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군주회귀록 101화
이야기를 나누는 자베스와 은빛 머리카락의 소년을 보며 아우스와 루제는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자베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 우리 이야기 하는 거 같지 않나?”
에켈로 총연맹에서 산행은 허락해도 그들이 저지른 것과 같은 비매너 행위는 허락할 턱이 없었다.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들의 영지는 단숨에 쓸릴 터.
자베스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순간.
수우우웅!
허공으로 문지기 라베가 부우웅 날아올랐다.
그는 먼발치에서 소년 군주가 ‘그분’을 죽인 것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쿠우웅!
아서와 자베스 앞에 내려선 라베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취했다.
“사실이었어…….”
“이 산의 주인이 바로 자베스 님이었다는 게…….”
루제와 아우스가 중얼거렸다.
라베가 무릎을 꿇었다는 건 그녀가 정말 이 산을 정복한 적이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문지기 라베는 오만한 자다.
오로지 지키는 역할만 하지, 누구와도 사담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자베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년이 손가락을 퉁겼다.
정체 모를 부대가 영체화되어 빠른 속도로 정렬했다.
소년이 뭐라 중얼거린 순간.
수우웅!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루제와 아우스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푸쉬이이익!
푸쉬이이익!
두 사람의 머리가 떨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게…….’
‘뭐지……?’
콸콸.
그들은 죽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 * *
아서는 죽어나간 두 군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은 죽이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병사들은 자베스가 회수해 갈 것이다.
[귀신부대의 스킬 시간이 끝났습니다.]
반투명하던 병사들이 다시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아서는 자베스에게 얼음 심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빠른 시일 내에 보도록 하지.”
끝이었다.
자베스는 손 위에 놓인 용군주의 얼음 심장을 보았다.
수우웅!
얼음 심장이 자베스의 왼쪽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쿵쿵쿵!
두근거림.
[용군주의 반쪽 얼음 심장을 얻었습니다.]
[용군주의 얼음 심장이 하나가 됩니다.]
그녀는 몸속 깊은 곳에 있던 불안감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안도의 한숨이 흩어져 나왔다.
용군주의 심장은 온전히 가졌다고는 하나 그녀가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지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일 것이다.
하나 그마저도 엄청난 수준.
그녀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걸어가는 아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재수 없는 소년이다.
감히 자신을 손 위에 놓고 주무르려고 하는.
다른 도전 군주들이 봤다면 경악했겠지.
하지만 어찌 보면 자베스 쪽에서 먼저 잘못한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소년이 정당하게 얻어낸 반쪽짜리 심장을 뒤를 쳐서 죽여 빼앗으려고 했으니까.
어쩌면 소년이 이 정도만 해준 것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일 지도 모른다.
때문에 자베스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고맙다.”
“…….”
근위대장 르와드의 고개가 돌아갔다.
처음이었다.
얼음마녀 자베스가 누군가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건.
그리고 정작 본인도 그런 말을 뱉어내고는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르와드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발설하면 즉형이다.”
“예. 군주님.”
그 모습을 보며 르와드는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돌아가자.”
“예.”
곧 자베스와 그녀의 병력이 하산하기 시작했다.
* * *
그들이 돌아가는 걸 확인한 아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용군주가 죽자 매서운 눈보라가 걷혔다.
병사들은 추위에 여전히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내려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서는 양피지를 크게 펼쳤다.
[그림 재료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설꽃, 나무눈물, 백년먼지.”
촤아아아!
밝은 빛이 흩뿌려졌다.
아서는 인벤토리에 있던 세 가지 재료가 사라진 걸 확인했다.
천설꽃 S급, 나무눈물은 A급이고 백년먼지는 B급이다.
아서는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해진 나의 병사들.’
아서는 빙긋 웃었다.
그가 파괴의 살육자를 부르려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그들.
아서는 그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서서히 형상이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완전히 그려냈다.
아서의 그림 실력은 어느덧 수준급이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멋들어지게 그려냈다.
이게 다 그림 선생 알론과 손재주 스탯, 아서의 노력 덕분이었다.
“예술의 기억.”
푸른빛이 뿜어졌다.
곧이어 그 푸른빛이 방대하게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음?”
이런 경우는 이제껏 없었기에 아서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예술의 기억이 점수를 측정합니다.]
[당신이 흐뭇해하는 병사들의 성장이 작품 등급에 이바지합니다.]
[예술 점수 81%!]
[명작이 탄생했습니다.]
[명작의 이름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명…… 작……!”
아서의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수작을 탄생시켰던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그에 이은 더 나은 작품인 명작이 탄생했다.
아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름을 정했다.
‘베레스트 산맥의 전사들.’
띠링!
[첫 번째 명작이 탄생하였습니다.]
[첫 번째 명작을 탄생시킨 보상으로 앞으로 예술 점수+5 효과를 얻습니다.]
[창조주 군주의 모든 스킬이+1 상승합니다.]
[명작 베레스트 산맥의 전사들을 본 모든 자가 영구적 모든 스탯+15를 얻습니다.]
[그림을 본 모든 자의 추위와 상태 이상이 하산할 때까지 사라집니다.]
[명작의 탄생에 따라 ‘영역 지정 후 전시’하실 수 있으며 지정 범위는 10m입니다.]
[영역 지정 후 전시하실 시 입장료를 측정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은 자는 그 누구든 전시장을 손상시킬 수도,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전시?”
전시할 수 있다.
그 말에 아서는 작은 희열을 느꼈다.
베레스트 산맥에 오른 자들은 모두 힘겨운 길을 거쳤다.
백 개의 부대 중 열 개 정도가 오를까 말까.
오로지 해낸 자들만 아서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술품을 전시하는 이로서도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공짜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들은 베레스트의 전사들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도달해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입장료는 아서가 측정한다.
‘1만 골드가 적합하겠어.’
1만 골드도 분명히 엄청난 큰 돈.
아서로서는 가만히 앉아 돈을 받게 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베레스트 산맥의 전사들을 전시하며 군주는 한 명당 1만 골드. 병력은 1천 골드를 받겠다.”
[베레스트 산맥의 전사들을 전시합니다.]
콰드드득!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땅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붕이었다.
그다음은 기둥.
쿠그그그그!
놀라운 현상에 아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곧 완전히 모습을 갖춘 건축물은 신전과 흡사했다.
들어가는 문은 딱 하나밖에 없는.
[전시장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서가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안은 꽤 안락했다.
테이블과 의자 여러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중앙에는 베레스트의 전사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장에는 그 외의 작품들도 진열하실 수 있으며 입장료는 언제든 변동 가능합니다.]
[명성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명성 100을 채울 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명성 시스템이라.”
아서는 명성의 세부 설명을 확인했다.
그림을 보는 자가 많아질수록, 또는 약한 자보다는 강한 자들이 볼수록, 그들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게 많을수록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이 명성이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 보상에 대해선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아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베레스트의 전사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들어올 것을 명했다.
병사들은 스탯 상승 알림을 들었다.
그와 더불어 몸을 감쌌던 추위가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도, 폐를 쥐어짜던 고산병이 사라지는 것도 느꼈다.
그들이 밖으로 나서고 아서가 말했다.
“마지막 시련은 뭐였지?”
아서의 질문에 랜과 병사들은 잠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랜이 말했다.
“비밀입니다.”
싱긋.
그 웃음을 보며 아서도 싱긋 웃었다.
“저 자식, 버리고 간다.”
* * *
타타타탓!
점심을 먹자마자 영지 입구로 뛰어오는 존재.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 둘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거봐. 시간 칼 같잖아.”
“이거 올리아를 경비를 시키는 게 낫겠는데?”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올리아였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밥때를 제외하곤 영지 입구에 주저앉아 턱을 땅에 붙였다.
그러고는 먼 곳을 주시했다.
“망…… 보고 싶당…….”
벌써 안 본 지 40일이 넘었다.
군주님이 배를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가장 좋은데.
도대체 언제쯤 오시는 걸까.
“야, 올리아. 그렇게도 군주님이 좋으냐?”
“망?”
올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군주’라는 두 글자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하지만 곧 군주님이 안 계신다는 것에 시무룩해졌다.
“끼잉…….”
도대체 언제 오시나.
보고 싶어 죽겠는데!
그때였다.
“어?”
“올리아, 저기 군주님이다.”
“망, 거짓말쟁이들. 안 속아!”
올리아는 군주라는 두 글자에 꼬리를 흔들면서도 홱 고개를 돌렸다.
이제까지 짓궂은 병사들에게 속은 게 몇 번이던가.
군주님이 왔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는 항상 가슴이 철컹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속지 않으리!
“진짜라니까?”
“정말이래도?”
병사 둘이 기가 막히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하지만 올리아는 양치기 소년은 믿지 않겠다는 듯 도리질했다.
그리고 그때.
“올리아.”
익숙한 목소리.
너무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망망망망!”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뛰어다니며 안절부절못하며 짖어댔다.
그리고 곧.
먼 곳에서 병사들과 함께 귀환하던 아서가 중얼거렸다.
“영지 잠금 해제.”
스르르르
잠금 형태가 되어 다른 영지로부터 보호받고 또 영지민, 병사들도 나갈 수 없게 통제되었던 것이 사르르 풀렸다.
투명한 벽이 사라지자 올리아는 그제야 신이 나서 아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망망망!”
달려온 올리아가 그 자리에서 배를 뒤집어 깠다.
꼬리는 열심히 흔들어대며!
“많이 기다렸던 거냐?”
“망망!”
올리아가 혀를 내밀며 헥헥 웃었다.
아서는 녀석의 배를 쓰다듬어 주고는 그를 안았다.
할짝할짝.
올리아가 아서의 입술을 연신 핥았다.
“망망, 군주님 내 거! 내 거! 너무 늦었어, 미워!”
“미안하다, 올리아.”
아서가 부드럽게 웃었다.
“서둘러 그레모리 님께 보고해야지.”
그리고 경비를 서고 있던 이 중 한 명이 달려 나갔다.
아서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올리아뿐만이 아니다.
모든 이가 그를 기다렸고, 그중 또 다른 한 명이 그레모리다.
‘밥버러지들. 군주님이 오자마자 나한테 달려와서 보고하거라.’
그녀는 딱 그리 말했었다.
영지 안으로 들어가자 영지민들이 아서를 맞아주었다.
아서를 따르는 병사들은 누가 봐도 더욱 강해진 힘을 뿜고 있었다.
그들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달라졌다…….”
다른 병사들도 이번 베레스트 산맥에 갔던 이들이 변한 걸 단번에 알아챘다.
곧이어 성에서 헐레벌떡 그레모리가 튀어나왔다.
“군주님!”
그녀가 먼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별일 없었느냐?”
“영지에는 별일이 없긴 했사옵니다.”
“영지에는?”
“예.”
“그럼 다른 일이 있긴 하다는 거냐?”
“그 여인이 깨어났습니다.”
“아…….”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프의 신 아리스가 깨어났을 거다.
“지금 어딨지?”
“그, 그게…….”
아서는 주춤거리는 그레모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온 아서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주방에 들어온 아서는 황당한 웃음을 흘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미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