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군주회귀록 192화
그레모리는 확신했다.
저 인간과 전신 디아블로는 결국 본 드래곤 제이크와 화룡 발라타스에게 죽을 것이라고.
마계의 3대 재앙과 같은 그들을 고작 저 둘이서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화룡 발라타스는 본래 마신 이그니스가 아끼던 녀석.
그가 그레모리를 위해 선물해 주었다.
또한, 본드래곤 제이크의 경우 죽음의 드래곤들의 수장격인 녀석으로써 불의 영역의 수호자 같은 녀석이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군요.”
베이크의 입에서 놀란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레모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정구로 고개를 돌렸다.
화룡 발라타스가 거친 포효성을 터뜨리며 두 존재를 갈가리 찢어발기기 위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때 인간 소년의 바로 뒤쪽의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뱀 한 마리가 튀어나와 화룡 발라타스의 목을 깨물었다.
“크라라아아악!”
“키이이이이이!”
“저 거대한 뱀은 뭐지?”
그레모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한 뱀은 화룡 발라타스의 몸을 꽁꽁 휘감기 시작했다.
화룡 발라타스가 몸에서 뜨거운 화염을 분출시켰다.
푸화아아아아아악!
“키이이이이이!”
콱콱!
하지만 거대한 뱀은 멈출 줄을 몰랐다.
발라타스의 목을 계속 물어대며 온몸으로 칭칭 휘감았다.
뿌드드드득!
전신 디아블로가 그 틈을 노려 화룡 발라타스에게 덤벼든다.
“키이이이!”
본드래곤 제이크가 화룡 발라타스를 돕기 위해 날아갔다.
그의 입에서 거센 브레스가 뿜어져 나갔다.
수십의 마족조차 한 줌 잿더미로 만드는 강력한 힘!
그 순간 또다시 공간을 비집고 한 존재가 튀어나왔다.
푸화아아앗!
나타난 존재는 등 뒤로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피부는 은빛으로 번들거렸다.
“세계수 사냥꾼!?”
베이크는 그 존재에 대해서 알아봤다.
세계수 사냥꾼이 브레스를 상쇄시켰다.
그와 함께 힘껏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지이익!
밑으로 쳐박히는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간 소년이 서둘러 거리를 좁히며 창으로 본드래곤 베이크를 공격했다.
푸화아아앗!
끝이 아니었다.
“이, 이프리트…….”
소년에게서 또 다른 소환수가 나타났다.
바로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였다.
전신 디아블로와 거대 뱀은 화룡 발타라스를 처참히 유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프리트, 인간 소년, 세계수 사냥꾼은 본 드래곤 제이크를 압박하고 있었다.
콰자자작!
세계수 사냥꾼의 움직임에 따라 본드래곤 제이크의 몸 곳곳에 균열이 생겨났다.
콰지익!
곧이어 마지막 한 방을 선사하고 세계수 사냥꾼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졌다.
아마도 소환능력의 제한 같았다.
하지만 이미 본드래곤 제이크는 꽤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인간소년과 이프리트.
이 두 존재에 의해서만 해도 처참히 유린당했고 곧이어 상황이 종료되었다.
화룡 발타라스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본드래곤 제이크의 뼈가 모두 아작나 땅을 뒹굴었다.
그리고 거대한 뱀과 이프리트가 사라졌다.
하나 인간소년과 마족도 멀쩡해보이지는 않았다.
둘 모두 크게 지쳐보였다.
곧 그들이 뚜벅뚜벅 거대한 문앞으로 걸어왔다.
소년이 창을 힘껏 휘두르는 순간
콰지지지지직!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버렸다.
그 둘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이크.”
“예.”
“전투를 준비해라.”
* * *
아서와 디아블로가 드디어 마신의 군단장인 그레모리가 거느리고 있는 영지에 도달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영지의 영지민들이 보였다.
마족은 마족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장기를 들고 아서와 전신 디아블로에게 당장 덤벼들 것 같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아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바글바글할 정도로 많은 마족들.
이마에 손을 짚었다.
“미치겠군.”
한숨을 크게 쉰 아서.
이놈들은 또 어떻게 정리하고 가나 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길을 터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에서 들리는 그 목소리는 아서가 매우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서는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측근에서 가장 자신을 아끼고 따라줬던 수하가 이젠 적이 되어 자신에게 칼을 겨눈다.
피식-
이처럼 우스운 상황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마족들은 눈치를 보며 쉽사리 비켜서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비켜서라!]
곧이어 거대한 화염이 땅에서 솟구쳤다.
화르르르르륵!
그와 함께 마족들이 길을 터기 시작했다.
아서와 디아블로는 그들이 터준 길을 통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먼 곳에서 보이는 거대한 성은 발카스 영지의 성만큼이나 화려해 보였다.
성 앞에 다다르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끼이이이익-
아서와 디아블로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병장기를 찬 마족들이 전투준비를 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신 디아블로는 그들을 경계했고 아서는 계속 걸어 들어갔다.
그들도 아서와 디아블로를 원을 그리고 포위한 채 따라서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문 앞에 아서는 도착할 수 있었다.
왕좌가 있는 곳.
끼이이이익-
그곳의 문이 열렸다.
그와 함께 왕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그레모리와 그 옆에 전신 디아블로와 똑같이 생긴 생김새의 마족 하나가 있었다.
“……?”
전신 디아블로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자신과 생김새가 똑같은 마족이라니?
하지만 곧 평정심을 찾았다.
“인간 소년이 제법이구나.”
그 말에 아서는 이마에 탁! 하고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집 나간 대리인 찾기 힘들어 죽겠네, 이제 좀 돌아가자. 그레모리.”
“무슨 미친 소릴 하는거냐.”
그레모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집 나간 대리인이라니?
기억이 나질 않는 그녀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불사의 군단장, 그레모리인 자신을 대리인이라고 칭하다니.
“넌 나의 대리인이었다. 나를 누구보다 아꼈고 누구보다 영지를 위했던. 다소 차가운 듯 보였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족이었지.”
“개소리.”
그레모리는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불사의 군단장 그레모리인 자신!
그런 자신이 마음이 따뜻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은 법을 어긴 자를 단칼에 단죄한다.
심기가 비틀리면 무슨 짓이든 했다.
또한, 자신이 섬기는 자는 오로지 하나!
마신 이그니스뿐이었다.
“돌아가자, 올리아가 기다린다.”
뚜벅뚜벅 뚜벅-
“기억 안 나냐? 네가 매일 멍청한 개라고 했던 그 올리아 말이다.”
아서가 한 걸음 한 걸음 그레모리를 향해 걸어갔다.
주변의 마족들이 거리를 좁혀 목에 검을 겨냥한다.
하지만 아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 좀 치우라고들 해라.”
그 말에 그레모리는 황당했다.
너무나 당당한 요구!
곧 그레모리가 차갑게 말했다.
“죽여라.”
그 순간, 목을 겨냥한 검 하나가 움직여졌다.
서둘러 상체를 숙여 창으로 그 마족의 목을 꿰뚫었다.
사방팔방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채채채챙!
그 공격들을 쳐내며 아서는 빠르게 놈들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레모리의 옆에 서 있던 디아블로와 똑같이 생긴 마족.
베이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채애앵!
사라졌던 베이크는 전신 디아블로의 앞에서 나타났다.
“나와 똑같이 생겼구나.”
“네가 나와 똑같이 생긴 거겠지.”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파핫!
파핫!
파하핫!
둘의 병장기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이어서 그레모리의 손으로 화염의 활이 생겨났다.
그녀가 활시위를 당겼다.
찌이이이익-
아서를 겨냥한 그레모리는 활시위를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왜 놓질 않는 거냐, 그레모리…….’
활시위가 놓아지질 않았다.
머리는 그러라고 시키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오히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봐. 넌 나 못 쏴.”
“개소리.”
하지만 곧 그레모리가 힘을 내어 활시위를 놨다.
수우우우웅!
화르르르르륵!
화염을 머금은 강력한 화살이 아서를 향해 날아갔다.
아서가 창을 빠르게 휘둘러 화살을 허공에서 산산조각 냈다.
그다음, 마족들을 베고 그레모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레모리가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들었다.
“근데 너 그거 아냐?”
“……?”
“지금 뽑은 그거 내가 준 거다.”
“……뭐?”
그 말에 그레모리는 천천히 단도를 내려다봤다.
기존에 사용하던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내려다봤지만, 아니었다.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그곳에 ‘대리인 그레모리’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검날에 정체모를 강아지의 발자국 같은게 새겨져 있었다.
“아, 그건 올리아가 내가 선물하려고 했을 때, 옆에서 자신도 이름 새길 거라며 발 도장 쿡 찍은 거고.”
“…….”
그레모리는 도통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눈을 부릅 떴다.
“개소리하지 마라!”
그레모리가 아서를 향해 힘껏 달려왔다.
쫓아오는 마족들을 쳐내며 그녀에게 향하던 아서가 싱긋 웃었다.
“싫다면 무력으로 데려갈 수밖에.”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유도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서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창을 힘껏 찔렀다.
수우웅!
“호오, 강하구나. 그레모리!”
“닥쳐라!”
그레모리가 가뿐히 아서의 창을 피해냈다.
그리고 단도를 휘둘렀다.
태태태태탱!
그레모리는 확실히 각성하기 전과 후가 엄청나게 달랐다.
그녀의 공격이 꽤 매서웠다.
하지만 아서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푸지익!
아서의 창끝이 그녀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허공에 흩어졌다.
“큽!”
챙챙챙챙!
그녀는 매섭게 아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녀의 단도가 아서에게 닿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
푸화아악!
디아블로가 베이크를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베이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와 닮은 놈.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하고 노련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베이크는 불의 영역에서 그레모리를 수호했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경우 어린시절에 전쟁터에 버려졌다.
버려진 디아블로는 그곳에서 각종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경험의 차이, 베어 넘긴 적의 수.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달랐다.
디아블로의 이도류가 그의 가슴을 횡으로 베었다.
푸쉬이이익!
“큽!”
베이크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디아블로의 이도류가 베이크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형제…….”
베이크는 그 말로 잠시 틈을 만들려고 했다.
베이크 또한 디아블로처럼 감정이 없었고 자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아블로는 무심하게 말했다.
“형제? 내겐 존재하지 않는 거다.”
푸슈유유유육!
디아블로의 이도류가 망설임 없이 베이크의 목을 베어내었다.
디아블로가 이도류에 묻은 피를 털어낸 순간 베이크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디아블로의 몸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디아블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으로 베이크가 빨려 들어온다?
한데, 이질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본래의 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져 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디아블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와 다르게 그레모리와 충돌하고 있던 아서는 이런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디아블로가 베이크를 흡수합니다.]
[디아블로가 진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