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군주회귀록 107화
여인을 흉내내는 것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쉽지 않다.
반면 고든의 아버지 정도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헤른은 소름 끼치는 연기를 보이지 않았던가.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야. 궁지에 몰린 던전 마스터가 우릴 모두 죽일지도 몰라!
그는 그러한 말을 하며 평소의 고렘이 조심성 많으며 모든 상황을 통찰하는 자라는 걸 보였다.
또한 레이 부인의 의심도 완벽히 지워냈다.
몸을 바꿔치기하는 건 정말 찰나의 순간.
그는 완전히 위장해 숨어 있었던 거다.
“사, 살인마아아!”
“꺄아아악,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시끄러운 비명 소리.
얼굴에 묻은 피를 쓰윽 닦아낸 아서가 짧게 말했다.
“시끄럽습니다.”
아서가 싸늘한 표정으로 좌중을 바라봤다.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단숨에 사람을 죽인 자다.
모두의 뇌리에 그가 적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헤른이 숨겨놓은 또 다른 복병 정도로.
“이자가 아직도 고렘이라는 분으로 보이십니까?”
“뭐…… 라고요?”
레이 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시선을 고렘에게로 돌렸다.
곧이어 그녀는 볼 수 있었다.
고렘의 몸이 울룩불룩 부풀어 오르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흑빛 갑옷을 입고 있는 얼굴의 형체가 보이지 않게 일그러진 사내.
어쩌면 그의 얼굴이 다른 이들에게 일그러져 보이는 것은 특성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든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듯.
“허억……!”
“억?!”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서는 그제야 말했다.
“이제 모두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서는 자신이 있는 이상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그, 그렇다면 그이는…… 그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아서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은 레이 부인에게 설명했다.
“이자는 그 어떤 장소에서도 자신이 지정한 사람과 몸을 바꿔치기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바꿔치기한다는 말입니다. 어딘가에 살아계실 겁니다.”
“아……!”
레이 부인이 안도했다.
“끄으으…… 어, 어떻게…….”
복부에서 피를 흘리는 헤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능력은 아직 세간에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이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은 그의 첫 습격전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그의 능력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서는 발을 들어 올려 헤른의 복부를 힘껏 밟았다.
뿌드드득!
“끄아아악!”
그가 비명을 퍼뜨렸다.
“대답해 줄 이유는 없지.”
아서가 창으로 놈의 목을 꿰뚫으려고 하던 때였다.
“저놈은 쉽게 죽어선 안 돼요!”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까마귀 고기로 던져 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잘 안다.
정말 누구보다 잘 알다마다.
그는 사람의 감정을 쉬이 여긴다.
연인에게 칼을 쥐여 주고 서로 죽이라고 한 적도, 갓난아이의 아버지에게 검을 건넨 뒤 네 애새끼를 죽이면 살려주마와 같은 말을 하며 둘 모두 죽인 일화도 유명하다.
확실한 건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는 거다.
그때였다.
띠링!
퀘스트 알림이 떴다.
아서는 확인한 후 미간을 구겼다.
그는 미간을 구기다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원치 않는다 하여 그러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서의 경우 그래도 단번에 목을 꿰뚫려 했다.
하지만 뒤쪽의 사람들도, 퀘스트도 자신에게 말한다.
정말 그냥 죽여선 안 되는 자라고.
‘보상은 낙인 능력을 가져오는 거고. 페널티는 모든 스탯-30.’
때론 이런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분노를 가라앉혀 주기 위해.
때마침 흡박쥐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사람들은 당혹했으나 곧 아서가 뛰어들어 단숨에 반절 이상을 쓸어내자 경악했다.
곧이어 아서는 자신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는 흡박쥐들을 보았다.
여전히 헤른은 복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정신은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검을 들고 싸울 힘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터다.
“제안 하나 하지. 너희들, 그리고 너.”
아서는 흡박쥐와 헤른을 번갈아 가리켰다.
“싸워라. 이기면 살려준다.”
아서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는 약속하지.”
“저들은 내 부하들이다. 내가 구매한 유닛이라고!”
그에 헤른은 바닥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웃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부모에게 죽이라는 것과 유닛이 던전 마스터를 살기 위해 공격하라고 하는 것. 네가 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약과다.”
“미친놈.”
헤른은 부정했다.
부하들이 그럴 일이 없지 않은가.
아서는 피식 웃었다.
“이런 말 못 들어봤나?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게 박쥐라고.”
아직 헤른은 모르나 보다.
놈들은 당장 충성스러워 보여도 자신들이 죽을 것 같으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자신들이 죽을 위기, 또한 헤른을 죽이면 살려준다는 이야기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겠지.
하지만 아서는 박쥐 형태 몬스터들의 공통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살아남은 몬스터는 살려주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아서의 물음에 흡박쥐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마스터를 죽엿!”
“마스터를 죽여랏!”
“이, 이런…….”
헤른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헤른이 저와 같은 짓을 벌일 때, 대상들은 십중팔구 같은 선택을 했었다.
바로 헤른 자신을 공격했던 것.
그래서 그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들도 자신을 위해 싸워주리라고.
하지만 정반대였다.
“끄아앗,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난 너희들의 마스터란 말이다!”
아서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처절함.
부하들이 등을 돌리고 살기 위해 공격한다.
헤른의 검이 휘둘러지지만 이미 그는 복부가 뚫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푹푹푹푹!
병장기들이 그의 몸 곳곳에 틀어박혔다.
“이럴 순 없어. 난 너희들의 주인이란 말이다아!”
“끼에, 죽어랏!”
푹푹푹푹!
헤른의 등 뒤에 달라붙은 흡박쥐 하나가 사정없이 그의 목을 단검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쿠우웅!
바닥에 쓰러진 헤른.
참 그다운 최후다.
그리고.
푸수이이익!
푸쉬이익!
흡박쥐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끼에, 약속하지 않았나!”
아서가 휘두른 창에 속수무책 쓰러져 나가는 그들.
그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인피니티를 휘두르며 말했다.
“전쟁터에서 약속도 있다고 배웠나?”
마지막 흡박쥐가 쓰러졌다.
퀘스트가 원한 것은 영지민들의 분노 충족이었다.
충족도 100%가 되면 보상을 받는다.
이 행위로 아서는 충족도 100%를 채울 수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아무도 널 위해 싸워주는 놈은 없을 거다. 카악 퉷!”
그 와중에도 화가 덜 풀린 영지민은 죽은 헤른을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
쿠우우웅!
그리고 홀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열렸다.
그 앞에 천천히 발을 옮기는 고든이 있었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레이 부인을 바라봤다.
그러곤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낀 채 천천히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그와 함께.
아서에게 퀘스트 달성 알림이 들렸다.
[약탈자 반지 퀘스트: 창술의 신 고든 완료.]
[창술의 신 고든이 발카스 영지의 약탈자의 반지형 유닛으로 생성됩니다.]
아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서는 추가로 헤른이 완전히 죽었을 때 들은 영지민들의 원성 풀어주기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것도 확인했다.
이는 실제로 낙인을 찍는 능력이었고 이름은 ‘문신’이었다.
(문신)
엑티브 스킬
등급: S
레벨: ?
숙련도: 0%
소모 마력: 150
설명: 귀에 사용자가 지정한 그림을 그려내어 언제든 그와 몸을 바꿔치기할 수 있다. 이는 딱 두 명에게만 새길 수 있다.
아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찾았습니다. 총사령관님!”
고든의 아버지 고렘을 찾았다는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영주의 침실에 몸 성히 잠들어 있었다.
* * *
아서는 손에 쥐어진 마스터의 증표를 바라봤다.
고든은 아서의 요청에 쉬이 그걸 건네줬다.
물론 그는 열심히 피력했다.
‘고든 사령관님의 가족 분들이 있다 해서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지휘관이 흔들리는 건 가장 큰 악수니까요.’
반은 거짓, 반은 사실이었다.
그걸 꽉 쥔 아서는 다음의 일정을 떠올렸다.
‘이 다음은 대마법사 바흐.’
7클래스의 대륙 최고의 마법사.
그리고 8클래스와 가장 가까운 남자.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리고 프라스 도시의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
아서는 현재 라일레와 같은 마차에 타고 있었다.
황녀 라일레의 호위기사.
정확히는 황실 제3 기사단의 단장 렘지는 그에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전장의 귀신이 함께 마차에 올랐다는 건,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는 거니까.
라일레는 렘지를 밖으로 내보냈다.
증표를 바라보던 아서는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고 그녀가 건네는 걸 받아 들었다.
“정말 놀랍군.”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녀가 전술의 신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녀는 루시아라는 군주이기도 했지만 라일레 황녀로서 자신의 병의 치료를 위해 대륙 곳곳을 유람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이러한 것을 주웠다.
‘병법서.’
이 병법서는 일반 것이 아니다.
지구라는 곳에서 흘러 들어온 병법서였다.
그 때문일지 모른다.
‘모든 전술이 허를 찔렀다.’
이곳과 다른 세계의 병법.
어쩌면 그 덕분에 그녀가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전술 전략을 짠 것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그녀는 지구의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었다.
그중 아서는 딱 하나의 책을 그녀에게 원했고 받을 수 있었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1,001가지 요리 비법.’
그걸 보며 아서가 떠올린 생각은 하나다.
‘새로운 요리를 줘야지만 아리스가 충족되어 버프를 받을 수 있다. 그 의미는 이걸 이용해 만든 요리를 그녀에게 주기만 하면 그녀를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아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여전히 라일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바쿡 대리인 콜로가 발키리 총연맹에 들어간 제가 힘들어할 때 했던 말이 뭔지 아시나요?”
아서는 묵묵히 들었다.
“힘내세요. 군주님, 누가 뭐래도 저희는 당신을 응원하고 최고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군주님께서 가시는 길이 설령 지옥 끝까지라고 할지라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 말을 했던 바쿡족 대리인, 병사, 영지민 모두가 거짓말이라.
그들이 모두 자신을 속이고 있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확인은 바로 할 수 있을 거다.”
그 말과 함께 아서는 먼저 군주게임에 접속했다.
“하아.”
한숨을 쉰 라일레도 곧이어 군주게임에 접속했다.
두 사람은 이제 군주게임에서 아서와 루시아 군주로서 대면하게 될 것이다.
* * *
군주게임으로 돌아온 아서는 곧바로 병영의 정보를 열람했다.
(병영)
레벨: 15+5
병사: 193/1,200
병사 업그레이드 가능: 3만 골드 소요
특별 보상 유닛: 창술의 신
아서는 병영에 떠 있는 특별 보상 유닛을 확인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클릭했다.
약탈자의 반지에 의해 처음으로 얻게 된 병력.
더군다나 창술의 신이라고 불리던 자다.
아서의 앞으로 푸른빛이 생겨났다.
곧이어 푸른빛 안에서 한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사내는 고든과 분명히 생김새가 달랐다.
하지만 그 소름 끼칠 정도의 차가운 눈매는 고든과 흡사했다.
[약탈자의 반지 유닛의 이름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라스.”
아서는 일부러 고든과 이름을 달리했다.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실제로 창술의 신을 통해 얻어낸 유닛이었지만 그의 대륙에서의 재능, 창술 능력 모든 것이 판박이여도 생김새는 완전히 다른 자가 나타난다.
괜히 헷갈리지 않기 위해선 이름을 달리하는 게 편했다.
아서는 곧바로 라스의 정보를 열람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