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군주회귀록 105화
창술의 신.
그리고 이필립스 제국의 모든 병사와 기사를 총괄하는 총사령관 고든.
마도병사들이 아틀라스를 조종하며 영지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그 앞으로는 병사들이 벽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그때 예상처럼 벽 위로 공성 무기가 나타났다.
푸화아아아!
용화포.
마치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화염을 쏟아내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수십 개의 용화포가 벽 위에서 거센 불길을 토해냈다.
1클래스와 2클래스 마법사들이 마법을 통해 불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쉬이 되지 않았다.
‘이건 못 뚫는다. 억지로 뚫으려고 하면 우리 쪽 피해가 너무 커져.’
보통 이러한 경우 두 가지 방법을 취한다.
피해를 감수하고 돌격해 뚫거나, 장기전을 바라보며 놈들의 식량이 떨어져 백기를 들고 나오길 기다리거나.
하지만 이번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은 이 둘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피해를 감수하려고 해도 놈들이 바일리 영지에서 뿌려대는 공성 무기는 결코 예사 것이 아니었다.
놈들은 애초에 그걸 노리고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을 계획한 것이리라.
두 번째.
이는 더 큰 문제다.
자신들은 지금 인간과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었다.
던전 마스터와 그를 주축으로 한 몬스터들과의 전쟁.
놈들은 배가 고파지면 영지민들을 잡아먹을 것이다.
“사령관님, 그는 해낼 것입니다.”
현재 전장의 귀신은 다른 이들과 함께 아틀라스 안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다소 놀랐네. 전장의 귀신이 저런 소년이었다니.”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던전 마스터는 위험해지면 가족분…… 아닙니다.”
사령관 고든이 얼굴을 찌푸렸다.
“도널드.”
“예, 사령관님.”
“더 이상 그 애긴 꺼내지 말게.”
도널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묵묵히 죽어가는 병사들을 지켜보는 사령관 고든을 보며 그는 말하고 싶었다.
‘영지에는 사령관님의 가족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랬다.
총사령관 고든.
그는 바일리 영지가 고향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 상대편 던전 마스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던전 마스터는 계속해서 인질들을 죽여 그 머리를 벽 위로 걸어놨다.
그 의미는 간단했다.
‘총사령관 고든, 네 가족들이 이 꼴이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공격을 멈춰라.’
현 황제는 사실 이번 작전에 고든을 투입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북방에 나타난 던전 마스터 토벌에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고든이 이러한 말을 했다.
‘제 가족 때문에 저를 보내시지 않는 거라면 그건 아니 되는 말씀입니다. 바일리 영지에서 자란 만큼 저는 누구보다 그곳의 지형지물을 꿰고 있다는 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황제는 간단하게 해석했다.
이제껏 봐온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황제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하다.
여러 명의 자신의 가족보다도 수십만 영지민을 위해 흔들리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신 거 아닙니까?’
어쩌면 군인이라면 이게 맞을지도 모른다.
제국 수호를 우선시하고 가족의 목숨보다 수만의 영지민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사령관도 사람이었다.
도널드는 보았다.
총사령관 고든의 주먹이 꽉 쥐어져 미미하게 떨리고 있음을.
* * *
A급 던전 마스터 헤른.
그는 흑빛 갑옷을 두른 사내였다.
그는 모든 이에게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남들이 볼 수 없게 해놓은 것처럼.
이는 그의 특수한 능력 중 하나였다.
던전 마스터들도 군주게임의 군주들처럼 아스간 대륙 침범 게임을 하면서 특성을 받는 경우가 존재했고, 헤른이 그러한 경우에 속했다.
그는 자신의 퀘스트창을 열람했다가 껐다.
‘바일리 영지 지키기.’
앞으로 딱 삼 일 남았다.
삼 일만 바일리 영지를 지켜내면 두둑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모든 병력과 자신은 워프되어 다시 던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영지를 탈환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저 병사들은 아마도 허탈감에 좌절할 것이다.
‘고든, 냉정한 자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던전 마스터들도 기어 나와 습격을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
헤른은 바일리 영지를 빼앗고 지키라는 퀘스트를 실행하기에 앞서 이 영지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살폈다.
그리고 월척을 건졌다.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는 고든.
그의 가족이 여기에 있다.
지금도 고든의 가족은 인질들 틈에 있었고 미리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바가 있었다.
‘탐색전이라…….’
첩자인 검은 맹수 용병단의 코날이 매를 통해 공격을 암시했다.
이는 단순한 탐색전이라고 하였다.
하나 탐색전치고는 꽤 거창했다.
아틀라스를 운용해 공격을 감행했다.
‘아틀라스를 던전에 가지고 가면 유용할 거다.’
이렇듯 던전 마스터는 얻어낸 것들을 던전으로 가져가 강화할 수 있기도 했다.
때마침.
“끼에끼에, 마스터님. 병사들이 모두 후퇴하고 있습니다.”
흡박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흡박쥐는 그가 부리는 주된 병력으로 C급이다.
또한 정예 병력으로 보유한 100마리의 촉수박쥐는 자그마치 B급에서 A 사이를 오간다.
촉수박쥐는 몸에서 여러 가닥의 촉수를 뽑아내 적들의 피를 쪽쪽 빨아들여 미이라로 만든다.
“주변 순찰은?”
“끼에끼에, 모든 놈이 후퇴했습니다. 마스터님 말씀처럼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헤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벽 위로 올라왔다.
그의 눈이 아틀라스를 훑었다.
놈들은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바일리 영지에 있는 공성 무기의 힘을 맛보고 뚫을 수 없다 판단한 것일 거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헤른이 말했다.
“아틀라스를 회수하라.”
“끼에, 예!”
* * *
아서는 속이 텅 비어버린 아틀라스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약탈자의 반지가 첫 번째 퀘스트를 하달했다.’
아서는 반지가 준 퀘스트를 떠올렸다.
(약탈자 반지 퀘스트: 창술의 신 고든)
설명: 창술의 신이라 불리는 고든. 그의 가족이 바일리 영지에 인질로 잡혀 있다. 그들 모두를 구해내라.
모두를 구하라는 말이 꺼림칙하긴 했다.
그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서는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창술의 신 고든과도 꽤 친분이 두터웠다.
그와 아서는 아스간 대륙에서 창으로는 양대산맥으로 불렸다.
아서는 대륙제일창의 이름으로.
고든은 창신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아나, 아서?’
수백의 몬스터의 시체가 나뒹구는 전쟁터에서 던져졌던 물음.
아서와 고든은 그때 피 칠을 하고 그 자리에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었다.
적군을 쓸어낸 고든은 연초 하나를 입에 물어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내가 내 손으로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을 지휘했던 것.’
‘…….’
아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었었다.
‘무모했지. 내 가족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아틀라스를 이용한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실패했지. 분노한 던전 마스터는 먼저 내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 던졌다. 그다음 어머니를, 그다음은 이제 막 혼인식을 치른 동생을 나체로 벗긴 후에 던졌다.’
정말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때 고든의 얼굴은 정말 참혹했다.
‘누군가는 말했지. 고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령관이다. 염병할 개소리. 내가 그때……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나?’
고든은 고개를 푹 떨구며 연초의 재도 털지 못했다.
‘난 삶의 이유를…… 잃었어…… 단순히 놈들을 죽이는 것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마지막 연기를 뿜어낸 고든.
그리고 얼마 후 아서는 흘러들어 오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영지 하나를 쓸어버린 또 다른 던전 마스터.
제국 곳곳에 퍼진 병사들에 의해 지원 받을 수 있는 병사는 적었다.
그곳에 고든은 혼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혼자 도륙했다.
고든은 수십 개의 병장기에 몸이 꿰뚫린 채 무릎을 꿇고 고개는 땅을 향한 채 죽어 있었다.
아서는 그때 알아챘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비록 아서는 그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는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운 전우였다.
때문에 이 퀘스트는 아서에게도 값지리라.
“끼에끼에, 빨리 움직여라. 만약 병사들이 돌아온다면 문이 닫힐 것이다!”
“끼에!”
아틀라스가 옮겨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수레에 세워 운송을 시작한 것이다.
아서는 작은 틈을 통해 문이 열리고 바일리 영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걸 알 수 있었다.
‘성문을 여는 것은 다른 기사들로 충분하다.’
이미 수호부대의 열 명의 최정예 기사가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서 자신은 혼자 적진 깊숙한 곳으로 침투할 예정이었다.
‘던전 마스터 헤른.’
잘 안다.
아주 잘 알고말고.
추후 아스간 대륙의 인류의 씨를 말린 인물 중 한 명.
또한 잔혹무도한 자.
결국 던전 마스터도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마다.
성문이 열리면 그 악마가 어떤 제스처를 취할지 아서는 알고 있다.
‘그 빌어먹을 특성.’
전생에서 그는 매번 그 특성 덕택에 미꾸라지처럼 도망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닐 것이다.
아서가 인피니티를 꽉 쥐었다.
* * *
“좋군.”
격납고에 다섯 기의 아틀라스가 세워져 있었다.
헤른이 그 아틀라스에 손을 얹어 습득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습득의 기도는 무언가를 약탈했을 때 마스터가 던전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도다.
하지만 이는 돌아갈 때 가져가는 것이지, 지금 당장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곧 기도가 완료되자 뒷짐을 진 그가 다시 영주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본보기를 보여줘야겠군.”
첫 번째 공격이 감행되었다.
이는 고든이 어떻게 해서든 바일리 영지를 탈환하겠다는 적의를 내보인 셈.
그러면 그는 고든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된다.
영주성으로 들어온 그는 홀로 향했다.
홀로 들어오자 몬스터들이 원을 그리고 수백 명의 인질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은 이 바일리 영지에서 꽤 중요한 직책을 가졌던 자들이었다.
‘아직 저들은 아니야.’
헤른의 눈에 겁먹은 고든의 가족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저 패를 사용할 때가 아니다.
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바일리 영지에서 가장 큰 상단을 운영하는 로테만이라는 남성과 그의 아들 로크가 함께 있었다.
로테만은 중년의 남성이었고 아들 로크는 스물 초반의 영지군 병사였다.
“기립.”
“…….”
둘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헤른이 눈짓했다.
그 둘을 제외한 그들의 가족들까지 앞으로 끌려 나왔다.
“꺄아악.”
“히이익.”
헤른은 무심한 눈빛으로 로테만과 로크를 번갈아 봤다.
“자, 싸워라.”
“……?”
“……?”
로테만과 그 아들 로크가 잠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탱그랑!
탱그랑!
헤른이 양쪽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씩을 뽑아 땅에 던졌다.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워라. 그러지 않으면…….”
헤른이 이죽이며 웃었다.
곧 흡박쥐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떠는 로테만의 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다른 년놈들이 죽는다.”
히죽.
헤른이 싸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