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회귀록-161화 (161/210)

# 161

군주회귀록 161화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야기를 엿들은 알론은 둔탁한 무언가에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했다.

그래,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롤드는 갈 곳 없는 자신들을 거두어주었고 병으로 인해 몸져누운 누나를 재워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알고 보니 롤드가 계획한 것이다.

“사람이 할 짓이야……? 그게?”

“음……”

롤드는 얕은 신음을 흘리며 그가 꽉 쥔 식칼을 바라봤다.

알론은 투기장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러를 익히지 않은 기사, 혹은 3클래스 이하의 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투기장은 보통 그 급의 미만.

반대로 칼루만 백작은 자그마치 호위를 기사들로 두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롤드는 이죽 웃었다.

어차피 모든 건 탄로 났다.

“내가 먹였지, 그 약. 네놈은 누나가 나으면 이곳을 떠났을 테니까. 그동안 덕분에 돈 좀 만졌다. 또 마지막은 네 누나 덕분에 크게 건지는구나.”

그는 손가락을 비비는 시늉을 하며 이죽 웃었다.

“이 x새끼들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끓어오르는 울분이 참아지질 않았다. 알론이 달려나갔다.

기사들이 칼루만과 롤드의 앞을 막아섰다.

그 울분이 무색하게도 알론은 곧바로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에게 제압당한 알론은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빌어먹을 놈들, 내가 다 죽여버리고 말겠어!”

퍼엇!

“컥!”

거친 숨을 토해내는 그를 보며 롤드가 몸을 낮췄다.

“너희 같은 인생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 네 누나는 칼루만 백작께서 아주 귀여워 해주실 거다.”

끔찍했다.

다른 제국으로 붙잡혀와 포로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갔다.

물론 감옥에 갇힌 자들보다는 낫다 할 수 있지만, 자신들과 같이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받은 자들에게도 지옥과 같았다.

이 끔찍한 지옥.

누가 제발 저들을 죽여줬으면 좋겠다.

빌어먹을 개새끼들!

그때.

“더러운 곳이구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루만 백작과 그 기사들이 미간을 구겼다.

롤드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로브를 걸치고 있는 키가 비슷한 두 사람이 있었다.

먼저 한 명이 벗었다.

붉은빛 머리카락을 단발로 기른 여인.

오르웬.

그다음 다른 이가 로브의 후브를 젖혔다.

아서였다.

***

아서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알론을 보았다.

‘총 던전 마스터는 우리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세상이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철저히 이용만 당했다.

알론은 바로 오늘 이 사실을 알고 롤드에게 덤벼들었지만, 온몸의 뼈가 부러진 채로 팔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노예 생활을 하면서 혼자 이곳 프라스까지 온다.

하지만 그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누나는 칼루만 백작에게 능욕당하다가 결국 독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한데, 칼루만 백작 이 끔찍한 자는 죽은 자에게 성적 의욕을 더 느꼈다더라.

죽은 그녀를 또 탐하고, 탐하고 탐하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에 알론은 재판을 준비했다.

이 사실을 재판부에 고했으나 결과는.

‘사건을 수사할 수 없음.’

그것이 바로 알론이 받았던 처분이었다.

칼루만은 생각보다 힘이 있는 귀족이었다.

감히 포로 따위의 말을 들어줄 재판장도 아니었다.

이필립스 제국에는 ‘포로 보호법’이 존재한다.

이는 아무리 포로로 이필립스 제국으로 이주했다고는 하나, 자유 포로들의 경우 그 신분이 확실하고 이필립스 제국에서 살아갈 것을 명백하게 약속한 자들이라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였지만, 그는 지켜질리 만무했다.

그리고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소환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던전 마스터 훈련을 받았다.

그다음엔.

‘던전 마스터 총사령관 알론이 되었다.’

끔찍한 이야기다.

단 1년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한 그는 이필립스 제국의 수도 프라스를 삼켰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황궁을 무너뜨리고 무수히 많은 귀족, 그리고 더 나아가 무고한 자들까지 죽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구경났어? 썩 꺼져.”

롤드가 으르렁거렸다.

그 주위로는 롤드의 패거리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르웬은 굉장히 불쾌한 기색이었고 칼루만은 그런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르웬은 이러한 일에 보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심한데?”

오르웬이 피식 웃었다.

기사들이 모여든다.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알론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주먹을 부르르 쥐고 있다.

“곱상한 계집년은 잡아서 팔면 되겠고 저 예쁜 꼬마는 동성애를 가진 귀족 나리께 팔면 되겠구나.”

롤드가 이죽 웃는 순간.

수십 명의 인사가 달려들었다.

아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르웬은 황실에 소속된 황실 마법사.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는 황실의 즉형 기사단의 단장이기도 하였다.

즉형의 기사단은 곧바로 형을 집행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퍼엇!

달려오던 무리 중 하나가 둔탁한 빛의 구에 맞고 뒤로 고꾸라졌다.

“마법사……?”

롤드가 미간을 구겼다.

마법사는 상당히 귀하게 대접받는다.

아니, 기사들보다 위에 섰고 그들은 2클래스만 올라도 준남작 대우를 받는다는 것.

“서둘러 죽여라, 저년을 죽이고 이곳을 뜬다.”

귀족 모욕죄는 즉참과 같다.

또다시 매섭게 달려들었다.

오르웬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이 떠올랐다.

평범한 1클래스 마법 같았지만 오르웬은 오랜 수련 끝에 이 매직 미사일조차 흉기로 변할 수 있게 만들었다.

퍼지익!

또다시 몇몇이 나뒹군다.

단순히 나뒹구는 것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으, 으아아아아!”

한 번 맞은 것일 뿐인데 온몸의 뼈가 바스라 졌다.

하지만 오르웬은 자비 없었다.

푸화아악!

파악!

“카, 칼루만 백작님…… 어, 어서 기사들을…….”

“크흠.”

칼루만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은 엄연히 이름 있는 귀족.

하지만 어차피 저자들이 살아나가면 이 일은 번지리라.

“죽여라!”

“예!”

롤드는 이죽 웃었다.

‘마법사는 근접전에 취약하지.’

아주아주 취약했다.

저 계집에게 노예의 낙인을 찍어, 암시장에 팔면 굉장히 짭짤할 것이다.

미녀 마법사 노예!

스르릉

곧 오르웬이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호오.”

마법사가 검이라?

조금 의외인 일이었다.

롤드도 기사와 마법사의 구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다.

마법사들은 보통 뛰어난 마법을 부리는 만큼, 무력은 형편없다.

하지만 곧.

스르르릉!

푸슈유육!

푸슈유유육!

주변에서 기사들이 뿌린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헉……”

롤드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곧 오르웬이 다가갔다.

“네, 네년……! 내,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오스폰 황태자 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다.”

“친한가 봐?”

칼루만은 당혹하여 일단 던지고 봤다.

친하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황태자 전하와의 만찬에 참여했던 적은 있다.

“그, 그분은 나를 끔찍이도…….”

오르웬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황족들이 자신들이 아끼는 몇몇에게만 주는 황금색 배지였다.

그곳엔 떡하니 황태자 오스폰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

칼루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롤드는 돌아보며 생각했다.

‘조, X 됐다…….’

그렇게 생각할 때.

아서가 움직였다.

파앗!

바람처럼 움직인 아서는 롤드의 멱살을 그 작은 손으로 잡고 있었다.

그다음.

후우우우!

쾅!

바닥에 패대기쳤다.

콰지익!

그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팼다.

“커헉!”

그가 거친 숨을 토해내도 아서는 멈추지 않고 때렸다.

“제, 제발…… 그, 그만!”

그가 그런 소리를 할 때 아서는 멈추고 몸을 낮췄다.

알론은 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아서가 말했다.

“마무리하고 나와라.”

“…….”

곧 오르웬이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에 있는 자들의 몸을 땅속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가 휘감았다.

꽁꽁 묶인 그들을 끌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알론은 땅에 떨어져 있는 단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X 같은 새끼…….”

“아, 안 돼……!”

롤드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알론은 광기에 찬 눈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푸화악!

망설이지 않고 목을 찔렀다.

그마저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를 수차례 걷어찼다.

“커거거걱…….”

목에서 피를 콸콸 흘리던 롤드가 이죽 웃었다.

“X신 새끼…… 네 누나는 죽는다. 푸슬릉의 독약은 절대 해독할 수 없지.”

입에서 피를 흘리는 그.

알론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힘껏 내리쳤다.

콰지이익!

콰지이이익!

콰지이익!

울분이 담긴 주먹이었다.

“빌어먹을!”

퍼지이이익!

“빌어먹으으을!”

퍼지이익!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같은 사람을 개돼지처럼 취급하는가.

이미 죽어버린 롤드의 멱살을 잡고 알론은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곧이어 문을 열고 나갔다.

그 앞에 아까 전 그 소년이 몸을 기대고 표정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가 그 말을 하고 지나치려 했다.

그때 소년이 말했다.

“날 위해 일해라.”

“……”

알론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따뜻한 잠자리, 정당한 대가, 원하는 만큼의 식사. 모두 제공한다.”

피식

그 말에 알론은 웃었다.

저런 말 많이 들었다. 그리고 모두 이용당했다. 어차피 누나가 죽을 마당이었다. 이제 돈도, 무엇도 필요 없다.

그에게 남은 건 세상에 대한 분노뿐.

그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을 때.

먼저 아서가 말했다.

“네 누나는 내가 안전한 곳에 데려다 뒀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알론은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터벅터벅 다가가 망설임 없이.

수우우웅!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소년은 살짝 몸만 틀어 피해내고는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콰지익!

“큭!”

“순순히 따라와라.”

“다, 당신 대체…… 누, 누구야…….”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론은 정강이를 쓸면서도 서둘러 그를 따라 움직였다.

***

알론은 높게 솟은 자택을 보고 입맛을 다시었다.

‘좋은 곳에…… 사는구나…….’

프라스에서 이 정도 규모의 자택이라면 소년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그 안도 꽤 호화스러웠다.

이 집은 아서가 루핀 커피를 판매하면서 벌어들인 수익 외에 대상인 카제와 이야기를 나누어 추가로 몇 가지의 물품을 유통하면서 받게 된 인센티브로 구매했다.

물론 매우 비쌌다.

“누, 누나……!”

알론은 달려갔다.

아서가 문을 열어준 침실에 알레나는 쥐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겁니까.”

“네 힘이 필요하다.”

알론은 그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서는 곧이어 허리춤에 걸려 있는 열쇠를 흔들어 보이고는 침대 위에 올려놨다.

“이 자택의 열쇠다. 이 집은 네 것이다. 단, 이것에 서명한다면.”

약속의 서.

도대체 왜 이런 호의를 보이는 걸까.

대체 이 꼬마는 누군데.

“전장의 귀신이라고 들어봤겠지?”

“……당신이 그 사람입니까.”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전장의 귀신이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는 겁니까. 혹시 저를 키우겠다는 겁니까.”

아서는 그 말에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키운다?

아마도 투기장에서 자신의 격투술을 보고 아서가 이러한 제안을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키운다는 말은 맞지 않지.”

곧 그는 훈련소로 가서 스스로 성장하게 될 테니까.

아서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가 이 마당에 이런 저택에 살아서 무슨 소용입니까.”

알론은 맥 빠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푸슬롱의 독은 절대 해독할 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누나의 손을 쓰다듬어주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저택, 풍요로운 식탁.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어요. 누나만…… 누나만…….”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

아서가 말했다.

“누가 그래?”

“……”

“해독 못 한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