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3화 (3/341)

내부 고발자 (1)

“끝까지 올라가서 왕이 돼라. 그게 내 마지막 부탁이다.”

왕(王).

누가 들으면 애들 장난이냐며 콧방귀나 뀔 소리지만, 신용호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임성진 잡으면 올라갈 수 있어.”

내가 결론을 내리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나뿐인 불알친구의 원을 풀어 주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언제까지고 지방에 박혀 있을 수는 없다.

진정한 권력.

그것을 맛보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폭행이나 음주 운전 같은 사건 나부랭이들을 처리해 봤자 평생 평검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올라가자.

그놈의 권력이라는 것을 나도 한번 느껴 보자, X발.

“어떻게 해야 되는데?”

***

뇌물은 기본이고 봐주기 수사에 성 상납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쓰레기 짓이 넘쳐 났다.

말 그대로 온갖 범죄란 범죄는 다 일삼는 녀석들이 바로 임성진 라인이었다.

씁쓸한 말이지만, 신용호 또한 그러한 것을 모두 누렸고.

놀랐냐고?

전혀.

이 바닥에서는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막말로 검찰청의 수뇌부나 정계에서 한가락 하는 녀석들 중에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 녀석은 없다.

이건 내가 보증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

중요한 건 그걸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의 싸움이다.

걸리면 옷을 벗는 거고 안 걸리면 승승장구해서 소위 말하는 그들만의 세상에 올라서게 된다.

한마디로 왕이 되는 것이지.

신용호가 건넨 증거는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 그 자체.

임성진 라인은 물론, 그가 속해 있는 경제범죄조사부를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핵폭탄이었다.

순수하게 이걸 내 상사에게 넘겨서 정식 단계를 밟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면 결국 윗놈들에게 공을 빼앗기거나, 임성진 라인의 손에 들어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게 뻔하니까.

제일 중요한 건 이 정보를 어떻게 터뜨리느냐.

절차상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내가 공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이 사건의 핵심에 서야 수뇌부로 올라갈 수 있다.

완벽한 판을 깔아 놓은 뒤에 움직여야 한다.

“기자회견을 열까?”

신용호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안 돼, 인마. 보도 터지면 그 새끼들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갈 게 뻔해.”

꼬리 자르기.

부하 직원 중 하나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윗선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켜 내는 것.

“……그러네.”

그는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용호 자신이 그 꼬리 자르기로 잘려 나간 희생자였으니까.

사실, 같은 검사로서 검사를 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평검사가 저런 하이 레벨의 괴물들을 공격한다는 건 더욱더.

말 그대로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완벽한 준비를 끝낸 뒤에 덤벼야 겨우 상대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신용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릿속에는 감찰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둬. 감찰부에게 임성진이 좋은 먹잇감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감찰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곳은 정의감에 넘치는 자도 있지만, 자신의 성공에 목마른 자들이 더 많은 곳이다.

그렇기에 같은 동료를 치는 걸 자신들의 업무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니까.

만약 그들에게 이 건을 넘긴다면 분명 그들은 자신을 사건의 중심으로 몰고 가기 위해 혈안이 될 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임성진의 힘이 닿는 이에게 전달이 된다면 그건 끝이다, 끝.

만약에 감찰부와 협업을 하게 되더라도 임성진 라인을 확실하게 쳐내면서도 반드시 사건의 중심에 신용호와 내가 있을 수 있도록 완벽한 설계를 한 뒤에 행동에 옮겨야 한다.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신용호가 하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정재원 교수님한테 연락을 해 볼까?”

정재원 교수.

한국대학교에서 우리의 담당을 맡았던 교수로, 정의감이 넘치며 성공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걸어온 분이다.

4년 내내 우리의 멘토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훌륭한 분.

무엇보다 믿음직스러운 건, 우리가 아는 한에서 그 교수보다 정의로운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는 사실.

아직까지도 한국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로 재직하시는 만큼, 이런 상황에 처한 우리를 위해 정확한 판단과 조언을 해 주실지도 모른다.

“그럴까?”

“그 교수님이면 발 벗고 나서서 해답을 제시해 주실 것 같은데.”

“그래, 한번 물어보기나 하자. 괜찮다 싶으면 그렇게 진행하고 아니면 다시 고민해 보고.”

지잉지잉.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내가 교수님 번호 찾아볼게.”

“그래.”

정재원 교수의 휴대폰 번호를 찾으러 방에 들어간 그를 뒤로하고 거실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보낸 이 : 29

-동영상

또 문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문자.

의심스럽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첫 화면에 보이는 건 기사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신문 기사.

그러나 헤드라인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심각한 검사 비리, 묵히고 묵혔던 게 터졌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에 근무했던 신용호 검사(現 보성지청 소속)가 심각한 검사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용호 검사는 지역 유지 및 정계 인사에게서 뇌물 수수부터 시작해 성 상납, 봐주기 수사, 권력을 이용한 갑질 등 검사로서 해서는 안 될 권력 남용을 일삼았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검찰이 민중에게 그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신의 주머니를 불리고 있는 처참한 실태가 펼쳐진 것이다. ……(중략)…… 임성진 검사는 자신의 밑에 있었던 부하 검사의 비리를 직접 그의 손으로 밝혀내게 되어 유감이지만, 검사계의 올바른 질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대중은 그에게 경의와 박수를 보냈고, 신용호 검사는 현재 행방불명이 된 상태다.

-정치 1번지 강유원 기자

이게 무슨 소리야?

그 기사를 다 읽기 무섭게 화면이 줌아웃 되며 두 명의 남자가 앵글에 들어왔고, 방금 화면에 비쳤던 기사는 둘 중 하나가 들고 있는 신문 기사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조심해. 위험할 뻔했어.

어둡게 보이지만 둘의 얼굴은 확실히 분간할 수 있었다.

우측에 앉아 신문 기사를 들고 있는 남자는, 기사와 뉴스를 통해 몇 번이나 보았던 임성진 부장검사.

좌측에 앉은 남자는 내 기억보다 머리가 더 희끗희끗해졌지만, 정재원 교수라는 걸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둘이 어떻게 만나는 거지?

-그 녀석이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교수님께 이야기가 흘러들어 가서 선수 칠 수 있었던 게 다행입니다.

정재원 교수는 입꼬리를 비틀며 대답했다.

-자네는 내가 키운 제자들 중에 가장 뛰어나고 제일 성공한 제자야.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면 안 되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돕고 살아야지. 미꾸라지 새끼 한 마리가 설친다고 우리까지 흙탕물을 덮어쓸 수는 없잖아?

-맞습니다. 암만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들,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임성진은 씨익 웃으며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그에게 건넸다.

-저번에 말씀하신 따님 시험 관련 자료입니다. 티 나지 않게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자네야. 혹시나 해서 부탁했는데 기어이 이걸 구해 왔어.

-출제자도 다 저희 사람 아니겠습니까?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상부상조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단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상부상조.

정재원 교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류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교수님.

임성진은 품에 넣어 뒀던 카드 키 하나를 꺼내 정재원 교수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파릇파릇하게 젊고 몸매 좋은 녀석으로 준비시켜 놨습니다.

그제야 정재원 교수는 숨기고 있던 음흉한 미소를 꺼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네는 뭘 좀 안다니까.

정재원 교수의 말을 끝으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대체 뭐지?

벌써 터진 건가?

아니야, 아직 정재원 교수님한테 이야기도 안 꺼냈잖아.

게다가 여기선 신용호도 행방불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태다.

설마, 내가 신용호의 내부 고발을 돕는 게 벌써 밖으로 퍼져 나를 협박하려고 보낸 건가?

신용호를 행방불명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그런 협박?

그럴 리가 없지. 금요일 저녁에 이 이야기를 들어 이제 겨우 일요일이라고.

젠장,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 건가?

신용호가 이 문자를 알게 되면 걱정할까 봐 싶어 보여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혼자 알고 있어서는 안 될 사실이다.

“용호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뭔데?”

그에게 다가가 휴대폰의 동영상을 재생시켜 보여 주었다.

“이거 누가 알고 보낸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봐.”

그러나 신용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확인하라는 거야?”

“거기 동영상 있잖아. 문자로 날아온 거.”

“문자? 무슨 문자? 지금 바탕 화면밖에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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