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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2화 (2/341)

정체불명의 문자 (2)

-보낸 이 : 29

-신용호에게 연락해라.

뭐야, 이 녀석은?

요즘 휴대폰에는 발신번호를 바꾸는 기능이 사라졌을 텐데.

굳이 컴퓨터까지 사용해서 고생하는 녀석도 있구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으아아.”

정적이 흐르던 사무실에서 수사관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퍼졌다.

“피곤하시죠?”

“아닙니다. 검사님이야말로 고생하시죠.”

“담배 한 대 태우러 갈까요?”

“좋죠.”

수사관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가 담뱃불을 붙였다.

“검사님은 외롭지 않으세요? 슬슬 결혼도 하시고 정착하셔야죠.”

“아직은 생각이 없네요. 적당한 여자도 없고요.”

“에이, 검사님 스펙이시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요. 한국대학교 출신에 사법 고시 패스. 이것뿐만 아니라, 키도 크시고 인물도 훤칠하시잖아요.”

음, 맞는 말이니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고 실제로 여자가 줄을 섰다.

사법 고시에 패스했다고 동네에 플래카드가 붙었을 때만 해도, 부모님을 통해 선 자리가 엄청나게 들어왔으니까.

교사나 공무원은 나와 선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의사와 아나운서 등 화려한 스펙을 가진 이들에게 많은 제의가 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다.

대한민국 검사라면, 제대로 된 나의 사랑을 만나 내가 다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철이 없을 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지방으로 발령받은 뒤에는 청에서도 나서서 딱히 눈에 띄지 않다 보니 선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일이 워낙 많아서 여자를 만나러 다닐 시간도 없어졌다.

뒤늦게나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법연수원에서도 특출 난 사람들은 대부분 정재계에서 힘깨나 쓰는 집안과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꼴에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아 검사가 되었다고 거만했던 게 부끄러운 수준.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 검사가 되었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아직까지 교사나 스튜어디스, 공무원,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으로부터 선 제의가 들어오고는 있지만, 이제 와서 선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전보다 못한 직업이라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당장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 생각이 없달까.

예전에는 가끔씩 용호 녀석이 사시를 패스하자마자 곧장 의사 집안과 결혼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라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걸 볼 수도 없으니까.

계속해서 선 자리를 거절하다가 이제 와서 선을 보자니 웃기기도 하고.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 사이로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날이면 신용호랑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용호 자식은 잘 지내나 모르겠네.

그 녀석 생각을 하니 문득 낮에 왔던 문자가 떠올랐다.

“아, 수사관님. 요즘도 발신인 번호 수정해서 문자 보내는 녀석이 있더라고요.”

“무슨 문자 받으셨어요?”

“네. 되게 특이한 거였어요. 제 친구한테 연락을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장난친 것 같던데.”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함에 들어갔다.

응?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지?

내가 버릇대로 스팸 차단을 했었나?

바빠서 내려놓고 업무를 봤던 것 같은데.

“왜 없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통신 기록에 들어가 보았다.

이곳에는 전화 내역과 문자 내역이 모두 나와 있다. 스팸 처리해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왜 없는 거지?

내가 헛것을 봤나?

그럴 리가 없는데.

한껏 미간을 찌푸려 휴대폰을 뒤적이자, 수사관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검사님이 지우시고 깜빡하신 것 같은데요. 오늘 엄청 바쁘셨잖아요.”

“그랬나.”

“그러실 거예요.”

내가 예민한 건가?

수사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자신의 배를 슥슥 문지르며 화제를 돌렸다.

“검사님, 출출하지 않으세요?”

벌써 오후 7시.

어느새 저녁 시간도 지났다.

불타는 금요일을 업무로 불태우고 있구나.

“저녁 먹으러 갈까요?”

“아니요. 간단히 간식 먹고 9시 전에 퇴근하죠. 제가 가서 후딱 분식 조금만 사 올게요. 떡볶이에 튀김 괜찮으시죠?”

“저야 좋죠.”

“다녀올게요.”

“감사합니다.”

수사관이 먼저 분식집을 향해 가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뒤적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문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삭제했을지라도 내 기억력으로는 웬만해서 까먹지 않는데.

이상하네.

***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검사님도 좋은 밤 보내십시오!”

수사관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서둘러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주차되어 있는 차에 올라타자,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용호 녀석 근황이 궁금해졌다.

문자 탓인가.

오랜만에 전화나 해 봐야겠다.

이래 놓고 막상 통화하면, 그 녀석 또 자랑만 늘어놓는 게 아닌가 몰라.

전화를 나누며 낄낄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난 김에 연락이라도 해 봐야겠다.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수신음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기에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전화 너머로 신용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목이 잔뜩 잠겨 있는 목소리.

이제 9시인데 대체 몇 시부터 회식을 했기에 이렇게 만취를 한 거야?

“용호, 회식 중이냐?”

-아니, 그냥 집에 있어.

집인데 이런 목소리라고?

“자다 깬 거야?”

-아니야, 말해.

목소리에 매가리가 하나도 없다.

서울로 간 뒤로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은 처음 보는데.

“그냥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지. 아무리 서울이 좋다고 해도 친구한테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무겁게 입을 떼는 신용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서울 아니야.

“어딘데?”

-보성.

“전남 보성? 거긴 왜?”

-나 보성지청으로 발령 났어.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지?

발음이나 말하는 태도를 보면 취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서준아…….

“어, 말해.”

신용호는 한참이나 입을 떼지 못하다가 힘들게 입을 떼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무 힘들다.

***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어떻게 온 거야?”

“내일 토요일이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수염이 죽죽 나 있는 데다가 팬티에 러닝 차림으로 초췌해진 신용호의 모습은 ‘폐인’ 그 자체였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안으로 나를 들였다.

거실은 좁았다.

아니, 집 자체가 좁았다.

작은 거실과 그 옆에 붙어 있는 방 하나가 전부.

투룸이라고 보기도 민망할 정도.

이런 지방에서 이 정도 집이면 5천만 원도 하지 않을 터.

의사 집안과 결혼한 이 녀석이 대체 왜?

이 정도면 둘이 살기에도 좁은 느낌일 텐데.

아니, 잠깐만.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야, 제수씨 어디 가셨어?”

“서울에 있지.”

그는 씁쓸히 웃으며 냉장고에 넣지도 않은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왔다.

“줄 게 술밖에 없네.”

말없이 그가 따르는 술을 받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미지근하니 쓴 알코올 향에 입안이 아렸다.

“얼음이라도 줄까?”

“됐고.”

나는 녀석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 되긴, 딱 보면 모르냐?”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조진 거지, 뭐. 서울에서 쫓겨났다.”

“아니, 어떻게 된 거냐고. 올 때는 오더라도 제수씨는 같이 왔어야지. 왜 너 혼자 온 건데?”

“집사람이 지방은 싫다고 혼자 가란다. 꼴 보기도 싫대.”

2년 만에 만난 신용호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멘탈이 산산조각 난 모습.

“천천히 이야기해 봐.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니까 다 말해.”

“……X발.”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쪽팔리게.”

신용호는 눈물을 슥슥 닦아 내고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애초에 그가 서울로 올라간 건 얼떨결에 임성진 라인을 잡은 덕분이었다.

처음엔 제대로 임성진 부장검사의 라인에서 활약을 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부서 자체에서 사건을 기획하고 함정을 놓아 잡으며, 해결만 하면 신문에 대서특필.

부장검사까지도 무리 없이 올라갈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라인을 탔다고 해도 그에겐 한계가 있었다.

의사 집안인 아내와 결혼했다고 한들, 장인어른은 일반 의사에 불과한 데다가 와이프는 일개 주부인 신용호에게 믿을 구석이라고는 전무한 상황.

그런 그에게 소위 말하는 ‘끗발’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역꾸역 버텨서 살아남았다.

그렇게 1년.

자연스레 임성진의 라인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고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임성진 라인에서 문제가 생겼고, 그 모든 걸 신용호 이 녀석이 뒤집어쓰고 지방으로 좌천된 것이었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다시 데려간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의 자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상황.

와이프는 그저 지방이 싫어서 내려오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재기를 준비하는 동안 와이프의 낌새가 수상해서 사람을 붙여 확인해 봤더니, 이미 외국인 영어 강사와 바람이 난 상태.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신용호는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그는 세 달 동안 이 좁은 집에서 하루하루를 술과 잠에 취해 버텨 냈다고 한다.

“죽고 싶다, 친구야.”

불알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걸 듣는 것도 열이 받는데, 이 녀석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아, 여기서 죽으면 진짜 패배자 되는 거야. 보란 듯이 일어서서 떡하니 그 새끼들 앞에 서야지. 안 그래?”

“못 해.”

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실소를 머금었다.

“난 끝났어. 내가 재기하려고 해도 그 새끼들이 막을걸.”

분노에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초라해질 뿐이었다.

“내가 여기 오고 나서 수백 번은 넘게 자살할까 고민하고 근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보기까지 했거든.”

“야!”

“근데 자살은 못 하겠더라고.”

그는 허망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서워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쪽팔려서. 그리고 억울해서 못 하겠더라.”

“그러면 일어서야지. 죽긴 뭘 죽어!”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야지, 진짜 너무 억울해서 나 혼자는 못 죽겠어.”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서준아.”

“…….”

“네가 한 번만 도와주라. 나 무너지더라도 그 새끼들 잡고 물귀신 되어서 같이 무너져야겠어. 도저히 나 혼자는 못 죽겠다. 억울해서 못 죽겠어.”

“나 같은 일개 검사가 그 자식들을 어떻게 무너뜨려.”

“내가 알려 줄게.”

그는 간절하게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나 장부 다 있어. 그 새끼들 녹취록도 있고 증거는 충분해. 다 무너뜨릴 수 있어. 내가 내부 고발자가 될게. 이대로 있으면 난 어차피 세 달 뒤에 옷 벗어야 돼. 네가 그 새끼들 목 치고 올라가. 끝까지 올라가서 왕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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