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군주회귀록 209화
“허억허억.”
바알의 숨이 거칠게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협곡 사이를 지나 달리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몰아붙인 것은, 그리고 조롱한 것은.
빠드득-
치아를 가는 바알은 이 수모를 잊지 않을 것이었다.
기필코 영지로 돌아가 다시 마족들을 채워 내려와 인간을 쓸어버리리라.
바로 그때였다.
“드래곤 스피어.”
쑤화아아아아아악!
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파지지지직!
바알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 땅에서 솟아난 커다란 검은 방패가 바알의 앞을 막았다.
아서가 쏘아보낸 드래곤 스피어가 공기를 찢고 날아갔다.
쑤화아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
그와 함께 검은 방패와 드래곤 스피어가 충돌했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진동했다.
검은 방패를 이용해 뒤로 숨은 바알은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말도 안 돼……!’
검은 방패.
알락사스라는 존재에게 얻은 이 방패는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이제까지 뚫었던 자가 아무도 없었다.
한데, 쩌저적- 소리를 내며 방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와장창창- 깨져 버렸다.
“크흡!”
드래곤 스피어의 남은 힘에 직격당하기 전 바알은 서둘러 마기를 몸에 둘러 보호했다.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부채꼴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주르륵 물러난 바알은 강력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크흡.”
바로 그 순간.
수우우웅!
자신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창을 볼 수 있었다.
몸을 비틀어 피해낸 바알이 반격했다.
탱 탱탱탱 탱탱!
아서와 바알.
두 대군주의 검과 창이 부딪쳤다.
‘강하다.’
바알은 실제로 아서와 붙자 자신의 생각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바알도 마족들의 정점에 선 한 명의 왕이었다.
그런 왕인 바알이 결코 쉬이 당할 리 없었다.
퍼엇!
퍼엇!
아서와 바알이 서로 한 수씩을 주고받고 뒤로 넘어졌다.
재빠르게 둘 모두가 일어섰다.
“허억허억.”
“하아하아.”
아서와 바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서는 회귀하기 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빛을 발하기 전, 바알은 무수히도 많은 인간의 시체 위에 서서 자신과 다른 인간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달려들었을 때, 아서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때와는 다르게 아서는 바알 앞에서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수화아아아악!
바알의 검이 아서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맺혀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린다.
그리고 아서의 창이 바알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갔다.
푸지익!
“컵!”
바알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알이 물었다.
“도대체 넌 정체가 뭐야……!”
그에 아서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 *
쐐에에에에엑!
거대한 운석.
메테오에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먼저 루시아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왕벌의 벌침.”
“여왕의 포효.”
“나탈린의 창!”
“여왕의 몸부림!”
먼저 여왕벌의 벌침이 기다란 장침 모양으로 나타났다.
장침 모양으로 나타난 여왕벌의 벌침의 크기가 곧 커다래지기 시작했다.
길이 7m에 두께 50㎝ 정도로 변한 여왕벌의 벌침이 메테오를 때렸다.
꽈드드드득!
메테오에 파고들던 장침이 그대로 박혀 버렸다.
연이어서 그녀의 스킬들이 계속 메테오를 때렸다.
쾅 쾅쾅쾅! 쾅!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 얼음마녀 자베스. 그녀가 마법으로 소환한 얼음 드래곤이 커다란 브레스를 뿜어냈다.
푸화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악!
얼음 브레스에 직격 당한 메테오의 뜨거운 화염이 꺼져나갔다.
하지만 그 속도를 늦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화아아아악!
그녀가 자신이 든 지팡이를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얼음 해일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쏴아아아아아!
해일이 매서운 속도로 공기를 얼리며 메테오에 근접했다.
그리고 직격하는 순간.
쩌저저저저적-
메테오가 잠시 멈췄다.
하지만 곧이어.
콰지이이이익!
처참하게 해일을 밀어내고 다시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미친…….’
자베스와 루시아가 서로를 돌아봤다.
끝이다.
적어도 인간 병력 30%이상이 죽어나갈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네스는 메테오를 소환하고 기력이 당해 죽은 것인지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흐어어어억…….”
“미친, 난 죽을거야!”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바로 그때였다.
쐐에에에에에엑!
피닉스의 형상을 한 화살이 매서운 속도로 메테오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앙!
운석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카일과 카와르가 있었다.
쏴하아아아아!
카와르는 특별한 능력을 부리는 존재였다.
카와르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추락하던 메테오가 우뚝 멈췄다.
“끄으읍!”
그와 동시에 카와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그는 힘이 부친 것인지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끄아아아!”
카와르가 괴성을 질렀다.
그와 함께 다시 메테오가 추락을 시작했다.
한데, 경로가 자베스나, 혹은 루시아. 또는 인간 병력이 밀집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곳에 메테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땅이 진동했다.
지상의 사람들이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공위에서 천천히 내려서던 루시아와 자베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어 그들은 카와르와 카일을 보며 말했다.
“X발, 빨리도 온다.”
“X발, 빨리도 온다.”
“음…….”
카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다소 늦게 도착한 카일은 환호하는 병력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카일과 카와르는 이번 전쟁에 참여할지 말지를 확정 짓지 않고 있었다.
다른 종족과의 싸움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생각과는 다르게 인간들은 무사했고 오히려 용족과 마족의 피가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봤던 카일.
그가 물었다.
“아서는?”
“진짜 대군주가 되러 갔다.”
어느덧 잠에서 깨어난 랄프가 상체만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 * *
“대군주다.”
아서는 창을 매만졌다.
대군주.
오르고 싶었던 자리이다.
과거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떠한 짓을 해도 넘볼 수 없는 산과 같았다.
그리고 다른 족들이 자신들을 습격하여 빼앗고 죽이기 시작했다.
무력했다.
너무도 무력했고 억울했기에 대군주라는 자리가 너무나 커 보였다.
그리고 죽기 전, 아서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
만약, 대군주가 된다면, 정말 대군주가 된다면.
혼자만이 대군주가 되고 싶다.
그리고. 대군주가 된 즐거움은 딱 하루면 족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다.
그리고 이제는 걱정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며 때론 친구들과 사냥을 나가고 돌아오는 길에 누추한 흑맥주 집에 들려 흑맥주를 들이키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손을 뻗으면 닿지도 않을 것 같았던 그런 일상이, 평범함이 그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무, 무슨……!”
바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서는 이미 누가 뭐래도 대군주의 자리에 올라 있다.
때문에 그의 대군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서가 가지는 대군주라는 의미는 일종의 ‘평화’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이 지긋지긋한 군주게임도 하지 않는 평화.
“네놈은 이해하지 못할 거다.”
아서가 입술을 비틀었다.
바알은 분노한 표정으로 검을 겨눴다.
“끝을 보자.”
목표했던 바알과의 싸움이었다.
심장이 뛰고, 식은 땀이 흐른다.
그리고 그는 바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는 예전에는 자신을 애송이 보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의 목을 위협할 수 있는 적.
적으로 보고 있었다.
수화아아악!
아서와 바알이 서로를 향해 마주달려갔다.
탱 탱탱탱탱!
탱탱탱!
두 사람의 병장기가 힘을 내어 부딪쳤다.
“바칼로의 일격.”
수화아아악!
바알의 검에 강력한 검은 기류가 모여들었다.
그가 힘껏 내리치는 순간, 그 힘이 파도처럼 아서를 집어삼켰다.
수우우웅!
그리고 그 검은 파도 안을 비집고 튀어나온 아서가 창으로 그의 목을 노렸다.
수우웅!
가까스로 한 발자국 물러나 피해낸 바알.
탱탱탱!
찌르고 찌르고 찌르고.
아서는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에.
푸지익!
그의 가슴에 창끝이 닿았다.
“끕!”
바알이 창대를 붙잡았다.
조금만 더 창이 파고든다면 생명이 위험하다.
쏴아아아아!
그가 뻗은 검에서 강력한 힘이 응축되어 아서의 오른 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푸지익!
피가 솟구쳐올랐다.
“흐으으읍!”
하지만 아서는 멈추지 않고 몰아붙였다.
“끄으읍!”
바알은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잡은 창이 미끄러져 더욱더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모습을 디아블로는 지켜봤다.
‘나의 군주님께서…….’
인생 최대의 적과 만나 겨루고 있다.
디아블로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뿌드드득!
창끝이 더욱더 파고들었다.
바알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죽여버리겠다!”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고통,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쾅쾅쾅쾅쾅쾅
검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그때마다 검은 마기가 아서를 후려쳤다.
하지만 아서는 피하지 않았다.
몸에서 피가 튀어도 힘을 주었다.
꾸우우웁!
그리고 결국 창끝은 바알의 가슴을 관통했다.
“쿨럭.”
그의 입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창대를 쥐고 있던 손의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난 대군주다, 절대 난 내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아!!!”
바알의 말에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내가 대군주다.”
푸화아아아앗!
아서가 있는 힘을 다해 바알의 가슴에 박혀 있던 창을 힘껏 뽑아냈다.
푸쉬이이이익!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천천히 바알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목 뒤로 창을 겨눴다.
바알이 손을 뻗어 그의 무릎을 감쌌다.
“제, 제발…… 하, 한 번만 살려줘…….”
“너도 안 살려줬잖아?”
최후의 전쟁에서 비명을 질렀던 사람들을 유린하면서 기뻐했던 게 바알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푸지익!
아서의 창이 망설임 없이 바알의 목을 꿰뚫었다.
그의 몸이 대군주라는 이름과 다르게 너무나도 허망하게도 축 늘어졌다.
푸화앗!
창을 뽑아낸 아서가 비틀거리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바알을 죽였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기쁜 건가?
아니면 슬픈 건가?
또 아니면 감흥이 없는 건가?
아직 모르겠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맞을 것이다.
솨아아아아아-
바람이 불어와 아서의 은빛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그 자리에서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게 30분정도 지났을 때였다.
“망, 망망!”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바알을 죽인 후 처음으로 아서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멀리서 하운드 족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마앙, 역시 군주님이 이길 줄 알았어요. 망!”
“그럼 당연하지 올리아.”
아서는 자신에게 달려온 올리아를 품에 안고는 그 털에 잠시 얼굴을 파묻었다.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레모리가 달려온다.
“군주니이이이임!”
그리고 그때, 반대쪽에서는 자베스와 루시아를 비롯한 도전군주, 그리고 병력들이 다가온다.
“너 올리아! 군주님 품에서 떨어지지 못해?”
그레모리는 아서가 승리한 후 뜨거운 포옹을 기대했다.
그런데 올리아가 그 자리를 뺏어버린 것이다.
“마앙, 내 자리라고!”
“……거긴 내 자리야, 난 군주님의 아내라고!”
그리고 루시아가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든다.
피식-
아서에게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하하하하하.”
아서가 웃기 시작했다.
그에 그레모리도, 루시아도, 자베스도, 도전군주도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망망망! 기분 좋아!”
올리아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