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군주회귀록 096화
그는 로칸 군주보다 더한 쓰레기다.
로칸 군주는 피그족을 선택함으로써 약탈을 시작했다.
그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바스는 그보다 더했다. 정말 산행 도우미로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는 베레스트 산맥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을 이용해 약탈을 일삼았다.
‘내가 오기 전에도 죽었던 자들이 있었던 거지.’
아서는 인근에 널브러져 있는 또 다른 병력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군주로 추정되는 여인은 바지가 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띠링!
[베레스트 산맥의 사냥꾼 퀘스트 완료.]
[모든 스탯+1을 얻었습니다.]
[3,000캐시를 얻었습니다.]
[설인족의 구슬 50개를 얻었습니다.]
아서는 이 산맥에 바스와 그 무리의 정체를 알고 오르기 시작했을 때 퀘스트를 받았었다.
설인족의 구슬.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를 먹을 시 한 달 동안 설인족처럼 발은 아이젠을 착용한 것처럼 변하고 고산병과 추위에 강해진다 하였다.
이는 병사들의 훈련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이 산에서 강철부대가 육성되었지.’
강철부대.
아서가 굳이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 베레스트 산맥에 온 이유.
이곳에서 강철부대가 만들어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라만이라는 군주가 존재했다.
소수 정예의 병력으로 상당한 승전을 거둔 군주로 유명했다.
그는 이곳 베레스트 산맥에서 강철부대를 육성해 냈다.
‘첫 번째 조건은 누구보다 빠르게 세 번째 베이스캠프에 도달하는 거였다.’
알다시피 아서는 그렇게 도달한 후에 미션 보상을 받게 되었다.
미션 보상을 받은 후엔 이런 알림도 들었다.
[베레스트 산맥의 정복자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었다.
그 후에 좌측 상단에 이런 게 떴다.
‘훈련도.’
이 훈련도가 100% 채워지면 아서의 병력은 강철부대로 변화할 것이다.
‘그들은 정말 강해.’
아서는 강철부대가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소수 정예.
그리고 뒤를 따르는 병사들을 이끄는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련하다.
만약 일반 병사의 검 마스터리가 30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들은 70 정도는 되는 노련함을 보였다.
무조건 유닛 등급이 높다고 강한 게 아니라는 걸 명명백백 보여줬다 할 수 있다.
“떨어진 모든 전리품을 챙긴다.”
“예!”
병사들이 설인족과 바스 군주가 떨어트린 것을 챙겼다.
그는 역시나 이제까지의 약탈로 꽤나 알부자였다.
전리품 중에는 아서가 건넸던 4만 골드와 그가 본래 보유하고 있던 3만 골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서는 그의 모든 것을 챙긴 후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간 후 다시 산을 오른다.”
“충!”
* * *
이틀이 지났다.
B급 군주 루제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말해라. 바스가 다른 군주와 올라갔다가 하산하지 않는 것이지?”
“말해줄 수 없다.”
문지기는 입을 꾹 닫았다.
그에 루제 군주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옆에 선 아우스가 말했다.
“문지기를 닦달해 봐야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아. 그는 입구를 지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는 거 알잖아.”
때문에 그들이 약탈을 일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귀띔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올라가 보자.”
루제와 아우스가 병력들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였다.
첫 번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그들은 며칠 전 사람이 묵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곧 루제 군주는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설마…….”
두 군주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볼 수 있었다.
죽은 자의 지대에 펼쳐져 있는 끔찍한 참상을.
“얼음 늑대에게 뜯어 먹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루제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우스는 무릎을 굽혀 땅을 훑었다.
“군화. 인간 병력의 군화 자국이다. 역시 바스의 산행 길에 함께한 자가 있던 거야.”
그 말을 끝낸 아우스가 시선을 한곳에 고정했다.
얼굴이 보기 싫게 뜯겨 있었지만 듬성듬성 자라난 검은 수염들이 남아 있는 시체.
뿌드득.
“추격한다.”
“예!”
두 군주는 모두 에티족을 부렸다.
에티는 외눈박이 거대 괴수로 추위에 강한 종족 중 으뜸인 종족이었다.
그들은 설인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놈은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그들은 바스 군주보다 베레스트 산맥을 더 많이 타봤다.
때문에 금방 따라잡을 거라 생각했다.
* * *
베레스트 산맥 4,000m 지점.
아서는 차곡차곡 그림 재료를 모으고 있었다.
오를 때마다 재료를 찾아 인피니티가 스스로 반응해 줬다.
‘이곳은 그 누구도 들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과 같지. 그 때문에 인피니티가 더욱 많은 재료를 찾아내는 것 같다.’
그것이 아서가 내린 결론이었다.
낮으면 C급 재료부터 시작해 B급 재료까지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아서는 한번 이 재료들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 탄생했다.
(곯아떨어진 전사들)
등급: 평작
예술 점수: 55점
그림을 보았을 시 특수 능력:
•그림을 본 후 숙면을 취할 시 모든 능력치+6 6시간 적용
이 곯아떨어진 전사들이라는 작품은 아서가 몬스터들과의 전투 끝에 피곤함에 쓰러진 병사들을 보면서 그려낸 작품이다.
평소에 만들어내던 평작들과 특수 능력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특수 능력이 대단해졌다. 고작 B급의 재료들을 이용했는데 이 정도 특수 능력이 부가된 것이다.
‘십 년 고드름과 백년 나무의 잎사귀, 설산 꽃.’
이것들이 주로 사용된 재료로 이곳 베레스트 산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추정되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뛰어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아서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올라간다.”
“예!”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 모두 답했다.
아직까지 사망한 병사는 없었다.
현재 훈련도는 고작 20%밖에 채워지질 않았다.
* * *
18일차.
여전히 매서운 기세로 바스를 죽인 이를 쫓는 아우스와 루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인간 병력이 우리보다 더 빨리 올라간다고?”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차이가 좁혀지질 않았다.
그만큼 인간 병력들이 엄청난 빠르기로 오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티가 느린 편이긴 하지만…….”
에티는 산맥 최고의 족이긴 했으나 조금 느렸다.
아우스가 혹시나 하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보다 이 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가능할지도…….”
“미친. 그건 너무 말이 안 된다, 아우스.”
“하긴…….”
루제의 말에 아우스도 바로 인정했다.
그건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럼 이는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확실한 건 놈이 정상을 먼저 찍고 온다고 할지라도 언젠간 마주치게 되어 있다는 거였다.
어차피 이 산맥에 오르는 데는 등급 제한이 있다.
때문에 군주 놈은 그들에게 절대 대적할 수 없을 터.
“휴식 끝은 끝났다. 바로 추적에 나선다!”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
많이 쉬어선 좋을 게 없었다.
* * *
덜덜덜덜
병사들이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6,000m 지점.
텐트 안의 병력들은 본격적인 베레스트 산맥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엄청난 추위가 병사들을 삼켜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설인족의 구슬을 섭취하였기에 고산병과 추위에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밤의 베레스트 산맥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랜은 소변이 마려운 걸 느꼈다.
그는 아서가 알려준 방법대로 조그마한 물통에 소변을 눴다.
쪼르르르.
랜은 소변을 눈 후에 그것을 얼굴에 가져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흐아…….”
“군주님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한 병사가 침낭에 몸을 구겨 넣고 한 말이었다.
랜은 동감하며 아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설인족의 구슬을 먹으면 추위에 조금 더 강해질 거다.’
아서는 자신들에게 구슬을 하나씩 건네 먹였다.
그러고는 정작 자신은 먹지 않았다.
‘왜 군주님은 안 드십니까?’
‘50개밖에 없으니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쿨하게 말했었다.
‘…….’
그 말에 모든 병사가 침묵했었다.
‘군주님도 춥지 않으십니까?’
‘춥다. 얼어 죽을 만큼.’
아서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너희가 더 잘 따라올 것 같거든.’
‘아…….’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솔선수범.
아서는 그것을 제대로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명심해라.”
랜은 수통으로 얼굴을 부비면서도 씨익 웃었다.
“우리는 최고의 군주님을 만났음을.”
“물론입니다.”
“그럼요!”
그리고 아서는 그 이야기를 밖에서 듣고 있었다.
‘아직 2,000m 남았다…… 이제 진짜 지옥의 시작이다.’
고비는 이제부터다.
* * *
해가 뜬 아침.
“으아아악!”
병사 한 명이 갑작스레 비명을 질렀다.
랜이 막사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밤사이에 얼어 죽어버린 병사 한 명.
“제기랄……!”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란드! 란드, 눈 좀 떠 봐!”
또 다른 막사에서 들린 비명이었다.
랜은 입술을 깨물었다.
‘올라갈수록 얼어 죽는 병사가 속출할 거다. 하지만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눈으로 덮어줘라.”
“예?”
“우린 다시 올라갈 준비를 한다. 모두 여기서 얼어 죽고 싶어?!”
“…….”
안타깝다.
함께 가고 싶다.
하지만 시체를 들고 등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병사들은 입술을 깨물며 그들을 눈으로 덮어준 후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서는 랜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병사 두 명이 밤사이에 얼어 죽었습니다.”
아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시 오른다.”
그는 묵묵히 몸을 돌렸다.
‘편하게 오를 수도 있겠지.’
던전에는 편하게 산을 오를 수 있는 물품이 수두룩하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선 강철부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서는 이들을 자원하여 받았다.
스스로 강해지고 싶은 결심이 선 자들.
애초에 이번 훈련 자체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었다.
물론 설인족의 구슬을 섭취하긴 하였으나 이는 엄청난 효과를 보이진 않았다.
서서히 고산병에 시달려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눈 덮인 산맥을 소복소복 걸었고 병사들은 그를 뒤따랐다.
그 와중에도 몬스터들은 쉬지 않고 습격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서는 뒤쪽에서 들리는 고성을 들었다.
“정신 차려!”
병사 한 명이 거센 바람과 추위, 내리는 눈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아서는 빠르게 다가갔다.
병사 란돌프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만하고 싶어…… 졸려…… 너무 추워…….’
꽁꽁 얼어버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발과 손, 그리고 갈수록 희박해지는 공기가 온몸을 괴롭혔고, 폐는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때 그는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군주님, 저는 더 이상 못…… 가겠…….”
짜악!
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뺨을 후려쳤다.
얼어붙은 뺨을 후려 맞은 란돌프는 살점이 뜯겨 나가는 고통과 함께 눈을 뒹굴었다.
“크흐윽!”
“네 의지가 여기까지라면 버리고 가마.”
아서의 목소리는 병사들을 옭아매는 추위보다도 차가웠다.
란돌프는 덜덜 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군주님……!”
“안 됩니다, 살아 있는 전우를 버린다니요!”
병사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후미에서 병사들을 지켜보며 함께 오던 랜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버리고 간다니요.”
하지만 아서의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그럼 네가 안고 갈래?”