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군주회귀록 208화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자 바알의 머릿 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도망쳐야 하나?’
대군주 바알.
오랜시간동안 군주게임에서 정점을 지켰던 독보적인 군주였다.
대부분의 군주들은 그 독보적인 대군주 바알이 도망치거나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알 역시도 자신이 패배, 혹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자신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쾅쾅쾅쾅쾅쾅!
여전히 마법사들은 강력한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법 방어력이 높은 바알에겐 큰 데미지를 주진 못했다.
난무하는 마법들 틈에서 바알 대군주는 뒤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스, 코드, 바란!”
바알의 외침과 함께 그가 아끼는 삼대장들이 서둘러 그의 앞과 옆, 뒤로 나타났다.
“빠져나간다!”
“예!”
삼대장들도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몸소 실감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죽었다.
그렇다고 이 싸움이 완전히 바알의 패배로 끝나느냐.
그건 아니었다.
바알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언제든 재기가 가능했다.
또한, 마계로 돌아간다면 그는 잃었던 병력을 다시 보충할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탓!
바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마족들의 잔해가 곳곳으로 터져 나갔다.
그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삼대장 중 한 명인 검은 검 바란이 움직였다.
태애애앵!
바란의 검이 힘껏 앞에서 쏘아져 오는 검을 쳐냈다.
그 앞에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서 있었다.
바로 도전군주 중 한 명인 랄프였다.
검의 대제라고 불리는 그가 매서운 기세로 바알과 삼대장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어디를 막는지 아느냐!”
바알의 삼대장 중 하나인 네스.
자그마치 7클래스 마법사로서 마족 중에서도 최고의 마법사였다.
무리한다면 지상 최고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메테오조차도 소환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랄프를 향해 거대한 화염을 쏘아 보냈다.
쑤화아아아아아!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는 화염은 그 어떤 것이라도 녹여버릴 듯 강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쩌저저저저적!
강력한 얼음 회오리가 생겨나며 그 화염 폭풍을 집어삼켰다.
꽈르르르르륵!
화염을 단숨에 집어삼킨 얼음 회오리는 바알을 향해 움직였다.
수화아악!
바알은 검으로 힘껏 베어내는 것만으로도 얼음 회오리를 상쇄시켰다.
그 순간 스태프를 든 여인이 나타났다.
끼에에에에에!
그는 거대한 얼음으로 구축된 드래곤의 머리 위에 타고 있었다.
바로 자베스였다.
“어딜 가, X신들아.”
언제나처럼 표정 변화 없이 그들을 둘러본 얼음마녀 자베스.
랄프가 바란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쑤화아아악!
랄프의 검이 매섭게 바란을 압박한다.
탱탱탱탱탱!
바란은 마족 중에서도 검을 잘 쓰는 이로 유명하다.
그리고 랄프는 검의 대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퍼엇!
“큽!”
하지만 랄프가 바란의 주먹에 가격당해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인간과 마족의 격차.
그 격차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한 존재가 나타났다.
거대한 마족이었다.
그 마족은 단숨에 바란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그에 랄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꺼져라, 디아블로!”
“…….”
디아블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랄프는 검을 꽉 쥐었다.
‘빌어먹을…….’
그것은 바란과 싸워서 정정당당하게 이겨보고 싶은 랄프의 욕망이었다.
요근래 랄프는 자신이 한없이 작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도전군주?
아니, 지금은 그 이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서 앞에서 자신은 어린아이 같았고 그는 보호자 같았다.
언제까지 그런 위치에 서고 싶진 않았다.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놈들을 죽이고 싶었다.
“물러나라.”
아서의 목소리에 디아블로가 뒤로 물러났다.
먼 곳에서 아서가 창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바알은 옆에 코드만을 낀 채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어느덧 여왕벌 루시아가 도착했다.
부드럽게 착지한 루시아.
그 셋을 보며 아서가 말했다.
“이곳은 너희에게 맡겨도 되겠지?”
그에 랄프가 말했다.
“신경끄고 저 새끼나 잡으러 가라, 별걱정을 다한다.”
랄프의 말에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디아블로와 함께 달리는 아서를 보며 랄프가 중얼거렸다.
“고맙다, 아서.”
그것이 아서의 배려임을 랄프는 알 수 있었다.
바란을 보는 랄프의 얼굴에 검은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어.”
저번 용족들과의 싸움에선 아서의 도움을 받았다.
자신은 나약했고 그는 강했다.
하지만 그때에는 랄프가 자신이 새로 얻은 아티팩트 발란을 두고 왔을 때였다.
그때 발란을 착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발란이라는 놈이 애고소드였기 때문이다.
애고소드 발란은 주인의 생명력조차 갉아먹으려는 괘씸한 놈이다.
그리고 지금 그 발란이 랄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 발란을 착용하면 일단 스텟이 X2배로 증폭된다.
또한,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영지의 유닛을 선택하여 그들의 힘도 일부 빌릴 수 있다.
랄프의 등 뒤로 거미의 다리 네 개가 솟아나고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쏴하아아아앗!
랄프의 몸 곳곳에서 거미줄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검을 꽉 쥔 랄프가 바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랄프의 검과 직격한 순간, 바란은 곳곳에서 뻗어져 오는 거미줄이 자신을 옭아매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화아아악!
바란이 거미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랄프를 공격하려던 차였다.
바란은 놈의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눈을 찌푸렸다.
‘뭐야?’
바란에게는 인간이 한없이 나약한 종족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들은 눈물이 많고, 감정이라는 것에 쓸데없는 것을 소비하는 하등한 종족이다.
사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서 군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간은 머저리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바란은 랄프의 거미줄에 온몸이 속박되었다.
“크흐윽!”
“아라크네스의 거미줄. 어지간해선 절대 끊어지지 않지.”
랄프가 피식 웃었다.
대신에 조건이 있다.
발란의 검을 통해 사용하게 된 이 아라크네스의 거미줄은 사용할수록 랄프의 힘을 갉아먹는다.
그가 발란의 검을 통해 힘을 개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분.
그 3분이 지나면 죽는다.
하지만 랄프는 아끼지 않는다.
[너무 무모하군.]
에고소드가 랄프를 비웃는다.
하지만 랄프도 그를 비웃는다.
바란을 벨 수 있다면, 자신도 이 전쟁에서 한몫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하리.
거미줄에 속박된 바란을 향해 랄프가 달려들었다.
“흐으읍!”
잘 끊어지지 않는 아라크네스의 거미줄이라고 하지만 바란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투두둑 끊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끊어내기 전.
랄프의 검이 놈의 몸을 횡으로 베어냈다.
푸화아아아앗!
“커헉!”
바란의 가슴팍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랄프가 씨이익 웃었다.
그 순간, 바란은 쓰러지기 전 랄프를 공격했다.
촤아악!
랄프의 가슴을 검이 긋고 지나갔다. 하지만 랄프는 물러서지 않고 바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에 바란은 다시 한번 벤다.
푸화아아악!
역시 피가 솟구쳤지만 랄프는 표정 변화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히이이익……!”
바란은 베여도 베여도 쓰러지지 않는 그에 의해 마족으로 살면서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랄프의 검이 있는 힘을 다해 바란을 향해 휘둘러졌다.
서걱.
그와 함께.
랄프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랄프.
그는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쩌면, 아서가. 아니 아서 대군주님께서 대군주가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군주게임을 그만해도 될까?
군주게임을 그만하고 각기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냥 친구끼리 한데 모여 술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싸움은 지겹다.
랄프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푸쉬이이익!
푸쉬이이익!
푸쉬이이익!
한계까지 다다른 랄프의 몸 곳곳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쾅! 쾅쾅쾅쾅!
매섭게 몰아붙이는 네스의 마법 공격에 자베스가 신음을 삼켰다.
그녀 앞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얼음장벽이 화염 마법을 방어했다.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르륵!
쩌저저적-
장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찰나에 자베스는 옆을 돌아봤다.
랄프가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에서 꾸물꾸물 올라온 검은 정체모를 무언가가 그의 몸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미친놈! 폼을 그렇게 잡더니, 결국 죽은 거냐?”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자베스.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랄프가 신경 쓰여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다.
챙그랑-
얼음장벽이 깨졌다.
그 순간, 자베스를 뜨거운 화염이 집어삼키려 했다.
수화아아아악!
루시아가 빠르게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여왕벌의 비상.”
스킬이 발동되며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수화아아악!
자베스를 덮치려고 했던 거대한 화염을 허공에서 찢어발겼다.
“정신 안 차릴래?”
루시아의 물음에 자베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자베스의 눈에 보였다.
“아이 X발, 모기야, 뭐야.”
랄프가 몸을 긁적거리다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검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푸르러어어엉…….”
깊은 잠에 빠졌다.
“저 X발 새끼! 진짜 잠든 거였네!”
자베스가 활짝 웃었다.
입이 귀에 걸릴 때까지 웃은 자베스.
그에 루시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베스.”
“왜?”
“너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봐.”
“…….”
자베스는 그 말에 서둘러 웃음기 어린 표정을 지웠다.
얼음마녀 자베스.
그녀의 이름.
하지만 그녀도 웃을 줄은 안다.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을 숨기려다 자신이 우습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 빙긋 미소 지었다.
“나도 웃을 줄은 안다, 벌레야.”
“……얼음 밖에 사용하는 못하는 년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다.
그러다 네스가 마법을 캐스팅했다.
쩌저저저적-
허공이 찢어지며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쑤화아아아-
거대한 운석이 소환되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뒤쪽에는 십만이 넘는 인간병력이 남은 마족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메테오.
재앙과 같은 마법.
저 마법이 떨어지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허억허억!”
네스도 마법을 사용하고는 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루시아와 자베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막을 수 있지?”
“너나 잘해.”
“오냐.”
위이이이잉!
루시아의 등 뒤로 벌의 날개가 생겨났다.
그녀가 떨어지는 메테오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얼음 드래곤 위에 탑승한 자베스도 바짝 뒤따랐다.
30m 크기의 메테오를 향해 두 사람은 함께 날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