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5)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야?”
송현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밖에서 뭘 했기에 이런 정보들이 나와?”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얽히더라.”
대충 넘기고는 윤설하에게 받은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진짜 제대로 살펴봐야 돼. 혹시나 잘못된 자료가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정보처가 불확실한 거야?”
“불확실하다기보다는, 누구인진 아는데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안 가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다.
윤설하를 만났을 때만큼은 거짓이 없다고 느꼈지만, 감에 의존해서 행동에 옮겼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니까.
무조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특히나 임성진 같은 거물을 잡을 때는 더욱더.
한 번의 미스가 수사의 흐름 전체를 자빠뜨릴 수 있다.
그는 윤설하의 자료를 스윽 훑어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몇 개 체크되어 있는데?”
“응. 일단 내가 한번 확인은 했는데, 내 선에서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만 체크해 놨어. 표시된 서류 위주로 네가 검토해 주면 돼.”
“그래. 반나절이면 체크한 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모르니까 전체적으로도 한 번 더 확인해 볼게.”
조원형이 보낸 자료들 또한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다.
말귀를 알아먹었는지 꽤나 치명적인 걸 가져와서, 진행은 훨씬 수월해졌다.
남은 건 발표뿐.
언론을 통해 수사 발표만 하더라도, 법정까지 갈 것도 없이 임성진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일반 사건이라면 사표를 내는 것만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워낙 사건이 사건인지라 검사 직위를 내려놓은 후에도 법정에 서게 될지 모른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해도 내가 반드시 뒷덜미를 잡아서 법정으로 끌어 올릴 테고.
“지금 있던 자료까지 통틀어서 정리하면 며칠이나 걸릴까?”
“한 이틀?”
이틀이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주일 뒤가 사법 고시 당일이다.
닷새 간격이면, 슬슬 사건이 사그라지기 시작할 즈음이다.
연타로 날리기엔 적절한 시기.
“그래, 그렇게 하자. 대본도 얼른 준비해.”
“응?”
대본이라니.
눈을 끔뻑이자, 송현성이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기자회견, 네가 해야지.”
“내가 한다고?”
“응. 너 오늘부로 감찰부잖아. 네가 해도 문제는 없지 않겠어?”
금시초문인데.
당연히 송현성이나 박승수가 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부부장님께 말씀드렸다. 나보다는 네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애초에 이 사건, 네 덕분에 시작한 거잖아. 그러면 스타 검사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여야지.”
송현성은 주먹으로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며 웃었다.
“나도 출세는 하고 싶지만, 그래도 친구가 먹을 떡 탐내는 나쁜 놈은 아니다.”
놀랐다.
그리고 감동했다.
애초에 사건을 시작할 때부터 믿을 만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의리 있는 녀석일 줄은 몰랐다.
“옛날부터 네가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 하나는 잘했잖아. 이번에도 한번 말발 세워 봐.”
“고맙다.”
“알면 소주 한잔 사든가.”
“그래.”
***
“안녕하십니까, 감찰부의 최서준 검사입니다.”
촤르르륵 셔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뒤쪽에는 ENG 카메라들까지 나열되어 있는 상태.
아마도 오늘자 뉴스의 메인으로 내 얼굴이 나갈 것이다.
떨리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스타 검사.
아직까지는 그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늘이 그것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게 분명했다.
내가 그렇게 나아갈 테니까.
카메라 플래시가 잦아들 때쯤, 다시 마이크에 대고 준비한 대본을 읽어 나갔다.
“경제범죄조사부에서 일어난 뇌물 수수, 제3자 뇌물 수수, 성 상납, 부정 청탁, 봐주기 수사,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사문서 위조. 총 일곱 가지 항목에 대해 내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시 한번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임성진 부장검사의 주도하에 조원형 부부장검사를 포함한 경제범죄조사부 소속 검사 일곱 명이 비리에 연관이 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특정 기업으로부터 사건을 눈감아 주는 것으로 수억 원대 뇌물을 챙긴 것을 시작으로…….”
말은 청산유수였다.
내가 말하는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유창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숨을 고르며 임성진의 더러운 부패를 강조했다.
“임성진 부장검사는 언론에 알려져 있는 스타 검사라는 명목하에! 협박과 갈취는 기본이며…….”
아마도 내일 기사의 헤드라인은 ‘스타 검사 임성진의 몰락!’ 또는 ‘검찰 비리, 곪고 곪은 게 터지다!’, ‘경제범죄조사부의 더러운 실상’ 등으로 가득 찰 것이다.
준비해 온 대본을 외치는 동안에도, 몇몇 기자들은 기사를 실시간으로 업로드 하는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한참이 걸린 끝에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다.
“서울고등검찰청 감찰부는 정의로운 검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발표하는 바입니다.”
김석원 차장검사가 부탁한 마지막 쇼맨십 대사까지 마친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래도 난 방송 체질인 것 같다.
***
“조원형, 그 개X끼 어디 있어!”
임성진 부장검사는 자신의 책상을 때려 엎었다.
지켜보던 부하 직원들은 이미 불똥을 피하려 대피한 지 오래.
임성진은 책상에 있는 것들을 옆으로 쓸어 던지는 것은 물론이고 명패를 날려 화분까지 깨 먹었다.
“조원형 이 X같은 새끼!”
그가 배신을 때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사실, 전혀 알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가 죽음을 피한 뒤로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알아챘다.
그러나 그저 그 변화를 외면했을 뿐이다.
그가 아니고서는 희망이 없었으니까.
최서준이 기자회견에서 그 자료를 터뜨렸을 때는 정말 육성으로 욕을 터뜨렸다.
자신 외에는 알고 있는 이가 조원형밖에 없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배신하고 최서준의 밑으로 기어들어 간 것이다.
씩씩거리던 임성진은 자물쇠로 잠겨 있던 서랍 맨 밑 칸을 열어 누런 봉투 하나를 꺼냈다.
조원형의 와이프, 그녀에 대한 수사 자료.
이걸 터뜨린다고 협박을 했는데도 조원형은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
자신을 배신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몸소 느껴 봐야 한다.
엄마랑 아빠가 나란히 감방에 들어가면 애가 아주 좋아라 할 거다!
그가 누런 봉투를 챙기는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떤 자식이 감히 노크도 없이…….”
화를 내려고 뒤돌아보는 순간, 그는 말문이 막혔다.
“검사장님!”
“어휴.”
임주영 검사장은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난리를 쳤구먼, 난리를 쳤어.”
그는 임성진이 손에 들고 있던 누런 봉투를 보고 물었다.
“왜, 조원형이한테 복수하려고?”
“그 자식이 지금 어떻게 나왔는지 보셨잖습니까?”
검사장은 이를 질끈 물고 있는 임성진에게서 그 봉투를 뺏어 들었다.
“검사장님, 그런 녀석들은 아주 혼쭐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임주영 검사장은 임성진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조용히 옷 벗어. 그게 최선이야.”
“하,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마.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조용히 옷 벗고 나가. 잘못하다간 너 징역 산다.”
임성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떨어 댔다.
“이대로 나가면 저는 변호사도 못 해 먹습니다.”
“1년만 쉬어. 1년 동안 해외라도 다니면서 챙긴 돈 좀 쓰고 오면 잠잠해질 거다. 적당한 기업에 법무 팀으로 넣어 줄 테니까.”
임성진은 한 줄기 빛을 느꼈다.
‘적당한 곳’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대기업의 법무 팀!
임주영 검사장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같은 성씨. 같은 핏줄.
역시나 혈연만이 그의 희망이었다.
“감사합니다!”
임성진은 90도를 넘어선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조원형이도 지방으로 갈 거니까 내버려 둬. 그 녀석 관련된 자료는 이게 전부야?”
“하지만 그 녀석은…….”
임주영은 임성진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눈빛에 깨갱한 임성진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검사장의 말에 답했다.
“그게 전부입니다.”
“조원형은 평생 지방에서 뺑뺑이 돌며 살아야 될 거야. 사나이가 대의를 보고 가야지, 그런 자잘한 일에 복수라도 하려고 마음먹으면 골치 아픈 거 몰라?”
“죄송합니다.”
“나 믿어. 믿고 사표 내. 지금 바로 수리하면 불이 더 번지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어. 대기업 법무 팀 가서 연봉 빠방하게 받아야지. 안 그래?”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임성진이 힘차게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보는 임주영 검사장의 마음엔 이제 애잔함까지 일 정도였다.
감사해하는 그에게는 차마 속내를 말하지 못했다.
사표가 수리되고 나면, 그가 설 자리가 없어지리라는 걸.
사법 고시 비리라는 후폭풍이 임성진을 덮칠 터.
1년 뒤에 그는 대기업 법무 팀이 아니라, 교도소에 있을 것이다.
***
임성진은 옷을 벗었다.
조원형에 대한 보복 또한 없었다.
아무래도 임주영 검사장이 잘 처리한 모양.
그러나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녀석은 법정에 서야 한다.
그게 신용호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니까.
“사법 고시?”
김석원 차장검사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놀란 표정을 보였다.
“사법 고시 비리를 최 검사 자네가 들고 있다고?”
“예. 시험 유출 증거입니다.”
“허어.”
그는 헛웃음을 짓더니 소파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연타석 홈런이라니.”
“연타석까지는 아닙니다, 임성진과 관련된 거거든요.”
“임성진?”
팔걸이를 두드리던 그의 손이 멈췄다.
“그 자식이 사법 고시 시험지까지 유출했어?”
“예. 몇 명과 접촉해서 팔아넘기거나 대가를 받고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현직 교수도 연관되어 있고요.”
“누군데?”
“한국대학교 정재원 교수입니다.”
“허허허.”
웃고 있지만, 그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이거 내가 호랑이 새끼를 데려온 게 아닌가 싶네.”
“걱정 마십시오. 이게 끝입니다.”
“그래야지. 조금만 더 나오면 아무래도 고검장엔 내가 아니라 자네가 올라가야 할 것 같으니까.”
그는 가벼운 농담 직후,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기자회견 마련해 주면 되나?”
“예.”
“날짜는?”
“사법 고시 다음 날로 부탁드립니다.”
“제일 뜨거울 때구먼.”
“예. 오전 중으로 터뜨렸으면 합니다.”
“그래, 그건 어렵지 않아. 이번 건으로 자네가 꽤나 알려져서, 최서준이라고 하면 기자들이 부리나케 달려올 테니까.”
“차장님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신용호 그 친구한테나 감사해하라고.”
역시나 시간이 지나자 여론의 관심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하이라이트를 봤으니 관심이 줄어든 거지.
단 며칠 만에 귀신같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걸 대신해서 마지막 사법 고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사법 고시 당일, 모든 뉴스에서는 마지막 사법 고시가 메인 토픽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다시 한번 기자회견장에 섰다.
한창 화제인 사법 고시에 대한 폭탄과 함께, 임성진 및 경제범죄조사부에 대한 식은 불씨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 만한 사건을 들고서.
“안녕하십니까, 감찰부 검사 최서준입니다. 저는 오늘, 사법 고시 비리를 밝히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모교인 한국대학교의 현직 교수 및 전직 부장검사가 연관된 시험지 유출 사건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