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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회귀록-100화 (100/210)

# 100

군주회귀록 100화

34장 얼음마녀 자베스

“……나 안 힘들거든?”

바닥에 주저앉아 파괴의 살육자를 부르려던 아서가 말하자 랜이 대답했다.

“그럼요.”

아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다시 영체화되어 흩어져 나갔다.

수우웅!

퐈지익!

푸지익!

주변을 포위했던 얼음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내 상상 이상이다.’

귀신부대로 완전히 변화하는 게 아니라 스킬 형식이라는 게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영체화되어 움직이는 귀신부대들.

그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얼음 병사들이 후드득 쓰러지고 있었다.

거기에.

얼음 병사들의 공격이 먹히질 않았다.

그들이 휘두른 검이 귀신부대들의 몸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후두두둑

순식간에 수백의 얼음 병사가 쓰러졌다.

로든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자신이 가르칠 게 없어 아쉽다는 듯.

곧이어 모든 얼음 병사를 단숨에 잡은 귀신부대가 용군주를 향해 움직였다.

수와아아아!

놈이 창을 휘둘러도 귀신부대들은 영체화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영체가 뭉치며 인간 형상으로 돌아와 용군주를 공격했다.

‘얼음 신전에서 보았던 동상은 분명히 귀신부대와 용군주가 대치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용군주를 사냥하기 위해선 귀신부대가 깨어나야 했기에 암시하듯 보여준 동상일지도 모른다.

“음…….”

아서는 죽음의 그림 수하들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아 묵묵히 지켜봤다.

곧이어 용군주의 몸 곳곳에 수십여 개의 병장기가 박혔다.

콰드드득!

그리고 곧 용군주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용군주의 가슴팍에서 심장이 뽑혀 나왔다.

“반쪽……?”

분명히 얼음으로 되어 있는 용군주의 심장은 반쪽짜리였다.

어째서 반쪽인가 하며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알림이 들려왔다.

* * *

루제와 아우스.

서로가 눈을 맞추며 동시에 말했다.

“우리 다시 내려갈까?”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용군주에 대해선 모르지만 방금 전 녀석의 무위는 보았다.

엄청나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또 그 힘을 보고 있노라니 딱 한 명만이 떠올랐다.

바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에켈로 총연맹의 도전 군주 자베스였다.

용군주는 말 그대로 얼음마녀 자베스와 비슷한 힘을 부렸다.

‘자베스 님께서 베레스트 산맥을 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랬다는 카더라일 뿐.

한데 그러한 괴수를 저 정체 모를 소년이 죽였다.

자신들은 이길 수 없다.

튀는 게 상책일 뿐.

그때 등 뒤에서 우르르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틀었던 루제와 아우스가 경악하며 재빠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주 루제, 총연맹장 자베스 님을 뵈옵니다.”

“군주 아우스, 총연맹장 자베스 님을 뵈옵니다.”

둘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그만큼 에켈로 총연맹장 자베스는 감히 그들로선 눈조차 마주볼 수 없는 여인이었다.

“너희는…….”

자베스가 아닌 근위대장 르와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둘은 마른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저희는 요새 군주들의 산행을 돕고 있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르와드는 가장 측근에서 자베스를 모시는 인물.

그렇기에 존칭이 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베스는 그는 안중에도 없었다.

경악.

그녀는 멀리서 용군주와 싸우는 소년과 정체 모를 수하들을 보았다.

골렘과 다크엘프, 인간 기사. 그리고 잿빛 늑대 한 마리.

뛰어난 자들.

그리고 소년은 더 무지막지했다.

‘어떻게 저런 군주가 있을 수 있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지 총레벨 17?

아니, 당장 20을 넘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더 경악스러운 건.

‘저 부대는 도대체…….’

머리가 복잡했다.

바닥에 널브려져 쓰러져 있는 병사들.

자베스는 그들이 얼어 죽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영체화되어 주변 곳곳에 그림자처럼 흩어져 움직이더니 얼음 병사 수백을 단숨에 죽였다.

용군주가 부리는 얼음 병사는 자베스도 부릴 수 있었다.

비록 C급의 병사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잡으려면 최소 A급과 가까운 등급이어야 했다.

거기에 병사들은 단번에 용군주까지 죽여냈다.

그리고 더 황당한 건 대수롭지 않게 주저앉아 지켜보는 소년 군주의 반응이었다.

‘이게 도대체…….’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하다.

곧 복잡한 생각이 싹 가셨다.

용군주가 허물어지면서였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용군주의 반쪽짜리 심장.

그 심장이 소년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소년의 손바닥에 내려선 심장을 보며 자베스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빼앗는다.’

그녀가 땅을 박찼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년의 등 뒤에 서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서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이게 네 목숨 값이라지. 네가 날 죽이는 게 빠를까, 내가 네 목숨 값을 부수는 게 빠를까.”

“……!”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년이 등을 돌리며 자신을 향해 입을 비틀어 웃었다.

* * *

(얼음 심장을 갈망하는 자)

설명: 에켈로의 총연맹장 자베스는 용군주의 반쪽짜리 심장을 가지고 있다. 용군주에게 남아 있는 반쪽짜리 심장을 갖지 못할 시 근 시일 내에 사망하게 된다.

아서에게 울렸던 알림은 중요 정보 열람에 관련한 것이었다.

그것을 보자 어째서 용군주의 심장이 반쪽짜리만 뽑혀 나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자베스가 반쪽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리고 아서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그녀에 대해서 알아챘다.

막는다?

아니, 절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당장 손에 반쪽짜리 심장을 쥐고 있다면?

그녀를 막을 순 있다.

아서는 심장이 덜컥했었다.

자칫 조금만 늦었어도 자신의 가슴이 뚫렸을 거다.

물론 심장도 파괴했겠지만.

아서는 태연한 척 덤덤하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허공에 얼음 창을 젓자 스르르 사라졌다.

어떻게 저 소년이 그 사실까지 안다는 건가.

근위대장과 대리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눈앞의 용군주의 반쪽짜리 얼음 심장이 중요했다.

‘안 돼. 부서져선 안 돼.’

아무리 그녀가 빠르다고 해도 소년도 예사롭지 않았다.

심장은 무척 약하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터질 정도로.

‘목을 확 베어서 머리를 떨어트릴까?’

아니, 그러다 만약 소년의 손이 먼저 움직이면?

그녀는 죽는다.

소년의 손이 얼음 심장에 조금 힘을 주었다.

움찔!

자베스가 즉각 반응했다.

‘이거 잘만 하면…….’

재밌게 써먹을 수 있겠다.

아서는 자베스가 추후 죽는다는 걸 안다.

그녀가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알지만 어떤 식으로 왜 죽었는지는 몰랐다.

어쩌면 정말 이 반쪽짜리 심장이 없어서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녀가 얼마나 차가운 존재고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지는 유명하지.’

자베스는 과거의 인물 중 가장 베일에 감춰져 있던 여인.

“나는 에켈로의 총연맹장 자베스다. 거래를 원한다.”

아서는 그 말에 입을 비틀며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머릿속으로 머리를 떨어트릴까 생각하던 그녀지만 다섯 걸음 거리가 벌려지자 망연자실했다.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음을 알아챘다.

“제대로 미친년이군.”

“……!”

자베스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쭈?”

하지만 아서가 물컹한 심장을 조물딱거리자 역시나.

움찔!

“잘 생각해 봐라. 넌 지금 내 뒤를 쳐서 이 심장을 빼앗으려고 했다. 거래? 좋지. 그 전에 예의부터 갖춰라.”

확실히 아서의 말은 타당하다.

자베스, 그녀는 무례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예의를 차려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현실에서도, 아스가르드 대륙에서도.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치욕을 당하느니 죽는다?

도전 군주 중 그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다.

휠 줄 아는 나뭇가지가 더 강한 법.

“나 에켈로 총연맹의 연맹장 자베스. 정식으로 용서를 구하는 바다.”

“좀 아쉬운데?”

어느새 자베스의 뒤로 몰려온 정예 병력들.

근위대장 르와드가 그 말에 발끈할 뻔했으나 자베스가 원치 않을 걸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나…….’

세상에.

도전 군주의 자리에 선 군주를 손 위에 놓고 쥐락펴락하려는 군주라니.

그것도 끽해야 아직 영지 총레벨 20도 안 된 놈이.

“뭐, 불쌍하니 이 정도까지 해주고.”

꾸욱.

자베스의 어금니가 꽉 물어졌다.

근위대장 르와드와 정예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자베스를 자극하다니?

하지만 얼음 심장은 목숨만큼 중요하다.

“원하는 게 있나?”

그녀는 정말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아서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

“군주의 서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가 능글맞게 웃었다.

* * *

그레모리.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그 품에 안겨 있는 올리아가 말했다.

“망망, 나 생전 저런 건 처음 봐! 쟤 정말 이상해.”

“나도 마찬가지다. 못난이 개야. 저 못생긴 여인을 어쩌지…….”

아서가 병력을 이끌고 나간 지 40일 정도가 지났다.

버프의 신 아리스는 아서의 말처럼 곧 깨어났다.

그리고 정말 경악스러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레모리와 올리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군주님, 어서 돌아와 주세요.’

그레모리는 아서가 보고 싶었다.

“망, 군주님 언제 와?”

그것은 올리아도 마찬가지였던 듯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리아는 매일같이 영지 입구로 향했다.

양옆으로 나열한 경비병들 앞에 털썩 주저앉아 턱을 바닥에 대고는 하염없이 아서만 기다렸다.

그리고 그레모리도 행동은 그리하지 않지만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고.

‘군주님, 어서 돌아와 주세요!’

그레모리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 * *

[첫째, 3주 후 있을 SS급 퀘스트의 던전 레이드에 아서 더 프레스를 포함시킬 것.]

[둘째, 오늘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함묵할 것.]

[셋째, 도움을 청할 시 2회에 한하여 부당하지 않을 시 응할 것.]

[이 모든 것에 응할 시 아서 더 프레스는 자베스 군주에게 용군주의 얼음 심장 반쪽을 지급한다.]

“…….”

자베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능글능글 웃고 있었다.

저 웃는 꼬락서니에 주먹을 꽂아 치아를 털어버리고 싶었다.

마치 소년이 아니라 예순 먹은 노친네의 미소를 보는 것처럼 능글맞고 얄미웠다.

그가 제시한 군주의 서의 내용.

‘터무니없진 않아.’

말도 안 되는 내용은 아니다.

단지 첫 번째가 거슬린다.

‘SS급 퀘스트를 받은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자베스는 한 달 전 SS급 퀘스트를 받았다.

그녀가 미지의 영역에 우연치 않게 발을 들였을 때 공략 알림이 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철저한 준비 중에 있었고, 앞으로 3주쯤 후에 공략에 나설 예정이었다.

‘내가 용군주의 심장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도 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이다.

하지만 이 군주의 서를 작성하는 순간, 자신은 발설할 수 없다.

아서는 잠시 군주의 서를 보며 생각에 잠긴 그녀를 보았다.

‘반쪽짜리 심장을 가지면 언젠간 죽는다는 건, 나 또한 이 심장을 내 것과 대체하면 언젠간 죽는다는 거지.’

그걸 모르는 아서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용군주의 심장으로 취할 이득을 모두 취할 생각이었다.

자베스가 3주 뒤에 가는 미지의 영역 던전 공략은 다름 아닌 피닉스가 있는 곳이었다.

공략 실패의 리스크.

그것은 바로 피닉스가 아스가르드 대륙에 강림하는 거였다.

그녀를 비롯한 모든 병력이 그 안에서 죽었었다.

피닉스의 깃털, 그리고 유리 고드름, 그 외의 몇 가지 재료를 이용해 아서는 처음으로 ‘전설 아티팩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 전설 아티팩트라면, 대군주들을 죽이는 것도 꼭 불가능만은 아닐 것이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자베스.

그녀가 군주의 서에 서명했다.

둘 중 한 명이 이를 어길 시 무조건 상대의 휘하로 들어가야 하며, 만약 계약자를 죽일 시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아서는 빙그레 웃다가 곧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저기 둘.”

자베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에켈로 총연맹의 군주 두 명이 있었다.

사실 자베스는 관심도 없다.

저들은 그녀가 보았을 때에 조무래기일 뿐.

“죽여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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