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군주회귀록 145화
이라스 영지.
이곳은 지구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생긴 독특한 생김새의 영지였다.
군주가 가진 클래스는 ‘파라오’였다.
파라오 클래스를 가진 군주 이가누는 막강한 병력을 부렸다.
그는 죽은 자를 관 속에 가둬 10일이 지나면 미라로 부활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졌다.
사실상 다음의 극강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라고 이야기가 있는 게 이가누 군주였다.
이가누 군주의 미라들의 막강함.
그의 병력 미라들이 소연맹 하나를 단숨에 밀어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 이가누 군주는 공포에 떨었다.
영지의 모든 불이 저절로 소등되었다.
아무리 불을 켜려 해도 되지 않았다.
그어어어어!
그아아아아!
미라들이 쏜살같이 적들을 향해 움직인다.
기습을 가한 적들.
미라들이 서둘러 불을 켜기 위해 노력한다.
잠깐 불이 켜지는 그 찰나의 사이.
수우우우웅!
바람처럼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고 미라들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불이 켜진 순간.
“허억!”
이가누 군주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피칠을 한 복면을 쓴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뿌드드득.
이가누의 복부를 비집고 날카로운 단검이 파고들었다.
극강에 도전한다는 이름이 허무하게도 그는 천천히 쓰러져 내렸다.
따악.
그가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
모든 불이 켜졌다.
끔찍한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습격을 가한 병력은 고작 여섯 명 남짓.
피칠을 한 이가누 군주의 복부에 날카로운 단검을 박아 넣었던 이가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부드러운 흑발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오똑 솟은 콧대.
그리고 갸름한 턱선과 조금 위로 치켜 올라간 눈매.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고양이상의 여인은 분명히 엄청난 미녀였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한없이 차가웠다.
촤앗!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그녀.
고작 여섯의 병력으로 400의 막강한 미라를 15분 만에 죽였다.
극강삼인 중 하나.
네크로맨서 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군주.
바로 ‘암살자 시리어스.’였다.
극강삼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긴 하였지만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또한, 그녀의 영지 위치 또한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군주들과 다르게 일주일에 한 번 영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이전할 수 있는 스킬을 가졌다.
이는 그녀의 직업인 ‘암살자’가 가진 무수히 많은 스킬 중 하나였다.
암살자의 스킬은 이렇듯 특별한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푸홧!
푸홧!
푸홧!
복면을 쓰고 있던 유닛들이 모두 검은 기류가 되어 터지듯 사라졌다.
그녀가 죽은 이가누 군주의 몸 위에 앉았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어.”
그녀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대한 까마귀에 향해 있었다.
푸드드득
까마귀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다 순식간에 모습이 변화했다.
바로 네크로맨서 잭이었다.
“15분 만에 400의 미라를 사냥하다니.”
네크로맨서 잭은 감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딴 게 극강삼인 후보라고?”
그녀는 표정 없이 웃는 소리를 냈다.
“네 스킬과 유닛이 너무 어마어마하다고는 생각 안 하나?”
네크로맨서 잭이 짙게 웃었다.
시리어스의 스킬과 유닛들은 잭도 인정할만할 정도로 대단하다.
오인의 암살자들.
이들은 하나 같이 모두가 S급 유닛이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SS급이라고 보기에도 충분한 유닛도 몇 있다.
시리어스는 매번 다른 병력은 데려오지 않고 그들로만 영지를 삼켰다.
그녀는 굳이 전쟁모드를 하지 않아도 적 군주의 모든 걸 포식할 수 있기도 하였다.
뿐만인가?
“1주일에 한 번 이름만 알면 군주를 추적할 수 있다. 이만큼 대단한 능력이 어딨겠어.”
네크로맨서 잭의 말에 굳이 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카일 군주의 추적의 탑도 몇 개월이 소요된다.
그에 반해 그녀는 암살자 클래스답게 1주일에 한 번 이름만 알면 영지 추적이 가능하다.
“이번에 총연맹장들이 내건 공문을 보았겠지?”
물론 그녀도 보았다.
군주 육성기로 군주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언제든 확인 가능하다.
블러스디 땅을 공략할 자들.
그리고 총연맹장들은 하나하나 콕 집어 군주들을 거론했다.
그들이 만약 이번 블러스디 땅 공략에 참가하지 않으면?
총연맹장들과 척을 지게 된다는 건 바보라도 알 것이다.
“그곳엔 네 이름도 있었다.”
시리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할 건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답.
한편으로는 총연맹장들과 척을 진다는 걸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 대륙이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지. 그저 죽이는 것을 좋아하고 갈증을 채우는 것을 좋아할 뿐.’
욕심이 많은 네크로맨서 잭과 달리 금은보화 혹은 강력한 권력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단지.
‘그녀는 더 강한 자를 잡을수록 더 강해지기도 하지.’
네크로맨서 잭은 그를 이용해 그녀를 살살 간지럽혔었다.
아서라는 엄청난 신흥 군주가 있다고.
그가 디아블로를 이겼던 것까지 모두 말해주었다.
그에 그녀는 흥미를 보였다.
“발카스 영지는?”
“내일모레 가도록 하겠어. 붉은 달이 뜨는 날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푸화악!
그녀가 검은 기류가 되어 사라졌다.
네크로맨서 잭은 짙은 미소를 짓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파아아아앙!
파아아아앙!
발카스 영지에서 쏘아 올린 폭죽이 요란하게 터졌다.
발카스 영지에서 축제가 열렸다.
사실상 발카스 영지는 이제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명목상으로는 그런 그들을 위해 아서 군주가 친히 축제를 열어 그들을 달랜다였다.
오늘만큼은 영지의 그 누구 하나도 일하지 않고 놀고먹으며 쉴 수 있도록 하였다.
“으하하하, 한잔하십시오. 랜 대장님!”
“콘디누, 너무 많이 마신 것 아닌가?”
랜이 묻자 콘디누라는 사내가 흑맥주 잔을 흔들면서 웃었다.
“괜찮지 않겠습니까? 저희 영지는 군주들이 찾지 못한 곳에 있다지요. 그 누가 습격을 가하겠습니까.”
그 말을 들으며 랜도 고개를 끄덕이며 콘디누가 어느새 건네준 맥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네 말이 맞다. 그 누가 우리 영지를 습격할 생각을 하겠어. 찾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크하하, 맞습니다. 맞아요. 자자, 월리드. 뭐 하는 건가, 어서 마시지 않고.”
정말이지 영지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투명화 된 자가 있었다.
바로 암살자 시리어스였다.
‘축제라…….’
그녀는 그 두 글자를 곱씹었다.
영지민 모두가 술을 마시거나 각종 오락거리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군주들은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이렇듯 축제를 벌이기도 하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영지민 만족도’가 낮을 때 이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영지민 만족도는 군주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약 영지민 만족도가 낮으면 군주의 카리스마가 하락할 수도 있었고 병사들이 불복종하는 사태도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축제가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까지?’
병사들은 아니라는 거다.
한데, 이 발카스 영지의 병사들은 한껏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긴, 그들 말처럼 이런 외진 곳이라면 어떤 군주가 찾을 수 있겠어.’
대신에 조건이 있어야 했다.
외진 곳에 있는 만큼 땅이 고르지 못해 벌목장과 농장이 본래의 힘을 발하지 못한다.
그 의미는 이곳의 군주는 그것들을 감안할 만큼 많은 식량을 확보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거대한 뱀과 드래곤의 동상이라…….’
문득 입구 쪽에서 보았던 두 개의 동상이 떠올랐다.
그 동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지만 그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영지민들은 영지 자체에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재정도 풍족한 것인지 비쩍 마른 자는 없었다.
어느덧 그녀가 군주성 앞에 도착했다.
현재 그녀는 ‘탐색화’ 모드 상태.
탐색화 모드는 그녀의 분신을 만들어내는 암살자 스킬이었고 사용하면 저절로 투명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녀의 20%의 힘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리고 현재 본체는 잠들어 있으며 이 20%의 가짜가 죽어도 그녀가 죽진 않는다.
단, 20%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때마침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군주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나왔다.
‘마족에 천족. 그리고 저 말이 그 말인가 보군. 저 소년이 네크로맨서 잭의 아끼던 보물을 빼앗아가고 총연맹장들을 조롱했다라.’
참으로 재밌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소년은 축제를 즐기는 발카스 영지의 사람들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 그녀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시 문이 닫혔고 아서가 군주의 홀로 걸어가며 옆을 돌아봤다.
“그레모리.”
“예, 군주님.”
“우리도 파티를 즐겨야지.”
“예.”
그레모리가 작게 웃었다.
이미 군주성 안에서도 주요직책을 맡은 자들은 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아서가 특별히 맞춰준 예복을 입은 자들이 군주의 홀에서 춤을 추거나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아서도 술을 홀짝였다.
‘어린 게 참으로 나쁜 것만 배웠구나.’
시리어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버린 군주.
흥청망청 마시는 병사들.
‘이런 기회가 또 있겠는가.’
암살자 클래스인만큼 그녀는 어려운 길을 가지 않는다.
군주가 술에 취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군주성에 잠입한다.
그리고 그의 목을 딸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숨죽여 기다렸다.
***
늦은 밤.
붉은 달이 떴다.
아직도 술을 기울이는 영지민들도 있었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군주성.
“군주님? 군주님.”
그레모리가 테이블 위에 미동도 없이 널브러진 아서를 흔들며 깨워보았지만 일어나질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내가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축제란 이런 거니까.”
그녀는 잠든 아서를 바라보다 곧이어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그간 너무 달려오셨지. 이렇게 한 번씩 쉬시는 것도 나쁘진 않……”
그 말을 그녀는 채 끝맺지 못했다.
푸슈유유육-
투욱!
갑자기 그녀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콸콸!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레모리.
그녀의 바닥에 떨어진 머리는 채 눈도 감기지 않았다.
투명화를 해제하며 여섯의 유닛과 함께 나타난 시리어스는 잠든 군주를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복면을 내렸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닌가?’
너무나도 절묘한 상황이었다.
붉은 달이 뜨는 날, 그녀의 능력은 본래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날에 때마침 이 군주는 축제를 벌였고 어린놈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기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목덜미에 힘껏 검을 꽂아 넣었다.
푸직!
부르르르르!
군주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동자만을 굴렸다.
그 눈동자에 자비 없는 시리어스가 비쳤다.
푸슈유유육!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냈다.
콸콸 목에서 피를 흘리며 소년 군주가 테이블 위로 널브러졌다.
‘떠오르는 별은 언제든 떨어질 준비가 된 것이기도 하지.’
그랬기에 이제까지 유망주들이 이 앞의 소년 군주처럼 죽어 나갔었다.
어쩌면 소년의 자만심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오인의 암살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성내에 있던 자들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퓨슈유육!
툭.
푸슈유유육!
툭.
“으음…… 내가 왜 여……”
한 남성이 술에서 잠깐 깨어났다.
그리고 비몽사몽 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푸슈유육!
툭.
그의 머리도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성내에 있는 자들이 오인의 암살자들에게 처참히 죽어 나갔다.
한 명도 남김없이.
대부분 술에 취해 무척 쉬운 일이었다.
모두를 해결한 시리어스.
그녀가 바닥을 구르는 술병을 보았다.
‘이번 일은 꽤 쉬웠어.’
이제 로열 코드만 파괴하면 된다.
막 몸을 돌리려던 그때.
“발렌타인 블랙. 42년 산으로 아주 맛좋은 술이지.”
고요한 성내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곳의 군주. 아서 더 프레스라고 한다. 나는 말이야. 지킬 건 지켜.”
그 목소리에는 아주 작은 웃음이 담겨 있었다.
“난 술 안 마셔. 미성년자거든.”
그 특유의 웃음이 목소리 너머 보이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그녀는 미간을 구겼다.
다른 암살자들도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곧이어.
솨아아아아아!
솨아아아아아!
성벽들이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라진다는 느낌보다는 한 겹이 벗겨진다는 느낌이었다.
그 겹이 벗겨졌을 때 보인 것은 왕좌에 앉아 있는 아서와 오인의 암살자들을 포위하고 있는 수백의 병사들이었다.
고개를 기울인 채 왕좌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며 아서가 짙게 웃었다.
“어서 와, 발카스 영지는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