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군주회귀록 103화
황녀 라일레.
또 다른 이름은 전술의 신 로시스 지휘관.
그리고 군주게임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루시아였다.
그녀는 천막을 걷어내고 들어오는 아서를 보며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서운 그분이 오셨다!’
때문에 그를 보자마자 평소처럼 자신도 모르게 인사했다.
동맹의 관계를 맺고 있긴 하였으나 다프 군주를 처참히 짓뭉개 버리고 수백의 병력을 고작 40의 병력으로 이겨낸 자다.
더군다나 그가 협박하듯 굴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아서는 라일레에게 무수히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그는 항상 차갑게 말했다.
현재 라일레, 즉 군주게임에서의 루시아는 아서의 말처럼 모기 병력을 구매했고 그와 더불어 총연맹 발키리에서 나왔다.
브록 군주가 말하기를 아서가 도움을 주었기에 그녀가 연맹에서 나왔음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지금 그분이 앞에 계셨다.
라일레는 상체를 꾸벅 숙였다가 아차 했다.
‘나는 지금…….’
군주게임에서의 군주 루시아가 아니라 전술의 신이자 지휘관 로시스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아서가 말했다.
“잠꼬대이신가 보군요.”
“호호, 제가 깜빡 졸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렘지는 미간을 구겼다.
‘이런 모습은 보이신 적이 없는데…….’
렘지는 오랜 시간 그녀를 모셨지만 이러한 실수를 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알았다.
때문에 빠르게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는 순간.
고개를 땅에 박고 있던 아서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그의 표정은 딱 이랬다.
놀라움 반, 의문 반.
“가, 감히 고개를 들려 하는…….”
“미쳤군.”
“죄송해요.”
라일레는 말실수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아서가 그걸 모를 바보가 아니었다.
목소리만 듣고도 그가 루시아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그래도 루시아는 엄연히 황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서 앞에서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또한 아서도 굉장히 놀랐다.
‘세상에, 루시아가 전술의 신이었다니…….’
그와 더불어 의문이 밀려온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아서는 현 황제의 세 번째 딸 라일레가 앞으로 약 1년 정도 후 병마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베일에 감춰졌던 그녀의 장례식 또한 조용하게 치러졌다고 들었다.
한데, 루시아의 벌레 영지는 1년 후에도 굳건히 존재한다.
아니, 정확히 1년 반 후까지도.
현실에서 군주가 사망하면 당연히 영지의 당사자도 사망한다.
그리고 영지는 1주일 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한데 앞의 루시아의 영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현실에서 죽지 않았던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된다.
현황제가 굳이 자신의 딸이 죽었다고 거짓 장례를 치를 필욘 없었으니까.
또 생각해 보면 전술의 신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1년 후.
이렇게 생각하면 실제 라일레가 사망했던 시기와 겹친다.
현실에서 죽었는데 영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영지에서 군주 또한 죽지 않고 남아 있다.
‘아니, 죽지 않았던 게 아니다. 그녀는 이미 현실에서 죽어 있던 거다.’
아서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쳤다.
아서는 그대로 여러 가지로 풀이를 시작했다.
‘애초에 숙주가 몸속에 기생하고 있는 그녀가 현실에서 죽었다. 그러면 숙주가 진작에 그녀의 몸을 빼앗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지금 당장은 내가 아는 그녀가 맞긴 하지만 장례식 이후의 그녀는 숙주였던 거지.’
그녀의 영지 운영은 폭주가 일어나기 전까지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군주를 만나기도 했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숙주가 그녀의 몸을 빼앗고 그녀처럼 행세했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의문.
‘영지민과 병사들이 알았을 텐데?’
그녀의 영지의 영지민들조차 벌레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서가 입을 벌렸다.
‘미친……!’
아서는 눈을 부릅떴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서의 표정을 보며 라일레의 표정도 변해갔다.
아서가 벌떡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흠칫 놀랐다.
“놈들은 애초에 네게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였어!”
“네?”
라일레는 알 수 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벌레.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다.
그녀의 몸에서 숙주가 기생하게 될 것을.
그리고 그자가 자신들의 진짜 군주임을.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서가 추측하는 대로라면 가능하다.
‘애초에 그녀는 실제 ‘군주’가 아니었던 거다.’
참혹한 말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녀는 말 그대로 하나의 알이었던 것이다.
숙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를 보호하고 지속적인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그녀의 영지 능력은 일개 군주가 가질 능력이 아니었지.’
그녀가 죽고 숙주가 몸을 지배했을 때, 엄청난 숫자의 알을 낳기 시작하고 벌레들이 나타났다.
무한한 벌레들.
또한 도전 군주들에게 퀘스트가 내려졌었다.
‘벌레 영지 퇴치 퀘스트.’
그 퀘스트는 SS급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도전 군주들조차 크게 애를 먹었고,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서야 벌레 영지를 소탕할 수 있었다.
영지민들이 숙주가 깨어날 걸 알고 있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된다.
지금 그녀는 속고 있다.
그녀의 곁을 보좌하는 대리인, 병사, 영지민.
그들 모두가 속이고 있다.
숙주가 완전히 그녀의 몸을 먹어치울 때까지!
그리고 현실에서의 그녀가 죽었을 땐 이미 숙주가 그녀를 먹어치운 상태일 것이다.
‘지금도 그녀 안에 숙주가 있을 것이다.’
단지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네게 해줄 말이 있다.”
생각을 정리한 아서가 말했다.
* * *
“마, 말도 안 돼요…….”
라일레는 부정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대리인 바쿡족 콜로는 무척 좋은 자였다.
처음에는 벌레들의 영지를 맡았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영지민들도, 대리인도, 모두가 자신을 믿고 따라주었다.
그렇듯 좋은 자들이 모두 연기에 지나지 않다니?
부정.
하지만 아서는 단호했다.
“확신한다. 확인은 금방 할 수 있을 거다. 이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지금은 영지 탈환 이야기가 급선무다.”
맹점이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아서가 말했다.
“네가 짠 전술 전략은 이미 알고 있다. 영지 탈환을 위한 공격을 감행. 그 와중에 우리는 아틀라스를 빼앗기는 거지.”
“그, 그걸 어떻게…….”
“특성.”
아서는 평소처럼 간단하게 얼버무렸다.
아틀라스.
이는 마도 공성 무기의 종류 중 하나로 이필립스 제국의 대표 무기로 꼽혔다.
아틀라스는 코끼리 형태로 매우 거대하다.
또한 녀석들은 코에서 강력한 대포와 화염을 쏟아낼 수 있다.
거기에 아틀라스의 몸을 구성한 아크리윰이라는 광물은 매우 단단한 편에 속했다.
그 때문에 이 아틀라스 코끼리는 결코 쉬이 파괴할 수 없었다.
“아틀라스 코끼리 속에 여러 명의 병사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일부러 빼앗긴 척하려는 거겠지. 현재 우리가 중점을 둬야 하는 건 바로 성문을 여는 거니까.”
성문을 여는 것.
그게 핵심.
“맞아요. 놈들의 영지 수호를 막기에는 저희 쪽 손실이 너무 클 거예요. 또 뚫고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죠.”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아틀라스를 이용해 그 안에 병사들을 태우고 안으로 들어가 영지문을 여는 거겠지. 하지만 이는 실패한다.”
“어째서 실패한다는 거죠?”
라일레는 이 부분에 관련해선 확실히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째서?
아틀라스 안에 타 영지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은 밤중에 성문을 열 것이다.
그때 준비하고 있던 모든 병력이 들어가면 된다.
그럼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은 꽤 수월하게 진행될 터.
그녀의 의문에 아서는 짧고 굵게 말했다.
“첩자.”
* * *
검은 맹수 용병단의 막사.
수십 명의 용병이 고기를 뜯으며 흥얼흥얼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에 참가한 ‘수호부대’ 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릴 뿐 나무라지 못했다.
이번 탈환 작전에 그들을 통솔해 데려온 흑오우거라 불리는 코날 때문이었다.
코날의 신장은 약 2m.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검은 맹수 용병단에서 활동하며 악명을 떨쳤다.
그는 현재 검은 맹수 용병단에서도 간부급이며 어지간한 기사 여럿은 때려눕히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또한 현재 이필립스 제국은 병사 지원에 한계가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 바일리 영지 탈환 작전에 검은 맹수 용병단이 참가해 준다고 하니, 이는 기꺼워할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코날은 검은 맹수 용병단의 단가를 부르는 이들을 보며 자신의 까칠한 수염을 쓸었다.
그때 용병단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코날 공격대장님, 그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이야기.”
그는 눈만 돌려 앞니가 다 썩은 용병단원을 보았다.
“전장의 귀신이 오늘 막 바르디 평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듣기론 전술의 신을 만났다는데요?”
“전장의 귀신이라.”
그 말에 코날은 피식 비웃었다.
“전쟁터에서 이름 좀 날리다가 사라진 이슬이 한둘이던가? 놈은 고작 부풀려진 영웅에 불과해. 던전 마스터들과의 전쟁 속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라고. 실제로 만나본 놈은…… 아마 쫄보일 거다.”
코날은 입을 비틀어 웃었다.
그리고 다른 용병단원들이 말했다.
“하긴, 아무리 전장의 귀신이라 불리는 그놈이라고 할지라도 코날 공격대장님 앞에서는 애송이일 뿐이지요.”
“맞습니다. 코날 공격대장님이 머리통을 쪼갠 오우거 머리가 몇 개인데요.”
부하들이 치켜세우자 코날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다 앞에 놓인 빈 접시를 보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치워라.”
“네, 네……!”
소년은 전쟁터의 고아였다.
총사령관 고든은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잡다한 일을 맡겼고, 굶어 죽는 것보단 끼니라도 챙기는 게 나았기에 그들은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코날의 앞으로 다가가 빈 접시를 치우는 소년은 라드라는 이였다.
‘너희들이 던전 마스터보다 더해…… 빌어먹을 놈들.’
고작 열네 살.
어린 소년이었지만 라드는 알았다.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고.
그는 욱신거리는 팔에 미간을 구겼다.
얼마 전 라드가 실수로 접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고 코날이 그의 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때문에 라드는 뜨거운 화상을 입었다.
그뿐이랴?
라드의 친구 중 한 명인 소녀 로제는 얼마 전 밤중에 한 용병에게 끌려가 당했다.
또 누구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고 눈 한쪽이 불로 지져졌다.
용병들은 난폭했다.
라드는 이곳에 수발을 들기 위해 올 때마다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때 막사 안으로 아서가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아서를 보고도 기껏해야 병사 나부랭이 정도겠지 생각하고 있는 거다.
그들은 고작 병사 한 명 따위에 떠는 이들이 아니다.
아니, 기사가 와도 마찬가지다.
“팔은 좀 괜찮으냐?”
코날의 말에 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습니다.”
“왜 취침 중인 내 앞에서 접시를 떨어트려서 그런 봉변을 당한 거냐.”
황당한 말이었다.
또 그 목소리는 영락없이 장난감을 찾았다는 듯 가벼웠다.
접시를 떨어트린 게 팔에 뜨거운 물을 부을 정도로 잘못한 일일까 싶었지만 라드는 애써 웃었다.
코날은 인심 썼다는 듯 라드의 앞으로 동전 한 닢을 튕겼다.
태엥! 태대대댕!
“너희 고아들, 이런 거 좋아하지 않느냐? 기껏 팔 한 번 데인 걸로 이 정도면 남는 장사지.”
코날은 동전을 던지고 낄낄 웃었다.
주변의 검은 맹수 용병단의 이들도 그거 참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코날은 눈짓으로 어서 빨리 주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라드는 떨어진 동전을 바라봤다.
눈물이 흐를 것처럼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억지로 웃었다.
돈이다.
전쟁고아에게 돈은 중요하다.
이곳에서 잡일을 하기 전에는 구걸도 마다치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막사 한편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서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주머니를 풀어 손에 쥔 채 코날의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듣자 하니까, 1골드면 아이 팔을 불로 지져도 된다는 게 니들 대가리에 찬 생각 같은데.”
대가리.
그 석 자에 검은 맹수 용병단 용병들의 시선이 아서에게로 일제히 돌아갔다.
그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주머니 안에 500골드가 들었으니 난 너희를 전부 개처럼 패도 되는 건가?”
그 말과 함께였다.
아서가 주머니에 있던 골드를 힘껏 허공에 뿌렸다.
탱! 태대레레렝!
금화 떨어지는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