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군주회귀록 206화
랄프는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서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으면 좀 멋있어 보일 줄 아나?”
“간지러워서 배 긁으려고.”
“…….”
아서는 황당한 농담에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서가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휘두른 순간.
퍼지이익!
퍼지이익!
퍼지이익!
주변에 있던 용족들이 삽시간에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랄프는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곧이어 주변을 쳐낸 아서는 랄프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웠다.
일어난 랄프가 말했다.
“이거 잠깐 다리 저려서 앉아 있던 거다.”
“그럼 난 변비여서 늦었다고 변명하면 되겠군.”
한마디도 안 지는 아서였다.
몸을 일으킨 랄프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서는 분명히 가만히 있었는데, 계속해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랄프는 그 이유를 곧이어 알 수 있었다.
아서가 가지고 있는 최강, 최고의 유닛인 디아블로였다.
디아블로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며 주변을 가득 채운 용족들을 혈혈단신으로 잡아내고 있었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아서. 이제 어쩔거냐?”
용족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수천 마리가 넘는 용족들은 계속해서 학살을 감행할 것이다.
“내가 장담하나 할까?”
“……어떤 장담?”
“이놈들, 오늘 내로 내가 전부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랄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수천의 용족을 한 순간에 무릎 꿇릴 수 있다고?
그에 랄프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베스와 루시아가 도착했다.
“자베스, 루시아.”
“예, 군주님.”
“랄프 군주를 도와 용족들을 진압해라.”
“예.”
“좀 버티고 있으면 금방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마.”
그와 함께 아서가 빛이 되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오늘 내로 용족들을 물린다는 거지?”
랄프가 루시아와 자베스를 보며 물었다.
자베스가 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글쎄?”
두 사람도 어깨를 으쓱했다.
* * *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참 편한 일이다.
그것은 혼자만이 다른 이들의 비밀까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아서는 곧장 용족들이 사는 세상으로 디아블로를 이끌고 나타났다.
현재 용족 대군주인 카샤스는 인간들의 세상에 내려가 다른 용족들을 지휘하며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그의 영지를 침범하고 부숨으로써 카샤스를 물린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아서는 애초에 병력들 대부분을 이끌고 기습을 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병력도, 카샤스의 병력도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며 현재 카샤스의 영지는 아예 인간들의 세상에 이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카샤스의 병력 손실도 최소화하며 아서의 병력 손실도 최소화된다.
대신에 바알 대군주의 병력은 많이 잃게 될 것이었다.
용족의 땅에 디아블로와 함께 들어온 아서.
그는 딱 한 명의 여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카샤스의 대리인이었다.
* * *
카샤스.
그는 부하들로부터 계속되는 승전 소식을 듣다가 처음으로 모든 병력이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는 아서 군주가 나타났다고 한다.
“흠, 아서 군주는 다시 사라졌다?”
“예, 그렇습니다.”
전장에 한 번 나타났던 아서 군주는 다시 홀연 듯 자취를 감췄다.
어디에 간 것일까?
일단 그는 알지 못한다.
‘내일이면 바알 대군주의 영지도 이곳에 뿌리를 내린다고 했지.’
그때면 더욱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
‘확실히 인간군주들은 아서 군주의 영지 위치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이렇게 계속된 학살을 감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 누구도 아서 군주의 발카스 영지의 위치를 부는 이가 없었다.
턱을 쓸은 카샤스는 그러다 한 여인을 떠올렸다.
‘베닉은 잘 있으려나?’
카샤스는 위험한 일에 데려오기 싫다고 두고왔던 베닉을 떠올렸다.
베닉은 바로 그의 여인이었다.
또한, 대리인이었다.
둘의 사랑은 뜨겁다.
사실 카샤스처럼 자신의 대리인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하였다.
그리고 카샤스의 베닉에 대한 사랑은 더욱더 애뜻했다.
베닉은 천사처럼 아름다웠고 몸매 또한 끝내주는 오크 대리인이었다.
그런 베닉을 떠올렸던 그는 피식 웃었다.
어서 이 전투가 끝나면 다시 용족들의 세상으로 넘어가 그녀를 안으리.
* * *
아서는 금방 베닉이라는 대리인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거의 150㎏에 육박하는 베닉이라는 대리인은 침대에 누워서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취향 한 번 독특하군.”
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크 대리인을 사랑한 용족 대군주라?
참으로 웃긴 스토리였다.
아서는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갔다.
깜짝 놀란 베닉.
“취이익, 누구냐!”
“나와 함께 가줘야 할 것 같은데.”
아서는 이죽 웃었다.
인질을 삼는다?
추악하다?
꼭 이기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
전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아서는 생각했다.
또한, 더러운 짓은 자신이 아닌, 용족과 마족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들은 다짜고짜 허약한 영지들을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취이이익, 꺄아악, 취이익, 나 같은 연약한 오크를 취이익, 인질로 잡으려고 하다니! 역시 인간들은 듣던 대로 악마였어!”
“……누가 연약하다고?”
아서는 황당함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디아블로가 그녀의 목덜미를 가격해 단숨에 기절시켜 버렸다.
그다음 다시 인간들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 * *
밤이 되었다.
루시아 군주와 자베스 군주, 랄프 군주는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한 엄청난 숫자의 용족들에 의해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숫자가 가히 십만은 넘어보이는 숫자였다.
새까맣게 하늘을 가득 채운 날아다니는 용족들을 서둘러 용족 대군주 카샤스의 영지 쪽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하겠다는 것 같은데…….”
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베스와 루시아 군주, 그 외의 무수히 많은 군주도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인간 쪽에서만 약 15만의 병력이 모였다.
용족은 약 8만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았다.
용족들은 숫자로 싸울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B급은 가히 인간 A급 유닛과 맞먹는 수준으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병력의 가장 앞에 선 도전군주들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군주는 긴장하고 있었다.
“저, 저걸 어떻게 이겨……!”
“저건 괴물들이라고!”
인간 군주 중 두려움에 떠는 이들도 상당했다.
랄프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전쟁이었으니까.
그리고 서서히 용족들이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전투 준비!”
랄프의 외침과 병력이 준비를 시작했다.
* * *
카샤스는 어느덧 다 집결한 용족들을 볼 수 있었다.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본래는 약한 영지를 계속해서 털면 빠르게 아서 군주의 영지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실제로 아서 군주의 영지 자체는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이가 없었다.
때문에 한꺼번에 병력을 집결시켜 수십만 병력을 사냥한다면 아서 군주가 또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카샤스는 인간 군주 중 거미 위에 오른 군주가 ‘전투 준비!’라고 하는 걸 보았다.
‘네깟 놈들이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어.’
사실 인간 군주들은 아서 군주가 아니라면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때문에 카샤스는 이 압도적인 싸움을 서둘러 끝내자고 생각했다.
용족들도 전투 준비를 끝마치고 막 움직이려던 때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와이번에 올라탄 한 존재가 나타났다.
“……?”
카샤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찌푸리며 그를 자세히 확인해 봤다.
곧이어 그는 알 수 있었다.
‘아, 아서……!’
그놈이었다.
그놈이 제 발로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설마?’
그래, 놈도 자신들과 겨뤄보고서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분명해 보였다.
아마도 이제 자신들에게 목숨을 구걸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리고 일단은 놈의 항복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척하며 카샤스는 놈의 목을 칠 예정이었다.
“잡아라!”
카샤스가 외쳤다.
수천마리의 용족들이 날아올랐다.
아서 군주는 그럼에도 여유롭게 와이번을 타고 비행하며 오고 있었다.
그리곤 말했다.
“카샤스. 내가 아주 중한 한 말이 있는데, 말이다.”
할 말이라?
무슨 개소리를 하려는 걸까?
척 보기에도 저 인간 소년 놈은 범상치 않은 놈이다.
일단 저 세 치 혀가 문제이리라.
깔끔히 무시해 버리자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네 대리인 아주 못생겼더라.”
“…….”
순간 카샤스는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하지만 곧 그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도 손을 들어 올려 병력을 물렸다.
“내 대리인? 내 대리인은 지금 여기에 있다, 보다시피 남자지.”
“……개소리가 일취월장하는구나.”
아서는 피식 비웃었다.
카샤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카샤스의 실제 대리인이 자신이 방금 소개한 것처럼 옆에 있는 용족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카샤스는 자신의 여인에게 험한 일 따위 시킬 수 없었고 대리인이라며 일반 기사단장 하나를 곁에 두고 있던 거다.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카샤스는 아서가 자신의 앞에 내려설때까지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그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나의 여인 베닉만은…….’
그리고 이어 아서는 그에게로 수정구 하나를 던졌다.
수정구를 본 카샤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 안에 온 몸이 꽁꽁 속박된 베닉이 있었기 때문이다.
“……!”
카샤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내, 내 사랑스러운 베닉이 저 두꺼운 밧줄에 묶여 있다니, 얼마나 아플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베닉은 그에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저렇게 갸녀린 여자한테 이딴 짓을 하는 거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서.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말했다.
“……가녀리다고?”
“그래! 툭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저런 여인한테! 네놈! 네노오오옴!”
카샤스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정말 베닉이 가냘프게 생겼다고 믿는 듯 했다.
그리고 아서를 노려보던 카샤스.
그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카샤스에게 베닉이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그는 아서에게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아서는 그에 히죽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쉽게 돌아가 주는 구나.’
자신으로써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 * *
손이 식은땀에 축축이 젖었던 랄프는 용족들이 이상한 걸 느꼈다.
당장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같았던 방금이었다.
한데, 지금은 용족들이 모든 병장기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곧 이어 랄프는 눈을 크게 떴다.
카샤스가 무릎을 꿇고 아서의 앞에 앉았기 때문이다.
랄프는 아까 전 아서가 했던 오늘 내로 끝낸다는 말을 곰곰이 떠올렸다.
“허어…… 도대체 어떻게.”
랄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아서는, 또 다른 대군주 중 한 명을 바로 앞에 무릎 꿇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