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군주회귀록 134화
촤아아앗.
검의 대제 랄프.
그가 휘두른 검에 그에게 노련히 창을 움직이던 다크엘프 유닛이 뒤로 날아갔다.
“큽!”
다크엘프 유닛.
니골라스.
이는 버칼로 군주의 유닛이었다.
버칼로 군주는 남모르게 비장의 카드로 다크엘프의 왕이라 불리는 니골라스를 숨겨두고 있었다.
다크엘프의 왕.
거기에 유닛 등급은 자그마치 S급.
하지만 버칼로 군주는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채에에에엥!
‘압도적이다…….’
버칼로 군주는 자신이 이제껏 얼마나 자만스러운 생각을 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니골라스라면 랄프 군주와 대등하거나 혹은 더 뛰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의 대제 랄프는 과연 그 이름과 견줄만 했다.
니골라스가 그의 손끝도 스치지 못한다.
‘힘의 차이?’
아니, 모든 군주들은 인정한다.
이것은 힘의 차이가 아니다.
경험과 노련함, 그리고 실력의 차이다.
후우웅!
뒤로 날아가는 니골라스를 따라 번쩍 뛰어오른 랄프.
그의 무릎이 땅에 떨어진 니골라스의 가슴팍을 그대로 찍었다.
콰지익!
“커헉!”
니골라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어 추욱 늘어졌다.
“후우.”
랄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베스와 카일 군주가 감탄했다.
‘더 강해졌다…….’
‘지금의 난 상대도 안 되겠어.’
자베스 군주의 입술이 깨물어졌다.
예전에만 해도 이러한 말이 있었다.
얼음마녀 자베스와 랄프 군주가 붙으면 둘은 호각을 이룬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자베스는 인정해야 했다.
‘난 랄프 군주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군주들의 등급은 한정되어 있다.
S급.
하지만 그보다 강력한 힘을 발현한다고 불리는 군주들.
그 군주들을 통칭하여 S급 위의 또 다른 S급 군주라고도 부른다.
랄프 군주는 이미 그 반열에 올라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고개가 움직였다.
“또 도전할 자가 있나?”
기절한 니골라스를 발로 밀어낸 랄프 군주가 주변을 둘러봤다.
꿀꺽-
한 군주가 마른 침만 삼켰다.
‘제기랄…….’
카일 군주가 치아를 꽉 깨물었다.
1위를 기록하여 아서를 밟은 군주는 그의 약 30%를 회수해 올 수 있다.
이미 모든 군주들이 전쟁모드 제안서에는 승낙한 상황.
아마도 랄프 군주가 아서와 겨루고 그를 찍어 누르리라.
그리고 랄프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없나 보군. 내가 아서와 붙는다.”
저번에 한 번 그와 붙었던 적이 있는 랄프다.
다른 것은 몰라도 랄프는 순수한 아서의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했다.
‘이렇게 된 거 놈의 영지를 내가 삼킨다.’
그의 영지를 삼키기만 해도 고르딘 총연맹은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워우, 랄프 군주.”
그리고 군주들 틈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틈을 헤집고 네크로맨서 잭이 모습을 드러냈다.
잭은 그 앙상한 손을 움직여 마주쳤다.
짜악.
짝!
“듣던 대로 훌륭해.”
“죽고 싶나.”
“아니, 죽고 싶진 않고. 그것보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어서.”
“…….”
랄프 군주는 입을 다물었다.
‘네크로맨서 잭은 혼자서 수만의 죽음의 병사들을 부린다. 그중에서도 특출난 유닛이 있는 건가?’
사실 랄프 군주가 평가한 네크로맨서 잭은 ‘물량빨’로 몰아붙이는 군주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잃어도 곧바로 충당할 수 있다.
병력을 잃었다는 건 전쟁을 치렀다는 거고 그의 병사들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생긴 셈이니까.
“그러던지.”
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군주가 집중했다.
랄프는 끽해야 데스나이트 정도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공간이 찢어졌다.
그 안에서 검은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빠지이익-
튀어나온 팔은 공간을 부여잡고 자신의 몸을 끌어당겼다.
검은색 피부.
2m 크기의 장신.
거기에 붉은색 갑옷을 입은 자가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뱀처럼 좁혀진 검은자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몸에 자리 잡은 근육은 군더더기조차 없었다.
랄프 군주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을 느꼈다.
‘마…… 족이잖아?’
마족.
알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군주게임을 진행하는 자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마족을 네크로맨서 잭은 유닛으로 얻었다는 건가.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서는 피식 웃었다.
‘반갑다. 디아블로.’
아서는 디아블로와 싸워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를 죽여내는 데 성공했다.
네크로맨서 잭은 디아블로를 특수한 미션을 달성해서 얻어냈다.
이 미션은 ‘죽은 자들의 한’이라는 미션이었다.
그가 약 10만의 언데드를 다른 유닛의 시체로 제조했을 때, 끔찍한 미션이 발동한 거다.
이러한 미션을 ‘데스 미션’이라고 부른다.
이 데스 미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짓들을 여러 차례 반복한 자들이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엄청난 리스크를 또 어떤 경우에는 엄청난 보상을 준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잭이 얻은 그 보상이 바로 디아블로다.
디아블로는 마족 중에서도 최상급 마족에 꼽히는 자다.
그의 악명은 마계에서도 자자했다.
그가 꼬마일 때, 혼자서 마족 부대원 100명을 죽였다는 일화는 거의 마계에서도 전설과 같다.
아스가르드에 소드 마스터가 있다면 마계에는 디아블로가 있는 격이라 할 수 있으며 마족들은 그를 ‘전신.’이라 불렀다.
또한, 인간과 마족의 격.
그 격은 생각보다 크다.
태어날 때부터 싸우는 것에 특화되고 잔혹한 게 바로 그 마족들이니까.
‘그런 디아블로를 내가 죽였었지.’
네크로맨서 잭은 지금은 아니지만 추후 엄청난 재앙이 되어 다가온다.
그의 ‘물량빨’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게 해준 존재가 바로 디아블로였으니까.
‘잭의 약점은 말 그대로 물량빨. 자신 스스로를 지킬 힘은 약했다는 거야.’
하지만 디아블로가 생긴 이후로는 대규모 전투에서 군주를 치는 기습이 모조리 족족 실패했다.
그리고 루시아를 제해서 현 극강삼인이라 불리는 이 중 하나인 네크로맨서 잭이 돌아서 버렸다.
그는 여러 차례 아스가르드 대륙의 영지를 쓸어버렸고 자취를 감추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업데이트 이후 바알 군주와 손을 잡았다는 거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잭을 죽이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건 먼저 디아블로를 제거하는 거였다.
그 막중한 임무를 맡았던 게 그 당시 아서였다.
그리고 그는 디아블로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서는 잊지 못한다.
디아블로는 정말 끔찍하게 강했었다는 걸.
끼리릭!
랄프 군주는 군주들의 시선이 마족에게 향해 있자 검 끝으로 땅을 그셨다.
스파크가 일었다.
모두의 시선이 랄프에게 향했다.
“와봐, 주물러 줄 테니까.”
검의 대제.
사실상 인간 중 순수한 무력으로 그를 쉬이 대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랄프 군주는 보여줄 생각이었다.
한낱 마족을 무릎 꿇리는 것을.
파앗!
두 개의 이도류를 찬 디아블로가 땅을 박찼다.
***
“하하하하, ‘와봐, 주물러 줄 테니까.’ 랄프 군주 나으리. 방금의 그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어디 가셨습니까아?”
네크로맨서 잭이 고개까지 젖히고 낄낄 웃는 모습에 군주들이 경악했다.
지금 그들은 똑똑히 보고 있었다.
랄프 군주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목이 붙잡혀 있었다.
“꺼어어억…….”
“이, 이제 그만……!”
한 군주가 소리쳤다.
디아블로는 랄프 군주를 끔찍하게 유린했다.
마치 보여주듯이.
그는 랄프 군주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랄프 군주는 그 와중에도 훌륭했다.
그는 자신의 팔이 분질러져도 비명 한 번 토하지 않았다.
그리고 디아블로에게 유린당하면서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는 긍지를 보였다.
패배했다는 걸 몇 수에서 알아챘지만, 이 정도로 꿇을 수 없다는 건 보여준 것이다.
아서도 감탄했다.
‘랄프 군주에 대해서는 전해 듣기만 했었지.’
지금보다 조금 더 늦게 군주게임을 시작했을 때 랄프 군주는 없었다.
하지만 검의 대제, 또는 ‘인류의 자존심’이라고 불렸던 자다.
그 자존심이라는 이름이 어째서 존재했는지 아서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입안이 썼다.
‘지금의 이 과정에 의해 너는 살게 될 거다.’
그는 전생처럼이면 죽게 되리.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 죽지 않을 것이다.
콰아아앙!
디아블로가 힘껏 랄프 군주를 패대기쳤다.
랄프 군주가 검을 잡고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디아블로의 손이 뺨을 후려쳤다.
짜악!
“푸후웁!”
입에서 피가 뿜어지며 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
디아블로가 쫓아가 그의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짜악 짜악!
그 와중에도 비명 한 번 토하지 않는다.
“그, 그만…… 그만하시오! 승패는 결정 나지 않았습니까!”
“그만하지 못해!”
자베스마저 소리를 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디아블로는 일부러 랄프 군주가 정신을 놓지 않게끔 패고 있었다.
이번 대련에는 제약이 붙었다.
‘상대방을 죽이지 아니한다.’
정확히는 네크로맨서 잭이 철저히 보이고 있는 거다.
그도 이번에 ‘물량전’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질 기회임을 알고 확실히 보여주는 거다.
탱그랑!
결국, 랄프 군주가 검을 놓쳤다.
천천히 그 앞으로 디아블로가 다가섰다.
랄프 군주는 그의 무릎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그리고 눈이 번뜩 뜨였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카일 군주가 되려 소리쳤다.
그의 움직이는 무릎은 이번에는 확실한 힘이 담겨 있었다.
저 무릎이 랄프 군주의 안면에 꽂히는 순간 그의 머리통이 박살 날 터.
수우우웅!
“헉!”
랄프 군주가 처음으로 비명을 토하며 양팔을 교차시켜 얼굴을 막았다.
그리고 디아블로를 네크로맨서 잭은 자신의 뒤쪽으로 소환해서 빼 왔다.
“하하하하, 내 유닛이 워낙 지나쳐서 말이지.”
네크로맨서 잭이 비웃듯 말하며 무릎을 굽히고는 얼굴을 감싸고 부르르 떠는 랄프 군주를 보며 픽 웃었다.
“쫄았나? 오줌이라도 지렸어? 응!?”
“……빌어먹을 새끼!”
랄프 군주가 괴성을 토했다.
그리고 이어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허물어졌다.
풀썩.
마지막까지 그는 그래도 자신의 긍지를 지켰다.
카일 군주가 말했다.
“랄프 군주를 모셔라.”
서둘러 군주들이 랄프 군주를 안아 들고 이동했다.
카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이는 정당한 대련이었다.
그 대련에서, 네크로맨서 잭은 자신의 긍지를 보이는 랄프 군주를 더럽혔다.
총연맹들은 보통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건 그 이상의 인격 문제다.
카일이 자신의 안경을 벗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죽고 싶나, 네크로맨서. 잭.”
“히이이익, 무섭군. 무서워! 발키리 총연맹의 전술의 신이 나를 죽인다니. 이 무서워서 살겠나!”
“이곳에 총연맹장들이 함께 있다는 걸 모르나?”
“그 대단하신 총연맹장 나으리들 때문에 제가 허리라도 피겠나이까!”
그렇게 말하며 잭은 낄낄 웃어댔다.
자신 있다는 거다.
디아블로라는 자신을 지켜줄 병력이 있는 마당에, 무한 병력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까지 자신은 갖췄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기필코 오늘을…….”
“그만.”
그때 그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