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군주회귀록 193화
하지만 아서에게 그 알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무차별적으로 그레모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감히 하찮은 인간 따……!”
그레모리가 성난 목소리로 외치려는 순간.
짜악!
아서가 그녀의 뺨을 때렸다.
아서는 결코 친절한 군주가 아니다.
뺨을 맞은 그레모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시 막 공격하려는 순간, 다시 한번 아서가 뺨을 때렸다.
짝!
뒤로 물러난 그레모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느덧 벽에 등이 닿은 그레모리가 말했다.
“마신께 영광을!”
그녀는 양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자신의 죽음 전에 그에 대한 찬양을 한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도 소년 군주는 목을 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소년 군주는 오히려 그레모리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이제 몇 대 맞고 정신 차렸으면 돌아가자, 그레모리. 나 힘들어 죽겠다.”
“나를 놀리……!”
그레모리는 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머릿속에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아주 예전에 그레모리의 정체가 마신의 군단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가 혹시 아서가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했던 때의 기억이었다.
‘관련이 없진 않다. 그레모리.’
‘……예?’
‘내 대리인이 한때 그렇게 멋진 자였단 말이지.’
그때 아서는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말해줬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그레모리, 만약 네가 기억을 찾고 날 떠나려 한다면.’
그때 아서는 누구보다도 멋있었고 누구보다도 더 최선을 다해 지켜야할 군주라고 생각되었다.
‘끌고 와서 내 옆에 계속 두마. 그리고 혹시나 내가 널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마라.’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기억.
그 기억에 그레모리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꺄아아아악!”
[너의 자리를 지켜라, 그레모리. 불사의 군단장 그레모리!]
또다시 정체모를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거참. 그 마신 새끼. 시끄럽군.”
얼굴을 구긴 아서는 그레모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혼란스러워보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아서와의 즐거운 기억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리고 이어.
그레모리가 말했다.
“정말…… 절 데리러 와주셨군요. 군주님.”
초점 없던 그녀의 눈동자가 생기를 찾았다.
그녀의 볼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오로지 그만을 섬기고 그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수백 수천 번을 다짐했었건만.
“이제 돌아가자, 그레모리.”
“예.”
그레모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서의 앞으로 다가갔다.
“절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주님.”
아서는 그저 말없이 웃다가 말했다.
“올리아가 밥 줄 사람이 없다고 아주 화가 나 있어.”
“이크, 못난이 개가 난리를 피우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군요.”
“그렇겠지.”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러다 아까 전에 들었던 알림이 기억났다.
디아블로와 베이크의 융합.
고개를 돌린 아서는 디아블로의 피부색이 조금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검기만 했었던 녀석의 피부색이 이젠 은빛으로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디아블로)
소환수
HP:16,000 MP:7,700
총합 공격력:2,003
총합 방어력:1,134
등급:SSS
잠재력:164
특수능력:
•디아블로의 발자취
‘……!’
아서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디아블로의 능력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등급은 이제 SSS급이었다.
엄청난 등급, 그리고 엄청난 공격력과 방어력이었다.
‘대단하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알림이 들렸다.
[마신의 영역. 불의 영역을 나서기 위해선 원점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서는 고개를 돌렸다.
파앗!
디아블로가 사뿐히 민혁의 옆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레모리가 자신의 단도를 꽉 쥐었다.
이제 이곳을 나가야 할 때였다.
“와아아아아!”
밖에서 마족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레모리, 네가 실망시키는구나!]
마신 이그니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에 그레모리가 말했다.
“누구세요?”
[감히! 감히!]
그레모리는 피식 웃었다.
“내가 모시는 건 오로지 아서 군주님뿐이거든.”
곧이어 문이 열리며 그 안으로 마족들이 물밀 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앗!
디아블로가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엄청난 빠르기로 순식간에 앞을 채우고 있던 마족들을 정리했다.
“……우리가 할 일이 없겠는데?”
공격력이 두배 강해졌다는 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공격력이 1인 사람이, 둘이 있는 것보다 공격력이 2인 사람이 그 둘을 압도하는 법이다.
파핫!
단 5분도 안되어 앞을 가로막는 마족들을 처리한 디아블로가 고개를 돌렸다.
“가시죠.”
아서와 그레모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 * *
“마아아앙…….”
올리아는 군주 아서가 마계로 간 이후로 식음을 전폐했다.
그 아끼며 가지고 놀던 닭다리 장난감조차 가지고 놀지 않고 있었다.
입구 앞에 턱을 대고 앉아 있는 올리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리아. 들어가자, 날이 춥다.”
성녀 아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올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레모리와 군주님이 돌아오면 그때 들어가겠어!”
그에 아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때였다.
푸화악!
그 안에서 한 존재가 비집고 튀어나왔다.
바로 디아블로였다.
“마아앙?”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못 생긴 마족아, 군주님과 그레모리는?”
그 말과 함께.
“여기 있다.”
먼저 아서가 공간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올리아의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이어서 공간을 비집고 또 다른 존재가 나왔다.
바로 그레모리였다.
“못생긴 개야, 잘 있었느냐?”
그레모리의 등장에 올리아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들의 주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헥헥헥헥!”
숨이 거칠게 차올랐지만 올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레모리의 앞으로 다가가 안아달라며 깡충깡충 뛰어댔다.
“못난이 개가 발정시기가 왔나, 왜 그렇게 뛰어다니는 거냐. 읏차!”
그레모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츤츤모리처럼 행동했다.
올리아를 안아주었고 녀석은 그녀의 볼을 연신 핥아댔다.
“마아앙, 바보 모리. 돌아와서 기뻐!”
“나도 기쁘다.”
그레모리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곧 그녀가 성 외곽을 둘러보자 영지민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그레모리님이 돌아오셨어!”
“대리인님이 돌아오셨다!”
“와아아아아아!”
그들의 환호 속에서 그레모리는 빙그레 웃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제 자신이 있을 곳은 마계가 아니다.
바로 이곳.
발카스 영지가 그녀의 고향이며, 발카스 영지만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다.
* * *
늦은 밤.
아서는 그레모리가 잠이 든 방의 문을 슬쩍 열었다.
침대 위로 곤히 잠든 그레모리와 그 옆에 몸을 둥글게 말고 나란히 잠이 들어 있는 올리아가 보였다.
아서는 빙긋 작은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일이 많았다.
아서도 많이 피곤했지만 오늘 얻었던 그 녀석을 생각하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신의 권능…….’
아서는 아까 전에 불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면서 이런 알림을 들었다.
[불사의 군단 정예군단 100을 획득합니다.]
[신의 권능. 부활자를 획득합니다.]
부활자.
놀라운 능력이었다.
죽어서도 딱 1회 뿐이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믿기지 않는 어마어마한 능력이었다.
‘다시 부활한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아쉽긴 했지만 충분히 흡족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곧…….’
그리고 아서는 떠올려봤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날이다.
오르웬의 얼굴이 끔찍한 화상에 뒤덮였던 날.
바로 크록이라는 마법사가 황제의 도시에서 대학살을 펼쳤을 때다.
이 학살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아서는 황제를 알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앞으로의 현실에서의 변화에서도 황제의 힘은 꼭 필요했다.
크록에 의한 학살을 아서가 막아낸다면 황제와 알현하기 더 쉬워질 지도 몰랐다.
일단 아서는 오늘은 자야겠다는 생각에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현실.
연회장.
무수히 많은 귀족들이 술을 즐기며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오늘만큼은 여성처럼 드레스를 입은 여인, 오르웬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그녀는 제국의 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연회는 오로지 마법사들이 모인 파티였다.
그리고 오르웬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간단했다.
‘크록.’
그녀는 아서에게로부터 크록이 자신의 얼굴에 끔찍한 화상을 남길 거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크록은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직 학살이 벌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서가 말하기로 크록은 본래 다른 제국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제국에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들로 인해, 그들의 명령을 듣고 학살을 감행한 거라고.
‘괜한 목숨을 앗아가게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구슬려 보는 게 좋겠지.’
오르웬은 구슬려 적의 위를 알아내자는 생각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 저 어린 소년이 바로 전장의 귀신인가?”
“호오, 놀랍군.”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르웬이 피식하고 웃었다.
한 귀족이 의문을 드러냈다.
“한데, 이 자리는 마법사들만을 위한 연회일지인데?”
“제 손님입니다.”
“크흠! 그렇군요.”
마법사들 대부분은 수준 높은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사들의 위에 서있다고 믿는다.
하물며 전장에서 뒹구는 자들은 고깝게 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르웬이 말하자, 사내의 말이 쏙 들어갔다.
오르웬은 마법사이지만 기사이기도 한 마검사.
또한, 그녀의 실력 또한 남달랐기에 함부로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 아서가 어느덧 오르웬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르웬의 손님이라는군.”
“오르웬 양이 전장의 귀신을 안다니, 의외의 일인데?”
“저런 어린 소년이 전장의 귀신이라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아서는 개의치 않아했다.
“아름다우시군요. 교관님.”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줄래?”
오르웬이 싱긋 웃었다.
아서의 능청스러움을 아는 그녀였다.
그러던 중, 오르웬은 느꼈다.
‘왜 기사들이……?’
마법사들만이 대부분 모이는 자리였지만 이 자리를 지키는 자들은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검과 갑옷을 착용하고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그녀는 피식하고 웃었다.
아서는 시골영지의 하찮디 하찮은 준남작의 아들이었다.
그 때문에 기사들이 보았을 때는 어리고 또, 전쟁터에서 구르는 아서가 다소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다르게는 소문으로만 듣고 들었던 전장의 귀신의 실력을 직접 보고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오르웬은 ‘흠.’ 하는 표정으로 무시해 버렸다.
아서도 그걸 신경 쓸 이는 아니니까.
그러면서 오르웬은 오늘 파티의 차례를 확인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대련?’
그녀는 오늘 연회의 차례에 대련이 있자 의아했다.
그녀는 미간을 좁혔다.
‘연회장에서 웬 대련?’
아마 파티의 한 부분으로 넣었겠지만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아서가 파티에 참가한다는 걸 알고 이 파티를 개최한 이.
마법사 고흐가 꾸민 일이 분명했다.
6클래스 마법사 고흐!
그는 마법사였지만 휘하로 강력한 기사들도 부리고 있는 이였다.
그가 분명히 전장의 귀신을 자신의 수하들이 때려잡는 모습이 보고 싶어 이런 깜찍한 짓을 벌인 게 분명했다.
‘하여튼, 짓궂은 늙은이 같으니.’
오르웬은 쯧 하고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