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군주회귀록 115화
39장 깃발전
“푸하하하하!”
“아하하아하하! 자칸 군주님, 저 너무 웃겨서 코가 뻥 뚫렸습니다.”
“크흐흐흐, 아 배 아파!”
블레드 소연맹 소속 군주들은 낄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에게 똑같은 전쟁 모드 제안서가 날아왔다.
제안서의 내용은 놀라웠다.
일단 그 군주가 가지고 있는 재산 내역이다.
“20만 골드에 유니크 아티팩트, 마피노스의 광산이라니…… 허어. 알부자 군주 아닙니까? 한데 군주보호기간 군주라니?”
그들이 웃는 이유는 하나다.
군주보호기간 군주라는 거다.
그 군주가 감히 자신들을 상대로 깃발전을 제안했다.
깃발전은 가진 모든 깃발을 빼앗긴 군주가 패배하는 소연맹 vs 소연맹의 전투 방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데 지금 상대편 군주는 1:6으로 전쟁 모드를 제안했다.
“히야, 이렇게 공짜로 저희에게 20만 골드를 상납한다고 해주니.”
“자칸 연맹장님과 같은 특성이지 않는 이상은 전쟁 모드 제안서 조작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 머저리 군주 놈을 누가 먼저 칠까요?”
이미 그들이 전쟁 모드 제안서에 승낙할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에이, 여러 사람 갈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 혼자 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나일레 군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아차하며 앉았다.
“굳이 제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전쟁 모드를 승낙하고 저희 ‘발로 영지’부터 깃발전을 시작하는 것으로 하면 되지요. 그럼 서로의 영지 위치가 뜰 테니, 놈이 오든, 아니면 대리인을 시켜 먼저 기습하든 하겠습니다.”
나일레 군주는 자신이 갈 필요도 없다고 여긴 거다.
군주보호기간 군주쯤이야 병력 스무 명 정도로도 처리 가능한 수준 아니던가?
끽해야 E급이나 D급 사이일 텐데.
“그렇게 하지.”
자칸 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모두가 전쟁 모드를 승낙했다.
그 후에 나일레 군주가 가장 먼저 출전할 것을 알렸다.
그러자 곧장 나일레 군주에게로 적 군주의 ‘발카스 영지’의 위치가 지도상에 표기되었다.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겠습니다.”
나일레 군주는 이거 참 재밌다는 듯 여유를 부렸다.
그런 나일레 군주를 말리는 이는 없었다.
끽해야 군주보호기간 군주.
정신 나간 머저리니까.
약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띠링!
나일레 군주는 갑자기 홀로그램이 떠오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지?”
홀로그램에는 요정 대리인이 놀란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혀, 현재 발로 영지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군주님.
“아아, 전쟁 모드를 승낙한 것은 모두 알 것이다. 그 건방진 군주보호기간 군주가 선 공격을 가했나 본데, 생각보다 빠르군. 미리 우리 발로 영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병력 스물 정도를 보내면 처리할 수 있을 텐데?”
-혀, 현재 300명의 병력이 5분 만에 전멸했습니다.
“……뭐?”
순간 나일레 군주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왜 그러지?”
군주가 대리인과 통신을 나눌 때는 다른 군주들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일레 군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모두 의아해했다.
곧이어.
시시때때로 나일레 군주의 표정이 변해갔다.
곧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이어선.
“버, 벌써 성까지……?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일레 군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칸 군주가 성을 터뜨렸다.
그 말에 나일레 군주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저, 적군주가 모든 병력을 전멸시켰습니다…….”
“……?!”
“그리고 홀로그램 너머로 말했습니다.”
나일레 군주는 잠시 침을 삼켰다.
“여러분 모두 X되셨습니다.”
* * *
주먹만큼 작고 잠자리 날개를 단 요정족 대리인이 군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서는 그 대리인 등 뒤로 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X되셨군요.”
그 말이 끝이었다.
아서는 있는 힘껏 요정족 대리인을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푸지익!
요정족 대리인이 허무하게 죽었다.
아서는 주변을 훑어봤다.
‘자칸 군주가 거짓의 군주였다니.’
처음 폭군 자칸이라고 했을 땐 비웃었다.
그가 누구일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성장했는데 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
사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게 아니라, 나중에 자칸 군주가 ‘거짓의 군주’라는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전쟁 모드 제안서를 조작 가능한 말도 안 되는 특성.’
전쟁 모드 제안서는 절대 조작할 수 없다.
무조건 사실만을 적어야 하며 사실 이외의 것을 적을 시에 운영자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가진 특성으로는 ‘승인’이 가능해진다는 거다.
정말 특별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칸 군주는 A급 군주면서 이제까지 C급, B급 군주들에게 자신의 급을 비슷하게 낮추어 전쟁 모드를 제안했을 터였다.
전쟁 모드가 제안되어 상대편이 승인해 버리면 페널티도 사라지고 영지의 모든 것을 통째로 뺏을 수 있으니까.
그 방법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고 거짓의 군주라 불렸다.
물론 그 특성은 결국 아스가르드 대륙 전체에 알려지긴 했지만.
그리고 아서는 역으로 그걸 이용했다.
군주보호기간 군주.
‘사실이니까.’
단지 군주보호기간 군주긴 해도 현 A급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
아서는 전쟁 모드를 제안하기 전에 미션 두 개를 달성했다.
그로 인해 첫 번째로 ‘병력 스킬 지속화’라는 특별한 양피지를 얻었다.
병력 스킬 지속화는 기존 병력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시간을 3배가량 늘려준다.
즉, 강철부대가 귀신부대가 되는 스킬이 1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거다.
추가로 아서는 블레드 소연맹에 속한 영지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워낙 개차반인 놈들이라 영지 위치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얻어낸 특별한 양피지는 전멸의 토벌대가 발발했던 곳에서 얻었던 것과 같은 ‘군단 이동 양피지 10장’이었다.
그들의 위치를 모두 확인한 아서는 먼저 그들의 영지 인근으로 가서 군단 이동 지정을 해놓고 돌아왔다.
그 후 전쟁 모드 제안서를 보냈고 놈들이 수락하자마자 곧바로 나일레 군주부터 쳤다.
“깃발을 찾아라!”
“예!”
병력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깃발전의 깃발은 무조건 성 내부에 있다.
곧 아서의 병력이 깃발을 발견했다.
아서가 깃발을 뽑아냈다.
[나일레 군주가 깃발을 빼앗겼습니다.]
* * *
“억……!”
나일레 군주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깃발을 빼앗긴 군주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된다.
풀썩.
가슴을 부여잡고 죽어버린 나일레 군주.
“이,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돼!”
“혹 자칸 군주님과 같은 특성 아닙니까?”
전쟁 모드 제안서를 속였다?
“말도 안 된다. 중복 특성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의 말처럼 중복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간단하다.
‘저, 정말로 군주보호기간 군주라는 거야?’
* * *
자칸 군주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연맹장인 자칸 군주는 소속된 군주들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일레 군주가 죽은 후, 여유를 부리며 아서라는 군주를 비웃던 그들은 곧바로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칸 군주는 들을 수 있었다.
[세브로 군주가 깃발을 빼앗겼습니다.]
[아시햐 군주가 깃발을 빼앗겼습니다.]
[루마 군주가…….]
[코도 군주가…….]
모두 빼앗겼다.
그것도 고작 2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C급에서 B급 사이를 오가는 군주였다.
어찌 보면 낮은 급이었지만 자칸의 지원을 받았고 거기에 군주보호기간 군주가 감히 상대도 하지 못할 강력한 군주라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 도대체…….”
서둘러 자신의 영지인 오르빈 영지에 도착한 자칸 군주가 명을 내렸다.
“서둘러 전쟁을 준비해라! 놈이 오고 있다!”
* * *
오르빈 영지.
이 영지는 특별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이 영지 전체를 뒤덮은 것처럼 천장이 막힌 모양이었다.
때문에 공중에서의 공격도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을 가졌다.
뿌우우우우!
쿵쿵쿵쿵!
“키히힝, 전쟁을 준비하라!”
“키히히힝, 전쟁 준비이!”
자칸 군주가 부리는 켄타우로스족들이 목청을 높여 외쳤다.
그리고 수천 명의 노예가 한자리에 집결했다.
자칸 군주는 지금까지 꾸준히 노예들을 모아왔다.
그는 이 노예들을 이용해 이제껏 많은 것을 부렸다.
건축물을 짓게 하기도, 광산에서 광물을 채집하게도, 혹은 자신의 활 솜씨를 시험해 볼 기회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칸 군주는 그러한 자였다.
뼈만 앙상한 노예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평소처럼 채찍질로 돌아가던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켄타우로스족들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노인 노예 한 명이 말했다.
“아까 전에 자칸 군주가 사색이 되어 들어오던데?”
그 말에 노예 중 한 명인 카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스는 스물 초반이나 되었을 법한 청년이었다.
“무슨 일이든 상관없어. 저 악마 같은 놈이 죽었으면…….”
그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카르스의 아버지는 엊그제 죽었다.
바로 자칸이 창던지기 연습을 한다고 해서였다.
그는 열 명의 노예를 일렬로 쭉 늘어트리고는 창을 던져 하나하나 죽였다.
노예들이 가슴이 뚫려 죽어나갈 때마다 그는 쾌재를 지르며 좋아했고, 혹여 창이 빗나가 죽지 않은 노예를 보면서는 ‘저 새끼, 움직여서 피했어. 죽여 버려!’라면서 처참하게 죽였다.
자칸 군주는 빌어먹을 놈이 분명했다.
그때 한 켄타우로스족이 말했다.
“키히힝, 노예들 모두 무장을 하고 출정을 준비하라.”
“헉……!”
“미친…… 이젠 우리를 전쟁터로까지 내모는 거야?!”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카르스는 치아를 뿌드득 갈았고 노예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일그러져 있었다.
“모, 못 합니다…….”
카르스의 옆에 있던 노인 노예가 켄타우로스족에게 말했다.
돌덩이를 옮기는 건 그렇다 친다.
하지만 여든의 나이를 먹은 자신이 어찌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우겠는가.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푸지익!
풀썩!
노인 노예의 머리가 도끼로 쪼개졌다.
그 피가 카르스의 얼굴에 튀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검을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 저들과 대적할 수 있는 힘 따위는 없었다.
그때 카르스의 눈에 로브를 푹 눌러쓴 한 소년이 보였다.
“괜찮아. 이리 와.”
노인이 바로 그의 옆에서 죽어나갔다.
저 어린 소년이라면 겁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르스는 자신도 두려우면서도 소년의 팔을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졌다.
소년의 고개가 돌아갔다.
카르스는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잘생겼다…….’
어쩌다 노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미남이었다.
은빛의 단발머리, 호수를 담은 듯한 고요한 눈,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끼이익.
쿵!
성문이 열리며 삼천 명의 노예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바깥은 고요하기만 했다.
“키히히힝…… 뭐, 뭐지?”
“적들이 없다?”
“비켜라!”
자칸 군주가 외벽으로 걸어왔다.
적들이 없었다.
‘이상하군…….’
자칸 군주는 소연맹 군주들의 영지가 차례대로 연달아서 무너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곧바로 자신의 영지 또한 칠 거라 생각하고 노예들부터 출정시켰다.
하지만 놈의 군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정비가 필요할지도 모르지. 연달아 다섯 개의 영지를 무너뜨렸는데.’
자칸은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노예들을 다시 들이고. 언제든 출정할 수 있게 문 앞에 대기시켜라.”
“키힝, 예!”
다시 문이 열리고 노예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 다행이다.”
“살았다!”
“제발…… 제발, 쳐들어오지를 않길…….”
노예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카르스의 옆에 있는 소년, 아서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아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걸 부수는 거다.’
천장을 부순다.
특성화된 군주 육성기가 자칸 군주와의 전투 전에 퀘스트를 줬다.
‘노예 구원 퀘스트.’
그리고 이 퀘스트를 달성할 시 아서는 아주 특별한 유닛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또 다른 시크릿 유닛인 ‘만물자 카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