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6화 (6/341)

내부 고발자 (4)

“그게 대체 누군데?”

송현성이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하면 나도 위험해서 말은 못 하지.”

“이거 까서 조지려는 거 아니었어?”

“그럴 거긴 한데.”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나도 안전장치라는 걸 해야 될 거 아니냐. 이 사람이 커넥션이 대단하거든. 잘못하다가 그쪽 귀에 들어가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나는 믿어도 되지만…… 하긴, 내 윗대가리들은 나도 믿기가 힘들다. 아무리 감찰부라도 내 상사들 속은 모르겠더라. 속에 구렁이를 몇 마리씩 키우는 건지, 원.”

송현성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문자에서 송현성을 알려 준 걸 생각하면, 그는 믿어도 되는 인물일 터.

그러나 내 패를 다 깔 수 있을 정도로 그 문자를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이거 너 혼자 까기는 힘들잖아.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 있다면서.”

“그렇지. 혼자 까기는 힘들어서 너한테 온 거지.”

송현성에게 온 목적을 말했다.

“감찰부 쪽 사람들을 모아 줘.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만. 그리고 부장검사를 밟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내가 직접 브리핑을 할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잠깐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인원들 정리가 된 모양.

“알았다.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대신에 너, 그 증거 확실한 거여야 돼.”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

“너 괜찮겠냐?”

“뭐가?”

“이거 밝혀지면 너도 감방 가야 돼.”

거사를 앞두니 괜히 신용호가 걱정스러워졌다.

이 건이 터지면, 신용호가 실형을 받는 건 피하기가 힘들 테니까.

“가기 전에 죽을 거야.”

“미친놈아,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눈을 부라리며 말했지만, 신용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장난이야, 인마.”

그의 말이 장난 같지 않은 건 정말 기분 탓일까.

“죽지 마라. 너 죽을 것 같으면 나 여기서 손 뗄 거야.”

“안 죽어, 인마. 넌 내가 자살이나 할 것처럼 보이냐?”

신용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얼굴에선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그가 술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이걸로 임성진 잡을 수 있을까?”

“잡아야지. 이 정도 증거면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어.”

“하하하, 그렇지?”

“그래, 인마.”

축 처진 신용호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

괜히 짜증이 나서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어깨 펴, 새끼야. 형이 다 해 준다고. 형만 믿어.”

그제야 그는 실실 웃으며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폈다.

“그래, 고맙다.”

“아무리 네가 엮여 있더라도 내부 고발자잖아. 너 아니었으면 터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묻힐 건이야. 네 형량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이야기해 볼게. 아니, 그렇게 만들게.”

“한국에서 형량 거래 불법이거든?”

“그래서 형량 거래 안 되는 거 본 적 있냐?”

“……그렇긴 하지.”

그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나 들어가면 영치금이나 빵빵하게 넣어 줘라.”

“슬기롭게 감방 생활 할 수 있을 만큼 넣어 줄게, 이 자식아.”

***

송현성에게 연락이 왔다.

보안을 철저하게 해서, 감찰부 핵심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물론,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이 나인 것도 비밀로 한 상태라 다른 이들은 송현성이 직접 브리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상태.

개중에 임성진과의 커넥션이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믿는 수밖에 없다.

만약 임성진에게 소식이 들어갈 경우엔 최후의 보루로 신용호가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경우에 둬야 하는 수다.

임성진의 영향력이 송현성이 선택한 사람들에게까지 닿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머지않아 사건이 제대로 시작되면 서울로 올라오게 될 테지만, 신용호는 일단 그대로 지방에 있기로 했다.

판이 완성되어야 등장하는 우리의 카드.

물론, 사건이 터지면 임성진 라인은 곧바로 신용호가 엮여 있는 걸 알아챌 테지만, 그땐 이미 늦었을 테니까.

-잘하고 와라.

“그래, 걱정 말고 쉬고 있어.”

약속 시간에 맞춰 검찰청에 도착하자, 송현성이 나를 반겼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 오래 걸렸지?”

“KTX 타면 금방이야. 고생은 네가 했지.”

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워낙 사건이 사건인 만큼, 많은 사람을 모으진 않았어. 이렇게 스케일 큰 건에 괜히 많이 꼬이면 내부에서 정보가 빠져나가거든.”

역시 현명하다.

“그래서 누구누구 오기로 했는데?”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설명을 시작했다.

“차장검사는 김석원. 몇 번 들어 봤지?”

“그 차문석 게이트 사건?”

“알고 있네.”

2000년대 초반, 국무총리 차문석으로부터 이어진 정경 유착의 진한 고리를 끊으며 단번에 유명 인사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 바로 김석원 차장검사였다.

서울고검의 차장검사. 그것도 모자라 예비 고검장 후보로 유력하게 꼽히고 있는 인물.

검사계에서 그를 모른다면 간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검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승승장구의 표본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는 톱클래스 검사.

“고검장 후보라고 들었는데.”

“맞아. 현 고검장님이 올해 말에 정년이셔서 슬슬 인사 시즌이잖아. 그래서 차장검사님께서 큰 건에 집착하고 계시거든. 진짜 내가 다른 사람 몰래 이분 모셔 오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대단하다. 어떻게 예비 고검장님이나 되는 인물을 끌어와?”

“이 사람 덕분이지.”

그는 조직도에 있는 박승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감찰부 부부장검사야. 내 직속 상사. 이 사람이 김석원 라인이거든.”

“박승수 통해서 차장검사님한테 연결됐구나.”

“맞아. 이분도 몇 건만 더 터뜨리면 부장검사 달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이번 건 터뜨리면 나도 박승수 눈에 들어서 김석원 라인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나도 떡고물 좀 받아먹어 보려고.”

송현성이 괘씸하냐고?

아니, 오히려 안심된다.

혼자 사건을 집어삼키려다가 탈이 나는 녀석들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자신도 필요한 게 있기 때문에 이 건을 더욱 성공시키려는 마음을 먹을 터. 그렇기에 연대가 더욱 확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심을 품지 않고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녀석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이 바닥은 저마다 필요하고 득이 될 게 있어야만 움직이는 곳이니까.

“두 명이 다야?”

“응. 네가 들고 있는 증거만 있으면 차장님께서 움직이실 거야. 그러면 밑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따라올 거고.”

똑똑.

노크 소리에 대답하자마자 송현성의 부하 직원 하나가 들어왔다.

“검사님, 말씀하셨던 회의 시간 10분 전입니다.”

“아, 고마워요, 지연 씨.”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고, 우리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래.”

***

브리핑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송현성이 김석원 차장검사와 박승수 부부장검사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최서준입니다.”

살갑게 웃어 줄 법도 하지만, 김석원은 완전한 무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저 한마디의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도 이미 압도당하고 있는 느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괜히 고검장 후보까지 올라간 인물이 아니다.

험악한 얼굴도 아닌데 분위기로만 이렇게 사람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향했고 뒤를 이어 박승수와 인사했다.

“광주지검의 최서준입니다.”

“박승수일세.”

그는 까칠한 표정으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오랜만에 떨린다. 몇 년 만에 느껴 보는 긴장감.

후우.

진정하자.

잘할 수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브리핑을 시작하려는 찰나, 김석원이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차장검사 인사에 올라가 있는 녀석이라고?”

“맞습니다.”

다시 한번 문이 닫혀 있는 걸 확인하자, 송현성이 센스 있게 블라인드까지 내려 주었다.

화면에 준비한 사진을 띄우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제범죄조사부 임성진 부장검사입니다.”

탐스러운 먹잇감을 포착한 김석원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간단히 정리한 항목은…….”

파워포인트로 정리한 내용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뇌물 수수, 성 상납, 부정 청탁, 봐주기 수사 등이며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면 손가락으로 세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송현성이 내가 준비해 온 자료의 사본을 김석원과 박승수에게 건넸다.

그들이 자료를 읽을 시간을 기다렸다.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에 박승수는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김석원은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료를 읽어 나갔다.

이전에 건넸던 조각조각 찢어진 정보가 아닌, 완벽하게 구성된 증거자료를 처음으로 접하는 송현성은 놀라움에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김석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내 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입꼬리가 비틀어져 만들어진 옅은 미소 밖으로 탐욕스럽게 튀어나온 혀가 입술을 핥았다.

마치 사나운 맹수가 먹잇감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느낌.

됐다.

그의 욕심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던 모양.

“이렇게까지 완벽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김석원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내부 고발자야?”

역시 김석원이다.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을 해 버리다니.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는 피식 웃으며 책상에 자료를 내려놓았다.

“우리 검찰에 이런 더러운 인간이 존재하면 어떻게 되겠어?”

대답을 요구하는 건가?

그건 아닐 터.

묵묵히 기다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까지 이런 더러운 쓰레기로 취급받는 거야. 검찰 망신을 시키는 새끼들은 아주…….”

김석원은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박살을 내 버려야지.”

마지막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젠장, 쫄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박 부부장, 다 읽었지?”

“예, 다 읽었습니다.”

김석원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브리핑 계속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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