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판 (3)
경제범죄조사부에서 근무하다가 지방으로 밀려났던 검사들의 취조실에는 내가 직접 들어갔다.
이 정도는 감찰부 소속이 아니더라도 김석원 차장검사의 허락하에 충분히 용인된 부분.
첫 번째로 맡은 검사는 경남으로 좌천된 정원호 검사.
“저 용호 친구입니다. 신용호 아시죠? 보성지청으로 발령 났던…….”
“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좌천됐다지만, 정원호도 한때 임성진 라인에 줄을 섰던 인물.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정원호다.
“까놓고 말할게요. 경제범죄조사부에 있을 때 몇 가지 해 먹으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좌천된 거고.”
그는 대답하지 않고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어차피 지금 영상도 안 찍히고 녹음도 안 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정원호는 슬쩍 테이블 밑을 체크하더니 실제로 녹음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옆에 있는 검은 창을 가리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중유리 너머 또한 아무도 없어요. 저랑 당신이 이 대화를 듣는 전부입니다.”
그제야 그가 안심하고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하아,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똑같죠. 용호는 물론이고 희주도 그렇고요.”
“실제로 실수하셨던 몇 가지 사항에 있어서는 이미 좌천되셨으니까 더 책임을 물진 않을 거예요.”
우선은 당근.
그의 걱정을 덜어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역시나 정원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임성진 부장검사의 비리, 진술하실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어렵죠.”
그는 허심탄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잖아요, 그 자식 성격. 만약에 살아남기라도 하면…… 어휴. 저희는 그날로 모가지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채찍을 치지 않으면 말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임성진 부장이 뇌물 수수 관련해서 언플한 건 보시지 않았어요?”
“봤죠. 그것 때문에 지금 이렇게 조사받고 있는 거니까요.”
“이미 밝혀진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좌천한 것으로 퉁 쳐서 더 이상 벌은 받지 않으실 겁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서요. 그런데…….”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파일철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이번엔 채찍이다.
“추가적으로 받은 뇌물이 있으시면 이건 커버하기 힘들죠.”
어느 때보다도 현재에 안주하고 있을 때, 그 삶을 위협할 만한 채찍은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온다.
“예?”
지금까지 안심하고 있던 모습과 달리 정원호 검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듯 눈이 휘둥그레진 채 파일철을 열었다.
“이, 이게 무슨…….”
서류를 확인한 그의 얼굴에선 당황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당연히 놀랄 만하지.
그건 경제범죄조사부가 먹은 뇌물을 임성진이 정원호를 비롯해 좌천된 검사들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작성하다가 중간에 멈췄던 파일을 내가 직접 완성시켜 놓은 서류니까.
물론 전부 다 작성하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딱 한 장.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한 장이면 궁지에 몰려 있는 저들을 설득하기엔 충분할 테니까.
“아닙니다. 이런 건 제가 먹은 적이 없습니다. 경제범죄조사부 전체 뇌물입니다. 제가 먹은 건 여기 나온 내용의 1/10도 안 된다고요.”
그러나 나는 냉정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이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서류들은 당신과 한희주 씨 그리고 신용호가 뇌물을 수수했다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게 경제범죄조사부에서 나왔고요.”
“아닙니다. 저희한테 뇌물 수수 혐의를 넘기고 빠져나가려는 속셈입니다. 검사님도 아시잖습니까, 신용호 검사가 이 정도로 해 먹을 리가 없다는 걸.”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저희가 압수 수색한 자료는 이겁니다. 법정에선 이게 증거물로 쓰일 테죠.”
그제야 정원호 검사는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용호, 용호는 뭐라고 합니까?”
그가 간절한 눈을 띠었지만, 그 기대를 박살 내 버렸다.
“그 친구는 최초 내부 고발자입니다.”
정원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신용호에게 어떤 특혜가 주어질지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할 테니까.
지방에서나마 굳건하게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검사라는 직위가 흔들린다는 걸 깨달은 정원호는 똥줄이 타기 시작했을 터.
됐다.
이제 그의 선택지는 하나뿐.
“알죠, 당연히 용호가 이럴 리 없다는 걸. 그래서 지금 당신한테 이야기하는 겁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졌다.
“이대로 가면 당신들이 덮어쓸 수밖에 없습니다. 세 분이서 함께 증언하셔서 임성진을 주범으로 지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빠져나가실 수 있어요.”
“임성진 이 X같은 새끼…….”
그의 욕지거리가 귀를 간질였다.
이미 70% 이상 넘어왔다고 봐도 된다.
“근데 만약에라도 임성진이 재기한다면…….”
걱정하는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선택하세요. 본인을 무인도에 버려두고 도망간 해적선을 기다리다가 굶어 죽을지, 아니면 그 해적선을 침몰시키는 정의로운 군함에 탑승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경제범죄조사부의 뇌물 수수 혐의를 뒤집어쓰고 쫓겨날 테니까.
“……젠장, 증언하겠습니다.”
***
한희주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본인이 살아남을 것 같자 증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가, 위협이 되니 곧바로 우리 쪽으로 붙는 간사한 태도.
임성진 라인 출신이라기에 아주 적합한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초기엔 임성진 부장검사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악했지만, 워낙 준비한 자료가 많아서 이제는 윗선에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경제범죄조사부 중 책임을 몰아줄 일부를 찾는 정황이 펼쳐졌다.
그러나 임성진에겐 이 모든 걸 책임질 충직한 부하가 없었는지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채 1차 출석요구일이 찾아왔다.
해당 부서의 평검사들은 대부분 출석했지만, 가장 핵심인 임성진과 그의 오른팔인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1차 출석요구에도 안 왔어?”
김석원 차장검사는 기가 찬 듯 물었다.
“예. 중앙지검에 알아보니, 딱 당일에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병가를 냈다고 합니다. 임성진은 월차를 냈고요.”
“이 새끼들, 서로 미루고 있는 거 아니야? 네가 죽을지, 내가 죽을지.”
“그런 것 같습니다.”
박승수 부부장검사는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왜 언플로 빠져나가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대중과 언론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 있어서 스무스하게 빠져나가지도 못하잖습니까?”
“그것만 아니었어도 검사장이 힘썼을 거야. 궁지에 몰려서 생각이 짧았던 거지. 그래서 그런지 검사장이나 위쪽에서 아무런 압력도 없더라고. 아마 지금 임성진도 버려졌을 거야.”
버려졌다라.
그러면 임성진의 목숨도 여기서 끝이려나.
그러나 문자로 보았던 미래의 그 인터넷 기사가 못내 마음에 걸린 탓에 김석원에게 물었다.
“현재 증거로 조원형 부부장검사가 책임지면 임성진은 살아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명확하게 임성진을 향한 증거는 없으니까. 기껏해야 지방 좌천 검사들의 증언 정도인데, 물적증거가 없으니까 그걸로 옷 벗기기는 힘들지.”
“그러면 임성진은 살아남더라도 생명이 끝난 거라고 봐도 됩니까?”
“그건 아닐 거야. 이쪽 바닥 사람들이 워낙 영악하잖아. 죽으면 버려지더라도 살아남으면 내 새끼, 우리 편 하면서 다시 끌어오는 거지. 아마 검사장도 이렇게 모른 척하다가도, 임성진이 잘려 나가지만 않으면 다시 품에 안을걸.”
임성진 입장에서도, 검사장 라인이 아니라면 살아날 수가 없을 테니 원망스럽더라도 그에게 갈 테고.
참으로 잔혹한 세계다.
그때, 박승수 부부장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대로 협의가 되지 않고 진행되면 둘 다 죽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일단 조원형은 확정적으로 잘릴 거야. 그런데 아무리 내친 자식이라고 해도 검사장이 임성진 죽는 꼴까지 보고 싶진 않을 테니까 막판에 힘을 써서 그 녀석은 좌천 정도나 되겠지.”
나머지 검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건이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옷을 벗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버티다가 잘리면, 나중에 변호사 간판 달기도 힘들어질 테니까.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에 사표를 낸다면, 대형 로펌은 아니더라도 검사 출신이라는 걸 살려서 보통 로펌엔 취직할 수 있을 터.
비리를 해 먹고 옷을 벗어도 억대 연봉이라.
검사, 참 더럽게도 좋은 직업이다.
***
“자네가 보기엔 지금 상황이 어떤 것 같아?”
임성진은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근심이 드리워진 얼굴로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적당히 덮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조 부부장,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임성진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 침묵했다.
그것도 잠시, 임성진이 이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조 부부장. 아니, 원형아.”
처음이었다.
그렇게 냉정하던 임성진이 자신을 조 검사나 조 부부장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 건, 그를 만난 지 7년 만에 처음.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
임성진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네가 지고 가라.”
“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다.
그의 옆에서 개처럼 일하며 버텼는데 결국 팽을 당하다니.
그러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임성진이 결정타를 날렸다.
“제수씨랑 수정이는 내가 잘 보살펴 줄게.”
조원형이 이를 악물었다.
이건 지방으로 쫓겨 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지고 삶을 떠나라는 뜻.
“네가 책임지고 가면 여기서 끝날 수 있어. 그런데 살려고 하잖아? 네 밑에 있는 애들 다 죽는 것도 모자라서 나도 죽어. 거기서 끝이겠어? 아니야. 검사장님한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다니까. 잘못하다가 의원님한테까지 닿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돼.”
“부장님, 하지만 아빠 없이 애가 살아간다는 건…….”
조원형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와이프도 힘들지만, 아이한테 정말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거절을 하기 무섭게.
“조원형.”
조금 전과 달리 급속도로 차가워진 임성진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아빠가 감방에서 사는 꼴 보여 주고 싶어?”
“…….”
“때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조원형은 주먹을 꾹 쥔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임성진은 다시금 온화한 목소리로 그를 흔들었다.
“수정이는 내가 대학까지 책임지고 보내 줄게. 양육비도 충분히 보태 줄 거고…… 아니,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줄게. 아버지 노릇은 내가 대신해 줄 수 있어. 수정이 지금 백혈병 때문에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며. 이번 건 처리되면 특급 병원에서 VIP 대우받으면서 치료받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부장님.”
그는 눈시울이 한껏 붉어진 채 얼굴을 들었다.
“저 하나 믿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집사람은 제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대로는 설득이 먹히지 않겠다 싶었는지 임성진은 살벌해진 목소리를 냈다.
“자네 와이프 공소시효 아직 남아 있는 거 알지?”
그 한마디에 조원형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다 같이 피 보지 말자. 너 하나면 돼. 깔끔하게 다 정리할 수 있어.”
조원형은 차마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와이프가 자신을 만나기 전에 저지른 실수로 인한 죄목을 임성진이 덮어 준 전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부부장검사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터지더라도 집행유예.
그러나 이번 건으로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 터진다면 최소 징역이다.
아무리 지키고 싶다고 한들, 와이프와 딸자식에게 피해가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딸내미한테 부모가 나란히 징역 사는 걸 보여 주려고 그래? 하나라도 살아야지.”
걱정을 가장한 협박에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가 책임지면 집사람은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건들다니. 오히려 내가 지켜 줄게. 그건 확실히 약속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임성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수정이도 엄마, 아빠가 둘 다 범죄 이력이 있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좋을 거야.”
조원형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너무나도 큰 힘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
“마음 정리 잘하고 빠른 시일 내에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