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군주회귀록 203화
‘…….’
아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네, 내 동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아스폰 황제의 물음이었다.
정말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동생이라고 하시면……?”
“라일레 말일세.”
“아……!”
그 말에 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갑자기 라일레에 대해선 왜 묻는단 말인가.
심지어 바로 지금.
라일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아스폰은 거의 아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찻잔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아 저 찻잔을 들어 당장에라도 자신의 머리를 한 대 내리칠 것만 같은 기세였다.
“라일레 전하는 뛰어난 전략가시죠.”
“그뿐인가?”
그 말에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그에 아스폰이 헛기침을 뱉었다.
갑자기 마음이 상했다.
감히 내 예쁜 딸을 고작 그 정도로밖에 생각 안 해!?
“아니, 그런 것으로 말고 여자로서 말일세. 얼굴도 아주 아름답고 성격 또한 아주 조신하지 않은가? 또한, 꽃꽂이 같은 것이나 십자수를 하는 것도 아주 잘하지.”
“…….”
그 말에 아서는 며칠 전 천족들을 학살할 때를 떠올렸다.
루시아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천족의 가슴팍에 검을 꽂고 뽑아내며 하던 말.
‘아씨, 짜증 나게 길을 쳐 막냐.’
그녀는 아서와 함께 하면서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자신에게 물든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성격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조신하다고요?”
그리고 아서는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지, 내 동생만큼 조신한 아이가 어딨나.”
“흠, 글쎄요?”
벌떡-
그 말을 들은 아스폰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목구멍 끝이 근질거린다.
‘이 자식을 당장 사형시켜라!’
감히 자신의 여동생을!
사실 아스폰은 아서가 라일레에게 마음이 없길 바랐다.
왜냐, 그녀를 아서에게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로서 트집 잡을 것은 많다.
황녀인 네가 일개 기사의 아들과 혼인할 수 없다. 혹은 전장의 귀신은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인물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등등 핑계 댈 것은 많다는 거다.
하지만 현 황제 아스폰은 그런 거로 동생과 아서의 앞길을 막고 싶진 않았다.
때문에 순수한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건만.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닐세.”
아스폰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자네, 혹시 내 동생이 자네한테 혼인을 올리자고 하면 뭐라고 할 건가?”
* * *
아서가 라일레, 즉, 루시아에게 말했다.
“미쳤군,”
“…….”
루시아는 막상 싸늘한 아서의 눈빛과 마주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루시아는 뜻을 굽히지 않기로 했다.
이런 날을 위해 준비해 온 ‘아서 군주님을 내 남자로 만들기 계획 101가지’ 중 하나를 실현하기로 했다.
“군주님, 소인이 과연 정말 군주님과 혼인을 올리고 싶어 그런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
그 말에 아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아스폰 황제께 한 것이냐.”
“……그야 당연히.”
그녀는 이를 드러내 싱긋 웃었다.
“당신에게 힘을 쥐여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
“예. 군주님께선 지금 이필립스 제국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또한, 전장의 귀신은 전쟁터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많은 자가 아직도 군주님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사실이다.
신분이 하찮다 하여 깔보는 후작, 마법사, 기사 등등이 지천에 널렸다.
“한데, 만약 저의 남편이 된다면요?”
루시아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그리고 속으로 쾌재 했다.
‘좋았어, 아서 군주님은 내 거야!’
그리고 실제로 묘한 설득력이 있는 루시아의 말에 아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루시아가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그녀도 정말 뼛속까지 약아졌구나.’
아서는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또한, 앞으로를 위해 도와주기 위함임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앞으로를 위해 거짓된 사랑을 말하다니.’
그리고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은 잘 알았구나. 하지만 나를 위해서 나의 남편이 되어도 되겠느냐?”
아서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해졌다.
“뭐, 군주님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마치 대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아서 군주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그래? 어쩌면 아스폰은 우리를 통해 아이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그, 그런…….”
하지만 루시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아서는 그러다 이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권력은 스스로 얻겠다.”
그에 몸을 돌리고 가려고 하는 아서!
루시아는 지금 자신의 계획이 망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졌다.
“괜찮습니다!”
사실 루시아는 격하게 가지고 싶었다.
군주 아서의 아이를!
루시아는 신이 내렸다고 할 정도로 아주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인!
또한, 아서도 차라리 여자라는 게 더 신비성이 있을 정도로 예쁘고 잘생긴 이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여자라면 많은 남성을 홀릴 것이고 남자라면 많은 여성을 울게 할 것이다.
“그래? 고맙구나. 네가 날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해 줄 줄은 몰랐구나, 루시아.”
“아닙니다, 군주님. 참.”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
아스폰이 아까 했던 말.
‘근데 안타깝게도 루시아. 아서는 너에 대해 큰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구나.’
그러면서 입술이 실룩샐룩 기쁨에 겨워 움직였던 아스폰 황제!
“이제 쐐기를 박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습니까?”
* * *
다시 자신을 만나 뵙기를 청하는 아서에 아스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아스폰의 집무실에 들어온 아서!
그는 들어오자마자 넙죽 아스폰의 앞에 엎드려 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사실은, 사실은 이미 저와 라일레는 만나고 있던 사이였습니다.”
“……!”
사실 아서가 관심이 없어 그래도 둘 사이는 이렇게 흐지부지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아스폰이었다.
한데, 지금 아서의 말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었다.
“뭐, 뭐라!?”
“저희의 만남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또한, 저는 라일레 저하를 아주아주 사랑하고 있습니다.”
“……!”
그에 아스폰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또한, 지금 국민은 전장의 귀신을 매우 아끼고 있었다.
귀족들은 아닐지도 몰랐으나, 국민에게만큼은 전장의 귀신이 가히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실 라일레의 남편으로 아서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은 이.
하지만 그래도.
‘내, 내 동생 라일레야!’
아스폰은 괜히 가슴 한구석이 허해졌다.
그리고 아서는 딱 지금 이런 기세였다.
‘매형! 동생을 제게 주십쇼!’
아스폰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저희는 혼인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폐하!”
“……X발.”
“예?”
“아, 아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어 버렸던 아스폰.
그는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허, 허락한다.”
이렇게 라일레에 의한 사기 결혼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 *
그레모리와 올리아는 아서가 현실에서 돌아오자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앙? 군주님 왔어요!?”
올리아는 여느 때처럼 개껌을 입에 물고 신나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또한 그레모리는 오늘도 멋지신 군주님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중대하게 발표할 사항이 있다.”
“중대한 사항이요?”
얼마 전 리미스의 남은 잔당들을 모두 해치운 아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바알 대군주를 끌어내리는 것뿐이었다.
바알 대군주만 끌어내린다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후의 전쟁?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아서는 남은 두 대군주를 죽이고 이제 혼자서 이 군주게임 전체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그와 관련한 말씀을 하시려나?’
그에 따라 그레모리가 서둘러 발카스 영지의 주요한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아서는 그들을 싸악 하고 둘러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 현실에서 결혼한다.”
“마앙?”
툭!
올리아가 물고 있던 개껌이 떨어졌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그레모리가 멈칫했다.
맛있는 빵을 우걱우걱 먹고 있던 아리스가 토끼 눈을 떴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레모리가 물었다.
“누, 누구랑 말입니까? 혀, 현실 속에서 만나고 계신 여성분이 계셨던 겁니까?”
그러면서 한편으로 위안했다.
그래, 현실 속의 군주님은 연애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군주게임 안에서만 군주님이 자신의 것이 되면 그만!
그리고 이어 아서가 다시 한 말에 그레모리는 충격받고 말았다.
“루시아랑.”
“컥!”
“헐……?”
“…….”
“…….”
“…….”
그 말을 들은 발카스 영지의 간부진들은 모두 말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들은 알았다.
‘루, 루시아 양이 결국 선수를 쳤구만!’
‘자베스, 루시아, 그레모리. 셋 중 군주님을 누가 차지하나 했더니……!’
‘허어, 과연 루시아 군주님의 저력은 대단하시도다! 호, 혹시 이미 잠자리를 가지신 걸까?’
그리고 이어 아서가 말했다.
“너무 그러지들 마라, 내가 루시아와의 결혼은 즉, 황제의 힘 일부를 가지는 것을 뜻하는 것일 뿐. 큰 뜻은 없다.”
그 말에 그레모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아차 했다.
가장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그럼 잠자리도 갖지 않겠군요?”
그녀가 빙긋 미소 지었다.
언젠간 군주님이 나이가 드시고 침실에서 자신을 거칠게 덮쳐오는 상상을 줄곧 했던 그레모리다.
그에 아서가 말했다.
“잠자리는…… 가져야 할 것 같더군.”
“……!”
그레모리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리고 아서가 말했다.
“루시아 말로는 자식은 한 열 명 정도 낳는 게 좋을 것 같다던데…….”
“허어?”
“헉!”
“여, 열 명 말입니까?”
그에 당혹한 그레모리가 말했다.
“열 명까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뭐, 그녀 말로는 한 명은 소드 마스터, 한 명은 대마법사, 한 명은 흑마법사, 또 한 명은 네크로맨서…… 그렇게 키워서 전력을 보강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더군. 핏줄이란 끈끈한 것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더구나.”
그에 그레모리는 알 수 있었다.
‘이 영악한 루시아가 이미 미끼를 다 던져놨군.’
그리고 연애 고자와 같은 군주님께선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레모리는 군주게임에서라도 아서를 가지기 위한 1,001가지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올리아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이 방법은 어떨까 올리아. 군주님의 물에 흥분제를 타는 거다! 그래서 나를 덮치시는 거지!”
“…….”
“아니, 이 방법은 어떠냐, 올리아? 내가 대리인 화장실이 고장 났다고 하여 군주님의 방 안에서 씻다가 군주님이 들어오는 거야!”
“…….”
“오, 이것도 좋을 것 같군. 흥분의 연금 포션! 이걸 마시면 건강한 남성은 무조건 해야 한대!”
올리아가 중얼거렸다.
“마아앙…… 그, 그레모리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