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군주회귀록 204화
이필립스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아스폰 황제가 숨겨뒀던 셋째 동생 라일레 황녀의 등장.
또한, 그 라일레 황녀가 바로 전술의 신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전술의 신은 뒤룩뒤룩 살이 찐 돼지라는 말이 무성하지 않았어? 그런데 라일레라는 황녀시라니!”
“누구야? 전술의 신이 뚱보여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
그리고 무성한 이야기들 속에서 라일레는 황녀의 행차를 시작했다.
수백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황제의 도시를 거닐기 시작했다.
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녕 저게 사람이란 말인가?”“와아아…… 라일레 황녀님은 너무나 아름다우셔…….”
그녀는 말 그대로 천사 같았다.
신이 지상에 내린 단 한 명의 천사.
그녀는 숨 막히는 외모로 많은 남성을 홀리고 있었다.
“히야…… 저 손 한 번 잡아봤으면 소원이 없겠군…….”
“뭐!? 마누라인 나를 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죽했으면 헤벌쭉 하던 유부남들은 그에 옆에 있던 부인한테 등을 맞거나 저녁을 쫄쫄 굶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이 라일레라는 여인을 꿈의 여인으로 상상하기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도시를 행차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낱낱이 드러낸 라일레.
그녀의 중대발표 때문이었다.
“얼마 후, 라일레 전하께서 혼인식을 올릴 예정이시오!”
기사단장의 말에 남자들은 또 한 번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놈이……!”
“라, 라일레…… 크흐흑……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려…….”
많은 남성, 그리고 여성들마저도 궁금했다.
수십 년이란 시간 동안 숨어 살아왔던 라일레.
그의 남편이 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무성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얀늑대 용병단의 단장 카르드라구만?”
“뭐? 그, 이가 다 빠지고 고약한 냄새가 날 것 같이 생긴 놈?”
“하지만 하얀늑대 용병단은 황궁 기사단과 맞먹는 힘을 발휘하지 않는가?”
“아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바라틴 후작과의 결혼식을 올린다더군.”
무성한 소문은 갈수록 부풀어갔다.
졸지에.
“뭣!? 드래곤?”
헛소리까지 돌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이 불거지자 아스폰은 말했다.
“3일 후, 도시 광장에서 혼인식을 치룰 남성이 인사말을 올릴 예정이다. 또한, 그다음 바로 황궁으로 가 비밀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기도 하다. 훔쳐보려고 하거나 정보를 빼내려 하는 자들은 단칼에 즉형을 내릴 것이다.”
그 말에 따라 다른 영지, 시골의 마을 등 다양한 곳에서 이필립스 국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궁금했다.
과연 누가 천사 같은 라일레의 남편이 될 것인가?
그리고 3일째가 되던 날.
수백만의 인파가 이필립스 제국으로 모여들었다.
엄청난 인파가 바글거리는 도시의 광장.
곧이어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경악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허억! 라, 라일레 전하시다!”
“와아아아!”
한 걸음 한 걸음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루시아. 즉 라일레는 면사포로 얼굴이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굴곡진 몸매와 아기의 피부처럼 새하얀 피부는 숨길 수 없었다.
멀리서 보아도 후광이 비친다.
딱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단상의 옆에 섰다.
그와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차가 들어섰다. 마차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마차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차는 천천히, 라일레의 앞에서 멈춰섰다.
기사단장이 서둘러 문을 열어줬다.
그와 함께 한 사내가 나타났다.
마차에서 내린 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딱 맞는 턱시도, 은빛 머리카락을 짧고 단정하게 잘랐고 피부가 라일레 만큼이나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였다.
곧이어 맥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 애잖아?”
말 그대로 애였다.
물론 그는 꽤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얼굴에 어린 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웅성거림 속에서 곧이어 한 사내가 깜짝 놀라 말했다.
“저저저저, 전장의 귀신……!”
“……!”
“……!”
“……!”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유명한 인물이 누구더냐 하고 옆집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 묻는다면 이리 대답할 것이다.
“전장의 귀신이지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을 휘젓는 영웅 중의 영웅! 저도 커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처럼 요즘 가장 화제의 인물이기도 하였다.
“아아, 전장의 귀신이시여!”
한 노부인이 양손을 꽉 모아 외쳤다.
그녀는 얼마 전, 남쪽 대륙의 전투에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전장의 귀신은 그때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모든 몬스터들과 던전 마스터를 일망타진하고 사라졌다.
“전장의 귀신……!”
또한, 어떠한 청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르고 싶은 자리.
되고 싶은 자리.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볼 듯한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자.
그게 바로 지금의 전장의 귀신 아니었던가?
“전장의 귀신이라면 난 찬성일세.”
“저 곱상한 외모 좀 봅세.”
“허허, 외모는 곱상하지만, 신사복을 입은 모습에서 근육이 엿보이는 군, 아주 탄탄한 몸을 가졌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전장의 귀신.
즉, 아서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라일레의 앞에 섰다.
이 자리는 공식적인 혼인을 치르는 자리가 아니었다.
단지, 이필립스 제국의 이들에게 라일레라는 황녀가 어떠한 이와 결혼하는지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아서 자체의 작위는 보잘것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힘 자체는 결코 보잘것없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이어 아서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라일레가 그 위로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파아앗!
두 사람이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로 새하얀 비둘기 수백 마리가 나타나 허공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축제요! 모두가 먹고 마시고 오늘 하루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주시오!”
“와아아아아아!”
이필립스 제국 내가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 * *
빛이 되어 나타났던 아서와 라일레.
두 사람은 혼인식을 치렀다.
혼인식장에는 무수히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제국의 인사들로부터 시작해 다른 왕국, 제국의 귀빈들까지 있었다.
두 사람은 혼인식이 무사히 끝난 후에 곧바로 가까운 곳으로 마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갔다.
아직 대륙에는 무수히 많은 던전 마스터들이 활개를 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신혼여행은 딱 하루만 다녀오기로 하였으며 거추장스럽게 많은 이들을 대동하지도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묵기에는 생각보다 초라하다고 여겨질 법한 여관이었다.
그 두 사람은 1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벼운 맥주도 한 잔씩 걸쳤다.
그리고 라일레는 묵묵히 식사하는 아서를 보면서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품었다.
‘오늘 밤 기필코……!’
아서를 완전히 내 남자로 만들어버리리라!
그리고 그레모리, 자베스 군주에게 확실히 보여줄 것이었다.
내 것을 넘보지 마라!
아서는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그런 그가 술 한 잔을 걸치고 함께 단 둘이 같은 침대를 쓰게 된다면 견딜 수 있을리 없었다.
그러던 중, 아서가 맥주를 완전히 비워내고 말했다.
“올라가지. 서둘러 해야할 일이 있잖아?”
“…….”
그 말에 라일레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여, 역시 아서 군주님도 날……!’
안고 싶으셨던 게 분명하다.
그러고보면 아서는 자신의 조금 허술해보이는 말에도 흔쾌히 수긍했다.
‘첫째는 네크로맨서로 키우고 둘째는 소드 마스터 셋째는 대마법사…….’
그리고 열명을 넘게 낳자는 말에 흔히 끄덕였다.
사실 그 말을 모르면 바보 아니겠는가?
라일레는 먼저 일으킨 아서를 따라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들이 묵기엔 한없이 초라한 곳이었지만 아무렴 라일레는 상관없었다.
라일레가 먼저 여관방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 순간.
딸칵-
아서가 문을 잠갔다.
라일레는 한 번 퉁기기로 했다.
“구, 군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의 혼인은 사실 군주님께 권력을 실어드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런 눈빛으로 절…….”
눈을 감고 말하던 라일레.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
그녀가 눈을 슬며시 떴을 때, 아서는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뭔 소리냐, 라일레?”
“무, 문을 잠구셔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을 모르더냐?”
“…….”
“이제부터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병력을 통제하고 이끌지 한번 구도를 짜봐야지.”
“……아, 어…… 음…….”
라일레는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 그렇지요?”
“그래, 갑자기 뭘 이러시면 안 된다는 거야? 빨리 이리 와서 앉아라. 꾀부리지 말고.”
“넵.”
라일레는 서둘러 아서의 옆에 앉았다.
아서는 밤늦게까지 길고도 지루한, 전쟁 이야기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라일레는 졸다가 한 번 꿀밤을 먹었다.
“아얏!”
“어허, 어디서 감히 졸아? 온 힘을 다해서 이야기해야지?”
“……네.”
다른 곳에 온 힘을 두고 싶은 라일레였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우, 우리 군주님은…….’
그렇다.
아서 군주는 천상 고자였던 거다.
있어도 쓸 줄 모르는 천상고자.
‘……우리가 애를 낳으려면 내가 덮치는 게 더 빠르겠어.’
라일레는 한숨을 쩌어억 하며 생각했다.
아침이 밝도록 그들의 뜨거운(?)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되었다.
* * *
군주게임.
바알 대군주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서 대군주…….’
최초로 인간이 대군주의 자리에 오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인간 대군주가 너무나도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바알의 경우 놈과 이미 전투를 한 번 치렀다.
놈은 자신을 던전 안으로 유인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처참히 유린하며 대군주의 권능 중 하나인 심장 포식자를 단숨에 파괴시켜 버렸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위험해…….’
본래 대군주들은 셋이서 함께 군주게임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바알 대군주는 알았다.
아서 대군주는 자신이나 혹은 천족 대군주와 손을 잡을 이가 아니었다.
언젠간 친다.
또한, 그 ‘언젠간’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닐 것이다.
그는 허를 찌를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때 자신의 다른 심장 하나가 파괴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심장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그땐 더 이상 살아날 수 없었다.
대군주 바알이 영원한 숙면에 빠지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마법 수정구를 켰다.
마법 수정구에서 용족 대군주가 비쳤다.
“실력 있는 용족 전사들을 모으지. 난 가장 뛰어난 마족들을 선출하도록 하지.”
-그 말은…….
용족 대군주는 그에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바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마법 수정구 너머의 용족 대군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군주들이 있는 대륙으로 내려간다. 미리 리미스로부터 받아두길 잘했군.”
아직 마계와 인간계는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상한 힘을 부리는 천족 대군주 리미스에게는 있었다.
영지 이전 텔레포트.
그걸 이용해 인간계로 내려갈 것이었다.
그리고.
‘놈이 더 머리가 크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겠어.’
그의 눈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