 계세요?”

-지금 동작구 쪽입니다. 30분 내로 고검으로 들어갈게요.

“아니요. 지안동으로 가셔야 하니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계시는 곳 주소 찍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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