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판 (1)
“이런 개X발 X같은 새끼야!”
임성진 부장검사가 집어 던진 의자가 거울을 산산조각 내며 떨어졌다.
“뭐, 내부 고발자? 내부 고발자는, 썅!”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그래서 내가 신용호 그 새끼 관리 잘하라고 했지!”
임성진의 구두 앞코가 조원형 부부장검사의 정강이에 작렬했다.
퍽 소리와 함께 조원형은 깽깽이걸음을 하다가 고통을 참으며 어정쩡한 자세로 섰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든…….”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임성진의 윽박과 함께 다시 한번 구타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조원형 부부장검사는 결국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그럼에도 임성진은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에 있던 서류를 쓸어 던졌다.
젠장!
제대로 당했다.
다른 녀석들처럼 신용호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던 게 문제였다.
아무리 돈도 백도 없는 녀석이라지만, 이렇게 같이 죽자고 달려들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걱정했던 그림을 뛰어넘어 서울고검의 차장검사와 손을 잡을 줄이야.
김석원.
임성진의 손이 닿지 않는 몇 안 되는 고위급 검사다.
게다가 몇 달 뒤에 고검장 인사가 열리는 만큼, 실적 때문에라도 죽을힘을 다해서 자신을 잡으려 들 터.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했다.
지금이야 김석원이 마수를 뻗으며 자연스레 그의 부하 검사들을 통해 경제범죄조사부를 치려고 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자신의 귀에 들어왔지만, 김석원 또한 이 상황을 예상했을 것이다.
분명 완벽한 그림을 그려 놓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 터.
물귀신 새끼 한 마리가 죽자고 덤벼든다고 해서 말려들 수는 없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수장되고 말 테니까.
“부부장.”
“예, 부장님.”
“그 새끼가 직접 차장검사를 찾아가진 않았을 거 아니야?”
“알아보니 신용호, 광주지검 최서준, 감찰부의 송현성 세 명이 대학 동기라고 합니다. 신용호와 최서준이 송현성 타고 올라가서 차장검사에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
“젠장! 백성탁 부장은 뭐 하길래 이런 피라미 새끼도 자르지 못한 거야?”
감찰부의 백성탁 부장.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백성탁 부장이 그의 선에서 잘라 낸 덕분에 좌천된 녀석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를 넘어서 바로 김석원에게 보고가 된 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거기 박승수 부부장이 김석원 라인이다 보니…….”
“내가 몰라서 물어? 나도 알아, 이 새끼야!”
임성진의 명패가 공중을 날아 부부장검사의 머리통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란 조원형은 겨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서류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서류보다는 언플을 먼저 해서 주도권을 잡아야 해. 고검장이 따로 힘쓰지 않는 한, 영장은 오늘 내에 발부되기 힘들 거야.”
임성진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최 기자 연락해 봐. 여기서 까딱하면 우리 전부 옷 벗는 거야.”
“알겠습니다.”
***
오전부터 분주하게 시작된 경제범죄조사부 검거 작전은 점심까지 거르며 급하게 진행되었다.
지금쯤이면 분명 녀석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을 터. 영장 발부가 되기 전까지 분명 무언가를 하려 할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김석원 차장검사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받고 있을 때,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차장님, 급한 일입니다!”
“들어와.”
송현성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다급하게 말했다.
“TV 보셨습니까?”
“TV는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임성진이…….”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맞은편에 있던 박승수가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켰고, 화면 상단에서는 ‘긴급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임성진의 얼굴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소리 키워 봐.”
-……하던 중 제 부하 검사 중 일부가 심각한 비리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게는 가족만큼 소중했던 후배 검사들이었기에 오래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를 구축해 내기 위해 검사가 된 만큼, 이를 밝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만들게 된 건 모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저를 욕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책임을 지고 정의를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면의 밑에는 ‘스타 검사 임성진, 부하 검사들의 비리 들춰내 수사 시작’이라는 문구가 박혔다.
-처음엔 좌천시키는 것으로 끝내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검찰에서의 봐주기 수사와 감싸는 것 또한 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국민 여러분의 앞에서 성실하게 조사할 것을 말씀드리며…….
“이런 미친 새끼.”
박승수 부부장검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영장을 신청하면서 자연스레 임성진의 귀에도 들어갈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상상 그 이상의 행동력과 머리, 결단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녀석.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예상 범위 안에 있던 일.
분명 언플을 통해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그 시기가 너무나도 이른 게 문제가 되었을 뿐.
“아무리 검사장이 뒤를 봐준다고 해도 저건 너무 간 거 아닙니까?”
김석원 차장검사는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저건 저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이겠다는 거거든.”
TV 화면 속의 임성진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현재 지방으로 좌천된 세 명의 검사들은 정원호, 한희주, 신용호 총 세 명으로 뇌물 수수,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사문서 위조, 제3자 뇌물 수수 등의 복합적인 비리를 한 것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범죄 행각이 더 있을 거라고 예상하며 추가적인 공범자 또한…….
심지어 신용호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그와 함께 거론된 나머지 두 명도 모두 경제범죄조사부에서 좌천된 검사들.
꼬리 자르기로 이미 쳐냈던 검사들에게 책임을 미루려고 한다.
양아치라는 건 알았지만, 저 정도면 양아치를 넘어서 사기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지금 당장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몸을 사리겠지만, 신용호의 이름이 언급된 걸로 봐서는 이미 나와 송현성의 협업 또한 파악했을 터.
살아남으면 분명 우리에게 보복하려 들 것이다.
이미 판은 벌어졌다. 이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임성진을 쓰러뜨려야 한다.
“박 부부장.”
“예, 차장님.”
“영장 발부 얼마나 남았어? 오늘 고검장님께서 직접 김 판사한테 연락해서 무조건 오늘 내에 발부해 주기로 했는데.”
때마침 박승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전화의 발신인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석원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박승수가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몇 번 대답을 하던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김석원을 향해 준비되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막 영장 발부되었답니다. 바로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
김석원 차장을 제외하고 감찰부 검사들과 함께 곧장 경제범죄조사부로 쳐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등검찰청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만큼 영장이 나오자마자 갈 수 있었기에 그들도 크게 대비를 하지 못한 상태.
당연히 오늘 안에 영장이 발부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인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세단기의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지고 각종 서류들이 이곳저곳에 퍼지거나 공중에 휘날리고 있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 언론 플레이부터 실천하느라 제대로 서류 처리를 끝내지 못한 모양.
그게 네놈들의 첫 번째 패착이 될 거다.
감찰부의 백성탁 부장은 압수수색영장을 보여 주며 경제범죄조사부 사람들을 향해 설명했다.
“현 시간부로 경제범죄조사부는 뇌물 수수를 포함한 총 다섯 가지 항목에 의해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되어…….”
대놓고 같은 라인이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설명을 읽었지만, 상황을 정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경제범죄조사부 직원들이 정리를 채 마치기도 전에 감찰부 검사들이 압수 수색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 또한 압수 수색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내 소속은 광주지검. 여기에서 나설 수는 없기에 뒤로 물러나 내부를 조망하고 있었다.
임성진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 백성탁 부장에게 다가갔다.
“백 부장님, 어떻게 영장이 이렇게 빨리 나오는 겁니까?”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다고 낮췄지만, 워낙 분을 삭이지 못한 탓에 톤이 올라갔는지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나에게까지 들렸다.
“오늘 오전에 알려 주신 거잖습니까?”
이를 악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당장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기수로는 임성진이 후배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올 정도면 그의 힘이 상당하다는 것일 터.
그러나 감찰부의 눈이 이렇게나 많은 상황에서 백성탁 부장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는지 말을 대신해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때문에 이 사달이 벌어졌다고 일러 주는 모양새.
“못 보던 얼굴이네.”
임성진은 살벌하게 말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업무 지원차 나왔습니다.”
“광주에서 친히 서울까지요, 용호 친구라고 들었는데.”
“처음 뵙는데 알고 계시네요.”
약을 올리려고 방긋 웃어 보이자, 그는 표정 관리가 힘든지 주먹을 꽉 쥐고는 나직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그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도 뻔한 술수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곧장 임성진의 뒤를 따라가서 그가 들고 있던 가방을 잡았다.
“가방은 두고 가셔야죠? 아까 압수수색영장 읽었는데 못 들으셨나?”
삼류 범죄자들이나 쓸 법한 수를 쓰려고 하다니.
정신을 딴 데 팔게 해 두고 정작 본인에게 중요한 이 서류 가방을 빼내려고 하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트릭.
언플 하는 머리는 잘 돌아가면서도 다급한 상황에선 이런 기본적인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양.
순간, 임성진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놔.”
“못 놓겠는데요.”
나와 임성진이 부딪쳤다는 사실에 감찰부 검사들과 경제범죄조사부 직원들의 이목이 쏠렸다.
“부장검사님이 모르실까 봐 설명해 드리자면, 압수수색영장이라는 건 이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걸 압수 수색할 권리를 가지는 겁니다.”
함부로 가방을 빼내면 그것 또한 위법 사항이 된다.
이렇게 많은 시선이 주목하면 모두가 증인이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임성진은 나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가방은 옆에 있는 인권명예보호전담부 친구 건데, 오전에 왔다가 깜빡하고 두고 간 겁니다. 저희 쪽 물건이 아니라서 돌려주는 거라고요. 그리고…….”
그는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당겼다.
“너 같은 하바리가 끼어들 주제가 아니야. 당신 감찰부 아니잖아?”
살벌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임성진이 잡아당긴 가방은 그에게 가지 못했다. 이럴 줄 알고 가방을 강하게 잡고 있었으니까.
“그 친구분 것이라면 경제범죄조사부 물품이 아니네요. 그러면 감찰부 소속이 아닌 제가 만져도 된다는 거겠죠?”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잡고 있던 가방을 세게 잡아당기자, 결국 손잡이가 뜯기며 서류가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어릴 때 유도를 배운 덕분에 강해진 아귀힘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아, 가방 찢어진 건 배상하겠습니다.”
쓰러진 서류 더미를 보며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이게 경제범죄조사부의 문서가 아니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