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군주회귀록 109화
처음 루시아 군주가 이스벨 영지에 군주로 왔을 때부터였다.
이미 그녀의 몸속에는 숙주 ‘여왕벌’이 기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콜로와 모든 영지민, 새로 구매되는 유닛까지 전부 그녀를 속인 것이다.
“이제 고작 2주 남았군.”
콜로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대리인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리인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벽장을 미는 순간 공간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핵심 병력이라 할 수 있는 사마귀 기사, 이스벨 영지의 고위 간부, 영지민 대표까지 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사마귀 기사들을 이끄는 단장 니케스가 말했다.
“이제 고작 2주가 남았습니다. 제가 본 아서라는 군주는 예사롭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자는 어찌할 겁니까?”
콜로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지.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유능한 자야. 숙주께선 루시아의 모든 걸 듣고 보고 계신다. 그녀를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지.”
콜로는 그렇게 말하며 이죽 웃었다.
“만약 거슬리면 치워 버리면 그뿐 아니겠는가. 숙주께서 온전한 여왕벌로서의 힘을 되찾는다면 저깟 군주 따위 밀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실제로 숙주가 루시아의 몸을 빼앗아도 여왕벌이 되는 데 시간이 조금 소요된다.
완전한 여왕벌이 된 때라면 어지간한 도전 군주의 영지와도 맞먹을 터.
그때가 되면 고작 저런 애송이 군주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뭔가 기분 나쁜 소년입니다.”
영지민 대표인 지네족 인간이 한 말이다.
그에 콜로도 동감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지. 굉장히 꺼림칙해. 하지만 고작 정예 병력 40명만을 이끌고 왔으니, 일이 생기면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지.”
콜로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앉아 있는 자들을 지나친 콜로는 문 하나를 열어젖혔다.
그 안에 거대한 벌집이 있었다.
아주아주 거대한 벌집.
“오십 마리다. 자그마치 여왕벌의 근위대가 오십 마리라는 거다. 이 녀석들은 A급 병력과 맞먹는 힘을 부린다.”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 * *
여왕벌의 근위대를 본 아서는 예상외의 상황에 놀랐다.
‘벌써 근위대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숫자는 고작 오십에 불과했다.
듣기론 여왕벌 루시아가 폭주를 시작했을 때 근위대의 숫자는 자그마치 천 마리 이상이었다고 한다.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어…….”
여전히 루시아는 부정하고 있었다.
아서가 뿌린 정찰용 쥐는 은밀히 콜로를 쫓아 밀실 안까지, 그리고 근위대가 있는 벌집까지 들여다본 상태였다.
“그럴 리 없어…… 콜로는 좋은 대리인인데…….”
“짜증 나는군.”
계속 넋을 잃고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아서는 미간을 구겼다.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그는 망설이지 않고 팔을 뒤로 젖혔다.
후우웅!
짜악-!
뺨을 맞은 루시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아서를 올려다봤다.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른 아서가 그녀의 반대쪽 뺨을 때렸다.
짝-!
“악!”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싸우거나, 온몸이 먹히기 전에 내가 널 죽이거나.”
후자는 잔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루시아는 완전히 몸을 빼앗기고 숙주가 된다.
그러면 아서는 그녀를 망설이지 않고 단칼에 죽여 버릴 거다.
여왕벌 루시아는 인류에게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힌 자다.
앞으로의 장기전을 생각했을 때 그건 옳지 않다.
“정말 X신 같군.”
아서는 독설을 망설이지 않았다.
루시아의 눈이 파들파들 떨렸다.
“어떻게 그런 성격으로 전술의 신이 되었고 어떻게 그런 성격으로 훈련소에서 안 떨어졌는지 의문일 지경이다. 너 같은 게 황녀라고?”
아서는 피식 웃음 지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새겨지고 들어왔다.
“X같잖아, 이제까지 속이고 이용당했는데, 강냉이라도 털어야 되는 거 아니야, 응?”
아서가 그녀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너무 차갑지 않냐고?
이건 무른 여인을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그녀는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아서가 그녀와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한들, 그녀를 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성격이면 언젠간 아서의 발목을 잡는 날이 올 것이다.
또, 도움을 준다 한들 앞으로도 이딴 식이라면 영지 운영이 순탄히 이루어질 리 없었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당했으면 열 배, 백배로 갚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전 너무 착해서 그런 짓 못 해요!’ 그게 너다. 그런 식으로는 네 제국의 백성도 지키지 못하고, 군주로서도 당장 이 상황을 이겨도 결국 같은 상황에 봉착할 뿐이다.”
그녀의 입술이 질끈 깨물어졌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때 루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정말…….”
그 말에 아서는 고개를 돌렸다.
“다 엎어야지. 네 가슴에 있는 거, 그건 부정이 아니라 ‘분노’다. 이제까지 네가 그들에게 속았다는 분노를 ‘부정한다’로 속이는 것뿐이야.”
“엎는 거…… 제 손으로…… 하는 게 좋겠죠?”
아서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표정.
독기.
아서의 말처럼 그것은 부정일 뿐, 분노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녀는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큰일이 있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자각하게 될 때는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그녀가 진짜 황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지도 몰랐다.
“다 죽여 버릴까요?”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워진 목소리.
그녀의 치아가 뿌드득 갈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서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쓸 만하군.’
* * *
낮이 되자 이스벨 영지에선 다시금 가짜 루시아 군주와 아서가 함께 밖으로 나와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루시아 군주만이 진짜로 바꿔치기되었다.
무사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아서의 말을 떠올렸다.
‘밤쯤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다. 정예 병력 40명은 그대로 둘 테니, 혹 위험한 일이 있으면 그들이 보호해 줄 거다.’
밤에 모든 판도가 뒤바뀔 거다.
아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 이스벨 영지 전체를 갈아엎을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갈아엎는 거였다.
‘내 특성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든 영지민과 병력, 현 이스벨의 모든 자를 죽인다면 그때 진짜 네 영지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 영지의 벌레는 진짜 너의 부하가 되어줄 거다.’
진짜 자신의 부하들.
그들을 얻을 수 있다.
‘강해져야 한다.’
그녀는 또다시 곱씹고 곱씹었다.
“루시아 군주님, 다리가 아프시진 않습니까? 말개미에 승차하시지요.”
콜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개미에게 오를 것을 권했다.
말개미는 말처럼 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벌레다.
그녀가 말개미 위에 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영지의 모든 벌레를 잡겠다는 거지?’
어느덧 모든 병력이 이스벨 영지 앞에 당도했다.
영지의 문이 열리고 루시아는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펜루스의 위에 타고 발 빠르게 산에 오른 아서는 그레모리와 만날 수 있었다.
이미 그레모리와 병력들은 아서가 말했던 모든 작업을 끝마친 상태였다.
“가자.”
“대리인과 영지민, 병사들이 하나같이 군주들을 속이는 자들이라…….”
그레모리는 말끝을 흐렸다.
곧 그녀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쓰레기 사냥을 가는 건가요?”
거친 말이었지만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이 설정을 누가 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군주’라는 이름으로 영지에 세워놓고, 알고 보니 그 자리를 줄 생각도 없던 게 아닌가.
‘이 방법이면 이스벨 영지의 모든 벌레를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아서가 이 산에 오른 것은 과거 한 군주가 여왕벌 루시아와 싸우면서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에 사용되었던 방편이기는 하나 이 방법 하나로 밀고 들어오던 벌레들과의 싸움에서 한판 역전승을 거둬냈다 할 수 있다.
아서는 병사들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이며 퀘스트 창을 열람했다.
(벌레 퇴치)
등급: SS
지급 캐시: 20,000
보상: 모든 스탯+10, 마하라의 목걸이 > 바로 지급형
승낙 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시: 루시아 사망
설명: 벌레들에게 잠식된 루시아 군주의 영지. 모든 벌레를 소탕하라, 이는 숙주까지도 포함한다.
아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제는 지금 숙주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숙주를 죽이는 방법, 그리고 루시아가 이스벨의 군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아서는 지정 중요 정보 열람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숙주를 죽이는 방법은 이미 숙지했다.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놈이 현재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모른다는 거다.’
숙주의 무력.
그 부분은 알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해내면 아서는 루시아를 통해 얻을 것을 제외하고서도 마하라의 아티팩트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세 개를 모으면 세트 효과가 생긴다고 하였지.’
아서는 글렌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왕좌에 앉아 있는 루시아.
그녀는 갑작스러운 콜로의 청에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서 군주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저희는 아서 군주님께 영지 현황에 대한 요청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콜로.
하지만 루시아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본체가 아닌 허상 따위가 영지 현황표를 건네줄 순 없다.
영지 현황표는 군주가 홀로그램을 복사하는 형태로 양피지에 옮겨 건네주어야만 한다.
‘영지 현황표를 미리 받아둬야 나중에 동맹 관계일 때, 놈을 파악하는데 더 쉽지.’
그리고 콜로는 아서를 미리 더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건 사실 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콜로. 구,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현재 아서 군주님께서는 저희 영지의 영지 현황표를 확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서 군주님께서 도움을 주는 입장이고 일시적 동맹 관계라지만 그게 맞는 겁니다.”
“그,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지금 바로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군주님, 언제까지 남에게 휘둘려선 안 됩니다.”
콜로는 여전히 인자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군주님도 한 사람의 군주로서 다른 이에게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가셔서 영지 현황표를 요청…….”
“나중에 하죠.”
그녀는 이마에서 또르르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콜로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왜 이러지?’
그랬다.
루시아는 강해지자 마음먹었지만 거짓말에는 젬병이었다.
더군다나 콜로의 말대로라면 그것을 받아내는 걸 미루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군주님, 왜 그러십니까?”
“…….”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콜로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년 혹시…….’
영지 현황표를 받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서 군주가 개차반일지라도 계속된 동맹 관계를 원한다면 순순히 응할 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걸 확인하기 위해 콜로는 말했다.
“휴우, 군주님. 이건 정말 아닙니다. 그럼 제가 직접 가서 받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콜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기는 하였으나 큰 의심을 사진 않을 터.
그렇게 콜로가 문을 열기 위해 걸어 나갈 때였다.
루시아의 싸늘한 목소리가 콜로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X발, 내가 싫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