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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1화 (11/341)

큰판 (4)

-지금 막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원형 부부장이 오피스텔에서 만난 사람은 임성진 부장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고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계속 지켜보세요. 교대하시는 동안에도 절대 놓치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조원형에게 붙여 놓은 경찰의 보고를 받고 전화를 끊었다.

1차 출석요구일에 나란히 불참하고 은밀하게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니.

하루 종일 만났으면 대책 회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만나서 1시간도 되지 않아 헤어졌다면 해답은 뻔하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전달했다는 것일 터.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 지시 사항이 아마 조원형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슬슬 언론에서도 목을 죄어 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들도 위기감을 느끼기엔 충분할 테니까.

우리도 국민들로부터 충분히 압박을 받고 있기에 뒤로 미룰 순 없었다.

아마 세 번째가 최종 출석요구가 될 터.

문자에서 보았던 기사를 생각하면 조원형이 죽는 날짜는 최종 출석요구일 전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경찰을 붙여 놓았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는 게 주목적.

그러다 여차하는 위기 상황에서 등장해 그를 설득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사람은 위기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의 도움의 손길을 더 크게 느끼니까.

지금은 조원형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기다릴 때다.

***

최종 출석일이 다가왔다.

조원형 부부장검사에게 붙여 놓은 경찰에게서는 아직까지 특별한 보고가 없었고 임성진만 최종 출석요구에 응했다.

다만 불길한 건 조원형 부부장검사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직까지 집에 있다고 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람 한 명을 택배 기사로 위장시켜 보내 봤지만,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더 지나면 출석 시간이다. 그가 오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발부될 터.

이제 슬슬 움직여야 문자에서 본 대로 흘러갈 텐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그때, 박승수 부부장검사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조원형 부부장검사 때문에 그래?”

“예. 임성진은 출석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왔는데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요.”

“제 발로 오거나 잡혀 오거나 둘 중 하나야. 걱정하지 마.”

그런 단순한 결과로 이어질 거라면 걱정도 안 한다.

“그나저나 자네가 임성진이랑 한번 이야기해 볼래? 이 새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응. 이만큼 드러난 상황에서 발 빼는 걸 보면 조원형이가 출석해서 다 책임지는 것 말고는 설명할 게 없거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우리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이긴 한데 임성진 이 새끼,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지가 이긴 것같이 말한다니까? 아무리 조원형이 책임지더라도 임성진이 타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데 너무나도 자신감이 넘쳐.”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

***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알아보니 조원형 부부장이 많은 걸 이끌었던 것 같은데요.”

임성진은 음흉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는 수사실에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로워 보일 지경.

마치 본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마지막 출석일에 등장한 그는 예상했던 대로 조원형에게 모든 걸 떠넘기기 시작했다.

임성진은 일관된 태도로 조사에 임했고 오늘까지 출석을 미뤘던 다른 검사들 또한 조원형이 시킨 일이라고 입을 맞춘 상태.

이로써 확정되었다.

조원형은 오늘 자살을 시도한다.

아마도 임성진이 모든 걸 지고 가라고 지시했겠지.

조원형의 약점을 잡고 협박을 했든가, 가족들에게 엄청난 돈을 주기로 했다든가.

충성심으로 책임을 지려고 했다면, 최종 출석일인 오늘까지 미뤘을 리는 없으니까.

임성진 부장은 능청스레 먼저 입을 열었다.

“조원형 부부장은 출석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내뺀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다 지시받았을 텐데. 예를 들어 직속 상사에게서라든가요.”

“저는 지시한 적이 없는데…… 조원형 부부장, 업무 체계까지 위반했나 보군요.”

임성진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저 표정만 봐도 확실하다. 조원형이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이 틀림없다.

돈으로 사람을 사겠다고 하면 이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협박의 건수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는 이중유리를 흘긋 돌아보았다.

“누가 보고 있거나 녹화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감찰부도 아닌 제가 들어왔는데 증거를 남기면 되겠습니까?”

그제야 임성진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나를 비열하게 노려봤다.

“내가 죽이려면 제대로 죽이랬지?”

아직까지도 본인이 판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

“죽일 생각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방긋 웃으며 말을 보탰다.

“아직은 말이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너 말이야, 내가 이렇게 쉽게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조원형에게 붙여 놓은 경찰.

“아, 급한 전화라.”

따가운 눈살을 보내는 임성진을 향해 눈썹만 한번 들썩이고는 취조실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조금 전 집에서 나와 차에 올랐습니다. 따라붙고 있는데 출발하자마자 바로 자유로에 올랐습니다. 추적하면서 계속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유로라면 역시나 일산!

문자에서 조원형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일산의 한 모텔이었다고 한 걸 생각하면, 그가 결심을 내린 모양이다.

“바로 따라갈 테니 특이한 점이 있을 때마다 바로바로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그에게 보고를 받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박승수 부부장검사에게 향했다.

“부부장님, 지금 조원형이 다른 곳으로 새고 있다고 합니다.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 검사, 조원형한테 꼬리 붙여 놨어?”

대답 대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보겠습니다.”

그대로 검찰청 취조실이 있는 층에서 내려와 곧장 주차장에 대 놓은 차로 향했다.

조원형, 아무리 죽고 싶어도 그렇게는 못 놔두지.

***

“이 모텔입니다.”

“확실하게 들어가는 거 봤죠?”

“예. 카드 결제하는 모습까지 확인했습니다. 뒤쪽 주차장에 차도 주차되어 있고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죠?”

어떻게 알았냐는 듯, 잠복 경찰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예.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차 트렁크에 미리 넣어 둔 거라서 내용물은 확인하지 못했고요.”

아마도 자살을 위한 도구일 것이다.

사망 사인이 일산화중독이었던 만큼, 문과 창문의 틈새를 막을 테이프와 번개탄, 화덕 정도겠지.

“지금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요?”

“딱 1시간 지났습니다.”

1시간.

자유로를 한참 달리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끝냈을 터.

도착한 뒤에 테이프로 작업하고 자살할 환경을 준비할 시간까지 생각하면 딱 적당하다.

지금쯤이면 번개탄은 피웠겠지만 정신을 잃기엔 아직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지금 바로 들어가죠. 호수는 확인했어요?”

“아니요. 그것까진 확인 못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바로 들어가죠.”

모텔 입구로 들어서자, 작은 창 안에 있던 주인장이 우리를 스윽 훑어보았다.

“여자는 안 오죠?”

동성애자로 보일 줄이야.

눈살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자, 따라온 경찰이 공무원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1시간 전에 안경 쓰고 정장 입은 채로 혼자 온 남자 있죠? 몇 호로 들어갔습니까?”

주인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머리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오해했습니다.”

“괜찮으니까 호수 알려 주시고 마스터키 좀 주십시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조사할 게 있습니다.”

“그래도 영장이 없을 때 함부로 주는 건 저희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꽤나 막혀 있는 양반이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나섰다.

“안에서 사람 자살하려고 해요. 여기서 사람 죽었다는 소문 돌면 사장님도 장사하기 힘드실 텐데요.”

그제야 사장은 허겁지겁 마스터키를 빼 들고 나섰다.

“따, 따라오십시오. 304호입니다.”

사람 죽는 건 두려웠는지, 사장은 엘리베이터도 두고 계단으로 황급히 올라갔다.

그리고 304호에 카드 키를 대고 문을 당기자, 역시나 예상대로 문틈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제가 당기겠습니다.”

옆에 있던 경찰이 나서서 발로 벽을 박차며 문고리를 당기자, 그제야 테이프가 떨어지며 문이 열렸다.

뒤로 물러난 사장을 두고 경찰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무거운 공기와 함께 텁텁한 연탄 향이 확 느껴졌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바닥에 놓인 연탄 화덕과 그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번개탄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쿨럭!”

침대에 누워 있던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벌써 일산화탄소를 꽤나 마셨는지 기침을 뱉으며 몽롱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아직 정신을 잃기까지는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

베스트 타이밍이다.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창문부터 열었다.

“자리 옮겨서 이야기하시죠.”

화장실의 환기구를 여는 경찰에게 지시했다.

“옆방으로 부부장님 좀 옮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찰은 정신이 제대로 들지 못한 조원형을 등에 업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그가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는 사이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문자에서 본 인터넷 기사에서는 분명 유서와 함께 자살한 그를 발견했다고 나와 있었다.

이 방 어딘가에 유서를 뒀을 터.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자, 어렵지 않게 유서를 찾을 수 있었다.

일부러 발견하기 쉽게 테이블에 올려놓고 날아가지 않도록 재떨이까지 올려 뒀다.

그의 심란한 마음을 증명하듯, 재떨이엔 열 개비가 넘는 담배꽁초가 들어 있었다.

1시간에 열 개라면, 들어온 직후부터 연탄불을 피우기 직전까지 줄담배를 태웠다는 건데.

돈이 아니라, 협박을 받고 죽음을 택한 게 확실해지는 상황.

재떨이 밑에서 유서를 꺼내 훑어보자, 역시나 문자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모든 책임을 안고 간다는 내용과 함께 표적 수사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이게 바로 임성진의 히든카드.

모든 책임을 조원형에게 넘기면서 ‘표적 수사’라는 단어 하나로 언론의 타깃을 우리에게 돌리려고 했던 작전.

유서 내용을 다 읽기 무섭게 휴대폰의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박승수 부부장검사.

“예, 최서준입니다.”

-지금 조원형 가족들이 집에서 유서 발견했다고 연락 왔어! 어떻게 된 거야? 자네가 찾으러 간다며!

흥분한 목소리.

어지간히 당황하긴 한 모양이다.

“막았습니다. 모텔에서 자살하려던 거 발견했어요. 지금 정신 차리고 있습니다. 유서도 발견했고요.”

-하아아.

박승수 부부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원형이 죽으면 지금 상황이 개판이 된다는 것쯤은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가족들한테는 미안하다며 잘 지내라고만 적혀 있는데 거기는 내용 어때? 찍어서 보내 봐.

“이번 일, 본인이 안고 간다는 내용입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조원형은 119에 실려 간 거야?

“아닙니다. 옆방에 있습니다. 잠깐 협상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협상? 무슨 협상?

“이번 사건 관련해서 임성진과 이야기한 게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잘되면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요.”

-하아, 책임지고 데려올 수 있지?

“예. 구속영장 발부만 미뤄 주십시오. 출석 문제만 처리해 주시면 이야기 끝내고 제가 직접 지검으로 데리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영장은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까 3시간 안에 들어와.

“알겠습니다.”

유서 내용을 그에게 전송한 뒤, 마지막으로 방을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보고는 곧장 조원형이 있는 옆방으로 향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조원형을 상대해야 한다.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그는 협상하기에 최적화된 상태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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