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군주회귀록 121화
그 말을 듣는 VIP석의 착석자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반대로 바알은 상당히 차가운 표정으로 냉정하게 분석했다.
‘미쳤구나. 유니크 아티팩트를, 그것도 저딴 걸 20만 골드를 주고 사? 앞으로 더 좋은 물건들이 나올 텐데 초반 소모전이라.’
픽.
그의 인간에 대한 평가는 맞았다.
그들은 미개하다.
하지만 아서는 어깨를 으쓱한다.
곧이어.
또 다른 아티팩트가 나왔다.
“12만 골드!”
“12만 2천 골드!”
“13만 6천!”
“31만.”
팻말로 머리를 긁는 군주.
“에…… 구, 군주님. 처음 뵙는 분이지만 이곳 경매장에선 돈 없이는 낙찰이…… 아차차…… 돈이 없으면 낙찰도 불가능한 설정 때문에 팻말도 들어 올릴 수 없으실 텐데.”
경매 진행자는 돈 없이 낙찰 자체가 안 되는 걸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워낙 당혹한지라 순간 그 설정마저 잊을 정도였다.
그가 부른 액수는 진짜 그가 제시할 수 있는 금액.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아서는 VIP석에 나온 샴페인을 목으로 축이며 싱긋 웃었다.
“아, 1만 골드는 진행자 팁이야.”
“가, 감사합니다!”
경매 진행자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리고 아서는 계속 경매장을 휩쓸었다.
“50만.”
“55만.”
“60만.”
“65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의 낙찰.
‘벌써 쓴 돈이 350만 골드라…… 대체 어떤 대부호 특성인가.’
부호 계열의 특성, 혹은 영지 특수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상위 부호의 특성을 ‘대부호 특성, 혹은 영지’라 일컬었다.
라자베가 가진 은행은 사실상 평범한 부호 영지에 지나지 않다.
바알은 둘의 대부호 영지를 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저 정도 금액은 남발하지 못한다는 거다.
‘낙찰의 왕은 2,000만 골드를 소진하면 나타난다.’
그리고 아서는 그 틈에서 또 다른 한 수를 노리고 있다.
이 경매장의 왕은 그가 될 터.
낙찰의 왕은 경매장에서 2,000만 골드를 쓴 군주에게 주어지는 아주아주 특별한 히든피스.
이는 앞으로 2년 후에 달성되는 히든피스다.
‘그리고 정말 재밌는 보상이 주어진다.’
오늘 제대로 한판 벌인다.
그때.
“크크큭, 재밌군. 이런 재밌는 경매는 처음이야.”
바알이 웃었다.
다른 군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알을 봤다.
현재 아서가 모조리 쓸어갔다.
“350만 골드라. 대군주들의 영지는 골드로 추정하면 1억 골드의 가치를 가졌다는 말이 있지. 고작 350만 골드 정도를 쓰고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생각이란 걸 해야지.”
“머리가 나쁘다?”
아서는 그 말을 따라 했다.
그저 아서로서는 어디 한번 짖어봐라, 들어나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경매의 기본은 기다림이다. 무조건 무식하게 다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걸 구매하는 거라고. 또는 정말 희귀한 것들이 나올 때를 대비해 돈을 아끼는 거지.”
바알은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생각 좀 하라는 듯.
그리고 아서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개한 인간들은 이런 걸 모르나?”
“남이야.”
아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입술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 미미한 입술의 떨림.
‘당혹하고 있군. 멍청하도다. 내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으니까.’
그 입술의 떨림에서 바알은 짐작했다.
그는 자신의 과소비를 후회하고 있다.
‘미개하다는 우리의 말을 들었나 보군.’
그 말에 흥분하여 골드를 무리하게 사용한 게 분명해 보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종족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 새끼, 속았군.’
아서는 웃었다.
경매는 속고 속이는 도박판과도 같다.
애초에 무한한 골드라는 설정 자체를 아는 군주가 있을 리가 없다.
생각조차 못할 거다.
무한하게 골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리고.
‘이제 곧 나온다.’
아서도 이번 경매장에서 꼭 얻어야 할 몇 가지가 있었다.
‘금방 데리러 가려고 했더니. 이렇게 나오는군.’
쓴웃음이 입 안을 감돌았다.
자신과 함께 싸운 적이 있는 자들.
힘을 갖추면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 말한 자들.
아서는 아수라의 머리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그들이 경매로 나온다는 건 정말 예상외였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목에 걸린 만년의 유적 입장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 * *
목에 쇠사슬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경매 노예들.
그들은 서른 명 정도였다.
모두가 인간이다.
“와아아아!”
“우와, 이번에도 저 군주가 따냈어!”
경매장이 소란스러웠다.
그 뒤쪽에 다음 대기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아서가 전멸의 토벌대에서 만났던 피의 학살대의 일원이었다.
“알레오 경…….”
피의 학살대의 일원 중 하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줄줄 흐를 정도였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희가…… 저희가 아무리 그런 죄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노예로 팔리다니요.”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피의 학살대.
많은 자를 죽였고 탐했다.
핑계일 뿐이지만 그들은 태어나서 그렇게 길러졌다.
늑대 품에서 키워진 개는 늑대처럼 행동한다와 다를 바가 없다.
오로지 죽이기 위해 길러졌다.
그래서 죽였다.
그리고 나중에야 깨달았다.
‘신이시여, 벌은 충분히 받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만년의 유적에서 끔찍한 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토벌대에선 포로로서 죽고 살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 정도면 되지 않는가?
한데 신은 지금 자신들을 한낱 웃음거리로, 또는 다른 종족의 장난감으로 던져주려 하고 있다.
‘아서 군주님…….’
알레오는 그를 떠올렸다.
그가 자신들을 찾아와 줄 거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주 조금만 더.
그럼 자신들은 진짜 군주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그러한 모습을 보여줬던 군주라면 평생을 바쳐도 한이 없을 것 같다고.
‘죄송합니다. 저희는…….’
알레오는 눈물 흘리는 병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울지 마라. 추하다.”
그 병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이어 사회자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경매 물품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300년 전의 인간들이 군주게임을 진행하는 아스가르드 대륙의 전설!”
사회자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3,200명의 병력으로 5만의 병력을 죽이고 고작 100명의 피해만을 입기도 했지요. 그들은 바로 피의 학살대! 그리고 그 피의 학살대의 병사 중에서도 정예 중의 최정예들이 바로 다음 경매 물품입니다!”
“호오.”
“오, 인간들의 전설이라?”
“재밌군.”
기대에 찬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들의 전설을 발밑에 두고 부리는 것. 정말 우리 종족이 위에 섰다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애완용으로 키워도 그만! 전쟁터의 유닛으로 키워도 그만!”
“……X발 새끼.”
사회자의 설명에 알레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애완용?
마치 가지고 놀다 버리기 좋은 장난감입니다, 손님들~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소개합니다. 과거 아스가르드 대륙을 피로 물들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 피의 학살대!!!”
촤아아앗!
“크르, 빨리 나가지 못해!”
트롤이 거대한 채찍을 휘둘렀다.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피의 학살대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경매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오오오오!”
“미개한 인간들이로구나!”
“껄껄껄!”
“미개한 인간들의 저 꼬라지 좀 보라지!”
경매에 참석한 이들이 껄껄 웃어댔다.
이 경매장에는 도전 군주, 혹은 대군주들이 주를 이루지만 관람객도 있다.
오늘의 관람객은 지옥인들.
지옥인들도 당연히 종족은 다양했다.
“우우우우우!”
조롱에 이은 야유까지.
알레오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아서 군주님. 군주님의 힘이 되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용족 대군주 바르세라가 말했다.
“인간은 미개하지.”
이족 보행의 용의 형상을 한 용족 대군주 바르세라는 그를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들과 함께 앉아 있는 건방진 군주에게도 보여줄 터.
그 군주는 계속 낙찰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바르세라는 한 번에 높은 값을 불렀다.
“10만.”
“호우! 바르세라 군주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이깟 인간들한테 10만 골드라니요.”
‘이깟…….’
알레오는 그 말을 들으며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역겨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리하는 바가 있지만 재미있는 장난감이 될 것 같아서.”
바르세라는 부채를 쫙 펼쳐 웃으며 입을 가리고 웃어댔다.
“11만!”
다른 군주들도 인간들의 전설이라는 것을 한번 사보고 싶은 것인지 경매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15만!”
“17만!”
“20만!”
“와아, 아주 치열합니다. 예상외군요!”
경매자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고 다시 경매가는 올라갔다.
“32만 2천 골드!”
바르세가가 올라가는 금액에 쇄기를 박았다.
“우와아아, 더 이상 없습니까?”
바알은 힐끗 옆을 보았다.
‘골드가 다 떨어졌나 보군.’
옆의 인간 군주는 계속 불안한 듯 다리를 덜덜 떨어대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객기 부릴 돈은 없어 보인다.
“32만 2천 골드! 정말 예상보다도 높은 금액입니다. 바르세라 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이들을 어디에 쓰려고요?”
“투기장을 하나 만들 건데, 그 안에서 싸움을 좀 시켜보려고. 지들끼리 죽고 죽이는 거. 참으로 재밌을 것 같아서. 서로 눈물을 흘려대는 꼬라지가 눈에 훤해. 감성적인 쓰레기들이 바로 인간이지.”
“아아, 그렇지요! 인간들은 참으로 감성적인 자들이지요. 자, 더 없지요? 없는 걸로 알고 이만 낙찰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낙찰봉이 위로 올라간다.
경매 진행자는 이를 드러내 웃었다.
오늘 비싼 값에 피의 학살대를 팔아먹는구나.
바로 그때.
바알은 덜덜 떨리던 아서의 다리가 우뚝 멈추는 걸 볼 수 있었다.
‘음?’
부드러운 숨을 내쉰 아서.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팻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1,000만 골드.”
“히이익!”
“허억?!”
“커허억?!”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곳엔 아서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사실 1억 골드를 주고서도 아까운 자들이다. 누가 비웃나, 누가 너희들보고 처웃을 기회를 줬어. 저들은 1억 골드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1,000만 골드 이상 있나? 없겠지. 입만 산 X신들아. 돈 없으면…….”
아서의 눈이 한없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전부 아가리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
침묵.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단상 위에서 들려오는 음성.
“저, 저저, 저분은…….”
“호, 혹시……!”
알레오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방금 그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말해줬다.
무시당하는 자신들에게 1억 골드의 가치 이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모두가 쓰레기라 말했건만 지금 낙찰가를 부른 이는 달랐다.
알레오의 눈이 완전히 뜨이고, 방금 목소리를 낸 이를 찾아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아주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리고 팻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자신들을 보는 그.
아서 군주님이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서는 알레오와 병사들을 둘러보면서 부드럽게 이를 드러내 웃어 보였다.
“아, 아서 군주님…….”
알레오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피의 학살대.
그들은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군주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쿠우우웅!
알레오.
그가 무릎을 꿇었다.
쿠웅.
그리고 왼쪽 가슴 위로 꽉 쥐어진 주먹을 힘껏 찍었다.
퐉!
“기사 알레오. 군주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