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군주회귀록 104화
“이런 미친 꼬마 놈은 또 처음 보는구나.”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던 코날이 몸을 일으켰다.
2m 크기의 거구.
그는 아서를 한참이나 내려다봐야 했다.
검은 맹수 용병단의 다른 이들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서와 코날을 보았다.
누가 봐도 신장 차이가 확연히 났다.
거기에 상대는 고작 소년이었다.
제법 훌륭해 보이는 갑옷과 창을 가지고 있었지만 코날은 기사도 여러 명을 때려눕힌다는 인물이었다.
“너희 용병들 이런 거 좋아하지 않나? 나한테 처맞고 기절해서 이 정도 받으면 남는 장사지.”
아서는 코날이 라드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라드는 소년 아서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 죽을 거야……!’
단잠을 깨웠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팔을 지진 자다.
그런 자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것도 일개 병사 소년이.
다른 이들의 눈에 아서는 기껏해야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병사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서는 이곳 탈환 작전이 펼쳐진 바르디 평원에 도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때문에 갖은 소문이 무성했다.
전장의 귀신은 키가 산만큼이나 거대한 괴물 같은 자라거나 본래 유명한 검술 가문의 자제인 건장한 청년이라는 소문 등등.
그 누구도 전장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자가 기껏해야 열여섯 살 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코날은 묵직한 도끼를 들었다.
이 도끼로 오우거의 머리통도 여럿 쪼개졌다.
그리고.
이 도끼로 소년의 머리도 쪼개지리라.
“머저리 꼬맹아. 네 수박이 깨지면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하구나!”
수우웅!
라드는 코날의 도끼가 힘껏 소년의 머리를 향해 내려쳐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소년 병사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고마운 자다.
자신이 하고픈 말을 대신 해줬다.
그런 소년이 죽으리라 생각하자 끔찍했다.
눈을 질끈 감았던 소년 라드는 곧이어 들려온 경악스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헉……?”
“이, 이럴 수가?”
“고, 공격대장님의 도끼를…… 하, 한 손으로 막아?”
라드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아서가 창을 한 손으로 가뿐히 들어 올려 창끝으로 도끼날을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서가 말했다.
“흑오우거 코날이 아니라 계집애 코날이었군?”
* * *
아서가 검은 맹수 용병단 막사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첩자가 바로 코날이었기 때문이다.
코날의 첩자질 덕분에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 버렸었다.
더군다나 현재 영지 안에는 인질들이 있었다.
아틀라스를 이용해 문을 열려는 계획을 첩자인 코날을 통해 알게 된 던전 마스터는 인질로 잡고 있는 영지민 중 1/4을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인 후에 머리를 불태워 벽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의 치욕.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이후로도 코날의 첩자 짓은 계속됐다.
애초에 코날은 첩자 짓을 위해 전쟁터 곳곳을 용병단원들과 돌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용병단원들도 모두 같았다.
그들은 던전 마스터들로부터 막대한 돈과 아티팩트를 지급받으며 떵떵거렸다.
그리고 추후엔 그 사실이 알려져 모두 죽어나가고 ‘검은 맹수 용병단’의 치욕적인 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왔다.
“이이이익…….”
코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가 한 손으로 내려찍었던 것을 양손으로 잡고 힘으로 눌렀지만 아서는 밀리지 않았다.
아서는 너무나도 가볍게 툭 창을 움직여 도끼를 퉁겼다.
“이 새끼가!”
분노한 코날의 도끼에 은은한 빛이 어렸다.
오러.
아서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휘둘러지는 도끼를 피해냈다.
코날의 도끼는 분명히 위협적이다.
용병들 또한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
살아남기 위해.
하지만 아서에게는 육중한 돼지가 무식하게 휘두르는 도끼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심하게 피해내던 아서가 발로 그의 허벅지를 힘껏 걷어찼다.
콰자악!
뿌드윽!
단순히 걷어찬 것일 뿐이었다.
쿠우웅!
코날의 다리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한쪽 무릎이 꿇렸다.
“커헉!”
거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키가 너무 크군.”
코날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한쪽 무릎은 기울어 있었다.
아서는 이어 코날의 반대쪽 무릎을 거세게 걷어찼다.
콰자악!
쿵!
“커헉…….”
코날이 양쪽 무릎을 털썩 꿇고 말았다.
다리뼈가 모조리 박살 난 그의 하반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끼리릭.
도끼를 끌어와 몸을 지탱해 일으키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이제 나와 눈높이가 맞군.”
아서가 힘껏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쿠우웅!
뒤로 날아간 코날이 주르륵 바닥에 쓰러졌다.
“헉……?!”
“이, 이럴 수가…….”
“고, 공격대장님!”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한 용병단원이 소리쳤다.
전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전한 용병단원을 이리 만들다니?
그 말에 아서는 답했다.
“그럴 듯.”
* * *
부사령관 도널드.
그가 보고를 올린 병사 한 명과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부사령관님. 서둘러 검은 맹수 용병단 막사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병사가 용병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있습니다.’
그 보고를 받은 도널드는 미간을 구겼다.
도대체 누가?
검은 맹수 용병단의 공격대장 코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다.
비록 인성이 더럽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이기는 했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 했다.
또한 엄연히 그들은 자신들을 돕기 위해 검은 맹수 용병단에서 파견된 자들 아닌가.
“크하하, 속 시원하다!”
“봤어, 봤어? 주먹 한 번에 다 날아가는 거?”
“근데 뒤처리를 어쩌려고 저러지?”
병사들이 막사 근처에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사령관 도널드와 마주하고는 모두 서둘러 경례를 취했다.
모여 있는 병사들 틈을 헤집고 들어간 도널드는 끔찍한 참상과 만날 수 있었다.
아서가 몽둥이 하나를 쥐고 용병단원들을 개 패듯이 두들겨 패고 있었다.
“끄허억, 제, 제발 그만……! 자, 잘못했습니다!”
바닥을 구르며 맞던 용병이 양손으로 싹싹 빌었지만 아서는 멈추지 않았다.
도널드가 소리쳤다.
“그만,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그 목소리에 용병단원들의 얼굴에 ‘희망’이 보였다.
부사령관 도널드.
그라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다.
‘넌 이제 X됐어!’
누가 봐도 그는 신입 병사.
고작 꼬맹이다.
“……웃어?”
하지만 아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두들기던 병사를 또 한 번 팼다.
퍼억!
“끄아악, 제,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부사령관니임!”
또다시 아서에게 맞은 용병단원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친……!”
도널드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서가 차갑게 도널드를 돌아보았다.
그와 함께 품속에서 꺼낸 양피지를 건넸다.
양피지에는 ‘승인서’라고 적혀 있었다.
승인서에는 다름 아닌 총지휘관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승인서를 읽어본 도널드는 눈을 크게 떴다.
모든 것은 총지휘관이 승인했다.
총지휘관은 부사령관과 같은 급의 대우를 받는다.
또한 이번 작전의 총지휘관은 ‘전술의 신’.
그는 곳곳에서 습격을 가하는 던전 마스터들 틈에서 난세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를 떠올렸다.
그는 신출귀몰 귀신처럼 움직이며 승전 소식을 울리고 있었다.
그가 나타났다하면 패할 것 같던 전쟁이 승했고, 백성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저, 전장의 귀신…….”
도널드가 중얼거렸다.
그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용병단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이 꼬마가……?’
‘이 사람이…… 그 전장의 귀신이라고……?’
적어도 코날처럼 산처럼 거대한 크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꼬맹이라니?
퍼억!
아서는 또다시 용병단원들을 두들겼다.
“끄흐흐흑…… 부사령과아안니이임!”
그 목소리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제가 정중히 청합니다. 그만두시죠. 이는 사령관님께서도 가만히 넘어가시지 않을 겁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군요. 이놈들이 제 입으로 실토할 때까지.”
“실…… 토라니요?”
“두고 보시면 압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아서는 더 이상 도널드와 말을 섞지 않았다.
묵묵히 팼다.
팬 곳을 또 패고 또 패고 또 팼다.
돌아가면서 그들 중 한 명이 실토할 때까지.
누구는 바닥을 기며 침을 질질 흘렸고 누구는 살려달라며 아서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아서는 계속해서 팼다.
이제껏 전쟁터에서 끔찍한 참상을 많이 봐왔던 도널드조차도 마른침을 꿀떡 삼킬 정도였다.
“마, 말하겠습니다!”
그러다 한 용병단원이 자신의 머리 위로 몽둥이가 움직이려 하자 외쳤다.
소년은 정말 자신들을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용병단원들이 그를 바라봤다.
‘그건 말해선 안 돼!’
이런 표정.
‘뭔가…… 숨기고 있다.’
도널드는 직감했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
하지만 운을 뗀 용병단원 올드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저희는 이곳에 오기 전…….”
“오, 올드!”
“안 돼!”
용병단원들이 소리쳤다.
도널드가 검을 뽑아 들며 아서의 옆에 함께 섰다.
“몽둥이질에 동참할까요?”
“그거 좋군요.”
갑자기 꿍짝을 맞추는 그들.
하지만 그렇게 다짐해 놓고서도 올드는 망설였다.
그에 아서는 생각했다.
‘미끼를 문 자는…….’
더 패면 그뿐이다.
애초에 겁을 집어먹어 운을 뗐으니.
퍽퍽!
아서가 가차 없이 매질을 하자 발을 부여잡은 올드가 입을 열었다.
“……죽…… 습니다…….”
“뭐라고?”
아서는 귀에 손을 가져가는 제스처를 취했다.
“더 크게 말해라!”
“이곳에…… 오기 전…… 상단을…… 습격해 그들을 죽였…… 습니다.”
“……!”
도널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서가 다시 한 번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퍼억!
“끄아앗!”
“제대로 말 안 해?”
“전쟁터에 보급 물자를 지원하는 상단을 습격해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던전 마스터들의 습격처럼 위장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놈!”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널드가 아서가 든 몽둥이를 빼앗았다.
그러곤 흥분을 참지 못하고 올드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크헉!”
올드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도널드가 씩씩거렸다.
이는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었다.
전쟁터에 물자를 지원하는 상단을 습격해 죽이고 약탈했다.
군법에 따라 지금 당장 이들의 목을 모두 쳐도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아서는 흥분해 씩씩거리는 도널드와 사색이 된 용병단원들을 보며 생각했다.
‘끝났군.’
첩자들을 묶어놓을 방법이 생긴 셈이었다.
아서는 코널과 그 용병단원들이 약탈을 일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원체 더러운 자들이었다.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다.
코널과 그 용병단원들은 어차피 죽음을 면치 못할 거다.
어쩌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이들을 이용해 던전 마스터의 허를 찌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 죽은 것 같습니다.”
아서가 쯧 혀를 차며 말하자 도널드가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며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런 놈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아예 못 박힌 몽둥이로 패시지 그랬습니까.”
“아, 전 그런 잔인한 짓 못 합니다.”
“……?”
도널드가 돌아보자 아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