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군주회귀록 110화
콜로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입술을 비튼 루시아가 양쪽 다리를 착 꼬고 앉아 손톱을 ‘후!’ 하고 불었다.
‘당당해야 해. 루시아, 넌 이제껏 당하기만 했어.’
아서 군주가 없어도, 설령 이 자리에서 들통나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기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황녀.
또한, 군주 루시아였으니까.
“네년…… 아니, 군주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말에 루시아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푸하하 웃었다.
“가식 좀 적당히 부리지? ‘네년’이라 했다가 ‘군주님’이라고 했다가 하나만 해.”
그녀는 아서의 말투를 흉내 냈다.
손을 쫙 펼쳐 태연하게 내려다본 그녀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손톱이 깨끗한지 둘러보는 척 연기했다.
“알고 있었나?”
“알다마다. 곧 그분의 군대가 들이닥칠 거다.”
“…….”
콜로는 그 말에 잠시 문을 보았다.
그리고 그 흉측한 바퀴벌레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더니 몸을 돌렸다.
“이거 완전 정신병자 같은 년이었군.”
콜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는 모른다.
그의 집무실과 연결된 통로에 여왕벌의 근위대가 대기 중이라는 것을. 그들은 언제든 콜로의 명령 한마디에 출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아서라는 군주? 고작 그 정도로?”
콜로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루시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콜로의 이마에 솟은 더듬이가 움직였다.
그러자 명령이 하달되었다.
끼이이익.
쿠웅!
문이 열렸다.
바깥에서 백 마리가 넘는 모기 병력이 들어왔다.
그 뒤로는 사마귀 기사들이 성큼성큼 웅장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로지 루시아만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아서는 말했다.
이제까지 당한 것이 억울한데, 너도 한번 족쳐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는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루시아 군주 나으리?”
“어떻게 알았답니까?”
“제명을 앞당기다니.”
사마귀 기사들이 루시아를 포획하기 위해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콜로가 말했다.
“그냥 모른 척 숙주께서 뇌를 지배할 때까지 기다렸으면 고통은 덜었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부터 너는 우리에게 묶여 그분이 깨어나실 때까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루시아는 계단을 밟고 걸어 올라오는 사마귀 기사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퉤!”
사마귀 기사는 표정 변화 없이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냈고 콜로는 소름 끼치게 웃었다.
“객기도 거기까지다.”
루시아는 막 사마귀 기사들이 코앞에 이르렀을 때 떠올렸다.
‘라일레 저하, 안 됩니다. 저하께선 방에서 쉬시는 게 좋습니다.’
항상 병약한 자신을 걱정하며 말한 렘지였다.
그는 항상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황궁의 시녀들까지.
‘라일레 저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잖아?’
그들의 수군거림.
황녀 모욕죄는 즉형에 처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라일레는 문고리만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약한 육체를, 저주스러운 성격을 내린 신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황녀로 태어나지 않게 하든가.
그런데 어제 깨달았다.
자신은 나약하게 태어났기에, 성격이 이랬기에 무시당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무시당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온 거였다.
그걸 깨우쳐 준 것은 아서라는 어린 소년 군주였다.
“바퀴벌레야, 네 꼴 같지도 않은 왕 노릇이 역겹구나. 이곳의 군주는 나다. 이곳의 왕은 바로 나라고.”
이곳의 군주는 자신이다.
숙주도, 지금 당장 모든 병력을 통솔하는 콜로도 아니다.
이 자리의 왕.
그리고 황녀 라일레.
그게 바로 루시아였다.
사마귀 기사의 팔이 그녀의 머리칼을 잡기 위해 뻗어졌다.
그녀가 허벅지에 숨겨둔 단검을 막 뽑아내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귓불에 새겨진 늑대 문양이 번쩍였다.
우우우웅!
밝은 빛이 터져 나와 그녀를 삼켰다.
그리고 빛이 걷힌 뒤, 그 자리엔 아서가 있었다.
“역겹다잖아.”
푸슈우우욱!
사마귀 기사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며 검은 피가 솟구쳤다.
루시아는 사라지고 아서가 나타났다.
그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좌중을 훑었다.
* * *
잠시 정신을 잃었던 루시아는 금방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녀는 거대한 크기의 붉은색 매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못생긴 군주야? 시끄럽다.”
그녀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그곳에는 그레모리가 올리아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뒤로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병사들이 손에 든 것은 폭사꽃이었다.
그들은 폭사꽃 앞으로 거대한 양동이를 내려놨다.
폭사꽃들은 스스로 줄기를 뻗어 양동이 속에 든 정체 모를 액체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죠?”
병사들은 계속 폭사꽃으로 양동이 속 액체를 빨아들이게 했다.
폭사꽃은 언급한 바 있듯 어떠한 액체든 빨아들인 후 25분 후에 분출해 낸다.
병사들은 이미 액체를 빨아들여 꽃잎 색이 빨갛게 변한 폭사꽃을 거대한 붉은 매의 몸 곳곳에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여긴…….”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이스벨 영지 근처이기도 했다.
펄러억!
질주의 매가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수백 개의 폭사꽃을 몸에 붙인 채.
폭사꽃은 ‘끈끈이풀’이라는 놈을 이용해 붙였기에 질주의 매의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레모리는 분출 시간을 딱 맞게 계산하여 질주의 매를 이스벨 영지에 보낸 것이었다.
“저, 저게 도대체 뭐죠?”
그녀의 질문에 그레모리가 입을 열려던 때.
그 품에 안겨 있던 올리아가 대신 대답했다.
“망망, 벌레 잡는 살충제!”
“살…… 충제?”
* * *
문신.
퀘스트를 통해 헤른에게 빼앗은 특수한 스킬.
이는 참으로 유용한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 몰라 루시아도 모르는 새에 그녀의 귓불에 문양을 새겼다.
새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을 지정하고 새기면 그만이다.
‘루시아, 너는 합격이다.’
아서는 지켜봤다.
그녀와 함께해도 되는지 아닌지는 아서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합격점을 받았다.
“죽음의 그림.”
아서의 짤막한 말 한마디에 그의 수하들이 검은 기류에 휩싸여 나타났다.
콜로는 당혹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어, 어딜 간 거야. 루시아를 어디로 빼돌린 게냐!”
아서는 자신의 코를 막았다.
“역겨운 벌레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하는군.”
그 말에 콜로는 당혹한 듯하다가 곧 비릿하게 웃었다.
“머저리 놈. 네놈은 죽을 것이다. 네놈의 잔존한 병력을 향해 50여 마리의 여왕벌 근위대가 갔다. 그들은 A급 유닛이다. 고작 네깟 군주가 감당할…….”
그때였다.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처억!
처억!
처억!
바람처럼 문이 열리고 영체화되어 있던 귀신부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엔 여왕벌의 근위대인 말벌 기사들의 머리가 하나, 혹은 두 개씩 들려 있었다.
투욱!
투욱!
그들은 크게 원을 그려 벌레들을 둘러싸곤 여왕벌의 근위대의 머리를 던졌다.
“마, 말도 안 돼…….”
콜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서가 아는 귀신부대는 숙련도 자체가 달랐다.
또한 영체화된다는 이점이 존재한다.
여왕벌의 근위대의 가장 큰 무서운 점은 맹독이다.
독에 당하는 순간 곧바로 온몸이 마비되고 10초 내로 죽어버렸다.
하지만 영체화된 이들에게는 독 공격이 먹힐 리 없었다.
물론 귀신부대가 영체화할 수 있다고는 하나 그들보다 규격 이상의 자들을 만났을 때마저 막강한 것은 아니었다.
아서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귀신부대화가 된 후의 방어력보다 공격력이 1.3배 높은 자들의 공격에는 영체화되어 있어도 공격이 허용된다고 한다.
하나, 여왕벌의 근위대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
“군주님.”
아서는 끄덕였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라스의 말에 아서는 답했다.
“척살.”
수우우!
수우우!
그와 함께.
영체화되어 움직이는 병사들이 엄청난 빠르기로 적들을 누비며 학살을 시작했다.
푸슈유유육!
푸슈유육!
“끄라아앗!”
“으아악!”
비명이 퍼졌다.
아서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내려갔다.
콜로는 두려움에 떨며 홱홱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병사가 죽고, 뒤에 있던 이의 목이 떨어진다.
그들의 몸이 난자되고 검은 피가 사방에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원점으로 돌렸을 때엔 아서가 앞에 있었다.
* * *
성 외벽.
아서는 병사들을 시켜 콜로를 포승줄로 단단히 묶어놨다.
그리곤 성 외벽에 서서 미친 듯이 군주성을 향해 몰려드는 영지민들을 보았다.
그들은 비록 훈련을 받진 않았지만 인간처럼 무기를 휘두르고 죽이고는 할 수 있는 자들.
그들이 어떻게든 아서와 병력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아서는 병사들을 시켜 성문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크흐흐흐, 나를 죽인다고 끝날 것 같은가? 너희는 그분을 죽이지 못해. 또한 이곳에 있는 이 많은 영지민은 어떻게 할 건가?”
정말 많다.
더럽게 많다.
이곳 이스벨 영지에는 일반 영지의 10배 가까이 되는 영지민이 있다.
약 3만에 가까운 숫자였다.
아서는 이 3만에 가까운 모든 벌레를 모조리 퇴치해야만 이 영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알아.”
아서가 피식 웃었다.
“여기 있는 모든 벌레를 잡으면 영지는 새로운 주인, 루시아를 맞이한다.”
“……!”
콜로는 놀랐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하지만 그보다는 여유로워 보이는 아서의 표정에서 더욱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
매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퍼졌다.
“왔군.”
콜로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엄청나게 거대한 크기의 붉은색 매가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의 몸 곳곳에서 투명한 액체가 분사기를 쓴 것처럼 영지를 향해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키헤에엑!”
“끄레에에엑!”
영지민들이 몸을 배배 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비명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곧이어 콜로는 볼 수 있었다.
영지민들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제는 아예 바닥에 쓰러져 몸을 비틀고 있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쿠우우웅!
영지의 문이 열리며 발카스 영지의 병사들이 쏜살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통에 쓰러진 영지민들을 뒤로하고 등 뒤에 가방을 멘 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아서는 미리 쥐들을 이용해 영지 곳곳을 탐색하고 이스벨 영지의 지형지물에 관련한 모든 것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레모리는 병사들에게 각각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각자의 자리로 간 병사들은 가방에 있던 폭사꽃을 꺼냈다.
푸쉬이이익!
푸쉬이이익!
폭사꽃에서 투명한 액이 흩뿌려질수록 영지민들은 더욱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 향내는 콜로에게까지 뻗어왔다.
“끄아아악!”
그는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기관지를 파고든 향에 몸속이 불로 달구듯 뜨거워졌다.
“살충제가 좀 독하지?”
“사, 살충제……?”
콜로는 몸을 비틀면서도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수만의 영지민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몸이 약한 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간신히 숨이 붙은 자들은 이제 숨을 끊기만 하면 그만이다.
정말로 앞의 소년은 수만의 영지민을 죽일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