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5화 (5/341)

내부 고발자 (3)

보름간 신용호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결과,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감찰부로 결정되었다.

그게 제일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다만, 다른 이가 공을 가로채거나 임성진에게 정보가 새지 않도록, 확실한 장치가 필요했다.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방법과 그 이후의 절차를 어떻게 밟느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

어떤 방법이 제일 안전할까.

감찰부에서 누구를 골라야 믿을 수 있을까.

사무실에 앉아 홀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지잉지잉.

짧게 두 번. 문자가 도착할 때 울리는 특유의 진동이다.

-보낸 이 : 29

-사진

한동안 잠잠하나 했더니,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라니.

곧바로 사진을 확대하자, 두 명의 남자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 맞은편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남자는 송현성.

나와 함께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다녔던 대학 동기 녀석이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일까 생각해 봤지만, 사진 속 내 얼굴만 봐도 지금으로부터 1년 내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송현성과는 졸업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사법 고시에 패스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게 전부.

대학교 때는 꽤나 친하게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멀어진 사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진은 실제로 찍은 사진이 절대 아니라는 것.

찍은 이는 없지만, 내가 볼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걸까.

대체 정체가 뭐지?

지금까지 수신된 일련의 문자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내게 해답과 미래를 알려 주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평소에 귀신은커녕, 미신도 잘 믿지 않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

미치겠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잠깐만, 설마 이것도 나한테만 보이는 건가?

“수사관님.”

“네?”

서류를 들여다보던 수사관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고, 나는 사진을 화면에 그대로 띄워 둔 채로 그에게 돌려서 보여 주었다.

“혹시 이거 보이세요?”

그는 씨익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에이, 제가 못 알아볼 것 같아요?”

뭐야, 사진 속의 나를 알아본 건가?

설마 용호가 내게 장난을 쳤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대체 왜?

그러나 수사관의 입에서는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한지유잖아요.”

응?

“제가 비록 머리는 벗겨졌지만, 아직 신세대입니다. 연예인은 빠삭해요.”

“한지유 씨요?”

“네. 바탕 화면에 있는 한지유 씨 말하는 거 아니에요?”

아, 젠장.

내 휴대폰 바탕 화면이 한지유였구나.

놀라라. 사진을 본 줄 알았네.

혹시나 해서 휴대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지만, 여전히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역시 못 보는구나.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직접 들고 그에게 다가가 동시에 화면을 보며 물었다.

“이게 한지유로 보인다는 거죠?”

내 눈엔 여전히 나와 송현성이 악수하는 사진만 보이는 상태.

수사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네. 혹시 한지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에요? 완전 닮았는데.”

“맞아요.”

“하하하, 혹시나 틀렸을 줄 알고 걱정했네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좋죠.”

수사관이 타 준 커피를 들고 건물 밖에 나가 홀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가 내게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신이라면 모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와요’라고 검색을 해 보았으나, 스팸 차단을 하라는 답변을 보고 바로 인터넷 창을 종료했다.

이런 게 다른 사람한테 일어날 리가 없지.

정말 이 문자들이 내게 미래에 발생될 일을 보여 주거나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는 걸까?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젠장.

송현성.

사진에 등장한 송현성을 한번 만나 봐야 되는 걸까.

선택지가 없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짱구만 굴리는 것보다는 직접 움직이는 게 더 나을 테니까.

휴대폰 연락처를 뒤져 송현성의 휴대폰 번호를 발견했다.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서준이, 무슨 일이냐?

오랜만에 듣는 송현성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무슨 일 있어야 전화 걸겠냐. 잘 지내지?”

-그럼. 너도 사시 패스하고 검사 됐다는 소식은 들었다. 요즘 어디서 근무하냐?

“나 광주지검에 있어. 너는 어디서 근무해?”

-나는 서울에 있지. 서울고검.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서울고검이라니.

설마.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울고검. 좋은 곳 갔네. 혹시 어떤 부서에 있냐?”

-너 들으면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감찰부에 있어. 재작년까지 부산에 있다가 올해 올라왔다.

미친.

정말 감찰부라고?

분명 문자를 받기 직전에 감찰부와 관련해서 어떻게 판을 짜야 할까 고민했던 것 같은데.

심지어 내 생각까지 읽는 걸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감찰부, 출세했네. 축하한다.”

-고맙다. 한번 올라와라.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너 오늘 시간 되냐?”

-어?

“오늘 올라갈게. 한번 보자.”

-미친놈, 예나 지금이나 성격 한번 화끈하네.

“시간 돼, 안 돼?”

-돼, 인마. 근데 오늘 너 근무 안 하냐? 나 지금 사무실에 있는데.

“대충 외근으로 비벼 놓으면 되지. 지금 바로 출발할게. 이따 보자. 문자로 주소 찍어 놔.”

-야, 너 지금 광주 아니었…….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곧장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바로 자리로 돌아가 외투를 챙겨 입자, 수사관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검사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저 오늘 외근 있어요. 아마 내일도 외근일 겁니다.”

“예?”

“외근 처리 좀 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고생하세요.”

수사관에게 부탁을 하고 곧장 밖으로 나와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

***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도 여전히 머릿속엔 문자가 떠올랐다.

대체 이 문자의 정체는 어떤 것이고 어째서 이런 문자가 내게 전송되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초자연적인 일이라는 것 외에 생각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래, 이건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는 사실이다.

아니, 생각해도 알 수 없을 테니 고민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문자가 왔을 때 그걸 활용하는 게 전부.

다만, 완전히 신뢰하지는 말자.

아직까지는 믿을 수가 없으니까.

완벽하게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송현성이 문자로 찍어 준 사무실에 들어가자, 서류를 깔아 놓고 한창 작업 중이던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보는데도 불구하고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송현성!”

그도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그가 손을 내밀기에 자연스레 악수를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잠깐만, 저 넥타이.

송현성이 차고 있는 초록색 넥타이에 빨간 자국이 묻어 있는 모습은 문자에서도 본 그대로였다.

“잘 지냈어.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거야?”

“이야기하자면 길어.”

혹시나 원래 저런 자국이 있던 것일까 싶어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너 넥타이에 뭐가 묻었네.”

“아, 이거, 점심에 짬뽕 먹다가 흘렸어.”

그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었다.

“이거 명품인데…… 쩝, 드라이 맡겨야 될 것 같아.”

원래 있는 얼룩도 아니고 오늘 만들어진 자국이다.

드라이까지 맡긴다면, 이 자국은 오직 오늘만 있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터.

이런 미친.

말 그대로 세상이 미친 게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최대한 놀라움을 속으로 삼키며 시선을 돌리자,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사건이야?”

“아, 남부지검에 어떤 부부장검사 하나가 스폰서 달고 있는 것 같아서.”

“스폰서면 돈? 아니면 여자?”

“보통은 돈이지. 너 재형그룹 알지? 거기서 이번에 중국 철강 건 따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그룹이 입찰 못 하게 했나 봐. 재무 조사로 멱살 잡았다가 뒷돈 챙겨 주니까 손잡은 거지.”

“많이 받아먹었나 보다. 조만간 옷 벗겠는데?”

“옷 벗는 것도 모자라 형사재판까지 하게 될걸. 안 그래도 요즘 뇌물 때문에 시국이 민감하잖아.”

“그렇지. 거기 부장검사가 난리 부리지 않던? 평검사도 아니고 부부장검사라면 많이 화났을 것 같은데.”

“부부장검사 새끼가 부서 쪽팔리게 만드는 데 1등 공신이 됐다고, 부장검사가 대로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실무관 하나가 차를 가져왔고, 우리는 소파에 앉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최서준은 갑자기 이렇게 놀러 오는 스타일이 아닌데.”

송현성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

“유리 블라인드 쳐 줘.”

“하여간 더럽게 꼼꼼해요.”

그는 불평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사무실에 있는 다른 이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 승진하고 싶냐?”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

송현성은 말을 하다가 멈추고 입꼬리를 비틀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큰 거 물었구나.”

“하여간 눈치가 빨라서 이야기하기는 좋다니까.”

정장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임성진의 비리 증거 사본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당연히 범인이 누군지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은 제거된 상태.

그는 빠르게 눈을 굴리며 내용을 확인한 뒤,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지었다.

“많이도 해 처먹었네. 이 정도면 지금까지 탈이 안 난 게 더 대단하다, 야.”

송현성은 사본을 내게 돌려주며 물었다.

“누군데?”

“누구라고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사본 중에 혹시나 빠진 게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 품에 넣었다.

“높은 사람이야.”

“어느 정도로 높은 사람인지 알아야지.”

“요즘 차장검사 인사 시즌이더라.”

씨익 웃자, 그는 놀란 눈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미친…… 진짜로?”

“어. 그중에 한 명이야.”

“부장검사에 그 정도 비리면…… 걔만 죽는 게 아니라, 부서 하나가 박살 날 것 같은데?”

“완전히 박살이지. 밑에 있는 부부장검사랑 평검사도 싹 칠 수 있을걸.”

“그게 대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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