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자 (2)
“문자? 무슨 문자? 지금 바탕 화면밖에 안 보이는데.”
터치를 잘못해서 밖으로 나와졌나 싶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지만, 화면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 봐 봐. 심각해.”
휴대폰에서는 정재원과 임성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용호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뭘 보라는 거야?”
그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었다.
결코 문제가 있는 얼굴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안 보인다고?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봤지만, 여전히 동영상의 소리가 들리며 화면 또한 아까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소리를 최대한으로 켜도 신용호의 반응은 마찬가지.
뭔가 이상한데.
“내가 너한테 보내 볼게.”
동영상을 저장하고 문자메시지 화면까지 캡처한 뒤에 그에게 전송하기 위해 갤러리에 들어갔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저장했던 동영상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클릭해서 저장 버튼을 눌렀지만, 갤러리에서 그 동영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방금 전에 캡처한 사진은 어플리케이션이 몇 개 떠 있는 바탕 화면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대체 이게 무슨…….”
당황을 금치 못하고 곧바로 문자메시지 함과 통신 기록을 확인했지만, 문자가 왔던 내역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저번부터 내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누구인지 전혀 예측이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온갖 고민이 머리를 뒤덮는 틈새로 신용호의 목소리가 파고들어 왔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좀 쉴래?”
“방금 분명히 내 두 눈으로 문자를…….”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
“같이 갈까?”
“괜찮아. 혹시나 정재원 교수님한테는 연락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래.”
홀로 옥상에 나와 담뱃불을 붙이며 생각에 잠겼다.
저번과 똑같은 상황.
그때도 분명 문자가 왔는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는 신용호에게 보이지도 않으니 더 심각한 상태.
악성 어플리케이션이나 해킹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거라면 내겐 보이고 신용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요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느라 너무 지친 건가? 그래서 환각을 보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이렇게 근무한 짬이 얼마인데 갑자기 이럴 리가 없잖아.
급작스럽게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기엔, 특정한 문자에만 한정되어 있을 리가 없을 터.
저장도 안 되고, 캡처도 불가능하며, 다른 사람은 볼 수조차 없다.
오직 내 눈에만 똑똑히 보인다.
설마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려 주는 건가?
아니,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나 저번에는 분명 신용호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것은 물론,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을 테지.
대체 정체가 뭐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이건 도저히 상식으로는, 내 머리로는 판단이 불가능할 것 같다.
내려놓자.
일단 이 사항은 제쳐 두고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지금 생각해 봤자 제대로 된 사고 자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문자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영상에 나왔던 기사와 둘이 나누었던 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임성진은 자신의 비리를 모두 신용호에게 뒤집어씌워 버린 것이다.
임성진에게 우리가 공격할 거란 정보를 전달한 건 아마도 정재원 교수.
대체 왜?
그 정의감 있는 교수가 갑자기?
아니다.
학생들 앞에서 보여 준 모습은 그저 보여 주기 식일 뿐, 내면은 달랐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카드 키를 받아 들 때 정재원의 그 음흉한 표정은 다시 떠올려도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으니까.
영상 속 모습이 그가 숨기고 있던 본모습일까?
모르겠다.
사적으로 그를 만나 본 적이라고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만났을 때가 전부였으니까.
만약 그 동영상이 사실이라면, 정재원 교수는 왜 임성진에게 정보를 흘렸을까.
얼마 생각하지 않아 그에 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임성진은 학교 선배라는 끈을 들먹여 광주시장 비리 건을 묻고, 신용호를 자신의 라인으로 데리고 갔다.
다시 말하면, 임성진 또한 한국대학교 출신이라는 것.
동영상에서 말했던 대로 임성진 또한 정재원의 제자다.
게다가 정재원 교수가 생각하기에 우리 같은 흔하디흔한 평검사보다는 스타 검사로 활약하며 나날이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임성진을 훨씬 더 소중하게 느끼고 있을 터.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 은밀한 거래까지 있었던 것 같을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신용호라는 걸 알았을까.
아무리 내가 정재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미련한 곰탱이처럼 임성진을 치려고 한다든가, 그의 신원을 밝혔을 리가 없다.
다만, 정재원 교수가 이미 임성진과의 커넥션이 있었다면, 그가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가며 신용호를 버린 것 또한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학창 시절부터 내가 신용호와 절친인 것을 알고 있으니 정황상 파악해 임성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전달한 걸까.
그렇다면 더욱 무서운 이야기다.
임성진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커넥션을 넓혀 놓았을 수도 있다는 것.
대체 어떻게 해야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판을 짤 수 있을까.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식혀 주었지만, 그럴듯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짱구를 굴리다가 결국 답답함에 줄담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용호가 밖으로 나와 옆에 있는 난간에 기대어 섰다.
“왜 줄담배를 하고 있어?”
“방금 불 붙였다, 인마.”
“바닥에 꽁초 불씨나 끄고 거짓말해.”
“아.”
그는 피식 웃으며 저 멀리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정재원 교수님 연락처 찾았어. 일단 네 휴대폰에도 보내 놨거든.”
“그래?”
“연락해 볼까?”
안 된다.
연락하면 정말 신용호가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 문자가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정재원 교수가 임성진과 커넥션이 없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우리는 평탄하고 쉬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험하더라도 확실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갑자기? 아까는 괜찮다며.”
“생각해 봤는데 임성진도 한국대학교 출신이잖아. 아무리 정재원 교수님이라도 같은 제자니까.”
“임성진이라는 걸 밝히지 않을 건데도 문제가 되려나?”
“그분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일단 보류하자.”
“그래.”
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지.”
“고맙다. 네 일도 아닌데 이렇게 애써 주고.”
“네 일이 내 일이고 앞으로 나의 일이 될 거야. 내 친구 목 쳐서 올라가는데 대충 하면 되겠냐?”
“……고맙다.”
피식 웃으며 신용호의 등을 토닥였다.
“내려가 있어. 담배 태우고 내려갈게.”
“그래.”
그가 내려간 뒤에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며 담배를 세 개비나 더 피운 뒤에야 생각을 정리했다.
굳이 돌다리를 건널 필요는 없지만, 그 돌다리가 위험한지, 안전한지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터.
휴대폰을 꺼내 정재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수신음이 걸린 뒤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예, 정재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 최서준입니다. 08학번이고 광주지검 발령 났던…….”
-오, 서준이. 기억하지!
정재원 교수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반겼다.
-잘 살고 있나?
“예,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교수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늘 잘 지내지. 하는 일은 문제없고?
“그렇습니다. 매일같이 야근하는 것만 빼면요.”
-하하하, 우리나라 검사들이 고생이 참 많다니까.
그에게 임성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다.
언급하는 것조차도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
-자네는 아직도 광주지검에 있나?
“그렇습니다.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지방이라 시간이 잘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무리하지는 말고 몸 생각하면서 쉬엄쉬엄해. 서울 들르면 한번 놀러 오고.
“알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
다음부터가 본론이다.
“그런데요, 교수님.”
돌다리를 두드렸다.
“혹시 따님은 잘 계십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인사시켜 주시면서 법대 준비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 기억나네. 아마 면접 준비 때문에 도와줬었지?
“예, 맞습니다. 따님이 엄청 예쁘셔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고맙네. 우리 딸도 한국대학교 법대 들어와서 사법 고시 준비하고 있어. 올해가 마지막 사법 고시니까 무리하지 말고 로스쿨 준비하라고 했는데, 기어이 시험을 치려고 하더라고.
시험!
동영상에서 분명 임성진이 시험과 관련된 자료를 건넸다.
설마 그 시험이 사법 고시에 관련된 자료였던 건가.
사법 고시 시험지를 유출할 정도의 능력자였다니.
임성진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궁금한 건 많지만, 일단은 돌다리를 밟으면 침몰한다는 걸 알았기에 한발 물러서야 했다.
“아, 그렇군요. 잘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고맙네. 자네도 건강하고 잘 지내게.
“예, 꼭 찾아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정재원 교수가 듣기엔 그저 안부차 전화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많은 정보를 알아냈다.
문자에서 본 동영상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하기도 할뿐더러, 정재원 교수는 아직까지 신용호와 내가 임성진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즉, 이 문자는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협박하기 위해 보낸 게 아니라는 사실.
문자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정재원 교수가 위험인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정재원 교수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