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1)
조원형을 진정시키고 있던 경찰에게 일산화탄소로 가득한 방의 뒷정리를 시키고는, 그로 하여금 모텔 사장에게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함구하기를 부탁했다.
모텔 사장은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 무조건 지시를 따를 테니 염려할 일도 없을 터.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조원형은 아까의 몽롱한 눈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에 기운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
미니 냉장고에 비치되어 있는 음료수 캔 하나를 따서 그에게 건넸다.
“정신은 좀 드십니까?”
그는 음료수를 그대로 들이켜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시지, 왜 그러셨습니까?”
“죽으면 안 되죠. 남겨질 가족들도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님이 이제 일곱 살이라고 들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를 두고 왜…….”
“제가 가고 싶어서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는 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갈 수밖에 없어요. 검사님이 말씀하신 그 가족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임성진이 협박 카드로 쥐고 있는 게 가족이었던 모양.
조원형의 얼굴엔 잿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차피 저를 검찰청에 데려가셔도 별반 다를 거 없습니다. 유서 보셨죠?”
“예.”
“제가 다 안고 갈 겁니다. 출석해서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이내 주먹을 풀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이야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달라질 수도 있죠.”
그러나 그는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하신다고 한들, 이 사태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합니다. 임성진이 자기 손에 흙탕물 튀는 걸 지켜보겠습니까?”
“당연히 그러지 않겠죠. 그래서 부부장님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것일 테고요.”
“잘 아시네요. 제가 살아났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든 다시 죽게 만들 겁니다. 그게 안되면 직접 칼자루를 휘둘러서라도 절 죽일 테고요.”
조원형 부부장은 임성진을 오랫동안 곁에서 따랐던 인물.
그렇기에 더욱 임성진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것이다.
그가 어찌나 잔인하게 다른 이들을 밀어내고 처리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협박받은 사안 또한, 조원형의 입장에선 죽음을 택할 만큼 치명적인 건수일 터.
이 정도면 좋게 타이르거나 달콤한 말 정도로는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조원형 본인 또한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것.
안전만 보장된다면, 그 또한 우리 편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상황에서 조원형이 모든 걸 안고 세상을 뜨게 되면 임성진에겐 자그마한 생채기를 입히는 게 전부다.
아니, 그 인간은 오히려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할 테지.
만약 임성진이 굳건하게 버티게 된다면 내가 캐낸 그와 검사장의 연결 고리는 파헤쳐도 빛을 보지 못하게 될 확률이 크다.
똑같은 주먹이라도 피투성이일 때는 카운터펀치로 느껴질 것이 멀쩡할 때는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조금 더 묵혀 두려고 했던 카드를 꺼내야 했다.
이대로 지나가 버리면 묵혀 둔 걸 꺼내기는커녕, 땅속에서 썩어 버릴 가능성이 크니까.
“임성진이 그 칼자루를 다시 손에 쥐지 못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당신, 혹시 차장검사님의 메시지를 받고 온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혼자 움직입니다.”
그는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당신이 소스 제공자라고 하더라도 일개 평검사에 불과합니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꼬박꼬박 존댓말 써 주는 것도 감지덕지일 텐데.”
조원형은 권위를 찾으려고 했지만, 어차피 현 상황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나라는 건 그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그냥 죽는 걸로 끝내시겠다는 겁니까?”
“…….”
“임성진이 죽이지 못하게 칼자루를 빼앗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임성진이 일개 부장검사와 같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시끄러울 때 쓰러뜨려야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임성진 부장, 추가 비리 자료 건네주세요. 확실하게 모가지 날릴 수 있는 걸로.”
“뭐?”
“최측근인 당신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어디가 더럽고 구린내가 나는지. 밑에 있는 평검사라면 몰라도, 당신은 알아야죠. 그런 것도 모른다면 부부장님이 임성진의 오른팔일 자격도 없잖습니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나보고 배신을 하라고?”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걸 보니 꽤나 흥분한 모양. 아마 자존심이 꽤나 상했을 테지.
“배신이 아니라 생존하라는 겁니다.”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둘 중 누가 죽을지 선택하는 겁니다. 당신이 죽으면 임성진이 살고, 임성진이 살면 당신이 죽습니다.”
“지금까지 말을 뭐로 들은 거야? 내가 나서면 가족이 다쳐. 집사람이랑 딸 지키려고 내가 자살 시도한 거라고!”
“그 이유도 저한테 말해 주십시오.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너 따위가 무슨 수로 그걸 막아?”
“검사장님을 만날 겁니다.”
조원형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뭐?”
“검사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성진 쳐내고 부부장님 살리자고. 그분 입장에선 둘 다 목줄을 쥐고 있는 강아지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한 명이 나갈 거라면 누가 잘려 나가든 상관없습니다. 본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지키려고 하겠죠.”
“너 설마 검사장님까지…….”
“그건 노코멘트로 하겠습니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죽이시겠습니까?”
조원형의 표정을 보니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지방에서 온 촌놈이라고만 생각했지, 검사장과 관련된 카드까지 갖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
그 카드에 대해서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말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건 알 테니까.
“부부장님이 죽는다고 해서 임성진이 티끌만큼이라도 고마워할 것 같습니까? 그저 수족 하나 잘라 내고 살아남았다, 이 정도로 생각할 겁니다.”
한참이나 생각한 끝에 그는 털썩 침대에 앉더니 임성진이 쥐고 있는 본인 와이프의 비밀에 대해 털어놓았다.
***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 전에 그가 가져온 증거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답니까?”
조원형 부부장은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걸로 어떻게 임성진 목을 칩니까? 이 정도로는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것도 힘들다는 건 부부장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
“하지만…….”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임성진을 칠 수 있는 자료면, 저도 같이 죽습니다.”
“제가 알아서 걸러서 처리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어제 그렇게 이야기해 놓고도 제가 뒤통수칠까 봐 걱정되십니까?”
“…….”
“오늘 검사장님 미팅 잡았는데, 취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조원형은 어렵게 머리를 들었다.
“이틀만 시간을 주십시오.”
“네, 부탁드립니다.”
아직까지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일 터.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오른팔에게 죽음을 강요할 정도의 인간에 대한 충성심이 영원할 순 없을 테니까.
곧 조원형의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이제 흔드는 역할은 내가 아니라, 임성진이 직접 해 줄 것이다.
***
임성진이 준비한 판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조원형을 미끼로 하여 언론을 잠재우고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최서준이 판을 엎어 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신중하게 움직였어야 하는데…….”
“그 자식은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조원형은 입을 닫았다.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그가 잡은 줄은 임성진이 아니라 최서준이니까.
그걸 임성진이 알아서는 안 된다.
임성진은 냉수를 들이켠 뒤 날카롭게 조원형을 노려보며 물었다.
“진술은 어떻게 했어?”
“일단 전부 제가 지시한 거라고 진술은 했습니다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임성진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제는 진술 대신 최서준과 함께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 갈지 토의했으니까.
10년 가까이 충성한 임성진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기 시작할 때쯤, 임성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 거사 치를 수 있을 것 같아?”
거사.
자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한번 자살을 시도했던 이에게 다시금 죽음을 강요하는 건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었지만, 임성진의 얼굴에선 전혀 미안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캘 것에 대한 불안함만 드러날 뿐.
그의 태도를 본 조원형은 이가 빠득 갈렸다.
당장 어제 일이다.
미안하다는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괜찮냐고 묻거나 마음고생을 했다는 말, 그게 아니더라도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정도라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최서준의 손을 잡은 걸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걱정은커녕, 언제 죽을지를 묻는다니.
총알받이 중 하나.
임성진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배신감.
그것을 넘어선 모멸감.
이 감정만으로도 임성진을 배신하는 걸 합리화하기엔 충분했다.
“당분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조원형은 감정을 숨기고 말했다.
“감찰부 측에서 사람을 붙여 놨는지, 계속 미행이 붙는 것 같아서…….”
이건 최서준의 계획이었다.
시간을 끌며 임성진에게 충성하는 척하고 뒤에선 그의 목을 치도록 작업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배신했다는 걸 알면 임성진은 지금 당장이라도 와이프의 그 사건을 터트려 버릴 테니까.
임성진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집에서는? 거기까지 찾아오진 못할 거 아니야?”
조원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이는 걸 겨우 참았다.
가족들을 위해서 죽으라고 해 놓고 집에서 죽으라니.
가족들에게 트라우마 심어 줄 일 있는가?
조원형은 확신했다.
임성진은 자신을 부하 직원이 아닌, 도구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고.
“아무래도 가족이 있는 집은…….”
“하아, 이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에게 불리해. 이러다가 정말 다 죽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부장님.”
“왜?”
“감찰부 측에서 자살 시도와 이번 진술 때문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계속 캐내려고 합니다. 당분간 고검으로 몇 번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입단속 잘하고.”
임성진은 당부하듯 말했다.
“문제 생기지 않게 잘 해결해.”
문제 생기지 않게.
이 말은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게 조원형의 선에서 잘 처리하라는 거다.
죽으라는 것도 모자라, 이런 말까지.
임성진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충성심까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조원형은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배신에 대한 죄책감을 전부 털어 냈다.
그리고 마음속의 결심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니라, 죽이겠다고.
살아남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