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군주회귀록 111화
“도, 도대체 어떻게…….”
“바로…….”
콜로는 아서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피식 웃은 그가 고개를 돌려 콜로를 보았다.
“죽기 전까지 실컷 궁금해해라.”
그 말이 끝이었다.
아서는 몸을 돌렸다.
블루 제라늄.
푸른 잎을 피우는 아주 아름다운 꽃이다.
향도 매우 좋은 꽃인데, 벌레들에게는 치명적인 맹독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블루 제라늄이라는 꽃 자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블루 제라늄을 채취하기 위해선 던전을 하나 공략해야 했다.
그 던전을 공략한 후에야 블루 제라늄을 채취할 수 있는 산으로 가는 길목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산은 ‘루핀 커피’를 얻어낼 수 있는 던전처럼 한 사람의 소유가 된다.
과거 벌레 군단과 싸울 때는 이 산의 주인을 찾는 데 꽤 애를 먹었었다.
그러다 산의 주인을 찾은 다음에야 블루 제라늄을 이용해 능히 벌레들을 퇴치할 수 있었다.
“케엑, 켁!”
콜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서는 주변을 훑어봤다.
모든 벌레가 쓰러져 캑캑대거나 이미 목숨을 잃었다.
‘끝났군.’
병사들이 유독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벌레들의 숨통을 하나하나 끊기 시작했다.
* * *
모두 죽었다.
남은 것은 콜로와 루시아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숙주였다.
이 둘만 끝낸다면 이스벨 영지는 새로운 영지의 주인 루시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콜로는 묶여 있는 상태에서도 루시아를 보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죽이고 싶나? 그런데 당신이 할 수 있겠어?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사로잡히는 당신이, 백성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이 말이야.”
아서는 얼굴을 굳혔다.
놈은 말이 너무 많다.
사실 아서는 루시아를 위해 콜로를 남겨두었다.
아서가 본 루시아는 다르다.
하지만 콜로가 본 그녀는 한없이 나약한 여인이었나 보다.
“왜, 눈물이라도 날 것 같나? 오랫동안 당신을 보필했던 내가 이리 고통스러…….”
“쟤, 이상해요.”
“인정.”
콜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눈물 많고 참으로 정이 많았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보필했던 자신이 알고 보니 배신자인 걸 알았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런 자신을 앞에 놓았으니 가슴이 먹먹할 거라고.
하지만 오히려 루시아는 담담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내가 왜 못 할 거라 생각해?”
루시아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걸 보며 아서는 생각했다.
‘저거 내 건데?’
저 웃음.
자신이 자주 짓는 웃음이다.
특유의 상대방을 비웃는 듯하면서도 싸늘한.
지켜보는 아서는 재밌었다.
루시아는 툭툭 콜로의 머리를 검끝으로 두들겼다.
“이 꽉 물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루시아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은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자, 잠깐만요, 루시아 군주님. 소인, 당신을 모실 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자비를…….”
수우우웅!
루시아가 휘두른 검이 망설이지 않고 콜로의 머리를 잘라냈다.
투욱!
데구르르.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진 콜로의 머리.
퍼엇!
루시아는 흉측한 콜로의 머리를 발로 차버리고는 더러운 검은 피가 묻자 발을 들어 털어냈다.
“으…… 더러운 것.”
루시아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봐라, 난 이렇게 변했다.
당신과 함께할 자격이 된다.
피식 웃은 아서는 인벤토리에서 아주 작은 영단을 꺼냈다.
이것 역시 블루 제라늄을 이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블루 제라늄은 인간에게는 그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한다.
아서는 지정 중요 정보 열람을 오픈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녀의 몸속에 잠들어 있는 숙주를 토해내게 해야 했다.
루시아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서가 건네준 영단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입 안에 넣고 삼켰다.
“이제 남은 건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곧.
“끄으으…….”
그녀는 배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배 안에 자리 잡은 정체 모를 무언가가 꿈틀댔다.
몸 곳곳에 뻗어져 있는 뿌리가 하나둘씩 끊겨 나갔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서는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 주위로는 죽음의 그림 수하들과 병사들이 여왕벌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그녀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몸의 핏줄이 팽창하고 사지가 불타오르는 끔찍한 느낌.
“쿨럭!”
그녀가 커다란 기침을 토했다.
“우웨에에엑!”
핏줄처럼 붉은 줄기들이 그녀의 입에서 토해졌다.
그것은 그녀의 몸 곳곳에 길게 뻗어나가던 뿌리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 뿌리가 뇌까지 뻗어갔다면 분명 그녀는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땅에 떨어진 붉은 핏줄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펄떡거렸다.
하지만 아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곧이어.
“우우웁……!”
그녀가 크게 헛구역질을 하더니 배가 크게 들썩였다.
“우웨에에에엑!”
그녀의 입에서 투명한 껍질에 감싸인 숙주가 토해졌다.
아서가 숙주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파아아아아!
주변으로 커다란 파동이 일어나며 모든 병사가 뒤로 밀려났다.
아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여왕벌을 일시적으로 공격하실 수 없습니다.]
아마도 무방비 상태의 숙주를 지키기 위한 방편 같았다.
곧이어 숙주가 투명한 껍질을 스스로 뜯어냈다.
뚜두둑!
크기가 거대해지기 시작한 숙주.
‘기록에 따르면 여왕벌의 본체는 어지간한 오우거보다도 거대하다고 하였다.’
아서가 실제로 여왕벌이 있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록을 봤을 뿐.
곧이어 여왕벌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거보다는 조금 더 작았다.
숙주가 완전히 자라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루시아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서의 눈치를 받은 펜루스가 서둘러 루시아의 옷깃을 물어 그녀를 먼 곳에 떼어놓았다.
아서는 싸늘한 표정으로 허공 위로 날아올라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왕벌을 노려봤다.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후우우.”
고른 숨을 뱉어내는 아서는 죽어버린 숙주를 묵묵히 보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완전체로 성장하지 못한 숙주는 기록처럼 강하진 않았다.
충분히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숙주를 잡아냄으로써 S급 그림 재료 두 개도 습득할 수 있었다.
하나는 왕의 날개라는 재료였고 또 다른 하나는 만독침이라는 재료였다.
그리고 아서는 여왕벌이 죽은 자리에서 반짝거리는 기다란 장침이 드롭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템 드롭?’
과거 아서가 보았던 기록에 의하면 여왕벌을 죽였을 때 아이템 드롭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템 드롭에는 언제 죽였는지나 혹은 어떻게 죽였는지 등의 다양한 변칙수가 있었다.
아서는 기다란 장침을 들어 확인해 봤다.
(여왕벌의 살인침)
수량: 두 번
효과:
•여왕벌의 살인침이 가리키는 다섯 군데의 급소를 찌를 시 즉사한다.
“……!”
득템 중의 득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작 두 번 사용할 수 있었지만 효과가 너무 컸다.
어떠한 적이든지 다섯 개의 급소를 찌르기만 하면 즉사시킬 수 있다.
굳이 다섯 군데의 급소를 가리키는 이유는 간단해 보였다.
‘몬스터, 혹은 사람, 다양한 종족에 맞추기 위해서다.’
모든 종족의 급소는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아티팩트가 있다면 언젠간 크게 써먹을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아서는 이어 추가 알림을 들었다.
벌레 퇴치 퀘스트 완료.
그와 더불어 5레벨 업.
보상으로 받은 것은 2만 캐시와 마하라의 목걸이였다.
또 다른 마하라의 아티팩트.
아서는 이 역시 바로 확인했다.
(마하라의 목걸이)
특수 능력:
내구도: 40,000/40,000
•절대군주의 압도
•스탯 주사위
설명: 마하라. 대적할 자가 거의 없다는 전설적인 대장장이. 그가 만들어낸 열두 개의 마하라의 아티팩트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아서는 두 가지 특수 능력을 확인했다.
압도.
이는 자신보다 50% 낮은 능력치를 가진 자를 무릎 꿇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실상 50% 이상의 능력치 차이는 나기 힘들다.
특히나 군주보호기간 군주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 아서에게는 그런 이가 생각보다 꽤 많았다.
그리고 스탯 주사위.
이 스탯 주사위는 오른팔 위에서 발동된다.
이 스탯 주사위는 리스크가 적용된다.
모든 스탯 –10을 사용했을 시 랜덤으로 추가 능력치가 붙었다.
말 그대로 랜덤이었다.
10을 소모하여 1% 증폭만 나타날 수도, 100% 증폭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아서도 다른 병사들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곤한 하루였다.
아서는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천천히 눈을 뜬 루시아의 귓가에 알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크릿 퀘스트. 숙주로부터 육체 방어 성공 완료.]
[이스벨 영지의 진짜 주인으로 변화합니다.]
[10만 골드를 얻었습니다.]
[시크릿 클래스. 여왕벌로 전직하셨습니다.]
[여왕벌 스킬이 생성됩니다.]
[영지 총레벨이 15까지 대폭 상승합니다.]
[이스벨 영지가 변화합니다.]
그녀는 알림을 들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으로 죽어 있는 수만 마리의 벌레 시체가 보였다.
곧이어 루시아의 몸에서 뻗어나간 투명한 기류가 이스벨 영지 전체를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수우우웅!
수우우우웅!
투명한 기류가 지나갈수록 영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벌집, 혹은 벌레들이 사는 나무 집과 같은 것들이 더욱더 고풍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영지 총레벨 상승에 따른 변화.
그와 함께 수많은 벌레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본래 바퀴벌레, 모기, 거미, 사마귀족들로 이루어졌던 영지민들이 바뀌었다.
나비, 개미, 벌, 무당벌레들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나타난 백 마리의 여왕벌의 근위대.
그녀는 골드 상점을 오픈해 봤다.
기존에 구매 가능했던 유닛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유닛들이 가득 차 있었다.
영지 곳곳에서 새로운 영지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영지민들은 그녀의 앞에 모여들어 하나같이 고개를 땅에 박았다.
순수한 눈빛들.
그들 모두가 새로운 영지의 주인을 맞이했다.
“이스벨 영지의 군주 루시아 님을 뵈옵니다!”
“이스벨 영지의 군주 루시아 님을 뵈옵니다!”
루시아는 감격스러웠다.
‘해냈어…….’
자신을 속였던 모든 이가 사라지고 정말 자신을 위한 영지민들이 나타났다.
또한 그 누구보다 강력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근위대.
그들은 끝이 독침으로 되어 있는 창을 들고 공중에 약 20㎝ 정도 떠오른 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루시아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
자신을 이렇게 이끌어준 사람.
고작 소년이었지만 그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아서가 영지민들 틈을 헤집고 나타났다.
“아, 아서 군주님!”
그녀가 서둘러 달려올 때.
아서는 말했다.
“이 정도면 만능 꿀벌을 오늘도 줄 수 있겠군.”
하지만 아서는 늘 그랬듯 감격보다 자신의 순익을 우선시했다.
그녀에게 요구했던 것.
추후 그녀가 영지 총레벨 15가 되었을 시 만능 꿀벌 100마리를 데려가겠다고 한 거였다.
그녀는 다른 말보다 보상을 먼저 말하는 그를 보며 픽 웃었다.
‘이게 이 사람의 매력이니까.’
아서는 자신을 보며 실실 웃는 루시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웃지 말고. 내놔, 만능 꿀벌 100마리. 깎아주는 건 없어.”
그녀의 속은 하나도 모르는 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